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스키외에게 있어, 법이란 “사물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필연적인 관계”를 의미한다(9). 실정법 이전에 존재하는 자연법은 자연상태의 나약한 인간 각자가 서로 공격할 것을 원치 않는 데에서 기인한 평화, 먹을 것 등을 찾고자하는 생존의 욕구, 양성의 이끌림, 사회생활의 욕구 등이 포함된다(12). 반면 실정법적 시각에서는 법이란 인간 이성을 말하며, 정체를 구성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설립된다(13).
몽테스키외는 법의 내용이 정체의 본성에 따라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체를 각기 세 가지, 즉 ‘공화정체’, ‘군주정체’, ‘전제정체’로 나눈다. 여기서 공화정체란 국민 전체 혹은 단순히 국민의 일부가 주권을 갖는 정체를 의미하며, 군주정체는 단 한 사람이 통치하지만 정해진 제정법(制定法)에 의거하여 통치하는 정체를, 그리고 전제정체는 통치자의 자의(恣意)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는 정체를 말한다(15). 이를 보다 세분화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공화정체 및 민주정체에 관한 법
국민전체가 주권을 갖는 공화정은 민주정체이며, 주권이 국민의 일부에게 있다면 ‘귀족정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경우 국민은 그들의 의지인 투표에 의해서만 군주가 될 수 있으며, 주권자의 의지는 주권자 자체이다. 따라서 투표권을 정하는 법률이 이 정체의 기본을 이룬다(15). 투표방법을 정하는 법률도 민주정체에 있어서 또 하나의 기본법이다(18).
- 귀족정체에 관한 법
귀족정체의 주권은 일정한 수효의 사람들의 수중에 있으므로, 나머지 국민은 주권자에 대하여 신민(臣民)과 같은 뿐이다. 귀족이 다수일 경우 귀족단이 결정할 수 없는 정무의 처리와, 그들이 결정하는 정무를 준비할 원로원이 필요하다. 원로원은 스스로 결원을 보충할 수 있어선 안 된다(19). 가장 바람직한 귀족정체는 국민들 가운데 권력에 참가하지 않는 부분이 소수이며, 가난하며, 지배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상태이다(20).
- 군주정체에 관한 법
종속적 의존적 중간 권력은 오로지 한 사람이 기본법에 따라 지배하는 정체의 본성을 형성한다(20-1). 실질적으로 군주가 정치적 시민적 권력의 원천인데, 만일 국가에 일시적이고 방자한 의지만이 존재한다면 그 어떠한 기본법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므로, 전제정체가 될 것이다. 따라서 귀족의 권력이 가장 자연스러운 종속적 중간권력으로 군주정체를 구성할 것이다. 만일 귀족이나 도시의 특권을 폐지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민중국가나 전제국가가 출현할 것이다(21). 공화정체에 있어 성직자의 권력이 위험하다고 한다면, 군주정체, 특히 전제로 기울어지는 군주정체에서는 오히려 이것이 적절하다(21).
- 전제정체에 관한 법
전제 권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인간은, 그의 본성에 의해 무지하며 향락적이게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는 정무를 포기하며, 그가 여러 사람에게 정무를 일임할 경우 그들간에는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와 등등한 권력을 갖는 한 사람의 재상(宰相)에게 권력을 맡기는 편이 오히려 간단하며, 이것이 이 국가의 기본법이다(22-3).
제3편 세 가지 정체의 원리
정체의 본성이란 그 정체로 하여금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며, 원리란 그것을 움직이는 것이다. 전자가 그 고유의 ‘구조’라고 한다면, 후자는 그것을 움직이는 인간의 정념이다(24).
- 민주정체의 원리
군주정체는 법의 힘이, 그리고 전제정치에는 군주의 자의(恣意)가 모든 것을 처리하고 억제하지만, 민중국가에서는 앞의 두 정체와는 달리 덕성(德性)을 필요로 한다(24). 그리스의 경우 정치가는 자기를 지탱할 힘으로서 덕성만을 인정하였던 반면, 오늘날 정치가는 제조업이나 상업, 금융 등의 부(富)와 사치에 관해 말할 뿐이다(25). 따라서 덕성이 소멸되어 버린다면 야심과 탐욕이 나타나며, 이는 공화국을 소수 시민의 권력과 만인의 자의에 불과한 것으로 만든다(25).
- 귀족정체의 원리
민주정체에서와 유사하게 귀족정체에서도 덕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민중과 귀족의 관계란 신하와 군주의 관계와 같은 것이므로 민주정체에 있어서 민중만큼의 덕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민주정체가 갖지 못한 귀족정체의 특성은 귀족들이 자기 자신을 억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두 가지 방법은 특정한 측면에서 귀족을 국민과 평등하게 만드는 위대한 덕성에 의해, 혹은 귀족간의 평등을 보장하는 일종의 절도(節度)를 필요로 하게 된다(27).
반면, 군주정체에서의 정치는 가능한 한 최소한의 덕성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법률이 모든 것을 대신하기 때문이다(27). 공화국에서 사적인 범죄가 오히려 공적인 범죄가 되는 반면, 군주국에서는 공적인 범죄가 오히려 사적인 범죄가 된다(28).
- 군주정체의 원리
군주정체에서는 비록 덕성이 중대한 역할을 요구받지 못하는 대신 명예가 보다 중요한 원리가 된다(28). 또한 공화정체에서는 유해한 야심이 군주정체에서는 좋은 결과를 낳는다(29). 명예는 정치 체계의 모든 부분을 움직이며, 그 작용에 의해 이런 단체의 여러 부분을 결합함으로써 각자는 자기의 특수 이익을 향하고 있다는 믿음 아래 공동의 선을 향하게 된다(29).
- 전제국가의 원리
전제국가는 극도의 복종을 요구한다(31). (따라서) 명예는 전제국가의 원리가 될 수 없다(29). 전제정체에서는 공포가 필요할 뿐이다(30). 그러나 때로 군주의 의지에 대치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종교이다. 종교의 법은 군주에도 신하에도 주어지므로 초월적인 법이다―하지만, 자연법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군주는 벌써 인간 이상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32).
제4, 5편 정체의 원리, 그리고 교육 및 기타 법률과의 관계
군주정, 공화정, 전제정은 각각 명예, 덕성, 공포를 그 정치적 원리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교육 역시 마찬가지로 각각의 원리에 합당한 목적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33). 군주정에서의 교육은 명예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주요한 준칙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① 자신의 지위를 존중하는 것은 허락되나,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것은 절대 금지하고 있다. ② 일단 특정한 지위에 놓이게 되면, 자신을 이 지위보다 낮게 보이게 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으며, 또 남이 그렇게 보는 것도 묵인해선 안 된다. ③ 명예가 금지하는 것을 법이 함께 금지하지 않을 때에 오히려 더욱 엄하게 금지되며, 명예가 요구하는 것을 법이 요구하지 않을 때 더욱 강하게 요구된다(35).
전제정의 교육은 노예적이어야 한다. 전제국가에서는 각 가정이 하나의 독립된 제국이다. 한편 오늘날 현대인은 부모의 교육, 스승의 교육, 사회의 교육 등 상반된 교육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고대인들은 오늘날과 같은 종교적 의무와 사회적 의무간의 대조적 상이성을 전혀 몰랐다(36).
교육은 공화정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포나 명예와는 달리 정치적 덕성은 교육이 아니고서는 성취되기 어려운 것이며, 이 법과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정치적 덕성은 공화정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37). [그러한 의미에서] 공화국에서 덕성은 공화국에 대한 사랑이자, 감정에 다름 아니다(43). 민주정체에 대한 사랑이란 평등에의 사랑인 동시에 나아가 질박함(質朴)에 대한 사랑이다. 개인의 양식(良識)과 행복은 대개 그 재능과 자신의 중용에 의한다. 법이 수많은 중용의 사람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공화국은 현명한 사람들로 구성되므로 현명하게 통합될 것이다. 고대 공화정체의 이론은 부의 평등을 추구하지만, 재능의 평등을 요구한 공화정체는 없었다(44). 공화국에 있어 사람들이 평등과 질박을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법이 그것들을 확립하고 있어야 한다(45).
화폐의 추방이야말로 공화국의 타락을 막을 수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39). 고대 그리스의 습속―특히 전쟁을 주목적으로 삼았던 도시에서는―은 금전을 획득할 가능성이 있는 노동과 직업을 자유인에게 부적합한 것으로 간주하였다(40). 민주정체에서의 모든 불평등은 민주정체의 본성과 평등의 원리로부터 이끌어 내야 한다.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해야하는 사람이 공직을 맡아 너무 가난해지거나, 혹은 그 직무에 소홀하거나 하는 등을 조심해야 한다(48). 민주정체에 있어 법은 토지 등의 균분을 위한 제한조치들을 규정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법이 습속의 규율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그 자체가 습속의 규율인 원로원과 같은 상설단체를 설치하는 것이 예가 될 수 있다(49). 예부터의 관습을 지키는 것은 질박하고 엄격한 습속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50). 노인에 대한 청년의 복종, 부권(父權)도 도움이 된다(51).
한편 귀족정체에서는 법은 될 수 있는 한 절제의 정신을 주어야 하며, 국가의 구조가 필연적으로 앗아가는 평등을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52). 법은 귀족정체의 두 가지 분쟁의 원천, 즉 ①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극단적 불평등, 그리고 ② 통치단의 구성원들 사이의 불평등을 예방 혹은 저지해야만 한다(53). 따라서 엄정한 조세와 지배의 거만함을 제압할 수 있는 사법관 등의 제도를 꾀해야 한다(54). 또한 장자 상속권을 폐지하여 상속분할을 통하여 평등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55).
군주정체에서는 귀족을 세습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귀족 유지는 군주의 권력과 민중의 무력(無力)이 유대관계에 놓이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군주정체에서는 귀족정체와는 달리 재산을 자식 가운데 한명에게 주는 일이 허용될 수 있다(56). 전제정체에 비해 군주정체가 가진 이점은 이 정체와 결부된 몇 가지 [중간적] 신분에 의하여 국가가 더 확고하고 안정되어 있으며, 통치자의 일신도 더 안전하다는 데에 있다(57). 기본법의 존재, 그리고 민중과 군주의 갈등을 조절해 주는 중간권력의 존재야말로 군주정체의 이점이라 할 수 있다(58).
이러한 군주정체는 권력의 전달에 있어서도 전제정체와는 다르다. 군주정체의 권력은 전제정체보다 간접적으로 전달되고 행사된다(64).
이로부터 파생된 그 밖의 논의: ① 공직은 덕성의 증명이며 조국이 한 시민에게 맡기는 위탁물이므로, 그 시민은 조국을 위해서만 생존하고 행동하고 사고해야 한다. 따라서 법이 시민에게 공직을 맡을 것을 강요하더라도 시민은 그것을 거절할 수 없다(67). ② 공화정체에서는 조국애의 덕성이, 군주정체에서는 명예가 지위의 문제와 관련된다[로마의 예: 68]. ③ 공화정에서는 공직에 있어 문무(文武) 양직을 결합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반면, 군주정체에서는 분리해야 한다(68). [왜냐하면 전자는 끊임없이 시민이 자신의 시민됨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 반면, 후자는 다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④ 군주국에서는 매관(賣官)제도 역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부에 의해 영달하는 방식은 근로를 고무하고 함양할 수 있다(69). ⑤ 공화정체에서는 덕성의 유지를 위한 감독관이 필요하지만, 군주정체에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명예의 성질은 사회 전체를 감독관으로 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70).
제6편 시민법, 형법, 형의 결정
군주정체는 전제정치와는 달리 재판소가 필요한데, 이는 주어진 판결이 보존되고 습득되기 때문이다. 군주국은 생명 또는 재산뿐만 아니라 명예에 속하는 일도 판결을 내리므로 재판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71). 토지 등의 재산의 분할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신분에 따른 것이므로 보다 복잡하지만 정교한 법이 요구된다. 그러나 전제정체에서는 모든 토지가 군주에게 속하기 때문에 거의 민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속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72). 재판의 절차에 관한 한 시민의 명예, 재산, 생명, 자유가 중시될수록 증대한다. 따라서 공화정체가 가장 높은 수준의 절차를 필요로 할 것이다(73). 재판방법에 있어서도 정체가 공화정체에 접근할수록 통일성을 띄게 될 것이다. 공화정체에서는 재판관이 법조문에 따르는 것이 그 국가조직의 본성에 속한다.
나는 독자에게 관용을 바라는 바가 있는데, …… 그것은 20년에 걸친 각고의 결정체를 잠시의 속독에 의하여 판단하지 말라는 점이다. 두세 군데의 장구(章句)가 아니라 이 책 전체에 대해 칭찬하거나 책망해 주기 바란다(3).
몽테스키외가 요구한 대로, 속독이 아닌 충실한 독해를 한다는 전제하에 4주후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1748년 저작) 전체를 칭찬하거나 책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따라서 현단계에서 이 발제문은 섯부를 판단을 내리지 않고, 간단하게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2. 계몽의 주체는 미몽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계몽할 필요는 없는가?
몽테스키외는 한 나라의 계몽이 매우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고, 무지몽매함이 결과하는 최악의 상태를 경계할 것을 머리말에서 말한다. 모두들 알다시피, 이와 같은 계몽주의자로서 몽테스키외의 특성은 본론에서도 일관되게 투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계몽이란 몽매한 사람을 계몽된 사람이 깨우쳐 줌으로써 확보되는 것이다. 그러나 몽매한 대상을 계몽시키려면, 계몽의 주체가 몽매한 객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몽테스키외가 비판하는 전제정체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는 여러 제국들(페르시아, 중국, 몽골, 일본, 신대륙의 루이지애나 야만인. 회교국 벤텀, 터키)에 대해서 몽테스키외는 그들에 대해서 스스로 계몽하여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3. 군주정체, 공화정체, 전제정체의 구분에 따른 일관된 논리 전개와 현실적 타당성의 문제
법의 정신은 무엇보다도 체계의 명료함과 일관된 분류체계에 따른 논리전개의 탁월성이 돋보인다. 다시 말해서 텍스트 내적으로 모순적인 측면이 적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논의와 현실세계가 과연 적절하게 조응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을 저술하기 위해서 100여개국 이상의 도시국가들을 경험적으로 연구조사한 것에 반해, 몽테스키외는 고대저작들과 기행문과도 같은 여타 사람들의 2차자료를 중심으로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르네상스기 이후 유행했던 고전고대에 대한 관심의 급증과 신대륙의 발견에 의한 간접적 견문의 확장이 가져온 결과로 풍부한 논의를 전개하고는 있지만, 논의의 현실적 타당성은 떨어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때문에 그의 논의전개는 홉스와 마찬가지로, 연역적 논리전개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4. 공화정이란?
몽테스키외는 공화정체를 “국민 전체 혹은 단순히 국민의 일부가 주권을 갖는 정체(15)”로 정의한다. 그리고 나서 공화정체의 하위유형으로 국민 전체가 주권을 갖는 민주정과 국민의 일부가 주권을 갖는 귀족정으로 구분한다. 사상사적으로 공화정, 공화국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하다. 특히 공화정과 민주정의 관계와 관련하여 ……
5. 비밀투표는 왜 비판을 받는가?
키케로는 “로마 공화국의 말기에 투표를 비밀로 하도록 규정한 법률이 그 몰락의 주요 원인의 하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왜 비밀투표가 몰락의 원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비밀투표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참고로, 프랑스 혁명기 상퀼로트 운동가들은 비밀투표를 ‘자유를 파괴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부르주아적 속성으로 치부하였다.
6. 몽테스키외는 전제정체의 본성에 관한 법을 다루는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제 권력의 본성 자체에 의하여, 그것을 행사하는 유일한 인간은, 그것을 역시 단 한 사람에게 행사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 그와 동등한 권력을 갖는 한 사람의 재상(宰相)에게 권력을 맡기는 편이 오히려 간단한다. 재상의 설정이 이 국가에서는 기본법이다(22).
여기에서 몽테스키외는 재상의 설정을 전제정체의 기본법으로 보고 있다. 유가정치사상에서 재상론과 같은 군신공치의 이념은 군주의 자의적 전제를 막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해석되는 것이 보통인데, 몽테스키외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이를 해석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교황은 모든 정무를 조카에게 맡기고, “이렇게 쉬운 일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23)”라고 말했다고 한다. 순(舜)임금이 고요에게 모든 정사를 맡기시고 남면을 하셨을 따름이라는 구절과, 군주의 할 일을 현인을 등용하는 것일 뿐이라는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7. 몽테스키외의 서구중심주의
몽테스키외는 군주정과 전제정을 구분하는데, 이 두 정체는 지배자가 1인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다만 정체의 운영이 법에 의한 지배인가, 아니면 자의(높이 들어올리고 있는 군주의 팔)에 의한 지배인가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극단을 달리는 체제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구분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전형적인 정치체제 구분(군주정/폭군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군주정/전제정’의 구분이 유럽세계 내의 입헌군주정 대 전제국가간의 구분이 아니라, 그것을 지리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제정체는 공포의 원리로 운영되며, 신민들의 복종을 요구한다. 그 체제의 특성을 집약하는 다음의 구절을 살펴보자.
루이지애나의 야만인은 과일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나무를 뿌리째 베어 과일을 딴다. 이것이 곧 전제정체이다(59)
한 대만 살기 위해 집을 짓는 것이므로, 하수도도 파지 않고 나무도 심지 않는다. 땅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으려 할 뿐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다. 모든 토지가 황야이고, 모든 토지가 사막이다(61).
밴텀의 법률에 의하면, 국왕은 모든 상속재산․아내․자녀․집까지도 빼앗을 수 있다(61).
터키의 경우처럼 그 형제를 교살하게 하기도 하고, 또는 페르시아의 경우처럼 장님으로 만들기도 하다. 혹은 몽골의 경우처럼 미치광이로 만들기도 한다. 모로코처럼 왕좌가 공석일 때마나 무서운 내란이 일어나게 된다(62).
세계에서 전제가 풍토화해 있는 아시아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자식을 거느리게 되므로 자식에 대해 거의 애정을 갖지 않고, 자식들 또한 그 형제애를 느끼지 못하다. 왕의 집은 국가와 비슷하여, 가족은 너무 약하고 가장은 너무 강하다. 가족은 대규모로 보이나, 실상은 無로 돌아간다(63).
전제군주가 순전히 공포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시도 신민들의 동의(전제군주의 권력요건)에 의해서 유지된다는 아렌트의 언급을 말하고 싶지도 않고, 하수도를 파지 않은 것이 아니라 거대한 황하를 다스렸다(治水)는 변명을 하고 싶지도 않다. 또 아시아의 국왕이 모든 상속재산․아내․자녀․집까지도 빼앗을 수는 있지만, 그러한 비도덕적 행위를 제어하는 수단은 충분히 구비되고, 서구적 입헌군주정의 법률에 의한 군주의 통치 이상의 기제(예컨대, 군주의 행위규범으로서의 禮治)가 있다는 옹호를 하지도 않으련다. 나아가 형제를 죽이고, 아들을 밥먹듯이 죽이며, 아버지를 죽여도 전혀 죄책감이 없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전통을 잇는 것이 서구라고 대응하는 유치함도 멀리하고자 한다. 다만 이시기의 몽테스키외의 인식을 통해 그 시대 전체의 문맥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제국주의적 침탈을 위해 사상이나 의식이 동원된 것이 아니라, 이 사상과 의식이 제국주의적 침탈을 이끌어 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왜 야만인들은 인간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으니까? 동물사냥을 하는 기분으로…….
(의미: 21면 하단) : “충실한 신하에 있어서 군주의 재판권을 옹호하
는 것과, 모든 시대에 걸쳐 이 재판권에 과해져 온 한계를 옹호하는 것과는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점 등이 문제인 것이다”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민중국가’란 무엇인가? 그는 이 ‘민중국가’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가?
① 민중국가는 민주정체와 동의어인가?
② ‘군주정의 중간적 권력의 특권을 폐지할 때, 민중국가나 전제국가가 출현할 수 있다’(21면 중간) 이 주장은 중간적 권력의 특권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는 뉘앙스를 풍기는데, 민중국가가 군주정이나 전제정과는 달리 덕성(德性)을 필요로 한다는 주장(24면 하단)은
(유가에 대한 몽테스키외적 해석의 적실성)
① “전제국가에서는 각 가정이 하나의 독립된 제국이다.”
반면, “전제정의 교육은 노예적이어야 한다.” 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노예에 적합한 덕성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②전제국가의 군주가 결혼을 늘 악용해 왔으며, 특히 아시아에서 더욱 그러했다는 몽테스키외의 주장은 유가적 정치, 사회 질서와는 다소 상충하는 것 같다. 그는 아시아의 국가들을 볼 때, “왕의 집이 국가와 비슷하여 가족은 너무 약하고 가장은 너무 강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평가는 유가 사상의 초기적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왕가가 보통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우애와 사랑을 회복했을 때 전제정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몽테스키외의 주장을 이루며, 이는 유가사상이 지향하는 친친(親親)의 원리가 지향하난 바와도 잘 부합된다.
36면 37면의 상충?
공화정이야말로 이윤의 추구에 반하는 정체일까? 39면
금전을 획득하는 노동에 대한 천시 : 그리스와 유가?
(사소해 보이는 구절에 대한 이해: 41면 하단) : 음악은 육체의 단련과 사변의 학문, 중간쯤에 해당한다는 요지의 구절은 어찌 그러한지?
특히 음악이 유가에서 덕성을 기르는 데에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반면, 몽테스키외는 음악이 마음에 덕성을 불어넣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음악이 때때로 제도의 냉엄성의 효과를 방해할 수도 있다고 한다.
“민주정체가 상업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경우에는, 소수의 개인이 거대한 부를 누리면서도 습속이 부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업의 정신이 질박, 검약, 절제, 노동, 현명, 평온, 질서, 규율 등의 정신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 전반적인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는 화폐사용의 억제를 제안하였던 몽테스키외의 앞선 논지와 상충하는 것 같다.
(문맥의 이해를 위한 사소한 질문: 51면 하단~52면) : 관습적 강제와 군주정체의 관계, 재산의 문제.
법 의 정 신 (제 13편 ~ 제 17편)
몽테스키외 / 이명영 역
발제자 : 박지훈
1. (제 13편) 조세의 징수와 자유의 관계
가. “수입을 정당하게 정하기 위해선 국가의 필요에 대해서도, 또 시민의 필요에 대해서도 똑같이 고려되어, 국가의 상상적 필요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그 현실적 필요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182;3).
이는 세금, 즉 국가의 수입을 각 국민이 자신의 소유권과 그 재산의 처분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에 제공하는 재산의 일부분이라고 규정하는 몽테스키외가 세금 징수와 관련해 제시한 첫 번째 원칙이다. 또 그는 이러한 재산권이 국가의 “상상적 필요”, 가령 군주 밑에서 정무(政務)를 보는 사람들 중, 일부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들”이 국가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을 동일시함으로 인하여 제한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수입이란 국민이 제공해야만 할 것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하며 만일 국민이 제공할 수 있는 것에 의한다면 언제나 일정하게 제공할 수 있는 정도를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182).
나. “국민의 자유에 비례하여 무거운 조세를 징수할 수 있는 것이 일반 원칙이다. 이제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노예성(奴隸性)이 증대함에 따라 조세는 완화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는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것은 자연에서 도출된 원칙이기 때문에 결코 변하지 않는다”(188;1).
제 13편인 ‘조세의 징수와 국가 수입이 자유에 대하여 갖는 관계’는 세금에 대한 몇 가지 원칙과 함께 다양한 정체, 다양한 상황 등에 대해 다소 복잡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이 편 전체에서 몽테스키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장은 아마도 이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몇몇의 예외를 인정하고 그에 대해서는 간단하나마 별도의 설명을 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조세가 과중한 제한국가에서는 자유라는 보상이 있고 전제국가에서는 자유의 대체물인 조세의 경미함이 있어야 한다(188). 왜냐하면 먼저 공화국에서는 국민이 자신의 위하여 지불한다고 믿기 때문에 조세를 지불할 뜻을 가지며, 스스로 법을 존중하는 군주의 통치는 부를 가져오는 힘이 있기 때문에 국민은 과중한 부담을 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189).1) 반면에 전제정체에서는 조세가 가벼워야 한다. 아무런 대상(代償)도 없는 정체에서는 많은 조세를 지불할 수도 없고, 또 국민은 그럴 의지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188).
몽테스키외는 위의 두 원칙을 바탕으로 몇 가지 세부적인 사항을 서술하는데 그다지 체계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대개 세금이 ‘적절한’ 수준 이상으로 걷히는 것에 대한 경계를 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서술을 소국가의 빈곤한 국민들의 예에서부터 시작한다. 통치자들은 빈곤한 자들을 근면하게 만들기 위해서 과도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결론을 지었지만 그에 따르면 그 “가난한 자들은 이미 노동에 지친 나머지 모든 행복을 나태 속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국가의] “무위를 유일하게 좋은 것으로 여”길 것이다(183). 이후 그는 먼저 농노가 있는 경우는 ‘농노의 세금은 시민의 자의적 필요에 의해 변경되어서는 안 된다’(공화정, 전제정). ‘농노에 대해서 군주와 귀족의 이중과세가 있어서는 안 된다’(군주정)라는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농노와 주인의 관계는 수익분할 소작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농노가 없는 경우에는 소득 혹은 부에 따른 과세와 일정한 비율에 따르는, 상품에 대한 과세를 주장한다(183-185). 특이한 점은 특정 사안에 있어서 비교 대상이 되고 있는 아시아와 이슬람의 ‘상대적 우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187, 190-191). 그러나 발제자로서는 그 우월성 역시 통치자들의 시민 재산 몰수와 세금의 부담이 자유라는 반대 급부를 넘어서는 등의 부당한 경우를 강하게 비판하기 위한, 달리 말해 “쟤들 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정도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2). 이 편의 끝에서는 조세의 직접 징세가 청부를 통한 수취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수세 청부인의 착취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제국에서는 이 제도가 좋을 수도 있다. 누가 해먹으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3).
2. (제 14편) 법과 풍토와의 관계
가. “만일 정신적 특질과 여러 정념이 각 풍토에 있어 극도로 다르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법 또한 이 성격의 차이에 대해 상대적인 것이어야 한다”(194;1).
이 편의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위의 문구에 의해 대변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일견 과학적이다. 이는 법을 제정하는데 있어서 모든 사회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 있다는 식의 주장에 반하는 것으로 법의 상대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가령, 몸의 수분이 땀으로 증발하는 일이 거의 없는 추운 지방에서는 알코올 음료를 사용할 수가 있고 또한 독한 술은 혈액의 순환을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적당한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추운 지방에서의 금주법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 된다(199-200). 이와 같이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법의 상대성 논의를 위하여 마치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의 합법이 저쪽에서의 불법”이 되는 것과 같은 경우를 ‘풍토병에 관련된 법’(200-202), ‘자살자에 관한 법’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그의 주장은 유럽의 일부 남부 지방과 특히 아시아의 여러 민족에 대해서 집중포화를 퍼붓는다. 저자에 따르면, 북방의 풍토에서는 악덕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대신 상당한 미덕을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으나 남쪽 지방은 도덕 자체로부터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며 보다 활발한 정념이 범죄를 증가시킨다(196). 즉, 남쪽 지방의 더운 기후는 사람들로 하여금 외계로 인한 자극을 보다 강렬하게 느끼게 하며 이는 쾌락 혹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의 예민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195,197).
이러한 남쪽 지방의 실례로 대표적인 것은 우선 인도이다4) 감각기관이 취약하고 더위로 인한 육체의 게으름으로 인하여 그들에게는 마치 정신적으로 성숙한 성인보다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과 같이 좋은 풍토-저자는 “우리 풍토의 민족들”이라고 표현하였다-의 민족들보다 보다 현명한 입법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인도인은 휴식과 무(武)가 마치 만물의 기초인양 생각하여 욕망의 목표로 여기고 있고 이러한 현상은 “사람을 쇠약하게 하고 괴롭히는” “심한 더위”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인도인은 오히려 “풍토의 결점을 조장한” “나쁜 입법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에게는 불타마저도 “풍토의 나태에서 생”긴 교설(敎說)로 “나태를 조장했으므로 수많은 악을 야기시”킨 “나쁜 입법자”에 해당한다.5)
3. (제 15편) 시민적 노예제와 풍토의 관계
가. “노예제란 ... 그 본성부터가 좋지 않으며, 또한 주인에게도 노예에게도 유익하지 않다”(205;1)
위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노예제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노예제란 주인으로 하여금 “정신적 덕성에 위해되는 일에 익숙해”지게 만들며, 노예에게는 “아무 일도 덕성에 의해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205).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노예제를 만들게 된 것은 노예 대상자에 대한 ‘세 가지 연민의 정’6)에서 기인하는데 그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하나씩 반박을 한다(206). 그러나 몽테스키외의 이러한 생각은 단지 원론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후 그는 몇 가지 예외를 두어 상황에 따른 노예제의 현실적 적합성을 설명하기도 하며, 노예제 운영에 있어서의 주의사항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그는 단지 “우리 사이의 노예제의 불필요”(210)만을 주장하고 있으며 발제자가 속한 ‘우리’는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노예제에 찬성하는 외침은 사치와 향락의 외침이지 공공의 지복(至福)에 대한 외침은 아니”라고 주장한 몽테스키외는 왜 노예제의 현실적 운용법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는가? 먼저 그는 흑인의 노예제를 인정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몽테스키외의 극심한 인종적 편견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에게는 “인간성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 피부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208)러운 일이다. 가령, “문명국에서 대단히 귀중히 여기는 금목걸이보다도 유리 목걸이를 중히 여”긴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흑인에게 지적 능력이 없다는 증거”가 되며, 이들을 “인간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209). 더욱이 그는 그들을 동정하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할 정도”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코는 몹시 납작해서”이다(208).7) 또한 더운 지방8)에서는 “잔인한 노예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이는 그다지 “이성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210). 왜냐하면 그곳은 “더위가 육체를 약화시키고 체력을 지나치게 소모시키기 때문에 사람이 징벌의 불안에 의하지 않고는 의무를 완수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지방”이기 때문이다(210).9)
4. (제 16편) 가내 노예제와 풍토와의 관계
가내 노예제 혹은 가내 예속제10)에 대한 서술 역시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환경결정론적인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에 따르면, 더운 지방에서, 종교적인 이유만 없다면, “일부다처제가 생길 것은 뻔한 일이다”(220). 더운 지방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잘 보존될 수 없기에 결혼 적령기가 매우 이르기 때문이다. 즉, 아름다움을 간직할 나이에는 이성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였고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나이에는 이미 ‘노년’11)에 속해버린다는 것이다. 반면, 기후 상태가 양호한 온대 지방에서는 “양성간에 평등이 생기게 되”며 “추운 지방에서는 거의 불가결한 독한 술의 상용(常用)이 남성들간에 부절제(不節制)를 습관으로 만”든다고 한다. 이에 그는 일부일처체란 유럽에서 보다 적합한 체제라고 주장한다(220). 그러나 법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입장인 그가 “다처제에 관한 여러 가지 사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소식통에 의하면, 아시아 및 아프리카에서는 여성의 출생률이 더 높았고 그것이 일부 다처제의 근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몽테스키외가 다처제 그 자체를 찬성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식이 많으면 그에 소홀할 수가 있다는 점을 들어 이 제도가 “인류에 대해서도 양성의 어느 편에 대해서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221). 나아가 그는 일처다부제의 “사정은 더욱 나쁘다”고 주장한다(221). 현대 사회에서야 친자확인소송도 가능하다고 할 지라도 유전자 감식 전의 부자관계는 기본적으로 “내 자식이 맞겠지”라는 심리적 상태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처다부제의 경우, 부성애란 그 나마의 심리적 관계도 혼동 속에 쌓여있기 때문이다(221-222).
이후, 대개 자신이 속한 지역의 원칙을 상위에 두는 몽테스키외는 풍토에 따른 제도의 적용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동양에 대한 포화를 아끼지 않는다. 풍토가 여성에 대한 지배권을 요구한 경우에는 1인 통치가 가장 적절하며 바로 이것이 동양에 있어서 공화정체가 항상 어려웠던 이유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223). 더욱이 “자연은 개인에게 자기보존을 위해서는 긴 시간을 주면서도 자신을 남기기 위해서는 한 순간밖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음란은 위선이며 자연의 법을 파괴하는 것이라 믿는 그로서는 “습속이 자연적으로 선량하”고 “그 모든 정념은 평정하고 그다지 활발하지도 않으며, 그다지 세련되어 있지도 않”는 자기 지역의 여자들과는 달리 “자연의 충동이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덕은 그것에 대해서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풍토가 있”는 동양에는 “계율 대신에 문의 빗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222,224,225). 그가 보기에는 이러한 이유로 동양의 “여자는 단지 벽에 의해서 남자와 분리되어야 할 뿐 아니라, 한 울타리 안에서도 남자와 분리됨으로써 집안의 특별한 일가(一家)를 형성해야”하고 여자로서의 “동양의 도덕 원리”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223). 그리고 그는 이러한 제도를 다처제와 관계와 없는 일부 동양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풍토가 자유로운 여성들 마저도 무서운 사건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12)
5. (제 17편) 정치적 노예제와 풍토의 관계
가. “아시아에서는 예속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으며, 그것은 아직까지 그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 지방의 모든 역사에서 자유로운 정신을 특징지울 만한 표지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거기서는 예속의 영웅주의밖에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231;13).
저자는 정치적 노예제 역시 “풍토의 성질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접한 여행기는 “아시아는 고유한 의미에서의 온대를 갖지 않”음을 전하고 있고 그는 이러한 풍토로 인하여 아시아에서는 북방의 국민, 즉 강한 국민과 남방의 국민, 즉 유약한 민족이 대립하게 되어 필연적으로 한편이 정복되고 한편은 정복자가 되어야 한다고 서술한다. 반면에 유럽의 경우, 비록 지중해 연안의 풍토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풍토 사이에는 어떠한 유사성도 없지만 “기후가 남에서 북으로 감에 따라 거의 각국의 위도에 비례해서 조금씩 추워지므로, 각국은 그 이웃 나라와 거의 같아서 그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없”다는 상식 밖의 주장을 하고 있다. 이는 유럽 외 지역에 대한, 동양에 대한 그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마치 ‘아시아의 공간은 분절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아무튼, 그가 보기에는 아시아의 이러한 풍토가 정복자와 피지배자를 낳고 이것이 유럽의 자유와 상반되는 “아시아의 예속성의 큰 이유”였다(229-230).13) 또한 그는 “유럽에 비해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이 분열을 허락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은 “아시아에서는 언제나 대제국을 볼 수 있었”고 “따라서 아시아에서는 권력이 항상 전제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230-231).
6. 문제의 제기
다시 머리말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몽테스키외가 자신의 세부적인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방어벽을 바로 머리말에 설치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독자들에게 관용과 함께 책 전체에 대한 평가를 바라지만 발제자로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그가 갖게 되었던 “두려운 마음”을 현실화시킬 권리가 있다(3). 발제자는 그 “주제의 장대함”으로 보아 이 것이 “20년에 걸친 각고의 결정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나의 판단은 “잠시의 속독에 의”한 것이 아닌 ‘3일간의 반복적 통독’에 걸친 “각고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3,5).
가. 간단한 지적
몽테스키외는 국가의 수입과 풍토와 법률에 대한 여러 가지 원칙과 다양한 예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체계란 너무나 장황하고 두서없이 느껴지며 또한 각 원칙간의 상충하는 부분에 대한 설명도 없다.14) 그러나 혹자에 의하면 몽테스키외의 이러한 성향이 ‘삼권분립론’ 못지 않게 중요한 특징이라고 한다. 그는 법의 정신의 이 부분 등이 철저한 경험적, 실증적 방법에 따라 저술되었고 이는 몽테스키외가 법을 단순히 추상적인 규범으로 보지 않고, 특정한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다양한 인간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간주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은 꾸준히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과 일치하는 주장이라는 것이다.15)
나. ‘풍토결정론’의 오류
‘풍토결정론’에 의거한 그의 ‘법의 정신’에 따르면, 한반도에서는 우리가 축복이라고 여기는, 혹은 우기는 사계절은 ‘계절성 법률’을 야기하여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혹은 일년에 몇 번씩 바뀌는 정념(情念)으로 인하여 국민들의 정신상태를 도탄에 빠뜨리는 주범이 되어야 한다. 발제자는 환경이 그에 속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각 개인들의 성향을 통합하여 ‘결정’해버리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풍토결정론’으로 인한 정치적 폭력성에도 주의해야 한다. 몽테스키외는 이러한 ‘풍토결정론’은 “편견에서가 아니라 사물의 본성에서 끄집어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비록 그는 악의도 아닌 그렇다고 중상도 아닌 ‘자신의 진리’를 설파한 것일 뿐이라고 할 지라도 그의 ‘합리성’은 정신적으로 평온하고 안정적인 자유인 유럽인으로 하여금 감각적이고 충동적인 동양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만든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4). 또한 이런 유형의 ‘결정론’은 현대 사회에서도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아랍사람들이 사는 고원지방은 맹하 후에 엄동이 끝바꿈하고 또 같은 계절에도 타는 듯한 낮과 얼음 속 같은 밤이 끝바꿈한다. 이 혹서와 혹한을 완충하는 봄이 없고 가을이 없다. 이와 같은 극단을 오가는 기후 틀에 마음도 틀이 박혀 아랍사람들은 매사에 극단적이다. 사람을 극진히 환대하다가도 적대를 하고 관대하다가도 호전적이며 포옹하다가도 칼을 뽑는다. 극에서 극으로 급변할 뿐 중간의 조화나 완충이 없다”.
이는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보복이 거론될 즈음 나온 모 일간지의 칼럼 중 일부이다.16) 칼럽니스트는 “아랍인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수태된 지 40일 만에 알라신의 장부에 그의 숙명이 치부되며 그 숙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신”하기 때문에 “알라신이 정해주신 숙명이라면 쌍둥이 빌딩이 폭파되건 펜타곤이 폭삭하건 국제 경제가 뒤죽박죽이 되건 미사일이 날아오건 아랑곳없다”라고 단정한다, “이들에게 공통점을 찾는다면 자살 충돌 직전에 예외없이 「인샬라!」를 크게 외쳤을 것이라는 점일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이 글은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동조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결국, 이런 유형의 ‘결정론’은 우리가 같은 감정과 신체 구조를 가지는 개인에 대한 고려를 철저하게 배제하여, 각 개인을 우리와 다른 어떤 집단으로 철저하게 대상화할 수도 있다는 오류를 가지는 듯하다.
미래사상연구회 세미나 2002년 9월 3일
몽테스키외, 이명성 역,『법의 정신』, 홍신문화사, 2001
발제자 김한석
제 29 편 법을 제정하는 법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을 쓴 궁극적인 목표가 ‘중용의 정신(the spirit of moderation)이 입법자의 정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437)를 증명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한다. 법은 그 역사적 상황과 법의 결과에 대한 충분한 고찰에 의해 입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입법의 목적에 상반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438) 그리고 법이 그 형태가 같다고 해서 항상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그 목적(motive)에 따라 같은 형태의 법이라 해도 그 결과가 다르다.(440/606)
각 국가의 법을 비교하는 방법은 단순히 하나의 법만을 가지고 해야할 것이 아니라 각각의 법들이 이루고 있는 체제를 비교하여야 한다.(441) 이러한 비교법을 사용하였을 때 법의 목적과 형태가 같다고 하더라도 법의 원리가 원인과 결과에 잘못 적용되는 경우 합리적이지 못한 법이 된다. 그리고 다른 국가(상황)의 시민법을 도입하는 경우 두 나라간에 같은 제도와 같은 정법이 밑바탕 되어 있는지를 먼저 비교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제정 목적과 상황이 동일하지 않다면 그 법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법을 제정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법이 가져야할 조건들은
∙문체가 간단해야 한다
∙문체가 평이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관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무언가를 고정시켜야 하는 법은 그것을 금액으로 정하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
∙사물의 관념을 확정했을 때는, 결코 모호한 표현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회피할 수 있는 법은 법제를 약화시킨다
∙법은 청정함이 필요하다
∙너무 정묘해서는 안된다
∙예외․제한․수정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를 설정하지 않아야 한다
∙충분한 이유 없이 법을 변경해서는 안된다
∙법을 설명하는 경우 이 또한 법에 적합해야 한다
∙추정에 대해서는 법의 추정이 인간의 추정에 우선한다
∙법의 제정은 사물의 자연과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한다
위와 같은 법의 제정의 방법과는 달리 하지 말아야 하는 법의 제정방법은 교황과 군주에 의한 쟁송의 서면대답(칙서)을 통한 법의 예외적 적용이다. 그 예외가 모든 경우에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상황과 체제에 대한 이해없이 일률적인 관념의 적용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법은 그 입법자의 정념과 편견에 의해 훼손될 수도 있다.
제 30 편 군주정체 확립과의 관계에 있어 프랑크인의 봉건법 이론
프랑크인(서게르만인)의 봉건법을 구성하는 과거 프랑크인의 습속과 제도에 대해 고찰을 한 것이다. 게르만인의 생계유지수단은 농업이 아니라 목축과 수렵 그리고 전쟁을 통한 약탈이었다. 귀족과 자유민, 노예로 구성되는 게르만인들은 종사(從事)제도가 존재하여,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시종하고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그의 부양을 받고, 무기를 지급 받아 전쟁시에 주인을 위하여 싸웠다. 그리고 군주가 가신들에게 준 것은 봉토가 아니라 전쟁을 위한 군마, 무기, 식사였다. 이러한 게르만인들이 로마를 점령했을 때 그들은 로마인들로부터 1:1의 인구비율로 토지를 분배받게 되었다. 이는 당시 훈족에 의한 게르만의 이동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양 국민이 한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상호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고, 로마인의 피해는 작았으며, 상호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되었다. 농노제는 로마 이후 프랑크인들 사이에서의 수많은 전쟁 속에서 그들은 약탈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운반해갔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수많은 노예가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노예(농노)를 제외한 자유민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 병역의 의무는 봉토를 가지고 있던 전사가 지는 의무였다. 그리고 이들은 봉토를 소유하지 않는 자유인들을 소집하여 전쟁에 참가하였다. 이러한 봉토를 가진 자는 그 지역의 군사적 권력과 함께 시민적 재판권을 보유할 뿐 아니라 재정적 권력까지 가지게 되었으므로 전제정치적 힘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힘은 영주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동일하게 주어졌다.
제 31 편 프랑크인의 봉건법 이론과 그 군주정체의 변천과의 관계
관직과 봉토는 원래 임기제에서 종신적이고 세습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봉토의 임면권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민집회에서 취급된 주요 사항이었고, 이에 대한 궁정의 자의적 처분은 귀족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이에 귀족들은 왕국의 정치적 실권의 이양에 성공했다. 왕의 선정은 가문에 의해 정치적 실권자는 귀족들의 선거에 의해 뽑히게 되었다. 이에 게르만인의 전통, 전쟁에서 왕이 지휘권을 가지는 것은 이후 왕들의 군사적 책무에의 소홀로 인해 점차적으로 정치적 실권자(궁재)에게 이양되었다.
자신의 민족에 따라 차별을 받고 있던 여러 민족들은 자유민의 신분을 왕, 영주 또는 교회에 저당잡히고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왕에게 종속하지 않는 교회재산에 대한 약탈은 교회의 권력과 이익은 약화되어갔다. 이후 교황과 중요 성직자의 임명에 관한 권리는 군주에게서 떠나게 되었다. 이후 가문에 의한 세습적 왕권은 정치적 실권자인 궁재와의 결합을 거쳐 강력한 지방귀족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이는 왕권의 실체가 가문에서 정치적 권위 그리고 커다란 봉토를 바탕으로 한 힘에 넘어가게 되었다. 이후 왕위의 계승은 단순히 가문에 의한 계승이 아닌 국민들의 동의가 선행되어야만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유민에 대한 봉토수여가 가능해지고, 자유민이 스스로 충성할 대상을 선택하고 자신의 자유지를 그에게 맡기게 되면서 봉토의 세습을 위한 권리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가문에서 비롯된 왕국간의 전쟁으로 수많은 귀족들이 희생되면서 전쟁참여에 대한 왕의 강제권은 소멸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봉토의 세습 및 부속 봉토의 일반적 성립은 국가 통치에서 봉건정치를 형성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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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에 대한 인식은 없어도 왕권에 대한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서 존재했다는 것은 메로빙거 가문에 대한 왕권의 세습을 다른 귀족들이 인정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뿐 아니라 게르만의 전통, 충성의 맹세에 의해 지켜지고 있었을 것이다. 메로빙거 왕조에서 카롤링거 왕조로의 왕조교체를 성공시킨 페팡은 다른 귀족들의 반발을 어떤 식으로 무마할 수 있었는가?
2. 자유 소유지의 변화에서 ‘자유민이 봉토를 받고 충성을 맹세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소유지를 그가 선택한 국왕이나 영주에게 맡길 수 있다.’ 만약 자유민의 소유지가
아래의 그림과 같은 상황에서 ‘자유민 정’이 을 왕조의 D 백작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의 자유지를 D 백작에게 맡길 경우는 어떠하였을까? 자유민 정이 왕조와 영주의 선택을 자유롭게 하였다는 몽테스키외의 주장은 가능했을까?
(샤를마뉴 이후 은급지가 인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물적 개념이라는 것이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는가?)
3. 만민법의 정의는 로마시민에게 적용되던 형식주의적 시민법에 대응하여, 여러 도시 여러 민족과의 교섭 및 거래에서의 신의와 성실을 중시하는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생겨난 법질서이다. 관습을 기초로 하고 여러 도시 및 민족에게 공통되는 자유롭고 비형식적인 것이며, 로마 시민에게나 외래인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었다. 212년 로마제국의 내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게 되면서 시민법과 만민법의 구분이 불필요해짐에 따라 자연법의 개념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민법과 만민법은 법의 발전 과정속에서 선후의 관계가 아니라 대상의 구별을 통한 질서 확립을 목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프랑크인의 봉건제는 왕은 그 가문에 의해 세습되지만, 왕국내의 각 영지에 대해서 징세권, 재판권 그리고 군사적 동원능력을 가진 백인대의 관리권을 가진 영주의 전제적 권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메로빙거 왕조,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크 왕국의 정체는 몽테스키외가 구분한 세 가지 정체 가운데 어떠한 성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