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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10월 31일 주일 설교
제목 : 도무지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신지 모르시겠다구요?
본문 : 창세기 40장 3절
그들을 경호대장의 집 안에 있는 감옥에 가두었는데, 그 곳은 요셉이 갇힌 감옥이었다. <창세기 40장 3절, 새번역>
어느덧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리고 10월의 마지막 주일이기도 합니다. 참 의미 있지 않습니까? 한 달의 마지막 날이 주일이기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먼저 축복하기는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살아내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멀고 험한 길 여기까지 잘 달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또한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 귓가에 들려주시는 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롭게 시작되는 11월도 의미 있는 한 달이 되시기를 마음 다해 축복하며 소망해 봅니다.
가끔씩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어려운 상황 때문에 답답해서인지,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오해하게 된 이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이 저를 인도하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어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대체 어디에 계신거죠?”
사실 이 말을 듣고 제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딱히 없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 어떤 해답이라도 대답해주려 한다면 예상치 못한 역풍을 거세게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들어주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놀랍게 인도하시는 손길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도 명확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다행히 하나님을 버린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으면 계속해서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왜 하나님의 손길이 자신에게는 흐릿하거나 아예 없는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실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런 선택만은 하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들고 있었는데 아쉽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2021년 한 해를 보내오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며 살고 계십니까?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정말 세밀하고 정확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 그 놀라운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오셨습니까? 아니면 혹시라도 도무지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신지 모르겠다고 고백하고 계십니까? 혹여 이런 고백도 지나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지 도저히 몰라서 그냥 혼자서 걷고 계시는 중이십니까?
여기 도무지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인생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안타깝고 가엾게 느껴지는 ‘한 소년’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이 소년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 것인지 제가 묻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그 사람의, 그 소년의 이름은 바로 ‘요셉’입니다.
형들 손에 팔려서 상인들에게 끌려온 낯선 땅 이집트! 노예가 되어 바로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갔지만 어려운 환경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매일 매일 그래도 요셉은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주인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맡길 정도였으니 요셉이 얼마나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는지 충분히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무엇 합니까? 결국은 보디발의 아내와 관련되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요셉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사실 보디발의 집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요셉의 결백을 알고 있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어린 히브리 소년의 편을 들어주는 이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요셉은 머나먼 타국으로, 그것도 친형들의 손에 팔려온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감옥에 갇히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어린 소년이 견디기에는 너무도 버거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요셉의 주인은 요셉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 그 곳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었다. <창세기 39장 20절A, 새번역>
감옥에 갇히게 된 첫날 밤, 보디발에 대한 원망과 더불어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파도처럼 밀려왔을까요?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눈물과 절망의 순간에도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을 계속 겪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자포자기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요셉의 답답하고 억울한 상황과는 다르게 성경은 아주 태연하게 다음 구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셉은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갇힌 감옥이 사실은 감옥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감옥이긴 했지만, 일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과는 다르게 꽤 괜찮은 시설을 갖춘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었다는 것을 요셉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여전히 함께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하셨다. <창세기 39장 21절, 새번역>
놀랍지 않습니까? 요셉은 그 곳에 혼자 있지 않습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요셉과 함께하시고, 돌보아 주시고,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이 구절을 제 3자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요셉에게 그러하시듯 우리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요셉과 같은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시고, 한결같이 사랑해주신다는 것을 내가 바로 내가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요셉에게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순간, 동일한 하나님이, 동일하게 나에게도, 동일하게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요셉을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도우시는 하나님을 느껴서일까요? 요셉은 다시 최선을 다해 살기 시작하였고, 이내 간수장의 눈에 들게 됩니다. 그래서 보디발과 마찬가지로 간수장도 요셉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게 됩니다.
간수장은 감옥 안에 있는 죄수를 모두 요셉에게 맡기고, 감옥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을 요셉이 혼자 처리하게 하였다. 간수장은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것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 되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창세기 39장 22~23절, 새번역>
이 모든 상황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모든 상황을 그저 '은혜'라고 한마디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깊이를 다 측량하지 못하고, 그 계획을 다 이해할 수 없도록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은혜'가 가득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뒷받침 해주며 요셉을 깨닫게 만들고, 우리를 깨닫게 만들 결정적인 구절 하나가 이어서 등장하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있은 지 얼마 뒤에, 이집트 왕에게 술잔을 올리는 시종장과 빵을 구워 올리는 시종장이, 그들의 상전인 이집트 왕에게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었다. 바로가 그 두 시종장 곧 술잔을 올리는 시종장과 빵을 구워 올리는 시종장에게 노하여서, 그들을 경호대장의 집 안에 있는 감옥에 가두었는데, 그 곳은 요셉이 갇힌 감옥이었다. <창세기 40장 1~3절, 새번역>
혹시라도 앞으로 요셉의 인생을 바꾸어 줄 ‘술잔을 올리는 시종장’과의 만남이 결정적인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만남에 너무 시선을 두지 마십시오. 이 만남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이 같은 구절 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요셉이 갇혀 있는 감옥의 ‘위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이 ‘감옥의 위치’를 알려주신 구절을 통해서 큰 깨달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오해하며 떠나가 버린 많은 이들이, 오늘도 도무지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신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모든 분들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접고,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느껴볼 수 있게 되는 구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인도하고 계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따로 창세기 40장 3절만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을 경호대장의 집 안에 있는 감옥에 가두었는데, 그 곳은 요셉이 갇힌 감옥이었다. <창세기 40장 3절, 새번역>
할렐루야! 요셉은 놀랍게도 다른 감옥이 아닌, 바로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 안에 있는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결코 보디발이 요셉에게 화가 나서 요셉을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보디발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내에게서 요셉을 떨어뜨려 놓으면서 동시에 여전히 자신의 심복으로 중요한 일을 시키기 위하여 이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배경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디발을 통하여 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요셉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억울하고 답답해 많은 말 하고 싶었을 요셉의 그 마음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더 큰 계획을 품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어찌 ‘은혜’라는 단어 외에 다른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불현듯 지금 상황에 영화나 드라마처럼 BGM이 깔리고 있었다면 바로 마커스워십의 '주 은혜임을'이란 찬양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치 요셉의 고백인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주 나의 모습 보네 상한 나의 맘 보시네 주 나의 눈물 아네 홀로 울던 맘 아시네
세상소망 다 사라져가도 주의 사랑은 끝이 없으니
살아가는 이 모든 순간이 주 은혜임을 나는 믿네
주 사랑 내게 있네 그 사랑이 날 채우네 주 은혜 내게 있네 그 은혜로 날 세우네
세상소망 다 사라져가도 주의 사랑은 끝이 없으니
살아가는 이 모든 순간이 주 은혜임을 나는 믿네 주 은혜임을 나는 믿네
도무지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신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오늘 요셉의 이야기는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셉이 똑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도무지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계속 겪어야 하는지,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계신지, 더 나아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는 한건지 너무도 많이 의심하면서 질문했을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부디 하나님을 오해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여전히, 변함없이, 인도하시고, 사랑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성경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복음13장1절, 새번역>
하늘로 승천하시던 그 날에도 이 말씀을 다시 하셨던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20절B, 개역개정>
네. 지금 상하좌우 코너까지 꽉 막혀 있기에 지금 당장은 의심될 수 있고 의심 할 수 있습니다. 의심하시는 거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없다!’ 이런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신뢰'이지 의심이 아닙니다. '믿음'이지 불신이 아닙니다. '확신'이지 오해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 요셉을 통해 보여주신 말씀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앞으로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신뢰와 믿음과 확신의 모습을 보이시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어려울 것입니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것을 하게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쉽지 않은 고지를 점령하게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지만 훗날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가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결같이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멘! 어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믿음이 있을 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변함없이, 끝 날까지 사랑하십니다.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주인이십니다. 이 놀라운 명제를 꼭 붙들고 마음에 새기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이사야서에서뿐만 아니라 감옥에 앉아 좌절하고 있었던 요셉에게도 들려주셨을 것 같은 말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오늘 우리 모두의 귓가에도 동일한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장 10절,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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