신뢰의 공과
(이 글은 지난 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부모님의 삶이며, 또 친구들입니다. 그래서 저의 부모님은 좋은 친구들을 찾아서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선여울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곳은 큰 강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 강에서 수영하는 것도 배우고 침례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물론 수침 목사는 저의 형이었습니다. 강에 들어가서 형과 저는 수영도 하고 침례 받는 연습도 하고 넓은 바위 위에서 예배도 많이 드렸었지요.
겨울에 날씨가 좋다가 갑자기 추워지면 강물이 투명하게 언답니다. 투명한 얼음이 50cm 이상 되게 얼면 유리 같은 얼음 위에서 놀기도 하고 썰매도 많이 탔습니다. 썰매를 타다 보면 얼음 아래로 고기떼들이 노는 모습도 보인답니다. 또 얼음 위에 눈이 오면 썰매가 다닐 길만 눈을 쓸어낸 다음에 그 길을 따라 썰매를 타는 것도 재미있었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염려를 많이 하셨었지요.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가 제일 위험합니다.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는 쩡~ 쩡~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금이 가지요. 어떤 곳은 더 일찍 녹는데 잘못 건너가다 얼음 아래로 빠져서 물살에 쓸려 들어가면 큰일 나는 것이죠. 한 번은 제가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 강을 건너다가 얼음이 깨지면서 빠졌는데 다행히 무릎 정도 빠졌을 때에 아래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았답니다.
그 강에는 작은 버드나무들이 많이 있어서 소 두 마리를 끈을 길게 만들어서 강가에 묶어놓곤 했었습니다. 한번은 저희가 교회를 갔다 오는데 강 건너를 보니 저희 소 중에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그 옆에 묶어 놓았던 소 한 마리가 넘어져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끈이 발에 감겨서 잘못 넘어지면 소가 죽는 수도 있습니다. 말 못하는 소지만 자기 옆의 소가 넘어진 것을 보고 동료를 구하고자 안절부절못했던 것입니다.
선여울에 있을 때에 저희 두 소가 첫 새끼를 갖게 되었습니다. 소도 저마다 성격이 있지요. 저희가 흰 소라고 부르는 소의 송아지는 털 빛깔이 아주 뽀얗고 좋았습니다. 저는 강가에서 그 송아지들과 달리기도 하고 뛰어놀곤 했습니다. 한번은 송아지의 꼬리를 뒤에서 잡아당기다가 갑자기 송아지가 뒷발로 차는 바람에 얼굴을 맞았습니다. 그때 얼마나 아팠는지 혼자서 얼굴을 잡고 엉엉 울었었답니다. 또 소 젖이 탱탱하게 불었을 때에 살짝 누르면 젖이 쭉~하고 나왔습니다. 그럼 저는 그것을 입을 벌리고 받아먹기도 했는데 그것이 제가 처음으로 맛본 우유였던 것 같습니다.
송아지가 있어서 재미있게 노는 것은 좋았으나 한번 이 소 네 마리가 뛰기 시작하면 막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저희 밭 옆에 동네 분이 도라지를 심어 놓은 밭이 한 번은 저랑 형이 강가에 소를 풀어놓고 모래 있는 곳에서 놀다가 쳐다보니 소들이 안 보였습니다. 그래서 얼른 달려가 보니 소들이 그 도라지 밭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도라지가 막 싹이 올라온 때라서 소가 밟은 곳은 싹들이 부러졌습니다. 며칠 뒤 그 밭 주인 아주머니가 와서 아버지께 뭐라고 안 좋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희가 잘못한 것 때문에 아버지가 그 벌을 받으시는 것을 보고 얼마나 후회가 되었는지 모른답니다.
한 해에는 큰 홍수가 났습니다. 비가 3일 밤낮을 계속 왔습니다. 강에 시뻘건 물이 흘러내려 오기 시작하더니 금세 물이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통나무들, 드럼통들, 오리들, 나무 뽑힌 것들 등 이것저것이 물에 떠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에 잘 때에는 쿵쿵하면서 돌들이 굴러가는 소리도 들린답니다. 4일째 되던 날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날 잠에서 깨어났는데 이상하게 파도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문을 열고 나가보니 저희 집에서 불과 1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까지 강물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마당을 밟으니 마당이 물에 불어서(?) 쑥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하시는 말씀이 옥수수밭이 다 떠내려갔다기에 나가보았습니다. 강 옆에 있던 옥수수밭은 떠내려간 밭도 있고 그나마 붙어 있는 밭도 모래가 옥수수를 덮어버렸습니다. 감자밭에도 사태가 나서 흑이 감자를 덮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강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놀랍고 신기한 광경을 입을 벌리고 한 참을 구경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어이없고 힘이 빠져서 누워 계실 아버지를 보려고 방문을 열었을 때에 저는 부모님께서 무릎을 맞대고 열렬히 기도하시는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은 어린 제 마음속에 어떤 큰 인상을 주었습니다. 홍수가 나서 이제 먹을 것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혀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옛날 광야에 식탁을 베푸셨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광야에 식탁을 베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고 놓지 않는 한, 그분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훈련하셔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는 한, 그분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를 책임지고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쳐도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면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큰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앞에 있는 절망과 패배를, 역경과 고난을 소망과 승리로, 기쁨과 감사로 변하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을 신뢰함을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이 시골생활의 목적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요!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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