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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작곡 분야에서의 진정한 영예는 마흔 즈음에야 찾아왔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오페라 [삼손과 다릴라], 모음곡 [동물의 사육제], [첼로 협주곡 제1번], [피아노 협주곡 제4번],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그리고 주요 교향시들은 모두 30대 후반 이후에 나온 작품들이다. 그리고 그의 창작의 절정이자 19세기 프랑스 교향곡사상 기념비적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교향곡 제3번]은 그의 나이 마흔한 살 때인 1886년에 발표되었다.
오케스트라와 오르간의 비범한 만남
까지 프랑스에서는 독일-오스트리아의 걸작들에 견줄 만한 교향곡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환상 교향곡]으로 유명한 베를리오즈가 있지만, 그의 표제 교향곡들은 ‘고전적’ 관점에서 보자면 진정한 교향곡으로 보기 어렵다. 통상 ‘프랑스계 교향곡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세자르 프랑크의 [교향곡 d단조]도 1888년에야 나온 사실을 상기하면 이 작품의 의의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오르간을 부가하여 음향적⋅극적으로 특별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데, 오르간은 그가 가장 잘 다루었던 악기이기도 하다. 그는 열일 곱 살 때 성 메리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 임명된 이래 파리의 여러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했는데, 특히 1857년에는 유명한 마들렌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 선임되었다. 파리 중심부에 자리한 마들렌 교회는 파리에서도 최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격조 높은 교회였다. 따라서 그곳의 오르간 주자가 된다는 것은 파리의 모든 오르간 주자들 중에서 으뜸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생상스 는 그 자리에 20년 동안 머물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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