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파랑길 2차 순례 7일 차. 강진(20210525)
먹구름이 두륜산 얼굴바위를 감싸고 도는 것이 신선이 노니는 듯합니다. 나무가 끓여준 짜이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성현이 설사는 잡힌 것 같지만, 아직 밥은 먹지 않고 있습니다. 승철이 혼자 아침을 먹네요. 에루화헌 숲을 산책하는데, 강아지 두 마리도 함께 합니다.
숙소를 정리하고 떠날 채비를 합니다. 에루화헌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강진으로 향합니다. 남녘교회에 도착하니 염승철 목사님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성현이랑 카페에 사진 올리는 작업을 함께 합니다.
저녁은 염승철 목사님 내외분이 강진 읍내 식당에서 삼겹살을 사 주셨습니다. 성현이와 승철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사모님께서 고기도 구워 주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 주셔서 동무들이 편안하게 밥모심 할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한 주 돌아보기를 했습니다. 1. 스스로 준비하고 마무리 짓는 순례를 일상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2. 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날마다 어떻게 하고 있는지 3. 휴대폰 사용 약속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한 주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살아보자고 했습니다. 저희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내어주신 남녘교회 벗님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 남파랑길 2차 순례 8일 차. 강진(20210526)
오랜만에 옛집에서 자고 일어난 느낌이 드네요. 방문을 열고 마루를 지나 마당에 내려서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오늘도 동무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어린마을에서 가져온 된장으로 된장국을 끓여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햇감자를 넣었는데, 파근파근하니 맛이 좋았습니다.
오늘은 남녘교회에서 망호선착장까지 왕복 25키로 정도 걷습니다.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나든 무슨 일이 생기든 그 모든 것이 배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망호선착장 쉼터에서 가우도 출렁다리를 바라보며 도시락을 먹었네요. 날마다 멸치볶음, 김가루, 김치를 넣어 만든 비빔밥인데도, 날마다 새로운 맛입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빗방울이 들기 시작하네요.
성현이가 준비한 저녁을 먹었습니다. 7시에 가족모임을 하면서 <작은 영혼과 해>를 읽고, 하루 불편했거나 마음에 남아 있거나 하는 것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서로 다른 삶들이 모여 함께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큰 배움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낍니다. 올챙이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밤입니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작은 영혼에 귀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 남파랑길 2차 순례 9일 차. 강진(20210527)
새로운 날이 밝았습니다. 잠자리가 제 집인 듯 편안합니다. 교회 마당에 앵두가 빨갛게 익었습니다. 사랑어린마을 뒷마당에 있는 앵두나무가 생각납니다.
동무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모님이 주신 묵은지로 승철이가 찌개를 끓여서 잘 먹었습니다. 감자 껍질을 처음 벗겨 본다는 승철이, 서툴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이 고맙습니다.
바람이 불고 빗방울은 시원함을 더해줄 정도로 내리네요. 강진만 자전거 길을 따라 걷다가 남포길을 지나 목리교를 지나 청자로를 걸어서 구로길에 다다릅니다. 점심을 먹고 만덕산과 갯벌을 바라보며 한숨 돌립니다.
강진만 생태공원을 지나 남녘교회로 돌아오니 4시가 되었습니다. 빨래하고 동무들과 장을 보러 갔다 왔습니다. 저녁은 성현이가 짜장밥을 준비했습니다. 도마를 씻기 싫다며 접시 위에서 재료를 썹니다. 빛나는이 가져온 물김치와 알타리김치에 짜장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녁 가족 모임 시간에 <톨텍, 네 가지 합의>를 처음 읽었네요. 승철이가 ’나구알(스승)‘이라는 말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데, 천천히 가지요. 사모님이 퇴근하고 오시면서 만두를 사 오셨습니다. 날마다 아침에는 출근길에 저녁에는 퇴근길에 동무들 얼굴을 보시고 챙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고마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듭니다.
* 남파랑길 2차 순례 10일 차. 강진-장흥(20210528)
오늘은 지역을 이동하는 날입니다. 아침에 출근하시는 남녘교회 사모님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순례 길에 만난 인연 소중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성현이는 몸이 불편해서 숙소에 있기로 하고, 승철이와 다산초당에 가려고 길을 나섭니다.
늦봄문익환학교를 지나갑니다. 승철이에게 문익환 목사님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수준에서 말해주었습니다. 언덕을 지나 다산박물관에 들렀습니다. 견학 온 중학생들이 놀고 있네요. 정약용에 대해서도 제가 아는 대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무엇을 느끼고 배우는 가는 각자의 몫이겠지요. 매표소에 계시는 분이 걷는 중이냐고 물어옵니다. 그런다고 했더니 자기도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박물관을 나서자 하늘이 흐리고 이내 빗방울이 들기 시작합니다. 남녘교회로 돌아오는 길은 비바람이었습니다. 십자가가 점점 가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짐을 정리해서 차에 옮깁니다. 목사님 내외분께 감사의 짧은 편지를 남기고 남녘교회를 떠나 장흥으로 이동합니다.
장흥 회진면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정리하고 빨래를 하고 승철이가 준비한 저녁을 먹습니다. 저녁 모임에서 하루 생활과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톨텍, 네 가지 합의>를 공부합니다. 그 첫 문장이 “ 지금 당신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이다.”입니다. 그런 줄 알아야겠습니다.
고양이 소리가 들리네요. 어둠이 내린 회진 포구에 불빛이 반짝입니다.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 안의 불빛을 느껴봅니다. 고마운 날이었습니다.
* 남파랑길 2차 순례 11일 차. 장흥(20210529)
다락방 창문으로 회진항을 바라봅니다. 경운기가 지나가고 트럭이 지나가고 저마다 일터로 움직이는 시간입니다. 오전에 가족 모임을 했습니다. 성현이가 순례 시작부터 하루 일정에 맞춰 생활하고 순례 약속을 지키는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그리고 감정 조절이 잘 안 되고 화를 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녁 모임 때 이야기를 나눠 왔습니다. 성현이가 며칠 전부터 이런 상태로 순례를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과 생활 약속을 순례 공부로 삼고 살아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해 왔지만, 성현이 귀에 들리지 않았나 봅니다.
성현이는 쉼을 가지기로 하고 집으로 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성현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12시가 넘어서 걸으러 나섭니다. 회진대교를 지나면서 다리 아래를 바라봅니다. 앞으로 한발 한발 움직일 뿐 달리 갈 곳이 없네요. 노력항 선착장 쉼터에서 밥모심을 합니다. 오늘은 배가 고프지 않네요.
승철이랑 슈퍼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옵니다. 밥모심을 하고 저녁 공부와 마무리 모임을 합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 남파랑길 2차 순례 12일 차. 장흥(20210530)
숙소 마당에 나가 하늘을 봅니다. 허리 펴고 하늘 보며 미소 짓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반대 방향으로 걷습니다. 회진 읍내를 지나 바닷길로 접어듭니다. 차가 다니지 않아 바닷물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걷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세트장을 지나 가학회진로에 들어섭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매실을 따느라 한창입니다. 삭금 마을 정자나무 아래에서 쉬어갑니다. 4키로 정도 되는 삭금 마을 방조제를 따라 걷습니다. 가다 보니 말 네 마리가 풀을 뜯고 있네요.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방조제 끝에 도착합니다.
고맙게도 그곳에 올래 갈래 쉼터라고 양하덕촌 마을 주민이 만들어놓은 쉼터가 있네요. 땡볕이 따가운데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도시락을 먹고 낮잠을 잡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 떠오르는 단상을 적어봅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갑니다. 삭금 마을 정자에서 쉬면서 물을 마시는데 쉬어서 먹지를 못했습니다. 두 시간 정도를 갈증을 참아가며 걷습니다. 구멍가게도 없네요. 회진읍 하나로마트에 도착해서 음료를 마십니다. 살 것 같네요. 승철이가 떡볶이를 한다고 재료를 샀습니다. 승철이가 한 매콤한 떡볶이를 먹으니 몸이 풀어집니다. 어젯밤 된장을 얻어간 옆방에서 시원한 수박을 주셔서 잘 먹었습니다.
내일은 천관산에 들어가 보려 합니다. 고맙습니다.
* 남파랑길 2차 순례 13일 차. 장흥(20210531)
아침에 눈을 뜨기 전에 기지개를 켜고 나는 사랑어린사람이라고 말해줍니다. 오늘은 천관산에 드는 날이라 설레입니다. 말로만 듣던 천관산에 처음 가게 되었네요. 차를 타고 20분쯤 가니 방촌마을이 나옵니다. 논에서 일하고 계신 아주머니께 천관산 가는 길이 맞는지 여쭤보고 올라갑니다.
승철이에게 관옥 할아버지께서 산에서 어떻게 걷기 명상을 하시는지 아는 대로 일러줍니다. 산길이 정갈한 느낌입니다. 양근암, 정원석을 지나 연대봉에 다다릅니다. 연대봉에는 800년 전에 봉화대를 복원해 놓았습니다. 봉화대에 올라 어제 걸었던 길을 바라봅니다. 땅 위에서는 길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산에서는 한눈에 들어옵니다. 사는 것도 그렇겠지요. 제 앞가림하느라 사람 노릇이 뭔지 모르겠지요. 발바닥이 땅에 닿는 순간을 알아차리며 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