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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주일낮예배설교문(온생명교회/ 2011-09-18)
추수감사주일과 추석은 다른가?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켜왔습니다. 미국교회의 영향 때문입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간 첫 해 겨울에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얼어 죽습니다. 그 다음 해 첫 추수를 하여 그 열매로 하나님께 감격적으로 감사드렸는데 이 날이 추수감사절의 기원이 됩니다. 우리도 그 날을 그대로 받아 추수감사주일로 지켜 왔습니다. 그런데 미국 자체에서도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로부터 시작하여 성탄절까지 말 그대로 연말세일기간입니다. 이때 각 가정마다 카드를 얼마나 많이 긁어대는지 파산나는 가정이 부지기수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추수감사절이 있었습니다. 추석입니다. 그러면 11월 셋째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추석과 가장 가까운 주일을 추석주일로 지키는 것이 좋겠습니까? 11월 셋째주일에 청교도들은 추수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으니 그 날이 더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조상들이 지키던 명절 추석은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이 아니라 막연한 하늘에, 그리고 조상들께 감사를 드렸으니 교회에서 추석주일을 지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겠습니까?
추수감사절이나 추석이라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까? 성경에 이런 날을 지키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주일 외에 다른 특정한 날을 지킬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게다가 어떤 주일을 특별한 주일로 지킬 때 그것은 교회의 분명한 결정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력이란 것이 있는데 그 교회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구속사역에 근거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매 해마다 대강절과 성탄절을 시작으로 그리스도의 고난 당하심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 보내어주심 등을 반복적으로 기념하고 지킵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초막절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교회는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며, 우리 교회는 그 대신에 추석주일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아무리 큰 열심과 감사를 올려 드려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무슨 말 하느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열심을 다해도 우리는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열심과 감사조차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방식대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겠다는데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청교도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년에 세 차례 큰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이 그것입니다. 이 세 절기는 다 농사의 파종과 수확시기와 관련을 맺고 있었습니다. 무교절은 보리와 밀 수확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였습니다. 이때 애굽 탈출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같이 지킵니다. 바로 이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열매로 무교병을 구워 먹었습니다. 두번째 절기인 맥추절은 유월절 후 50일째라서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보리와 밀 수확의 정점에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이때는 밀을 빻아 떡 두 덩이를 구워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마지막 절기는 가을에 있는 수장절인데 한 해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수장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추수하여 저장한다는 의미 때문입니다. 곡식뿐만 아니라 모든 나무열매까지 추수하는 말 그대로 추수감사절, 추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절기에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초막절’이라는 이름이 그것입니다. 이 초막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뜰에 풀로 엉성하게 텐트를 쳐서 그 밑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왜 풀로 텐트를 쳐서 잠을 지새우라고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래는 유목민이었습니다. 그들은 농사짓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종살이했는데 하나님께서 광야여행을 거쳐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농사짓게 되었습니다. 땅의 소산물을 거두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것을 상기시켜주는 절기가 초막절이었습니다. 즉 광야를 여행하던 동안 텐트에 머물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개구기 올챙이 시절 잊지 말라는 것이겠지요.
초막절은 묵상과 교육과 나눔의 축제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을 어떻게 지켰을까요? 추수하면서 한 주간 동안 초막에서 생활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초막을 자기 조상들이 광야여행 할 때에 머물렀던 텐트 정도로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눈으로 초막을 바라본 이들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야말로 자신들을 비밀히 지키시는 초막과 장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편 27편 5절에 나와있는 다윗의 고백이 대표적입니다. “여호와께서 환란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생계를 보장해 주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생의 모든 환란과 고난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사실을 묵상하는 절기가 바로 초막절이었습니다.
한편 초막절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묵상하고 자녀들에게 그 하나님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즉 초막에서 잠을 잘 때에 자녀들이 묻습니다. ‘아빠, 왜 우리가 멀쩡한 집을 놓아두고 이 초막에서 잠을 자는 것인가요?’라고 물으면 부모들이 그 이유를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에게 베푸신 은혜를 전달합니다. 이렇게 해서 믿음이 전수됩니다. 모든 절기가 마찬가지겠지만 초막절은 더더욱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교육의 장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초막절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다같이 기뻐하고 즐기는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초막절은 한 해의 마지막 절기이자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같이 읽었던 신명기 16장 13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 7일 동안 이 초막절을 지켜야 했습니다. 이 절기 때는 온 가족과 더불어, 더 나아가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해야 했습니다. 소외된 자들이 없이 다같이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나누며 기뻐하는 절기였습니다. 이렇게 이웃과 더불어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습니다. 초막절은 우리 곁에 두신 이웃을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절기입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왕이 되실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스가랴 선지자가 바로 이 초막절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스가라 선지자가 말하는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초막절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지켜야 할 초막절입니다. 도대체 이방인들이 왜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까? 신약시대에도 구약시대처럼 초막절을 똑같이 지켜야 한다는 말일까요?
스가랴서는 가장 어두운 시대에 가장 큰 소망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포로생활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꿈에 부풀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끔찍한 가난과 대적들의 공격이었습니다. 너무나 낙심하고 지쳐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스가랴 선지자는 자기가 본 환상, 하나님께서 교회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놀라운 환상을 선언합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예루살렘이 온 우주의 중심이 될 것을 예언하면서 자신의 예언을 마무리합니다. 아직까지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황폐한 상황인데 너무나 믿기지 않는 예언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예언이 사실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지구의 배꼽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지구의 중심인 그 예루살렘 성전에 좌정하셔서 온 천하의 왕이 되실 것입니다. 14장 9절을 보시죠.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예루살렘이 온 세상의 중심이 되고, 하나님께서 그 곳으로부터 다스리실 것이니 예루살렘을 치는 모든 나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멸망할 것입니다. 그들은 끔찍한 전염병에 걸려 다 죽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믿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 모든 민족들이 초막절을 지키러 올 것이다
이 말까지 하고 스가랴 선지자가 초막절 이야기로 자신의 예언을 마무리합니다. 선지자는 장차 오게 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을 초막절과 관련지워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막절이 이스라엘 백성의 경계를 넘어 온 우주적인 의미가 있다고 밝힙니다. 레위기 23장 41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초막절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지킬 규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가 우주적으로 확장됩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이방 민족들이 끔찍한 전염병에 걸려 죽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본문에서는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들 중에 어떤 이들을 남기셨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리에 서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시대를 예견하는 말씀이지요. 이렇게 하나님께 돌아온 이들이, 하나님께서 남기신 이들이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초막절을 지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초막절이 모든 민족을 하나로 묶어내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처음부터 초막절은 한 해의 추수를 감사하고 즐기는 절기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절기였습니다. 마지막 추수의 날을 기대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초막절은 유대인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버립니다. 초막절이 온 세상을 향해, 모든 민족을 향해 열려있는 절기가 될 것입니다. 장차 있을 초막절에는 세상 모든 민족들이 참여하고 축하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귀환했을 때에 그 동안 지키지 못했던 초막절을 대대적으로 지킵니다. 놀라운 사실은 초막절 절기 내내 하나님의 백성들이 초막에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듣습니다. 느헤미야서 8장에 보면 그 장면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이 참 시사적인데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셔서 모든 세상 민족 중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을 불러 모으실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왕 만군의 여호와’라고 부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왕이시요, 모든 군대의 하나님이십니다. 왕 만군의 여호와는 하나님의 풀네임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위엄있는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말씀을 보내셔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을 불러 모으실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는 자들이야말로 초막절을 제대로 지키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초막절을 지키지 않는 민족에게는 비를 내리지 않겠다
유대인들은 초막절을 지켜야 했습니다.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끊쳐졌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이게 의무사항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초막절을 지키지 않는 민족에게는 비를 내리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왜 갑자기 비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습니까? 초막절은 추수와 관련을 맺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비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초막절 마지막 날에 있었던 유명한 행사가 바로 물 붓기 행사입니다. 제사장들이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황금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아 옵니다. 성전 앞 번제단에서 제사장들이 그 물을 바닥에 붓습니다. 그 물을 제물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흉내를 낸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그 유명한 말씀이 바로 이 행사를 지켜보신 뒤에 나온 것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렇게 물 붓는 장면을 지켜본 유대인들은 크게 환호성을 지릅니다. 아마도 이 때 기도도 같이 드렸던 것 같습니다. 무슨 기도냐 하면 이제 비를 내려 달라는 기도입니다. 지금까지는 길고 가문 여름을 지내왔습니다. 그 강렬하고 뜨거운 햇빛으로 인해 곡식과 포도주며 올리브와 무화과가 잘 익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비가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소위 말하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차례로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밭을 갈고 파종을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해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배경하에서 초막절을 지키지 않는 민족에게는 비를 내리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18절에 보면 여러 민족 중에 유독 애굽을 언급합니다. 만일 애굽 족속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그들에게도 비를 내리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좀 이상한데요. 애굽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이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나일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으로 인해 애굽은 농사의 풍성함을 보장받았습니다. 팔레스틴을 포함하여 다른 민족들의 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땅은 전적으로 하늘에 의존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이슬이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농사의 신, 천둥의 신이라고 하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늘의 비가 필요없는 민족이라고 생각해서 거만을 떨어 대었습니다. 하지만 에스겔 선지자는 애굽의 파라오가 자신을 온 들판을 호령하는 사자라고 생각하지만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강을 더럽히는 악어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애굽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필요 없을지 몰라도 나일강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7000킬로미터 가까이나 굽이쳐 흐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나일강의 수원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그것은 하늘에서 내린 비와 눈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나일강의 범람도 그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일강조차도 바짝 마르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강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땅과 강이 하늘에 의존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큰 곤란을 겪을 것입니다. 그래서 18절에서 재앙이야기를 합니다.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유대인들을 노예로 삼아 부려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셔서 그들을 놓아주라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땅의 바로를 섬기는 백성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민족이라고 하십니다. 바로는 콧방귀를 뀝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렇게 좋은 노동력을 왜 내어 보내어야 합니까? 이에 하나님께서 애굽에 온갖 재앙을 내리십니다. 첫번째 재앙이 여러분이 잘 아시는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재앙이었습니다. 나일 강은 애굽 문명의 젖줄이요, 그래서 그 강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일강을 피로 물들이십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강의 신을 벌하신 것입니다. 모든 복은 하늘로부터 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 외에는 하늘이 별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가 내려도 그만 안 내려도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비나 눈이 너무 많이 내리면 누구나 문제가 되지요. 비나 눈이 아예 오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문제가 되고요. 하늘이 없이는 우리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늘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농경 문화를 일구었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겠지만 하늘을 숭배했다는 것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중국의 공자조차도 자신은 하늘을 섬긴다고 말했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하늘은 그냥 파란 하늘, 구름이 있는 이 위의 하늘을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늘을 도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인격화시키면 바로 하늘님이 됩니다. 우리는 그 하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단은 자기들처럼 유월절과 초막절을 철저히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추석주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가 말했듯이 초막절은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거룩하고 가장 위대한 절기였습니다. 그런데 초막절은 신약교회를 위해서도 너무나 풍성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린이 질문 3번에 나와 있듯이 “추석주일에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고, 가정에서 (자녀)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며, 모든 (민족들)을 불러모으실 온 우주의 추석을 기대합니다.” 한편 추석이라는 말을 우리가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인 추석에 초막절의 의미가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것을 우리 민족에게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추석주일은 우리 민족을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주일입니다. 이처럼 추석주일은 이 세상 모든 민족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추석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선포하는 복음선포주일입니다.
말씀 묵상하고 나누기
1. 추수감사주일의 기원을 설명해 보세요.
2. 주일을 특정주일로 지킬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3. 유대인의 삼대절기는 무엇과 관련을 맺고 있습니까?
4. 유대인들은 초막절을 어떻게 지켰을까요?
5. 세상민족들이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온다는 것이 어떻게 성취될까요?
6. 초막절을 지키지 않는 민족들에게 비를 내리지 않겠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7. 우리는 추석주일을 어떻게 기념하고 축하해야 할까요?
어린이를 위한 질문
1. ‘추수감사주일’과 ‘추석주일’이란 말이 성경이 있다, 맞습니까?
2. 초막절의 의미가 추석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맞습니까?
3. 추석주일에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시는 ( )을 묵상하고, 가정에서 ( )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며, 모든 ( )을 불러모으실 온 우주의 추석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