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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늘 푸른 은혜동산 원문보기 글쓴이: 황금성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강림 후 기독교회는 진리전파에 주력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리전파와 함께 진리수호의 중요성을 인식했습니다.
‘사도신경’은 이런 차원에서 마련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일부 어리석은 목회자들이 사도신경으로 미혹하는 이단들에게 속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이단들이 교회를 향해 공격하는데 사용하는 중요한 무기입니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사도신경은 성경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사도신경의 진리는 성경66권이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단들은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기록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 역사와 함께 하는 교회의 중요한 신앙고백’임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단들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이 부분을 가지고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빌라도는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그저 채찍질만 해서 놓으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하니 얼마나 억울합니까? >
여러분도 이렇게 생각합니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당신도 미혹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4:27 말씀을 보십시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개역한글)
KJV ; For of a truth against thy holy child Jesus, whom thou hast anointed, both Herod, and Pontius Pilate, with the Gentiles, and the people of Israel, were gathered together,
하나님은 빌라도의 아내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뜻을 전달했습니다.
마태복음 27:19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개역한글)
공동번역 ; 빌라도가 재판을 하고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전갈을 보내어 "당신은 그 무죄한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간밤에 저는 그 사람의 일로 꿈자리가 몹시 사나웠습니다." 하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빌라도는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치는 자들이 더욱 흥분하여 민란이 일어날 조짐까지 보이자 굴복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27:24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정치적 협박 앞에 굴복하고 만 빌라도를 동정하는 이단들이 되지 마십시오.
신앙은 동정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구원의 믿음은 세속과의 타협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단들은 주일예배 때 사도신경을 안 하는 교회는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한국교회가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당신도 이렇게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한국교회, 어느 교단이, 언제, 주일예배 때 사도신경을 안 하면 이단이라고 결정을 했습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신학대학과정과 대학원 과정에서 신학교육을 수료하고 노회정치 아래서 목사임직을 받은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이 사도신경을 안 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한단 말입니까? 그렇게 무식한 분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단이라고 했던 것이 아니라 사도신경이 틀렸다고 사도신경의 내용을 부정하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교회를 설립할 때 교회명을 사랑의 교회, 주는 교회, 살리는 교회. 능력교회, 선교제일교회 ... 여러 가지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단이 이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글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장로교의 세례과정을 꼬집으며 성경에 ‘학습’이 어디 있느냐고 공격을 합니다.
이단들의 눈에는 한국교회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으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신경을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더 단단하게 세워야 할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도신경’은 성경66권의 진리를 고백하는데 있어 충분한 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에 대하여
출처:낙송사랑방
[박태식] 사도신경-우리들의 신앙 고백문 II
역사적 예수(16)
‘사도신경’은 카톨릭, 개신교 할 것 없이 한국 교회의 대부분이 공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신앙고백문이다.
그 외에도 교리 문답에서 반드시 다루어지는 것이 바로 사도신경이고 보면 이는 대단히 큰 비중을 가진 그리스도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예배 시간에 무심코 습관적으로 사도신경을 외우기 전에 한번쯤 미리 그 내용을 꼼꼼히 마음에 새겨 본다면, 틀림없이 신앙생활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세주로 삼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기로 작심한 이들이라면 결코 소홀하게 넘어갈 수 없는 가르침이라는 사실도 명심해둘 법하다.
왜냐하면 사도신경이란 글자그대로 언제나 우리들의 참다운 신앙고백문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이라는 표현을 풀어서 말하자면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신조”로서, 나라에 대한 충성심에서 우러나와 입에 담겨진 다짐이 ‘국가에 대한 신조’라는 점과 비교할 수 있겠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입에 담는 신조는 철저한 신앙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도신경이라는 말의 기원은 무엇보다도 예수의 제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예수의 ‘열 두 제자’를 두고 흔히 ‘열 두 사도’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사도’라 함은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고 다닌다는 ‘전도의 사명’이 보다 부각된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제자라는 말은 예수님을 선생으로 모시고 따라다녔다는 측면이 강하다.)
예수님의 열 두 사도들은 예수 승천(사도 1,6-11) 이후 전 세계를 향해 전도를 떠났고 각각 자기가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이런 전통을 물려받아 중세에 열 두 사도를 그린 그림에는 으레 그들의 고유한 신분과 개성을 밝히는 글 띠가 한 구절씩 붙여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예배시간 중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참 믿음을 다지는 신조로 바치는 사도신경은 모두 12개의 내용으로 되어 있고, 이는 바로 열 두 사도의 고유한 상징들이다. (원래 ‘상징’이란 ‘심볼론’이라는 그리스어에서 따온 말로 ‘~을 알아보게 만드는 표시’라는 뜻을 가진다.)
사도신경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지 약 천년 후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개혁자들 역시 비록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모습에는 반대했지만 사도신경만은 공동의 신앙고백문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동방 정교회에서는 사도신경을 거부하고 개개 교회마다 나름대로의 신앙고백문을 만들어 오늘날에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개신교의 기존 교단들 중에서도 어떤 교단은 사도신경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그리스도의 교회).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 자리에서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가 맹수 밥이 되었던 로마 교회의 신앙 선배들. 이런 끔찍한 박해의 상황에서 매주 숨어 모여들어 지하무덤에서 사도신경으로 자신들의 신앙고백을 대신했던 그들의 믿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에 달려 철저한 고통을 당하신 분, 그러나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하늘까지 높아지신 분,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을 졸지도 쉬지도 않고 지키시는 분, 우리들의 신앙공동체를 지켜주시는 분. 아마 지하 무덤에 모여 입을 모아 ‘사도신경’을 바치는 이들에게는 그 글자 하나하나 마다 가슴에 사무치게 와 닿아 눈물로 맺혀졌을 것이다.
우리를 구해주실 분은 단지 그분 한 분 뿐...비교적 편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로서는 로마교회 선배들의 심정을 헤아릴 길이 없기만 하다.
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
사도신경의 역사적 고찰
사도 요한이 최후로 별세하고부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내려 기독교를 승인할 때까지를 사도후시대라고 말한다.이 시대에 로마의 네로로부터 250년 간 기독교를 크게 박해하였고, 교인들은 무서운 박해와 더불어 영웅적으로 담대하게 싸웠고 명문저서로 진리를 변호하여 왔다.
실로 이 시대에는 순교자들의 피가 마를 새가 없었으며, 익나디오(안디옥감독) 폴리갑(서머나감독) 유스디노(로마철인) 기브리아노(칼타코감독) 등, 기독교의 위대한 순교의 영웅들이 이 때에 있었다.
이렇게 박해가 심하다보니 교회에서도 전략상 교회의 통일과 규율이 필요하였고, 교회와 교회들의 단결이 중요한 쟁점으로 대두되게 되었다. 그래서 이루어진 교회를 카토릭교회라고 하였으며 그 의미는 공동, 공공급(公共及), 보공(普公)이라고 하는 뜻이다.
이 시대에 교회의 구심점을 세우기 위하여, “사도신경“을 정하게 되었고, 신약성경의 정경(Canon)이 정해져서 통일적 성질을 띠고 나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통일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요소가 된 것은, 신약의 편찬과 금일의 우리가 예배 시에 사용하는 사도신경인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사도신경을 지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이 말이 4C 말 내지 5C 초의 글 중에서도 나타났고, 중세기 초에 이르러서 오순절 때,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이 흩어지기 직전에 모여서 성신의 감동을 받고 1구절씩을 기록하였다고 하는 설이다.
예를 든다고 하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요한)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베드로)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야고보)
“이는 성신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안드레)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빌립)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도마)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바돌로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마태)
“성신을 믿사오며 거룩한 교회와”(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가나안인 시몬)
“몸이 다시 사는 것과”(야고보의 동생 유다)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맛디아)이다.
그러나 성경이 정경 이외에도 외경과 위경들이 많이 범람하였던 것처럼, 이와 유사한 신조들이 당시에 많이 나돌고 있었다.
예를 든다고 하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베드로)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안드레)
“이는 성신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야고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요한)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도마)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야고보)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빌립)
“성신을 믿사오며"(바돌로매) "거룩한 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마태)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가나안인 시몬)
“몸이 다시 사는 것과”(야고보의 동생 유다. 다데오)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맛디아)이다.
베드로가 이 사도신경을 로마 교회들에게 전하였다고 하는 일설이 있지만, 이미 이런 형태의 사도신경은 아를의 카이사리우스가 한 설교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카이사리우스의 신조 직전에 있었던 신조는, 460년경 리에스의 파우스투스 신조일 가능성이 아주 많다.
그러나 로마신조를 거쳐서 지금의 사도신경으로 발전되어 온 이 신조는, 제 4C에 사용된 갈리아교회 신조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15C까지 일반적으로 믿어 왔으나, 그 후 비역사적 전설이라고 하여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사도신경이 있었던 것을 증거 할만한 최고의 글은 이레네오와 더툴리안의 글 중에서 나타나는데, 처음 것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신조보다 단순했지만, 좌우간 150년 내지 175년 간 로마교회에 이런 신조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50년 전에는 증거가 없어서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로마에서 기원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레네오와 더툴리안의 글에 의하면, 그 전문을 자세히는 알 수 없고, 오직 400년경에 쓴 루피노(Rufinus)의 글 중에 그 전문이 기재되었다.
리온시의 감독이었던 이레네오(Irenaeus)는,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갑의 제자로 종손(宗孫) 격인데, 로마에 간 적이 있었으며 177년 격렬한 박해 때는 갈리아 지방에 있었다.
그는 갈리아 지방에서 전도하며 글을 쓰는데 전력을 다하여 리온의 시민 전체가 다 기독교인이 되고 타지방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에 이르기도 하였다.
그는 저술로 사도 요한의 전통을 전하였으며 신약의 정신을 깨달았고 성경의 사소한 문제들은 치우치지 않는 관대함을 보였다.
신학 상 신 용어들을 만들어 낸 더틀리안(Tertullianus)은, 160년 칼타고에서 백부장인 부친과 이교도인 모친 사이에 태어나 3,40세에 입신하였는데, 그는 결혼 후 교회의 규율이 해이한데 반하여, 열심히 있는 몬타나교의 감화를 받아 가입하였었다.
그는 처음에는 헬라어로 저술들을 했으나, 후에는 라틴어로 썼는데 “신약”이라는 말과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으로 삼일신사상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집고 넘어갈 것은, “거룩한 공회”를 헬라어 원어로는 άϒἰαν ἐϰϰλησὶαν이지만, 영어로 번역하면 The Holy Catholic Church 라고 되어있어서, 천주교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라 하여서, 일부에서 사도신경으로 신앙 고백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기독교대한감리회
< 사도신경은 사도들로부터 기원한다. 물론 회의적인 견해들도 있지만 사도들 시대부터 신앙에 대한 공적이고 확실한 하나의 고백이라는 것이다. 사도신경은 열두 사도에 의하여 공동으로 작성되었다는 전설이 퍼져있던 4세기 말경에 나타나는데 신앙고백문 형식으로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도 오랜 세월 동안 신자들은 이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이다. 논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많은 신자들이 이 사도신경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다.
신앙은 앎이 아니라 고백이다. 사도신경도 신앙고백문 형식으로 고백되어져 있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고백하지는 않는다. 사도신경의 신앙고백을 한다는 것은 믿는다는 말이다. 앎이 곧 신앙이고, 믿음은 아니다. 왜냐하면 안다고 고백하거나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틴어 고백문으로 된 사도신경의 가장 처음을 순서대로 보면 “나는 믿나이다. 하나님을 곧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로 되어 있다. 믿는 이와 믿는 대상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나타내 주는 고백이다.>
(글; 차동엽)
사도신경의 의미와 유래
최초의 신앙 고백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그 제자들은 교회를 세우고
전도하며 신앙 생활의 본을 보이면서 복음을 전파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 교회가 세계를 향해 흩어져 나가기 시작할 때, 신앙으로 하나가 되고 신앙적 전통을 지켜 나가기 위해 조항을 만든 것이 그 시작입니다.
신앙 고백을 위해 만든 조항들은 이단들로부터 순수한 신앙을 방어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내용이 첨가되기도 하면서 그 모양을 다듬어 나가다가, 서기 404년에 루피누스가 주석을 펴내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신앙고백문이 채택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무려 40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의 기독교의 역사가 압축된 신앙 고백의 결정판입니다.
사도신경을 다함께 암송하는 이유는
1) 기독교의 복음의 본질적인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성경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6,000년 역사를 모두 합쳐서 가장 중요한 진리를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도신경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나타낸 신앙의 요약문입니다.
2) 교회는 사도신경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신앙고백이 없다면 그 교회도 올바른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는 이 사도신경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교회를 교묘하게 파괴시키려는 이단의 침투에서 성도들을 지켜줍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표준적인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단체나 개인은 잘못된 이단입니다.
3) 사도신경은 공적인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어떤 사람의 개인적인 신앙고백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자기 중심적 신앙 표현이나 주장이 아닙니다.
사도신경은 신앙 공동체인 교회의 공식적이고 성경적인 신앙고백입니다.
※ 사도신경의 관련 서적
1. 예찬사 출판, 배양서 지음, 「사도신경 바로 알고 맞게 쓰자」
2. 솔로몬 출판, 이상원 지음, 「21세기 사도신경해설」
3. 도서출판 햇살지기, 유태환 지음, 「혼자서 배우는 사도신경」
출처:사랑의교회
사도신경의 유래
1) 사도신경의 유래
신조(creed confession), 신앙고백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사도신경은 신앙의 표준을 말합니다.
사도신경이란 명칭이 처음 발견된 것은 서기 390년경이며 오늘날 사도신경보다는 더 짧았고 또는 긴 것도 있었으나 공식적인 사도신경은 650년에서 850년경까지 손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중세 초기부터 모든 서방교회(로마교회)는 세례의식 때마다 사도신경을 외웠으며, 미사 때마다, 주일마다, 암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방교회(러시아정교회) 는 아직도 이 의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역사가 흐름에 따라 인위적으로 만든 고백이 원만하고 만족스러울 수 없기 때문에 교파마다 각자의 신앙고백을 거듭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불트만(R. Bultmann)은 "초기의 신앙고백들은 짧게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혹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다'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경에서 베드로가 신앙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의 간결하고도 단순한 고백을 신앙고백의 기본적 표현으로 쓰고 있습니다.
2) 신앙 고백의 목적과 용도
(1) 요리 문답으로서
신조로서의 신앙고백은 입교 지망자(교인이 되려는 사람)를 교육할 목적으로 고안되었습니다. 세례의식을 거행할 때 세례 지원자는 신앙고백을 외워야 했습니다.
루피누스에 의하면 로마교회에서는 세례의 은혜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공중 앞에서 신조를 낭송해야 하는 고대의 풍속이 널리 행하여졌다고 했는데 즉 세례 지원자들은 그 자신의 신앙심에 관하여 회중이 들을 수 있도록 신조를 낭송했다고 했다.
(2) 입교의 증거로서
신앙고백은 교회 구성원으로서 자격을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것은 신원을 확증하는 표시로서의 상징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신조의 낭송이 교인임을 입증하는 표시로서 인정받았습니다.
(3) 교리의 기준으로서
신조는 신앙을 표현하는 선언일 뿐 아니라 이단에 대항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단적인 교리들이 만연될 때에 사도신경은 교회의 진리를 표명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빈들리(Bindley)는 "교회의 진리는 처음에는 말로 표현되기보다는 오히려 기독교인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었다. 그러다가 이 진리를 부인하는 이단이 등장하자, 교회가 자신의 신앙을 깊이 생각하게 했고, 그 신앙을 조리 있는 말로서 표현하도록 했다"라고 했습니다.
(4) 예전으로서
신앙고백은 교회의 예배의식으로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세례의식에 속해 있던 신조가 성찬의식에 포함되게 되었습니다.
11세기쯤 로마에서 니케아 신조가 삽입되었는데 고대 고올(Gaul)교회에서는 세례가 행해지던 예식에서 마지막 순서에 이 사도신경을 노래로 불렀고, 로마가톨릭 교회도 그렇게 통일했습니다.
(5)신앙 체험으로서
신조는 개인적인 신앙고백으로 동시에 기독교인의 체험을 반영하며, 그 경험에 도움을 줍니다.
쿨만(Cullmann)은 역대 신조들의 선언이 현재시제로 되어 있어 은혜의 현재성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현재성이 전통적 신조에 실존적 성질을 부여하며, 신앙체험을 요구하거나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3) 신앙 고백의 성경적 근거
구약 안에서도 신조적 신앙고백의 기원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시 7:1, 시 63:1 등에 간략하고 자발적인 신앙의 탄성으로서의 신앙고백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십계명(출 20:1-17;신 5:6-21)에서도 신조적 표현을 발견할 수 있고, 쉐마(Shema)라고 불리는 신 6:4-9; 신 11:13-21, 민 15:37-41에서도 구약성경의 교리적 표현으로의 신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포오티어스(H. W. Porteous)는 이것을 '신조적 언명'이라고 했고, 로빈슨(H. W. Robinson)은 '유일신 신앙에서 나온 유대인들의 원초적 신앙고백'이라고 했습니다. 최근의 학자들은 실제로 신 26:5-9의 후반부를 '작은 신조'라고 부릅니다.
신약은 그 전체가 베드로의 고백, 즉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되풀이하고 있는 기독론적 신앙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이 아니나, 하나님의 아들이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쿨만(Cunmann)은'그리스도의 선포가 기독교의 모든 신앙 고백의 출발점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사실입니다.
바울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전 12:3)고 했고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상황을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으나 그러나 예수가 주이심을 입으로 고백해야 하는 그 시기가 바로 주를 공식적으로 저주하지 않으면 박해를 당하는 시련의 시기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전 15:3-7절에서 바울은 사도행전에 나오고 있는 베드로의 찬양형식의 설교와 같은 방법으로 표현된 신앙고백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15:1)라고 했는데, 다시 말하면 신앙고백의 내용은 바울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전해 받았고 또한 전해준 것이라는 것입니다.
(출처: 에벤에셀교회)
참고: <니케아 신경>과 <사도신경> 비교
<니케아 신경>
우리는 천지의 창조자이며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만드신 한 분의 전능한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한 분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영원 전에 성부에게서 태어난 신중의 신이며 빛 중의 빛이고 참 신 중의 참 신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출생되었으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으신 분입니다. 그는 우리 인류를 위하여,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와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받아 인간이 되었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 처형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고 장사되었으며,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영광중에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 생명의 부여자와 주님이신 성령을 믿습니다. 그는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며 거룩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사도적인 세계교회를 믿습니다. 우리는 죄의 용서를 주시는 하나의 세례를 믿으며,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립니다. 아멘.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