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날마다 해피엔딩|
"'사람들은 자비로와야 해'
'서로 돕고 살아야 해'
'너는 내게 친절해야 해'
이런 생각은 너무나도 지당하게 옳은 생각들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 집착할 때, 남들이 자비롭지 못하고 돕지 않을 때 화가 난다.
내가 자비롭지 못했거나 친절하지 않았을 때도 자책감을 느낀다.
아무리 옳은 생각이라도 거기에 집착을 하게 되면, 그 집착하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세상에는 자비롭지 못하거나, 이기적이고, 때때로 친절하지 않은 사람은 많고 많다.
아니 다 그러고 살지 않는가.
그들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들에게 왜 자비롭지 않느냐고 화를 낸다면, 바로 그런 생각을 믿은 내가 더 자비롭지 못한 것이 아닐까?
진정한 자비는 '자비'라는 견해 조차 없다.
사람은 산소를 들이쉬고 이산화탄소를 내쉬며, 자연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 것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살려주고, 자비롭게 도와주며, 공생의 길을 걷는다.
이 단순한 호흡 하나가 이 세상을 살리고, 자비롭게 돕고 있다.
진정한 자비는 이처럼 저절로 일어난다.
나는 내 직업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을 통해, 내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사람들이 쓰도록 하는 것으로, 그 회사에 내 맡은 임무를 행하는 것으로, 나는 이 세상의 연기적인 공생의 살아있음에 기여를 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행하는 자비의 방식이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내가 자비를 베풀었어'라고 말하지 않듯, 진정한 자비는 하되 함이 없다.
진정한 자비는 바로 무언가를 행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본래 무한한 동체대비심이라는 자비의 현현이다.
이런 본래적인 자비심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본연의 이 자비심에 견해를 내지도 않고, 이런 자비심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자비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을 미워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옳은 생각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그것은 자신을 괴롭히고, 남들도 괴롭힐 뿐이다."
|반야심경과 마음공부 14.|법문을 체화하여 내것으로 만드는 방법|
지금을 살아야 할 뿐 그 무엇도 없다.
지. 금.에 있으면 주인공으로 사는게 되고, 지금에 없으면, - 과거나 미래에 있으면 - 노예, 시다바리가 된다.
'깨달음' 이라고 하는것. 이 또한, 깨달은 것과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둘로 나누는 분별이다.
무분별지라고 하는 것은 분별이 사라진 이것이 전부.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어제까지 기고만장 했던 나를 돌아 본다.
한없이 부끄럽고 쪽팔리어 당장 오늘부터 미션수행방에 어떻게 글을 써야 하나? 그렇게 초라하고 한없이 작아진다.
하지만, 이렇게 쪽팔림을 알 수 있게 해주신 스님께 감사드린다.
다만 모를 뿐 하고, 법문 듣기!
도반님 댓글 지켜만 보기! 등등...
초짜배기인 나를 가련하다. 불쌍하구나. 절마 저거 아직 멀었구만... 하고 지켜보시는 도반님께 참회드리며, 그렇게 예불을 올렸다.
심우도의 단계로 치자면, 소가 도망 못가는 상태. 소의 야성을 길들이기 위해 소의 코에 코뚜레를 꿰었고, 고삐를 걸어 놨지만...
삼독의 묵은 때 찌든 때를 벗겨내는 과정 쯤...
앞으로 5단계가 남았는데, 갈길이 멀다.
껄떡껄떡 거리다가 못벗어 날수도 있겠구나 싶다.
깝죽깝죽 거리다가 또, 열방 맞는다.
그렇게, 때려주는 스승님이 참 좋다.
도반님들, 나를 때려 주시라!
맞을려면 곧장 맞자! 30방 정도는 맞아보자.
맞음과 동시에, 중생이 부처 됨을 잊지 말고!
아니지, 이미 부처인데...
맞는것 취소 한다.
'이 공부는 스승과 도반이 전부다.'
조금만 삐딱선 타면 다 안다. 스님이 무섭도다!
부산에서 여길 지켜보다니... 꼼짝달싹 못하겠구나!
이것이 바로 공명!
마음 공부를 함으로써 모두 통으로 하나가 된다!
任性隨流 임성수류
자기의 본래성품에 맡기고, 의식의 흐름에 따른다.
본래성품이 무엇인지 알아야 맡길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은 온갖 경계를 따라 굴러다니니 心隨萬境轉
구르는 곳마다 참으로 그윽하다. 轉處實能幽
흐름에 따라 성품 깨달으면. 隨流認得性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으리라. 無喜復無憂
임성수류! 조당집, 마나리존자의 게송을 접하면서 본래면목, 성품 이란것은 그어떤 경계도 없다.
온갖 번뇌와 망상들과 탐진치삼독이 곧장 해탈열반이다.
중생과 부처를 따로 나눌수도 없다.
그렇기에 경계속에 아무리 굴러도 해탈열반이다.
마치, 부처의 눈으로 보면 모두 부처가 된다.
그래서 한법도 설한바 없게 되고, 구제 할 중생 또한 없다.
할일을 다해 마쳤고, 푹 쉬었기에 생노병사에도 그 어떤 것에도 기쁨도 근심도 없다.
중생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苦!(기쁨, 근심)
한낱 중생 일 뿐이다.
부처의 눈으로 볼것인가?!
중생의 눈으로 볼것인가?!
최기호 합장올림
"오래가는 꽃을 골라 주세요!" 라고 말씀 드렸더니, 드라이플라워 꽃바구니를 추천 해 주셨다.
5년은 간다고 하셔서 하나 샀다.
거실 장식장 한켠에...
예쁘다고 좋아하는 아내, 꼭 안아줌... 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