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에서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이 보살에게 ‘요청’함으로써
구제되는 한편, 운문에서는
사람들은 이 보살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구원된다.
대조되는점을 간단히 말하자면,
산문에서는 이 보살의 이름과 능력이
스와라(svara, 소리, 목소리)와 연관되어 있음에 비해 운문에서는 이것들이
스마라(smara, 생각하는 행동)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간다라어에서 스와라(svara)는 ‘소리’(=Skt. svara)와 ‘생각, 기억’(=Skt. smara)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마도 간다라어에서는 아왈로키타스와라가 「보문품」 의 운문에서처럼
‘생각을 관찰하는 자’로 이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참 후 이 구어체 언어가 범어로 대체되었을 때
스와라(svara)는 더 이상 ‘생각, 기억’을 의미하는것으로 이해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 이름을 「보문품」의 산문에 나타나는 것과 같이문자 그대로
‘소리를 관찰하는 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아왈로키타스와라라는 복합어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소리나 목소리는 볼 수 없는 것이므로
‘생각을 관찰하는 자’가
이 이름의 해석으로는 더 적합할 것이다. 또한 간다라에나타나는
‘사유하는’ 아왈로키타스와라 상을 고려해 볼 때
‘생각을 관찰하는 자’라는 이름이
‘소리를 관찰하는 자’라는 이름보다
훨씬 더 적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