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묵돌입니다.
느낌으로는 2024년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세달이 넘게 지나고, 꽃이 피고, 완연한 봄이 되어
따사로운 오후나절이 무더운 여름을 예고하는 듯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린 시절을 얼마나 생생하게 기억하나요?
소싯적의 저는 내가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
얼마나 먼 세계까지 갈 수 있을지를 머릿속에 그리곤 했는데요.
어른이 된 후로는 어떻게 해도 도달할 수 없는 곳이나
죽을 때까지 극복할 수 없는 무언가, 혹은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금요묵클럽의 주제는 <THE RED>입니다.
19는 금기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금기는 곧 깨어져서는 안되는 규칙이며,
우리는 좋든 싫든 수많은 사회적-개인적 금기에 따라
말과 행동이 규정되어진채 살아갑니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금기를 깨는데에는 많은 용기와 피가 필요했고요.
혁명의 상징색이 다름아닌 '빨강'인데는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헤세의 말을 인용하자면 '새는 알을 깨고 나오지만'
—자유로이 날갯짓을 거듭하다보면 금방 알게 됩니다.
이제는 수천수만번 퍼덕여도 깨어지지 않는 하늘이,
더 아득하게 넓은 세계가 우리의 새장이 되었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알고 계신가요?
문학작품에서, 나아가 서사가 있는 예술에서 '금기'가 등장한다는 것은
그것이 곧 산산조각이 나서 깨어지리라는 예언적 사건입니다.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금기란 위반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선은 지워지고, 장벽은 무너지기 위해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4월 한 달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모여 이야기할 것은
바로 그 그러한 금기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마도 아주 진지하게 갈 것입니다.
환불? 그런 게 이제와서 될리 없잖아요.
슬슬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첫 번째 모임에 대한 설명은 이 아래에 있습니다.
:: 금주의 묵픽 (Muk's pick) ::
「공산당 선언」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 Comment ::
<파우스트>나 <전쟁과 평화>같은 대서사시도 아닌
불과 수십쪽 짜리에 불과한 '선언문'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공산당선언'은 1848년, 서른살의 칼 마르크스가 평생의 학문적 동지
엥겔스와 함께 작성한 문자그대로의 '선언문'인데요.
'The Communist Manifesto'라는 해외판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실제로는 '공산당 선언'보다는 '공산주의자 선언'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만,
아무렴 국내에서는 <공산당 선언>이라는 제목으로 너무 널리 알려져버렸습니다.
더구나 한국은 역사적으로 '공산당'이라는 키워드에
아주아주 예민할 수밖에 없는 나라다보니...
이 선언문은 인류의 사상사에 미친 영향과는 별개로
<공산당 선언>이라는 제목 때문에 덥석 집어 읽기가 힘든 책이 되었죠.
그러나 확실하게 말해두겠습니다.
<공산당 선언>은 딱히 금서도 아니고 (당연히 군대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현대의 중국 공산당이나 종북사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책입니다.
산업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화되어가던 당시 유럽에서
자본주의의 문제를 통렬하게 꼬집으며 그 대안적 사회구조로서
사회전체가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체제, 즉 '공산주의'를 제안하고 있을 뿐이죠.
한국에서 공산주의는 무조건 나쁘고, 사회주의는 뭔가 북한스럽고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공산당 선언>을 읽는다고 해서 여러분이 빨갱이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웃음)
깔 때 까더라도 알고 까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으로,
갇혀 있던 세계를 한 번 크게 깨보는 느낌으로 시작해보자고요.
: 읽기 TIP ::
- 어떤 판형의 책으로든 최대 50쪽을 넘지않는, 아주 짧은 분량의 선언문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냥 어려운 책입니다. 사상적인 문제보다는 읽기의 난이도 때문에 더 픽하기가 망설여졌을 정도인데요. <공산당 선언>을 정말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 유럽의 역사적 배경이며 사상적인 흐름, 여러가지 용어 같은 것들을 얼마쯤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보니 책으로 나온 <공산당 선언>은, 글의 배경과 용어를 설명하기 위해 아주 긴 주석이 딸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그걸 일일이 다 읽는다고 해서 또 백퍼센트 이해가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모든 걸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어... 대충 무슨 얘기를 하려는 지는 알겠다'는 정도로만 읽고 오셔도 만점입니다.
- 하여간, 그런 이유에서 정말, 정말 최소한의 용어와 설명을 하고 가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프롤레타리아Proletarier :: 아마도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를 "자기 자신의 생산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아서 살기 위해 부득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현대 임금 노동자"라고 정의했는데요. 달리 말하면 그냥 저, 당신,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만일 묵클럽 19기에 등록하신 여러분 중에 100억 이상의 자기자산 혹은 자기 소유의 공장이 있으신 분이 있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그 분에게는 조금 특수한 요금을 받아야하거든요.)
* 부르주아Bourgeois :: 두번째로 많이 나오는 단어일겁니다. 이쪽은 프롤레타리아와 달리 일상적으로도 으레 쓰는 용어 느낌인데, 원래는 프랑스어로 ‘성(城)’을 뜻하는 부르bourg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부를 축적한 계급은 안전하고 윤택한 성내에 살고 그렇지 못한 계급은 위험하고 척박한 성외에서 살았으므로 생긴 명칭인데요. 프롤레타리아와 달리 자체적인 생산수단, 그 자체로 자본을 불릴 수 있는 자산을 가진 자본가 계급을 일컫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무산계급이라면 부르주아는 유산계급이라고 할 수 있겠죠.
* 1848년 :: 당시 유럽은 급격한 산업화, 자본화로 인해 빈부격차가 나날이 극심해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공장노동자를 개같이 굴려서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 부르주아 계급들은, '이렇게 돈을 많이 가졌는데도 왕이나 귀족 같은 권력을 얻지 못한다'는 점에 엄청난 불만을 갖고 있었고요. 그 결과 노동자들을 부추겨 왕과 귀족을 압박하고, 의회 등의 형태로 권력을 이양받는 '부르주아 혁명'을 거듭하게 됩니다.
* 프롤레타리아 혁명 ::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저 부르주아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부르주아 혁명'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부르주아가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하류층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들이 투여하는 노동만큼 자본가들은 더 부자가 되기 때문이죠. 따라서 프롤테타리아가 주도하고, 프롤레타리아들 모두가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최종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합니다.
- 총 4장 구조의 선언문인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자면 1장과 2장일 것입니다. 3장과 4장은 당대 정치적 현실에 대한 논평과 사상적인 주석에 가까운 부분이라서,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대목이죠. 눈에 잘 안들어오더라도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겨주시면 되겠습니다.
- <자본론>이나 <공산당선언>, <철학의 빈곤> 같은 마르크스의 저작을 언급할 때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사상적인 파격성 때문에 문학성이 저평가 받는 '문학가'라는 것입니다.
- 실제로 그가 쓰는 표현들을 보면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몹시 강건하고 웅변적이면서 낭만적인 문장들이 눈에 띄는데요.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라는 첫 문장에서 시작해,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마지막 문장으로 끝맺는 <공산당 선언>은 마르크스 문학의 정수라고 할만합니다. 만일 마르크스가 사상적으로만 뛰어날 뿐 이렇게 뛰어난 문장력이 없었다면, 그토록 많은 이들의 심장을 뛰게 하지 못했겠죠. 이것은 확실히 문학적입니다. 괜히 묵클럽 첫 작품으로 고른 게 아니라고요. (웃음)
- <공산당 선언>은 돈주고 사서 읽어볼 수도 있지만, 그냥 인터넷에 번역본이 공개되어 있으므로 그걸 읽고 와도 괜찮습니다. 애초에 공산당 선언 자체는 쓰여진지 70년이 훨씬 넘어서 저작권도 없고, 원본은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돼있거든요. 다만 책으로 사게 될 경우 원문의 길이가 워낙 짧아서, 마르크스의 다른 저작과 함께 묶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께에 쫄지 마시고, 그냥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읽고 와주시면 되겠습니다.
:: 모임장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23길 40 지하 카페 <공상온도>
- 홍대입구역 1,2 번 출구 6분 거리
:: 일시 ::
2024년 4월 12일 금요일. 오후 8시 ~ 오후 11시
* 3시간 진행, 도중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모임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 가급적 (특히 첫 모임에는) 시간에 맞춰 참석해주세요.
* 카페 <공상온도>의 방침상, 기존 고객 퇴장 및 대관 준비 시간으로 인해 오후 7시 20~30분부터 입장이 가능하오니 이용에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 준비물 ::
- 「공산당 선언」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번역본 전문 링크 - 위키미디어)
(구매 링크 - 예스 24)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