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사람은 살아가면서 서로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저에게 그런 상처가 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어머니와 형과 어렵게 살았고, 처음으로 신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신학교에 지원했을 때 입학을 거부당했던 경험과 7년이란 방황속에서 아버지란 존재를 원망하고 사회를 비판했던 시간들 ... 지금은 2년차 골롬반회 신학생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얼마전까지도 "아버지"라는 말이 아주 부정적이었는데, 다음 일이 있은 후 언젠가부터 진심으로 "아버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하던 중,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프랑스 니스로 가는 기차에서의 일입니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프랑스어로 쓰여 있어서 헤매고 있을 때, 동양인 할머니를 발견하고 도움을 청하여 미소를 띤 할머니의 도움으로 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자리에 앉고서 주위를 둘러보니 두 분이 부부인 유대인 할아버지와 동양인 할머니가 옆에 앉아 계시었고 할아버지가 저에게 "한국에서 왔느냐 ?"고 물으셨고 이를 계기로 서로 많은 대화을 주고 받을 때, 손수레에 간식을 싣고 팔러다니는 기차 직원이 지나가자 먹을 것을 사주겠다고 하셨지만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에는 과도하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주의하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소매치기가 많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긴장하고 무거운 가방을 안고 있는 이 젊은 동양 청년이 안쓰러웠던지 편안하게 마음 놓고 쉬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에 믿음이 갔습니다. 깜박 졸다가 깨면 그분들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창밖의 아름다운 해변을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유태인 할아버지는 말씀 중에 저와 비슷한 또래의 아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매너가 좋으시고 아주 사소한 것까지 처음 보는 저를 위하여 신경을 써주셨습니다. 특히 할아버지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덧, 기차는 니스역을 향해 달리고, 두 노부부는 니스 전 역에서 내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은 지팡이가 있어야만 걸을 수 있기에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를 옮겨 줄 수 있냐고 물으셨기에 기꺼이 옮겨 드렸습니다. 기차 출구 앞에 계시던 할머니는 제가 짐을 옮기자 10 유로(약 18,000원)를 주시며 커피를 사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극구 사양하였으나 할머니의 성의를 생각하여 받아들고 제 방으로 돌아왔을 때, 아직까지 방 앞에서 저를 기다리신 할아버지께서 고맙다고 인자하게 웃으시며 악수를 청하시더니 20유로를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그러고는 제게 "나는 네가 아들 같다"라고 말씀하시곤 내려가셨습니다. 그 때 제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펑펑 울었습니다. 아마도 30분을 그렇게 울었던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성골롬반 외방 선교회」http://www.columban.or.kr가 발행하는 "변방선교" 2007년 겨울호 65호 에서 읽은 구자호具滋鎬 이냐시오 님이 정리하여 쓴 것 임. 작가는 골롬반회 신학생 지광규 대철베드로로 실화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