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64)>
64. 각주구검(刻舟求劍)
새길 각(刻), 배 주(舟), 각주(刻舟라 함은 “배에 새긴다”라는 뜻이고, 구할 구(求), 칼 검(劍), 구검(求劍)이라 함은 ’칼을 구한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함은 ”배에 새겨 놓았다가 칼을 찾는다“는 뜻이다.
“칼 빠뜨린 자리를 뱃전에 표시해 놓고 나중에 칼을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우매한 짓이다. 배가 움직이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칼 빠트린 자리에 그대로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융통성이 없는 어리석음을 나타낼 때 쓰이는 말이다.
각주구검은 여씨 춘추(呂氏春秋)라는 책에 등장하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 사람이 칼을 소중히 껴안고 양자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이 재미있게 하는 이야기에 팔려 배가 강 한 복판에 이르렀을 때 그만 소중히 여기던 칼을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사나이는 몸을 일으켰으나, 칼은 이미 물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사나이는 당황했으나, 허리춤에서 주머니칼을 꺼내어 칼이 떨어진 뱃전에 자국을 표시를 했다.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자 사나이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 칼이 여기서 떨어졌기는 하지만 표시를 해 놓았으니 이제 안심이다”
얼마 후 배가 언덕에 닿았다. 사나이는 곧 표시를 해놓은 뱃전에서 물속으로 뛰어들어 칼을 찾아 보았다. 그러나 배는 사나이가 칼을 떨어뜨린 곳에서 한참 이동되어 왔으므로 칼이 그 곳에 있을 리가 만무했다.
사람들은 “배에 표시를 해서 칼을 찾는다”고 하면서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한강물은 어제도 오늘도 쉬지 않고 흐른다. 흐르는 한강물에 발을 씻은 사람이 내일 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는 없다. 어제 그가 씻은 강물을 벌써 저 멀리 인천 앞바다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아다.
삼라만상(森羅萬象)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시대의 변화를 알고 이에 대처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현상을 알지 못한 채 옛날의 낡은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이 역시 각주구검이나 다름없다.
양성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 옛날의 가부장적(家父長的)인 권위 만을 내세우거나 여필종부(女必從夫)를 외쳐봐야 통할 리가 없다. 21세기는 개성이 중요시되는 시대이다. 젊은 여성이 배꼽을 내놓고 다니기도 하고, 일부러 찢어진 바지를 입고 다닌다고 해서 말세라고 한탄해서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부리던 시대가 지나가고, 지금은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는 시대로 역전되기도 했다. 풍속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환경도 바뀌고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사회에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민감해야한다.
각주구검과 유사한 말로 수주대토(守株待兎 )라는 말이 있다. 수주대토란 “나무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는 뜻이다. 착각에 사로잡혀 되지도 않는 일을 고집하는 융통성 없는 처사를 비유하는 말이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수주대토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송나라 시절에 한 농부가 하루는 밭을 갈고 있는데, 토끼 한 마리가 급히 나오다가 밭 가운데 있는 나무그루터기에 머리를 들이 받고 목이 부러져 죽었다. ‘이게 웬 떡이야!“하며 토끼를 공짜로 얻은 농부는 그 후부터 농사일은 집어던지고, 날마다 밭두둑에 앉아 토끼를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가 나타나 나무에 머리를 들이받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농부의 밭은 그 때문에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버렸다. 농사가 기본인데도 농사일은 소홀히 하고 토끼만을 가다리는 농부의 어리석음을 표현한 말이다.
중국의 춘추시대는 각 제후들이 자기나라의 국력을 팽창시키는 부국강병(富國强兵)으로 천하를 제패하려고 했다. 공자는 정치적으로는 요순(堯舜)과 같은 이상적인 정치를 꿈꾸었고, 옛날 주나라 문 왕의 아들인 주공(周公)을 본보기로 삼았다. 공자는 인(仁)에 기반한 도덕정치를 펼치려고 여러나라를 10여년간 돌아 다녔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정치는 어느나라에서나 먹혀 들어가지를 않았다. 당시의 약육강식(弱肉强食)하는 시대적 여건과 공자의 이상정치(理想政治)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옛날 주나라의 문물제도를 노나라에 시행한다는 것은 육지에서 배를 끄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옛날과 지금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였던 것이다. 그리스의 플라톤의 철인정치(哲人政治)가 실패하듯이, 공자의 도덕정치 역시 현실에 뿌리내릴 수가 없었다. 결국 공자는 자신의 학문적 이상이 현실의 정치상황애서 결코 실현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만년에 후학양성에 전념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시대상황에 따라 사상과 제도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른바 강남의 귤도 토양이 다른 강북에 가면 탱자가 되는 것과 같다.
자식도 장성하면 옛날 어릴때 자식하고는 사고방식과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런데 이직도 옛적 어린 시절로 생각하여 분가한 자식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세월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하는 처사라고 할 수있다.
기업에 있어서도 경험이 많고 연륜이 깊은 경영자 일수록 시대의 흐름과 상황의 변화에 대하여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국제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뼈아픈 과거사를 잊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 그러나 역사는 흐르고 세계는 변하는데, 그 과거에만 얽매여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해서도 안 될 것이다. 현재가 중요한 것이다. 현재의 변화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거기에 상응하는 대책을 강구함이 현명하다.
“가는 사람 붙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도 말라”고 했다. 각주구검(刻舟求劍)과 같은 어리석음은 버리고,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순리대로 대처해 감이 중요하다. (2023.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