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아비라 기도 후기
아비라 기도를 회향한지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은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듯, 싶습니다.
무사히 회향할 수 있었음을
부처님과 여러 도반님들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특히 큰언니처럼 우릴 보살펴 주신
묘각자님께 정말 감사드리구요_()_
어질이님의 道力으로 마당에서 얼굴만 봐도 힘이 되던데요_()_
쉬는 시간마다 서로 격려하고 염려하던
우리 까페 도반님들과는 거의 친자매가 된 듯, 싶어요.
무념화님 마음고생이 제일 심했던 것 같지만
제일 크게 얻어가는 거니까 전화위복이죠.
국청님은 마지막 날 쌍코피를 흘리며
이마에 수건을 동여매시고 기도하시는 모습에
제 마음도 숙연해지던데요.
정념당의 귀염둥이 덕림성님은 공양 때 마다
큰 물주전자에 뜨거운 보리차물을 받아오는 모습에 감동했구요.
관음전에서 기도한 근일향님은
기도보다 노보살님들 모시기가 힘들었나 봐요.
더 큰 공부를 했다며
눈물이 스쳐가는 지혜로운 모습이 아름다웠답니다.
아비라 기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드는데
도저히 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부산 <정수사>에서 능엄주 108독 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침 기차 안에서
갑자기 아비라 기도를 참석해야겠다는 결심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아비라 기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자료를 찾아 읽어보고,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과 <자기를 바로 봅시다>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드디어 12월 1일, 일찌감치 집을 나서 백련암을 향해 길을 나섰다.
언젠가부터 백련암을 향하는 길 위의 여정이 참으로 익숙하고, 편안하다.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로 가는 발걸음이 즐겁고 감사하기만 하다.
난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다.
첫 아비라 기도에 참석하는 기본 마음가짐을 “信心”과 “버림”으로 정해본다.
참선에서도, 기도에서도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믿음이 聖地다.
첫째도 믿음이요, 둘째도 믿음이라 한다.
내 믿음의 깊이와 형태를 관찰하고 싶다.
그리고 난 채우고 받기 이전에 말끔히 비우고 싶다.......
솔직히 나는 거지도 아니고 부처님께 빌게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그러면 우선 말끔하게 마음의 곳간을 비우고 맑혀서
부처님을 영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번 첫 아비라 기도에서는 그저 버리고 또 버리기다!
쓰레기를 치우다보면 쓸모 있는 것을 발견하여
재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보너스다.
3박 4일의 아비라 기도!
그 짧은 며칠 동안 참으로 지옥과 천국과
내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의 아름다움을 여행 했다.
장궤 자세에서 오는 무릎의 통증은 상상한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난 나무가 되었다.
우리 모두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를 외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나무가 되어 무릎은 땅에 박은 채 두 손은 합장을 하여
꼼짝 못하고 오로지 무릎의 고통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사바세계에서의 삶 자체가
스스로 꼼짝 못한 채 고통을 견디고 있는 모습과 똑 같다.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지혜를 배우기 위해
부처님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안의 佛性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 자신의 믿음을 단련하고 있다.
난 의심하지 않는다.
믿음이 강하다면 무릎의 고통쯤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릎의 고통은 나를 시험한다.
무릎의 통증은 내가 이 몸을 받아 지은 죄업만큼의 무게로 나를 담금질한다.
전생까지 갈 것도 없이,
이 몸을 받아 입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알게 모르게 지은 많은 죄업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상처 입히고,
음식과 물건을 낭비한 일들,
생명을 경시하고 함부로 대했던 일들,
물질문명을 누리면서 자연을 파괴한 일들에 대한
그 댓 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죽으면 자신이 살아온 평생의 모습을 필름을 되돌리듯
그 당시에 상대에게 끼쳤던 고통을 내가 다 느끼게 되는 것이
지옥이라고 읽은 적이 있다.
아비라 기도를 하면서 이것이 바로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무릎에 불이 붙은 듯 느껴지는 통증으로 온 몸이 뜨거워지면
‘난 지금 내가 지은 죄업으로 화탕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은 잘못을 뼈저리게 참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 나의 업장은 한 뭉텅이 빠져 나가는 것이다.
이게 바로 생전 예수제가 아닐까 싶다.
미리 죽어서 죄업의 댓 가를 받고
가벼워진 삶의 무게로 좀 더 가치 있게 사는 것이다.
옆의 보살님이 말씀하시길 아비라 기도는
’인간 세탁기‘라고 할 만큼 업장소멸의 지름길이라 하신다.
그리고 또 나는 무릎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마취도 없이....
잘려 나간 무릎으로 나의 찐득찐득한 업들이
조금씩 조금씩 고름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그러니 어찌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지은 죄업들이 빠져나간다면 더 아파도 좋다.
말끔히 비워버리고 싶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과는 에너지의 끈으로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나와 에너지가 연결된 사람들의
업장들이 나의 잘려나간 무릎으로 함께 빠져나가고 있다면
이까짓 고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가, 세상이 조금이라도 맑아지고
가벼워질 수 있다면 난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라고 큰소리 쳐본다.
그래도 아프다.
난 육체의 고통으로 눈물을 찔끔거린다.
그래도 나는 참는다.
또 나는 무릎에 불을 붙여 부처님께 소신공양을 올리고 있다.
온 법당 안에 가득 찬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거룩한 진언의 합창이 부처님 세상에서 울려 퍼지며
하늘에서 꽃비도 함께 내리고 있다.
환희심으로 눈물이 솟구친다.
나는 아비라 기도 24파트를 다 채우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다.
난 고통에 약하다.
그래서 더 도전할 가치가 있고, 죽어도 회향해야 된다고 결심했었다.
난 순간순간 내 마음의 갈등과 두려움에 휘둘렸다.
나약해진 나는 옆의 사람들에게 매달렸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요?”
“나에게 힘을 좀 주세요.”
“나 좀 안아 주세요.”
“어떻게 하면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겠나요?”
나는 배고픈 거지처럼 징징거리며 매달렸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다 보살심을 보여주셨다.
불쌍하고 어리석은 나에게 무릎에 붙일 파스도 주시고,
비타민도 주시고, 사탕, 쵸콜릿, 떡
그리고 할 수 있다고, 지금 잘 하고 있다고 격려도 해주셨다.
나는 허겁지겁 감사한 마음으로 뭐든지 받는다.
나는 지금 버리고 비우고 있는가? 매달리며 집착하고 채우고 있는가?
내 모습이 정말 웃긴다!
내가 요 정도였음을 확인한다.
나로서는 참으로 절박했다.
내 기도는 고사하고 내가 중단해버리면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함부로 포기할 수도 없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나는 참으로 고통에 나약하기에 내가 알고 나는 해낼 수 없는 기도였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믿지 않고 내안의 自性佛께 최대한 의지하려고 애썼다.
다른 도반님들은 처음이라고 해도 참으로 의연한 모습으로
잘 참아내시던데 난 아무래도 엄살이 심한 것 같다.
다음번에는 좀 부끄럽지 않도록 의연한 모습으로 기도해보고 싶다!
주절주절 엄살을 늘어놓은 긴 글을 읽어주신
아비라 까페 도반님들, 사랑합니다. _()()()_
아비라 기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남이 하는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만 있으면 해 낼 수 있다고 하네요.
저는 남이 하는 것도 못하는 하근기거든요. 에효~--;;
그런데 대중기도의 힘을 받아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아비라 기도처럼 도력 높은 선배님들이
이끌어주고 밀어주면 정말 힘들어도 공평하고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 같네요.
어쩌면 과거도 지금도 미래도 그렇게 완전하고 아름다운 화엄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리석음과 욕심으로 눈이 가리워져 모르고 있을 뿐이겠죠.
완전한 세상을 찾는 그 날까지. !!!
나의 첫 아비라 기도 후기 <2006. 12.2 ~ 12.5>
출처: 아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