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 그거 마약 아니에요?” 지인들의 반응은 똑같았다. 기자가 “대마로 만든 화장품을 아느냐”고 묻자 지인들은 “처음 듣는다”고 했다. “마약을 어떻게 얼굴에 바르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마를 원료로 한 화장품은 버젓이 판매 중이다. 화장품기업 비앤비코리아는 2015년 5월 ‘마리후아나’를 출시했다. 이름부터 대마를 연상케 하는 이 제품은 대마씨유(油)를 주성분으로 한다. 비앤비코리아 관계자는 “대마씨유는 성분의 25%가 단백질이며 오메가3, 오메가6, 감마리놀렌산 등 다양한 아미노산과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다. 마리후아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미백·주름 개선 기능성 인증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대마의 일반적 이미지는 ‘마약’이다. 하지만 대마라는 식물 전체가 인체에 위험하거나 환각 증세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대마가 마약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는 ‘대마초’ 때문인데, 대마초는 대마 잎사귀를 지칭한다. 국내에서는 대마, 대마초, 마리화나를 구분하지 않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아 ‘모든 대마는 마약’이라는 인식이 흔하다. 대마는 주로 마리화나(Marijuana)와 헴프(Hemp)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마약’이라 부르는 대마는 마리화나이고, 헴프는 화장품 등 산업용으로 쓰인다. 두 대마의 가장 큰 차이점은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의 함량이다. THC는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물질로 마리화나의 THC 함유량은 6~20%, 헴프는 2% 미만이다. THC는 대마꽃과 잎사귀(대마초), 씨앗의 껍질에 비교적 많이 분포해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헴프의 줄기와 껍질을 벗긴 씨앗을 가공 및 판매할 수 있고, 대마초로 쓰일 수 있는 잎사귀는 수확 후 소각 또는 매몰하도록 하고 있다. 헴프 잎에도 상용화 수준은 아니지만 마약 성분인 THC가 일부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19쪽 상자기사 참조). 반면 마리화나는 THC를 많이 함유해 잎은 물론, 모든 부분의 재배 및 판매가 금지돼 있다. 소비자에게는 ‘산업용 대마’가 생소할 법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대마를 옷감 원료로 써왔다. 장례용 수의(壽衣)에 쓰는 ‘삼’이 바로 헴프다. 지금도 경북 안동, 전남 보성, 강원 정선 등지에서는 헴프를 재배한다. 대마는 옷감을 포함해 활용도가 다양하다. ‘대마의 전면 합법화’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마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보다 유용성이 훨씬 많다”고 주장한다. 마약으로만 상징되던 대마, 그 안에는 어떤 가능성이 숨어 있을까. 미운 털 박힌 대마, 너는 누구냐
| 대마는 꽤 옛날부터 재배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6000년 전 대마를 재배해 의복을 만들었고 후한시대(25~220년) 채윤은 대마를 이용해 종이를 발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에서 목화가 전래되기 전까지 값싼 옷감의 주요 재료로 활용됐다. 대마는 전 세계적으로 재배가 가능하며 생장도 빠르다. 다른 작물에 비해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적게 사용해도 키울 수 있다. 약 120일 동안 재배하면 수확할 수 있어 토지 이용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다. 줄기는 곧고 가늘며 3~6m 높이로 자란다. 대마 섬유는 내구성이 강해 밧줄, 어망 등에도 쓰인다. 옛 소련군은 추운 환경에서도 부서지지 않는 대마 섬유를 이용해 군용 밧줄, 천막 등을 만들었다. 냉전체제가 심해짐에 따라 옛 동유럽권에서는 대마를 대량 재배했다. 1967년에는 세계 대마 섬유 생산량이 37만t으로 정점을 찍었다. 국내에서는 일제강점기 새로운 종자를 들여오는 등 대마 경작이 활발하게 이뤄졌으나, 1970년대 이후 화학섬유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대마 농업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71년 3000ha(30km2)에 달하던 국내 대마 경작지는 현재 500ha(5km2) 이하로 감소했다. 76년 대마관리법이 제정되면서 대마 재배에 대한 제약이 늘어났고 대마에 대한 일반 대중의 부정적인 인식이 영향을 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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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 가능한 대마, 친환경 재료로 각광 국내의 대마 산업화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대마 산업의 전망을 밝게 내다본 농업인들이 연구개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노중균 제이헴프코리아㈜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노 대표는 원래 연세대 원주캠퍼스 경영학과 교수였다. 그는 제자의 사업 자문을 해주다 산업용 대마를 접했다. ‘미래 농업의 희망은 대마에 있다’고 판단한 그는 안정된 교수직을 버리고 고향인 경북 상주로 내려갔다. 여러 가지 연구 끝에 2013년 2월 지금의 회사를 세웠다. 여우비가 내리던 7월 27일 대마의 다양한 변신을 꾀하는 그의 농장을 방문했다. 노 대표는 약 6600㎡(2000평)의 대마(헴프)밭을 경작하고 있다. 비에 젖은 대마밭에서 특유의 향이 물씬 풍겼다. 노 대표는 “이 부근에 뱀이 많은데 대마 향이 짙어서인지 뱀도 안 온다”며 웃었다. 110일 정도 키웠다는 대마는 3m가 훌쩍 넘게 자라 있었다. 대가 가늘고 길며 잎은 댓잎처럼 끝이 뾰족했다. 대마는 생장이 빨라 이모작이 가능하다. 잎을 제거한 대마 줄기를 박피기에 넣었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기계 속으로 들어간 대마 줄기는 곧 가는 실처럼 분해돼 나왔다. 미역줄기처럼 축축하고 푸르렀다. 이 줄기를 1년 이상 말리면 빳빳하고 누런 실처럼 변한다. 이것을 ‘텐셀’이라 부르는 천연사와 4 대 6 비율로 섞으면 솜이 되고, 다시 가공하면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원사가 된다. 노 대표는 2014년 국산 헴프에서 고급 원사를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했고, 한복디자이너 김예진 씨와 협력해 ‘대마 한복’과 ‘대마 핸드백’을 개발했다. 실제 완제품을 만져봤다. 천이 매끄럽고도 유연했다. 대마 속대(껍질을 벗긴 줄기)는 친환경 건축자재로 쓰인다. 친환경인 이유는 대마가 농약을 거의 쓰지 않고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또한 속대는 내부에 기공이 많아 가볍고 습기에도 강하다. 노 대표의 창고에는 건조시킨 속대를 담은 포대가 수십 개 쌓여 있었다. 이를 기계로 갈아 가공하면 벽돌이나 목재타일, 항공기와 자동차의 내구재를 만들 수 있다. 노 대표는 대마와 시멘트를 섞어 만든 벽돌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대마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대마에 대한 보수적 인식 때문에 합법적인 개발에서도 제약이 많다. 농업 경제가 갈수록 위축되는 상황에서 대마는 혁신적인 농가 소득원이 될 것이다. 연구에 일로매진해 성과를 보이겠다.” 국내 지방자치단체도 대마 개발에 나섰다. 충남 당진시 농업기술센터는 신성대와 1년간 공동연구 끝에 지난해 청삼(Green Hemp)으로 만든 화장품 ‘셀하임’ 4종 세트를 개발했다. 화장품은 청삼씨유를 주성분으로 한다. 또한 ㈜당진청삼은 지난해 당진시 농업기술센터·신성대와 업무협약을 맺고 청삼으로 만든 샴푸, 보디클렌저 등을 개발했다. 당진시가 청삼 활용에 앞장서는 이유는 청삼이 당진시의 특작물이기 때문이다. 권기완 당진청삼 대표는 “청삼은 생장 속도가 빨라 재배 시 화학비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친환경적인 미용 원료이고 리놀레산, 올레산 등을 함유해 피부 개선은 물론, 아토피 피부염 방지 등에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최근에야 대마를 이용한 화장품이 개발됐지만,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관련 산업이 활발해 세계적인 보디케어 브랜드 ‘더바디샵’ ‘닥터 브로너스’는 일찍이 대마씨유를 활용한 미용 제품을 꾸준히 판매하고 있다. 미국 일부 주 의료용 마리화나 인정 대마씨유는 식용, 의료용으로도 쓰인다. 해외에서는 대마씨유가 만성피로, 비만, 자궁내막증 등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헴프에는 칸나비디올(CBD)이라는 합성물이 많이 함유돼 있는데, 이는 마약 성분인 THC의 기능을 억제하고 인체 기능을 활성화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캐나다 과학자인 제임스 게이위츠(James Geiwitz) 박사는 2002년 8월 ‘헴프학(Hempology)’에 기고한 ‘산업, 의학, 오락용 헴프의 건강 관련 장점(Health Benefits Of Industrial, Medicinal, and Recreational Hemp)’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헴프 오일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강화한다. 우선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을 줄이고 혈관 내 염증을 감소시키며 혈압을 낮춘다. 헴프 오일 속 필수지방산은 세포막을 형성하고, 산소 공급, 헤모글로빈 생성을 통해 지친 근육을 활성화하며, 신경 조직을 발달시키고 간 기능을 높인다. 궁극적으로는 에이즈, 알츠하이머, 암, 당뇨 등을 치료하는 데 효과를 줄 수 있다.’ 미국 CNN 방송 의학기자인 산제이 굽타도 2013년 8월 ‘위드’(Weed·마리화나의 다른 이름)라는 2부작 다큐멘터리를 통해 “예전에는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에 반대했지만 이제는 찬성한다”며 “대마에 대한 연구 자료를 충분히 검토한 결과, 마리화나가 훌륭한 진통제이며 코카인, 담배보다 중독성이 낮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대마씨유를 자동차 연료로 활용하는 시도도 확산하고 있다. 친환경 연료인 ‘바이오디젤’이다. 바이오디젤은 식물성 기름과 메탄올 등을 혼합한 자동차 연료인데, 대마기름을 쓴 바이오 디젤은 유황 성분이 적어 대기 오염을 줄일 수 있다. 또한 미국 코네티컷대 연구진에 따르면 대마기름은 바이오 디젤로의 전환 효율이 97%에 달하며, 사용 시 자동차 파이프나 필터가 막히는 위험성도 다른 바이오디젤보다 훨씬 낮다. 미국에서는 2000년 대마기름을 연료로 한 자동차(Hemp Car)로 대륙을 종단하는 실험이 진행됐고, 일본에서는 대마 합법화를 주장하는 단체 ‘대마당’이 2002년 대마 바이오디젤로 1만2000km를 주행했다. 국내 반응 “전면 합법화는 이르다” 프리 트리 페이퍼(Free Tree Paper·비목재종이) 운동을 펼치는 환경보호론자들은 “나무 대신 대마를 펄프 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마는 나무에 비해 목질소(木質素)가 약 4분의 1에 불과해 표백하지 않아도 밝은 색의 종이를 얻을 수 있고, 같은 양의 일반 목재에 비해 2~4배의 펄프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생산성 및 환경보호 측면에서 효율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마 종이 상용화를 주장하는 환경운동가들은 “무분별한 벌채로 아마존 열대우림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은 대마를 심고 활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대마의 쓰임새는 다양하지만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실정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산업용 대마의 발전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식약처는 2월 ‘식품의 기준 및 규격 일부개정고시’에서 대마씨와 대마씨유의 THC 허용 기준을 각각 1kg당 5mg, 10mg으로 신설했다. 이에 따라 경북 보건환경연구원(연구원)은 7월 초 식약처로부터 마약류 취급 승인을 받고 대마씨와 대마씨유의 THC 검사를 시작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대마씨, 대마씨유의 THC 농도 검사는 국내에서 처음 시행되는 것”이라며 “대마의 영양성분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 연구를 시행하게 됐다. 연구가 끝나면 대마의 식품화를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마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국도 대마에 대한 인식을 좀 더 개방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대마가 전면 합법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 마약정책과 관계자는 “캐나다, 미국 일부 주에서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여전히 대마의 마약 성분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며 “유엔은 대마의 환각 성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해왔다. 식약처도 이와 같은 세계적 흐름에 따라 당분간은 대마를 전면 합법화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조성남 강남을지병원장(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은 “헴프는 전면 합법화해도 무리가 없지만 마리화나 합법화는 반대”라고 했다. 조 원장은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미국 일부 주에서 마리화나 남용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용 마리화나를 복용할 수 있는 환자의 신분증을 위조해 불법으로 마리화나를 거래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조 원장은 “마리화나를 허용한 유럽 일부 국가에서도 소비자들이 지정된 장소에서 제한된 횟수로 마리화나를 피우도록 규제한다”며 “의료용이라 해도 마리화나를 섣불리 허용하면 마약 남용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헴프로 마약 효과? 경제성 없어 남용 가능성 적어
| 헴프와 마리화나의 마약성을 구분하는 기준은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농도다. 헴프는 THC 농도가 비교적 낮고 마리화나는 높다. 헴프를 모아 THC 성분을 농축하면 마리화나만큼의 마약 효과를 낼 수 있을까. 국내 헴프의 THC 농도에 대해서는 문윤호 국립식량과학원 박사의 연구 결과가 있다. 문 박사는 2005년 논문 ‘대마 재배와 이용’에서 국산 대마(헴프) 가운데 예로부터 전해진 ‘재래종’과 2000년대 도입한 ‘청삼’의 THC 농도 최대치를 분석했다. 재래종과 청삼이 각각 1.74%, 0.34%로 나왔다. 문 박사는 “THC가 가장 많이 분포한 대마초의 끝순을 비교한 결과”라며 “전체 부분의 THC 농도를 봤을 때 재래종의 최소치는 약 0.3%, 청삼은 0%에 가까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재래종의 THC 함량은 0.3~1.74%, 청삼은 0.34% 미만으로 추정된다. 환각 효과를 일으키는 THC 농도는 얼마일까. 독일 노바 연구소(NOVA Institut)는 1995년 ‘THC의 농도에 따른 환각 효과’에 대해 발표했다. 성인이 흡연으로 최소한의 환각 효과를 얻으려면 THC 0.8~1.2%가 필요하다. THC 함량이 2.0~4.0% 이상이면 뚜렷한 환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를 담배 한 개비의 무게(500mg)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대마초 한 개비에서 최소 환각 효과에 필요한 THC의 양은 4~6mg, 뚜렷한 환각 효과에 필요한 양은 10~20mg이다. 문 박사의 연구 결과를 응용하면 재래종 헴프 500mg에는 THC 1.5~8.7mg, 청삼 500mg에는 1.7mg 미만의 THC가 들어 있는 것으로 계산된다. 이론적으로는 헴프의 THC를 3~4배 농축하면 최소 환각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2000mg 이상의 헴프 잎들로 시가(엽궐련)보다 굵은 대마초를 만들어 피우면 일부 환각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선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규정에 따라 헴프를 수확할 때는 반드시 ‘종자, 뿌리 및 성숙한 줄기를 제외하고는 소각·매몰’하도록 하고 있다. 즉 잎사귀는 태워 없애거나 남이 가져갈 수 없도록 땅에 묻어야 한다. 잎사귀에 THC가 가장 많아 마약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마 재배업자들은 “헴프로 환각 효과를 얻으려고 대량으로 말려 피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경제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반면 정부 당국은 “대마의 모든 악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반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관련 법률에 따라 마리화나는 물론 헴프도 마약류로 분류하며, 소량의 THC라도 남용될 여지를 막기 위해 불법 사용 및 유통을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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