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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그림을 배우자 ◀▒▒│ 원문보기 글쓴이: art-home
중국의 목판화는 길고도 복잡한 발달과정을 거쳤으며 송·원나라 때(960 - 1368)는 삽화나 책표지로 사용된 것이 많다. 독립된 판화로 보이는 것은 명나라 말과 청나라 초,즉 1640년에서 1800년 사이에 제작된 희곡·소설을 주제로 한 것과 풍경·인물화 등인데 이 시기를 중국의 판화황금시대라고도 한다. 1340년에 나타나는 2색 목판화와 종이에 물감의 번짐을 이용한 수인화(水印 ,중국의 전통적인 목판공방에서 수성물감으로 찍는 다색 목판화의 총칭)는 일본의 유명한 우키요에 판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인쇄물을 가졌는데 바로 신라시대의 '무구정과대다라니경'이다.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석가탑을 완성하면서 넣었다고 추정하는 '751년의 것'과 당시 중국과의 시대적인 상황에서 본 '704-706년의 것'이라는 두가지 설이 있다. 목판화로서 삼국시대의 것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으며, 고려에서 목종 10년(1007)개성의 총지사에서 지주 석홍철 스님의 간행으로 명기된 '보협인다라니경'의 변상도가 있다. 1234년에는 목판인쇄의 단점을 보완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새로운 인쇄방법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고판화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다색 판화가 거의 보이지 않고 검정색과 붉은색으로 찍은 목판화가 많다는 것이다. 고판화의 역사를 편의상 개국에서 1909년까지,근대는 1910년부터 1959년,현대는 1960년으로부터 현재까지로 잡고 보면,근대의 판화작품은 거의 보기 어렵고,1968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창립되면서 비로소 활기를 띠게 된다. 1970년에는 동아일보사 주최로 <제 1회 서울판화미술제>가 성공적으로 열려 올해 4회째를 맞고 있다. 이것뿐 아니라 많은 판화전이 단체전·개인전으로 열리고 있으며,대학과 대학원에 판화과가 속속 개설되고 판화아카데미도 생겨나고 있다. 또한 최근 1년 사이에 약 5-6권의 판화 전문지와 관련 서적들이 출판되면서 한국의 현대판화는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일본의 제지술은 서기 610년 경 담징에 의해 전해졌다. 동양 재래의 방법으로 만든 일본 종이를 '와시'라고 하는데,서양에서 요즈음에는 오리엔탈 페이퍼라고 부르던 것을 제패니스 페이퍼라고 부를 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하다. 국제적으로 가장 오랜 제지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종이에 관한 인간문화재 한명 보유하고 있지 않은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한편 에도시대가 되면서 유명한 우키요에가 등장하는데,우키요에란 한마디로'에도시대의 서민생활의 풍습을 그렸던 풍속화'다. 우키요에는 주로 목판화로 제작되어졌는데,17세기 중반에 서구 회화의 영향으로 중국 소주의 목판화에는 원근법을 강조한 '안경화'라는 것이 생겨나는데 우키요에는 이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다색 우키요에 목판화를 '니시키에'라 하기도 한다. 이 목판화는 1889년 하야시(1852-1906)라는 판화상이 파리에 일본미술점을 설립하면서 대대적으로 유럽에 알려지게 되는데, 일본 역사를 되돌아 볼 때 판화는 이미 고대로부터 적극적으로 수용, 발달해왔다고 볼 수 있다. 현존하는 서양의 목판화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은 1423년 작품인 작가 미상의 <성 크리스토퍼>가 있으며, 그 이전의 작픔으로 추정되는 것도 있다. 목판화의 태동으로 보이는 성물(聖物)과 날염 으로 유럽 각지에서 나타나며, 이 시기가 지나면서 밀도있는 작품들도 나타나는데,우리나라의 부적처럼 여행자들이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이것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집에 붙이기도 했는데,대개 교회나 수도원에서 제작되었다. 문맹자들을 위해 성서 이야기가 목판·동판화 등의 삽화 로 제작되기도 했다. 뒤러(Albrecht D rer 1471 - 1528)는 목판화 350점,동판화 150점을 남기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당시 판화가로서 최고의 위치를 누렸다. 유럽에서 1500년 초에 나타났다는 '키아로스쿠로 목판화'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크게 유행했다. 키아로스쿠로란 '명암'을 뜻하며 동일색 계통의 다색 목판화를 가리킨다. 동판화의 발명자로 알려져 있는 피니게라(Maso Finiguerra 1426- 64)는 당시의 금은세공자로서도 중요한 인물이며,숀가우어(Martin Schongauer 1470?-91)는 화가이면서 115점의 동판화 작품을 남긴 금은세공자로도 유명하다. 1445년경에는 구텐베르크(Johannes G.Gutenberg 1440?-68) 에 의해 서양식 활판인쇄술이 발명되고 피니게라에 의해 조각 오목판화가 종이에 프린팅 되었다고 전한다. 1480년경의 작품으로 보이는 작가 미상의 드라이포인트(뾰족한 송곳으로 금속 판면에 직접 화면을 그려 찍어내는방법) 기법에 의한 작품도 있다. 또한 금속이 산에 녹는 성질을 이용한 부식기법이 1513년 독일의 홉퍼(Daniel Hofer 1470?-1536)와 그라프(Urs Graf 1485?-1528?)에 의해 연구되었고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69)는 당시 특수한 혼합 부식액인 네덜란드 부식액으로 완벽한 오목판 화면을 창출해냈다. 1642년에는 독일의 지겐(Ludwig Von Siegen 1609-1680?)에 의해 메조틴트기법이 발명되고,1646년에는 프랑스의 보스에 의해 동판화 법서가 발행되었다. 1768년에는 이탈리아의 프린스(Jean Baptiste Prince 1734-81)가 아콰틴트기법을 발명했으며, 이것이 스페인의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에 의해 완전정착되면서 동판화는 확실한 조형세계를 확립하게 되엇다. 그러다가 국제적으로 석판인쇄술이 발명되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1798년 독일의 제네펠더(Alys Senefelder 1771-1828)에 의해서다. 석판화는 목판화나 동판화처럼 볼록·오목한 화면을 물리적으로 만들어 프린팅하는 방법과는 달리 물과 기름을 이용한 평판인쇄에 해당하는 화학적 인쇄방법으로 종전의 방법보다 값싸고 손쉽고 빠르게 대량 인쇄하는 방법이 제시되었다. 고야·도미에·르동·쉬레 그리고 유명한 로트렉 (Toulouse Lautrec 1864-1901)은 다색 선판화로 포스터를 제작했고 콜비츠(Kathe Kollwitz 1867-1945)는 민중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석판화를 제작했다. 그러다가 현대 석판화공방(TAMARIND Lithography Workshop)에 의해 이루어졌다. 비영리 연구기관으로서포드재단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작가들과 협력할 수 있는 프린터의 양성과 작가들의 자유로운 창작 장소로 개방하고 엄격한 작품 관리를 할 수 있는 학예원을 양성할 목적으로 생겨난 이 공방은 10년 간 약 75,000장의 작품을 만들었고,1970년 뉴멕시코대학의 판화과에 합병되어 가로(Antreasian Garo)와 클린턴(Adams Clinton)에 의해 석판화 기법서 <타마린드의 석판술>이라는 전무후무한 책을 1971년에 발간하면서 새로운 개념의 공방과 지침서가 제시되기도 했다. 그곳 출신으로 유명한 타일러(Kenneth Tyler)는 로스엔젤레스에 제미나이판화공방을 1965년에 설립하고,1974년 뉴욕 근처에 타일러공방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제미나이공방과 타일러공방은 미국의 판화공방의 역사이면서 현대 판화공방의 메카역할을 하고 있다. 잘 알려진 라우센버 그, 재스퍼 존스, 호크니, 마더웰, 로젠퀴스트, 스텔라 등의 작품이 이 공방들을 통해 제작되었다. 공판화의 대표적인 판종인 실크스크린은 1907년 영국의 심슨(Sanuel Simson)에 의해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되는데,실은 1870년경 프랑스에서 염색을 위해 최초로 사용되어졌고 그 이전에 이미 동양에서 발견되었다. 그 후 실크스크린은 다른 판종보다 저렴하고 능률적이며 프린팅하고자 하는 매체에 손쇱게 인쇄할 수 있어 크게 성행하게 된다.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TV브라운이나 컴퓨터칩도 이 인쇄가 아니면 제조할 수 없을 정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