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께 귀의하옵니다. _()_ _()_ _()_
이론이나 말로만 불교의 화합을 주창해서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위험이 있습니다. 이론이 없이 실천만으로 하는 수행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론과 실천이 병행되어야 비로소 건강하고 바르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얼마간 아침 일정시간 동안 여래십호를 외우며 삼매를 닦아 왔습니다.
그리고 삼매에서 나와 위빳사나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오늘도 좌선을 마치고 생각했습니다.
착한 여동생이 백팔배, 수 천배, 몇 만배를 하여 온 신심 깊은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럼에도 고난을 겪을 때마다, 사성제를 통찰치 못하여 위빳사나의 향상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여동생의 도반들도 등등 거의다가 그렇습니다. 연민심이 계속 일어나 합장을 연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괴로운 느낌들이 밀려옴을 알아차렸습니다.
갑자기 괴로운 느낌들이 답답하다는 듯이, 여래십호를 큰 소리로 외우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응공應供)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정등각자正等覺者)이며, 영지(靈知)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명행족明行足)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선서善逝)이며, 세상을 잘 아시는 분(세간해世間解)이며, 가장 높으신 분(무상사無上士)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시는 분(조어장부調御丈夫)이며, 신과 인간의 스승(천인사天人師)이시며, 부처님(불佛), 세존(世尊)이시다”(A.iii.285)
그리고 여동생과 노법우님들이 이렇게 긴 문장을 언제 외울꼬하고 한 숨이 나왔고 이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부처님"이라고 하나의 칭호만을 계속 외웠습니다. 큰 소리로 외우는 동안은 망상이 도저히 들어올 수 없게 됩니다. 집중은 깊어집니다. 순간 괴로운 느낌들도 사라지고 기쁨과 행복함이 체험됩니다. 이것이 염불의 이익임을 분명히 알아차렸습니다.
갑자기 외우는 행위를 그만두자는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말의 소리와 마음의 의도를 멈추고, 마노의 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이것이 위빳사나라고 분명히 알아차렸습니다.
그런데 문득 "부처님"을 외우면서 위빳사나를 하자는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① "부처님"을 큰 소리로 계속 외우면서
② 그 소리가 귀의 감성(문)에 울려 부딪치는 것을 바라봅니다.
③ 이제 그러면서 아비담마와 청정도론과 대념처경 주석서의 교학을 토대로
귀의 문에 소리가 부딪쳐 일어나는 정신 현상을 바라봅니다.
마음과 마음부수의 도표에 비추어 하나하나 심리현상의 법들을 분석해봅니다.
심수관에 따라 마음을 관찰합니다.
저의 속행은 불선업이 끼어들 여지가 없고 한없이 청정함을 분명히 알아차렸습니다.
오온을 파악하고 조건의 화합임을 반조합니다. 무상, 고, 무아를 반조합니다.
사성제를 통찰합니다.
떠오르는 물심현상들의 법에 고도의 집중이 곧바로 수반되는
너무도 훌륭한 위빳사나임을 분명히 알아차립니다.
순간 하늘로 뛰어오를듯 기쁨과 행복이 충만해집니다.
④ 이제 여래십호를 모두 큰 소리로 외우면서 위 과정을 되풀이 했습니다.
⑤ 이제 눈을 뜨고 청정도론을 펴고 불수념 전체를 큰소리로 읽으며 해보았습니다.
⑥ 이제 눈을 뜨고 법수념을 큰 소리로 읽으며 해보았습니다.
⑦ 이제 눈을 뜨고 승수념을 큰 소리로 읽으며 해보았습니다.
⑧ 사문과 경을 읽으며 해보았습니다.
⑨ 소리내지 않고 여래십호를 마음속으로 암기하면서 해보았습니다.
... 기타 생략...
정말 놀랍도록 고도의 집중이 함께하는 위빳사나가 되었습니다.
위빳사나에는 근점삼매 정도의 매우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빳사나는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여래십호 등은 신심이 깊지 못하면 할 수 없습니다. 삼보에 대한 신심이 깊을수록 이 수행은 큰 효과가 납니다. 그런데 한국의 불제자님들은 그동안 깊은 신심을 바탕으로 부처님의 칭호를 불러 왔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불제자들은 이미 집중이 향상될 좋은 토대가 있습니다. 최소한 자신의 모든 관절을 굽히서 마음을 굽힐 수 있는 불제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기억력이 없어도, 노(老)법우님들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동생과 노법우님들에게는 아쉽게도 아직 위빳사나의 토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십호 등 염불하듯 외우면서, 경과 아비담마 등의 교학을 통해 배운 위빳사나를 한다면, 빠르게 도·과에 이를 수 있다는 인식이 떠올랐습니다.
수행을 배움은, 바른 교학을 통해, 바르게 수행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바른 교학을 통해 바른 길을 알지 못하면 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교학은 자만을 버려야 하고, 유장한 마음이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먼저 배우는 자로서 후배 법우님들을 위해 더 쉽고 빠르게 교학을 배우도록 방편을 내고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교학에서 배운 것을, 그때그때 실천해봐서 재미나 절박감의 요소가 생겨나야, 고난도 이겨내고 불방일 합니다.
그러므로 아비담마 공부가 어느정도 진행되면(약1~4장 정도?) 『대념처경 주석서』와 『청정도론』을 적용시켜서 체험해드려서, 초기불교의 거룩함과, 한국의 불제자들의 신심이 결합하면, 정말 빠른 수행이 될 것이라는 것을 동호회에서 법우님들 스스로 확증하시도록 체험해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체험시켜드릴 수 있지만, 이 것이 교학에 맞는지 반조할 능력이 있어야 효과가 몇 배로 배가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희열이 솟고 행복이 크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 약이 어디에 효과가 있는지 알고 먹으면 효과가 크게 나듯이...
그간 대승에서 스님을 따라서 염불을 열심히 하시던 법우님들, 그 수행이 헛되지 않았음을 아시게 되리라 생각하며, 초기불교를 하고 있지만 항상 스님들의 은혜에 감사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초기불교의 뿌리와 대승의 줄기가 한 몸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대림스님 각묵스님, 이 교학을 배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도록 건안하십시오. _()_ _()_ _()_
행복한 마음으로 도산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