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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
사<사진설명 : 해발 2500m의 산 중턱에 자리잡은 훈자마을, 7000m 이상의 높은 설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있다.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를 지나
파키스탄의 히말라야산맥에 위치한 ‘훈자’지방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마을 중의 하나이다. 훈자지방은 파키스탄의 최 북쪽 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과 경계를 두고 있는 길기트(Gilgit) 지역에 속한다. 길기트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750km의 거리에 있다.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훈자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이슬라마바드와 이웃도시인 라왈핀디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오후 2시에 훈자로 가는 국영버스가 있다고 한다. 5시간을 기다려 버스에 탔다. 버스가 작은 도시들을 통과하고 5시간 정도 지나자 산과 강이 나타난다. 이 도로는 1966년에 시작하여 1978년에 개통된 도로로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서 중국의 카슈가르(카스)까지 총 연장 1,284km의 카람코람 하이웨이이다. (사진)
이 도로 공사가 22년 동안 진행되는 동안에 1천여 명이 넘는 노동자가 죽었다고 한다. ‘카라코람’은 ‘가루가 되는 바위’라는 뜻으로 돌산을 부수어 도로를 만들었다. 이름만큼이나 험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도 알려져 있다. 나무와 풀은 보이지 않고 회백색의 바위들만 보이며 깎아지른 듯 한 절벽을 끼고 버스가 달린다. 밑을 내려다보면 아찔한 낭떠러지가 많다. 도로 곳곳에 빙하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돌산에서 돌이 흘러내린다. 도로는 좁고, 상태는 좋지 않은데 트럭들이 많이 다니고 있으며, 버스는 앞지르기를 계속한다. 라왈핀디를 출발한 버스는 꼬박 20시간이 걸려 길기트에 도착한다.
길기트는 카슈미르의 옛 주도이고, 예전에는 소발율국의 도읍지였다. 고구려 유민의 자손이었던 당나라의 고선지 장군이 군사 1만여 명을 이끌고 중국에서 이 험난한 계곡을 넘어 정복하였다는 곳이다. 주위에는 높은 산과 황량한 벌판뿐이다. 훈자는 길키트에서 또 2시간 반 정도 더 가야 한다고 한다. 훈자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 날 낮 12시, 라왈핀디를 출발하여 밤새도록 달려 꼬박 22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훈자지방은 고도가 2,500m에 달하며(사진) 마을 앞에는 라카포시, 디란, 뒤에는 울타르, 훈자 등 7,000m 이상의 높은 설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가까이 있는 산에는 나무가 없으며 벌거숭이산으로 회색의 흙과 바위로 덮여 있으며, 멀리 눈이 쌓여 있는 높은 설산들이 여기 저기 보인다. 마을의 밑에는 훈자강이 흐르고 있으며 계단식 밭에 초록색의 농작물이 자라고 있으며, 여기저기에 포플러나무와 살구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아름답지만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이 지역은 19세기에 영국 관리가 처음 여행한 후로 서방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느 곳에 가든 여유롭고 친절한 사람들
훈자 지방의 중심도시는 카림아바드(Karimabad)이다. 마을 뒤쪽 산 중턱에는 훈자왕국의 작은 성인 발티트(Baltit)성이 보인다. BC 330년 경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침공했을 때 전투에서 패배하고 돌아가지 못한 3명의 군인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훈자 왕국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1891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까지 그들은 훈자 왕국을 이루며 2,000여 년 동안 독립적으로 살아왔다. 언덕 위에 자리한 왕궁은 400년 전에 건설되었으며, 1950년까지 왕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훈자인들은 파키스탄 사람들과 용모가 조금 다르다. 파란 눈과 흰 피부에 갈색머리로 페르시아인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훈자인들은 훈자인들끼리 결혼하는 것을 선호해 왔으며, 생활은 어려웠지만 여유롭게 살아왔다. 지금도 훈자마을의 어디 곳에 가나 사람들이 여유가 있고 친절하다. 훈자지역은 영국의 작가인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책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서 상그릴라(Shangri-La, 이상형이라는 뜻)로 묘사된 곳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인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의 지형적인 배경이 된 곳으로 알려져 일본인 관광객들이 유난히도 많다. 지프차를 타고 훈자 지방뿐만 아니라 근처의 굴밑, 파수 지역 등을 둘러보았다. 여기 저기 마을 사이를 흐르는 강위에는 서스펜스 다리(사진)가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는 것이 무척 위태로워 보이지만 이곳 현지인들은 날아가듯이 재빠르게 건너고 있다.
암, 심장질환, 퇴행질환 거의 없는 훈자 노인들
훈자지방의 노인들은 암, 심장질환 및 다른 퇴행성질환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100세가 넘은 노인들도 건강하며. 80대나 90대의 많은 노인들이 아직도 들판에서 일을 하고 있다. 고산지대에 살기 때문에 심장과 폐가 튼튼하다. 대부분 죽을 때에는 어떤 질병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많은 서양 학자들이 훈자지방을 방문하여 그곳 노인들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 중에서도 미국 국립보건원의 화이트(White) 박사는 미국의 아이젠하워대통령의 주치의였으며, 미국 심장학회를 창설한 유명한 심장전문가이다. 그는 1964년 심전도측정기기를 직접 들고 가 훈자지방을 방문하여 90세에서 110세에 이르는 노인 25명을 대상으로 혈압, 혈중콜레스테롤, 심전도 등을 측정했으나 어느 한 사람도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정제되지 않은 곡물과 그 지역 채소로 항상 소식
1973년 미국의 하버드대학의 알랙산더리프 (Alaxander Leaf) 박사는 네셔날지오그라픽 (National Geographic) 잡지에 훈자인들의 장수 비결은 소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훈자인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척박한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먹는 것도 절약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부가 훈자 지역에 일주일 동안 머무는 동안 먹은 것을 생각해 보니 별로 먹은 것이 없는 듯하였다. 아침에는 짜파티와 짜이차, 점심에는 훈자빵, 살구와 오디, 저녁에는 전통음식으로 식사를 하여 저녁에는 항상 배가 고팠다.
훈자의 노인들은 정제되지 않은 탄수화물을 섭취한다. 그 지역에서 나는 정제하지 않은 곡물과 감자, 시금치나 양배추와 같은 채소를 먹으며, 고기는 즐겨 먹지 않는다. 요리를 할 때 기름을 사용하지 않으며, 양념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연료가 부족하여 거의 요리를 하지 않고 먹는다. 교통이 불편해서인지 가스 한 통에 8만원이 넘는다. 이곳 생활비에 비해 가스 값이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 나무를 때서 요리를 한다. 요리를 하더라도 지나치게 요리하지 않고 간단하게 요리를 한다. 채소는 물을 조금 넣고 뚜껑을 덮어 살짝 요리를 해서 먹는다.
화학비료와 농약 전혀 사용하지 않은 거친음식들
그들은 가공식품은 거의 먹지 않고 거의 모두 신선한 것을 먹는다. 파키스탄 정부에서는 벌레를 죽이기 위해서는 농약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으나 그들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화학비료가 비싸기 때문이다. 그들은 밀, 보리, 메밀, 수수 등을 도정하지 않고 통째로 거친 가루를 만든다. 카림아마드 보건협회에서 일하고 있는 하야트씨는 집 근처에 방치되어 있는 물레방아를 보여준다. 방아를 찧는 대신에 맷돌이 돌아가서 곡식을 찧는다. 포플러 나무로 만든 팬이 밑에서 모터처럼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고장이 난지 오래지만 새로 수리를 하는데 16만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거칠게 부순 밀가루를 반죽한 후 간단히 납작하게 하여 불에 아주 짧은 시간동안 구어 먹는 것이 이곳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짜파티(Chapatti·사진)’이다. 옛적에 우리나라에서도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통밀을 거칠게 부수어 반죽을 해서 밥 위에 찐 개떡이라는 것을 먹었었는데, 그들이 먹는 ‘짜파티’는 개떡처럼 쪄 먹는 대신에 불 위에 살짝 구워 먹는 음식이다. 식사를 할 때 짜파티는 항상 기본으로 나온다. 짜파티를 이용한 음식들이 많다. 멀리다 (Mulida)는 양파와 치즈에 짜파티를 부수어 넣고 코리안더향을 가미한 것이나 우리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다. 또한 집집마다 거친 밀가루에 계란, 우유, 살구기름과 효모를 넣어 반죽하여 하룻밤 발효시켜 만든 훈자빵을 만들어 먹는다. 로컬다우도(local dawdo, 지역 수프)는 닭고기 육수에 양파, 토마토를 다져 넣고 거친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를 만들어 만든 전통수프이다. 아침에는 가끔 보리를 통째로 불려 우유를 넣어 만든 죽(porridge)을 먹기도 한다.
훈자인들은 식량을 자급자족해 왔다. 마을 곳곳에 계단식 밭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작물이 감자이다. 채소도 훈자 사람들의 음식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시금치, 상추, 호박, 당근, 감자, 무, 강낭콩, 병아리콩, 렌틸 콩 등이 텃밭에서 자라고 있다. 그들은 땅이 좁기 때문에 먹는 것이 귀하여 채소나 발아된 씨앗, 감자, 여러 가지 채소 등을 소량 먹고 절대 과식하지 않는다. 그들 음식의 상당 부분은 요리를 하지 않고 날로 먹는다. 요리를 하더라도 살짝 요리를 한다. 특히 여름철에는 음식의 약 80% 이상을 날로 먹는다. 겨울철에는 콩을 며칠 동안 물에 불려 햇볕에 말리면서 싹을 띄워 먹는다. 훈자 사람들은 빌카밤바나 캅카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기 먹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길거리 여기저기에는 닭이나 염소, 산양, 소들이 거닐고 있다. 식당에는 주로 쇠고기, 닭고기, 양고기로 된 음식을 팔고 있다. 하지만 훈자인들의 전통 음식 중 동물성 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이라고 한다.
건강을 지켜주는 살구와 멀베리
훈자지방에는 어디에 가나 고목으로 보이는 살구나무와 멀베리 나무가 많다. 살구나무의 종류도 20여 가지가 넘는다. 훈자 지방에서는 살구와 멀베리(사진) 나무열매인 하얀 색의 오디가 건강과 장수의 원천이라고 알려져 있다. 여름철에는 날로 먹지만 건조시킨 살구와 멀베리는 겨울철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간식이다. 말린 살구는 요리하는 데에도 사용되고 빵을 굽는 데에도 사용된다. 훈자마을의 도로 여기저기에서는 아이들이 돌로 살구씨를 깨서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훈자사람들은 살구씨를 부셔서 기름을 짜낸다. 살구씨기름은 요리에 사용하거나 샐러드드레싱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얼굴에 바르는 로션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모래, 불순물 등 섞인 빙하물도 그대로 마셔
훈자지방은 유난히도 공기가 맑다. 여름에는 30℃를 오르내리고, 겨울철에는 눈이 많이 온다. 주위에는 해발 수천 미터의 설산들이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훈자지방의 장수 비결은 ‘훈자워터’라고 한다. 일 년 강수량은 50mm에 불과하다. 강수량이 적어 만년설로 뒤덮인 설산의 빙하에서 흘러내려오는 회백색의 흙탕물을 도로 옆에 도랑을 만들어 흐르게 하여 사용하고 있다. 곳곳에 침전물인 회색빛의 모래를 퍼내어 건축 자재로 사용한다. 이물이 유일한 식수이다.
내가 훈자마을을 처음 방문했을 때 도로 여기저기에 흘러내리는 물이 하수도 물로 알았다. 빙하에서 떠내려 오는 물에 모래가 섞이고, 마을로 흘러내리는 과정에서 불순물이 많아 건강에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곳 사람들은 생명의 원천으로 여기고 개의치 않고 마시고 있다. 오히려 이 물을 마시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믿는다. 오염이 없던 예전에는 깨끗한 장수의 물이었을지 모르지만 흘러내리는 과정에서 길거리로부터 오염된 물은 더 이상 장수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
그들은 도로에서 물을 퍼서 물을 마시기도 하고, 이 물로 요리를 하고, 농작물에 뿌려 관개용수로 이용한다. 내가 훈자에 머무르는 동안 나도 회색빛의 모래가 섞인 물로 양치질을 하고, 샤워를 하고, 그 물로 요리한 음식을 먹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러나 외지인이 끓이지 않고 그냥 마신다면 쉽게 배탈이 난다고 한다. 카림아마드 보건협회에서 일하고 있는 하야트씨는 일본인들의 기부금으로 수년 째 수질 개선 사업을 하고 있지만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한국인들도 기부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훈자에 오기 전에는 깊은 산속에서 흘러나오는 깨끗한 물을 기대하고 왔지만 가장 실망스러운 것이 수질 문제였다.
존경받으며 권위있는 노인들 삶의 만족감 높아
이곳에서는 90세 넘은 노인들도 놀지 않고 계단식 밭을 오르내리며 일을 한다. 밭에서 감자, 옥수수 등을 재배한다. 아침에는 할머니들은 등 뒤에 망대를 메고 들로 나간다. 길을 걷다보니 굴란(65세) 할아버지는 열심히 돌과 흙을 파내고 있다. 놀고 있는 석회질 땅을 개간하여 채소를 심을 예정이라고 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쉬어 가면서 천천히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있다. 돈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병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훈자 노인들은 항상 웃으며 즐겁게 산다.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살고 있다. 노인들은 한가로이 친구들과 나무 밑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평온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다. 노인들은 대개 큰 아들이 모시지만 때로는 딸이 모시기도 한다. 노인들은 가족들과 함께 살며 존경을 받으며 권위가 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는 노인들의 의견을 따르기 때문에 노인들은 항상 만족을 느끼며 산다. 훈자인들은 그들의 어려운 환경 때문에 오히려 장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깊은 산속의 가파르고 좁은 땅에 살다 보니 먹을 것이 귀했다. 땔감이 없다보니 요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대로 아끼며 먹었다. 자연히 먹을거리를 해결하기위하여 일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1965년 이전에는 이곳에서는 돈이 사용되지 않고 물물교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던 것이 고속도로가 완성된 후에는 호텔과 가게가 들어서면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911사태로 서양 관광객들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유럽이나 일본, 한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도시로 이주하는 훈자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고, 젊은이들도 도시와의 왕래가 증가함에 따라 가공식품에 물들고 있다. 훈자 지방에서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스즈끼 차량 안에서는 젊은이들이 코카콜라를 마시고 있다. 스즈끼 차량은 조그마한 트럭의 짐칸 자리에 뚜껑을 씌워 승객을 태우고 다니는 차량이다. 음식도 퓨전음식으로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지만 사는 것이 예전보다는 풍족해진 것이다. 그로인해 아이러닉하게도 예전처럼 100세가 넘은 노인들도 찾아보기 어려워져가고 있다.
로컬푸드 먹으며 가족과 대화 많이 하는 것 장수 비결
- 마을 최고령자 ‘부불’ 할아버지 (100세)
이 마을의 최고령자는 ‘부불’ 할아버지 (100세)의 집을 찾았으나, 할아버지는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의 집은 위에서 보면 1층으로 보이지만 밑에서 보면 2층으로 되어 있다.
여름철에는 주로 시원한 2층에서 지내고 겨울철에는 따뜻한 아래층에서 지낸다. 할아버지는 예전에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으며, 3명의 딸과 2명의 아들을 두었다. 부인은 이미 38년 전에 돌아가시고 큰 아들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나 자녀들이 모두 근처에 살고 있다.
외국에서 손님이 왔다고 하니 딸들과 며느리, 친손자 외손자들이 모두 모였다. 모두 온순하며 친절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사진을 찍을 때에 할아버지는 그의 동그란 빵떡모자를 나에게 씌워준다.
어느 집과 마찬가지로 손님에게 짜이차와 훈자브레드, 살구와 멀베리, 호두 등 말린 과일을 대접한다. 할아버지는 아침 8시에는 짜이차와 짜파티로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은 12시에 쌀이나 감자, 콩 등으로 만든 전통식으로 식사를 하고, 4시경에 차를 마시며, 저녁은 7시경에 간단하게 한다고 한다.
야채와 고기를 가리지 않고 먹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오전에는 매일 1 km 떨어진 곳에 있는 교회에 걸어가서 기도를 하고 온 후 오후에는 마을의 나무그늘 밑에서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인터뷰 내내 침대에 걸터앉아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으로 보아 아주 건강해 보인다. 손녀에게 할아버지의 건강비결을 묻자, 그녀는 “할아버지의 건강비결은 훈자 지방에서 나오는 로컬푸드만 드시고, 가족과 함께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라고 한다.
쉬지않고 즐거운마음으로 쓰리 잡하며 건강한 삶 유지
- 알리 라하바르 할아버지 (90세)
마을의 다른 노인인 알리 라하바르 (90세)할아버지 집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전통적인 가난한 가옥에서 살고 있다.
나무를 깎는 일을 하고 있다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그의 전통 가옥 안에는 방에 칸막이가 없이 여러 명이 함께 지낸다. 바닥에는 카펫을 깔았으며, 지붕은 가운데가 트여있어 환기와 햇볕이 잘 들도록 하여 겨울철 태양열을 이용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이곳에선 손님을 상석으로 안내를 한다. 방의 가운데에 화덕이 있고 두꺼운 팬을 올려놓고 짜파티를 굽는다. 할아버지는 한명의 아들과 다섯 명의 딸을 두고 있는데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부인이 들판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땀을 흘리며 돌아온다. 가난하기 때문에 부부가 모두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한다. 할아버지는 들판에 나가 밭일을 하고, 산에서 양을 치는 일을 한다. 집 마당 한쪽에서는 나무를 다듬어 집을 짓는 일을 한다. 90세의 나이에 몸이 불편해 보이는 데에도 쓰리 잡 (3가지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뷰 내내 통역을 한 아이들은 12세, 13세 정도에 불과하다. 통역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영어가 유창하다. 얼마나 영어를 배웠느냐고 물으니 겨우 2~3년 정도 배웠다고 한다. 하루 학교 수업은 6시간 정도이고 집에서는 3시간 정도 공부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길에서 놀면서 보내고 있다. 우리처럼 영어 학원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영어를 너무 잘 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마을에서 보이는 높고 가파른 산을 가리키며 “저 산에 올라가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저 정도의 산은 한 시간 만에 뛰어서 올라가며, 겨울철에는 사냥을 하러 가기도 합니다.”라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단련된 체력이 장수하는 데 밑거름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