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문화센터는 동아일보에서 가지고 있던 동아방송을 정부로 반환을 하면서 생긴 동아일보사의 문화사업이었다.
당시 동아문화센터에 댄스스포츠 -당시 볼룸댄스- 강좌가 열리게 된것도 상당한 고통이 있었다고 한다. 우선 동아문화센터를 책임지고 열려야할 강좌를 고르면서 일본 NHK방송국의 문화센터를 모델로 한 것으로 이야기 들었다.
동아방송시절 부장이시던 박승열 부장, 이원용 P.D., 조석근, 성수목씨 등은 방송국이 KBS에 합병이 되어 KBS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동아일보에서 다시 문화센터를 만들게 되면서 옛직장으로 돌아와 초창기부터 문화센터의 혁심멤버가 되었고 좋은 문화센터의 구실을 하기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분들이었다. 댄스스포츠(볼룸댄스)강좌는 이분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열게되었는데 처음에는 반대에 반대를 하는 부류가 많아서 꽤 힘들어 하신것으로 지금도 그 분들에게 댄스인의 한사람으로 평생을 고맙게 생각 할 것이다.
문화 센터의 404호는 동아방송국 조정실이 었고 탈의실과 강사실은 방송국 녹음실이었다. 처음 수업을 맡은 분들을 보면 당시에 대단한 분들이 강의를 맡아서 시작이 되었다. 연세대 체육과 모교수(작고) 이화여대 성정순교수, 두 교수분을 필두로 댄스스포츠 원로이신 배영(작고)선생님 서울대 강사로 있던 홍기삼씨 댄스인 안성묵씨 등이 1980년 10월 부터 강의를 시작 하였다. 3개월 단위로 강좌를 개설하여 초급반, 중급반 운영을 시작했다.
당시 본인도 삼각지에서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대학에서 강의 하지 않는 강사는 동아문화센터에서 강의는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문화센터의 강사진은 전국의 최고의 교수들과 예술계 원로들로 짜여져 있었다. 본인도 처음에는 배영 선생님의 바쁜 시간을 대타로 강의를 하는 조교에 불과 하였다. 경기 선수로 활동하면서 3기 때부터 상급반을 한반 맡게 되어 가슴 벅찰 정도로 기뻤다. 정말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이 앞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게 되었다. 당시, 댄스를 배운분들을 대충 열거하면, 1기생인 김진국씨 (당시 체이스 맨허튼은행 근무), 전효기씨 (농협근무) 송치홍씨 (고려증권 근무 후 하나은행)등 현재도 댄스스포츠 동호인으로 여러분야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댄스스포츠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루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분들이 동아문화센터로 거쳐가게 되었다. 81년에 60여명에 불과하던 동호인들이 기하 급수적으로 불어나 나중에는 1주일에 43개강좌 1400여명이 강의에 참여 하여주시었다. 당시에 처음강사로 이회진, 이준희, 유승현, 김민, 강영희(아지컬렉션 대표). 김남주(댄스월드 대표), 이해동, 김세미, 송명실, 김정현(고), 정한수, 황인옥, 김용랑, 이정우 최훈씨등등... 수많은 강사들이 문화센터에서 여러 동호인들을 지도하며 꿈을 키워나갔다. 82년 당시 4층 404호의 창가에 작은 책상하나를 준비하여 삼각지 연구실을 폐쇄하고 그곳에서 상주하게 되었다. 회원은 정말 놀라울정도로 늘어났다. 초급과정을 가르치는 한반에 50명씩 신청을 받아서 강사들이 눈코뜰세 없이 지도를 하였다. 개인지도는 늘 몇명씩 시간이 되도록 순서를 휴게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에 음악은 레코드 판으로 시작하여 릴테이프로 강의로 하였고 토요모임에서는 조현철씨가 자주와서 레코드를 틀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83년부터 해외 경기대회를 가게되면서 많은 레코드음악을 구입하여 좋은 음악에 회원들이 즐거워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였다. (현재 레코드를 보관 중이다.) 처음 해외 경기대회를 가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 시절은 여권을 만들기가 어려웠고, 부부가 함께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있어야 했다. 여권 신청을 하였는데 (당시 외무부 여권과) 한동안 여권이 나오지 않아서 걱정을 할때 외무부에 근무한 회원 한분이 나타나서 도와주셔서 처음으로 해외 경기대회를 갈 수가 있었다. 당시는 "빽" 이라는 것이 통했으니까. 이제 생각하니 아른한 생각이 앞서는데 여의도 문화센터 건물이 없어지고 이제 문화센터 자체가 없어진단다. 동아문화센터는 이제 추억의 전설 속으로 사라지나 보다. 24년을 문화센터와 보냈는데 댄스스포츠의 산실이 없어진다니 나도 이제 추억속으로 살아 질 때가 저 넘어 아득히 보이는 것 같다.
2008년 3월 어느좋은 봄날에 "박 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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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뒤로보이는 김진국 김태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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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동아문화센터 4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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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오명 사장님께 20주년창립기념공로패 받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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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뒤로 보이는 조미호, 송치홍, 여상현, 노방현부부 회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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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순 이영실/이인희 송영란등>
<1997년 박효 선생님 은퇴 공연 동아문화센터 포메이션팀 (롯데호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