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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기(국립국어원 국어진흥팀장) ![]() 잘 아는 바와 같이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를 쟁탈하면서 18, 19세기에 현지의 민족정신과 문화 말살을 위해 제일 열심히 한 것이 그 나라의 말과 문화를 없애고 자기 나라 말을 사용토록 하고 문화를 알리는 일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어를 없애려고 발악한 것도 이와 같았다. 그런데 교육부는 또다시 2008년부터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 조기 교육을 하겠다고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자발적으로 식민지 교육을 하겠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최근 한 연구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교 영어 교육에 연간 약 4조 원의 경비가 들어간다고 하고 경기도가 영어 마을을 만드는 데에 1,700억 원을 썼으며, 운영비와 교육비를 합하여 매년 550억 원이 들어간다고 발표한 이런 영어 마을에 초등학생 한 학년이 들어가서 1년 동안 영어 교육을 한다면 연간 18조 원의 돈이 들고 이만한 규모의 영어 마을을 만드는 데에 131조 원이 든다고 한다. 이 돈은 우리나라 교육 재정의 4배에 이른다. 두 학년을 수용하려면 연간 26조 원과 시설 투자비 262조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마치 경쟁하듯이 지방자치단체는 영어 마을을 만들겠다고 하며, 현재 신청한 곳만도 30곳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 정책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다. 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영어 조기 교육 정책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까닭이 있다. 첫째, 영어 조기 교육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고통을 주고 이들을 병들게 한다. 어린 나이에 영어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정신병에 걸린 어린이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체력과 정신력도 약해지고 눈도 나빠져서 안과 병원을 찾는 어린이가 많아지고 안경을 쓰는 어린이가 점점 늘어만 간다. 둘째, 자질 있는 영어 교사가 부족하다. 교육의 성패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교사의 자질이다. 먼저, 질 높은 영어 교사를 배출하는 계획이 선행되어야 한다. 2005년 교육 통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초등학교 교사는 2만 1천여 명인데 영어 교사 자격증 소지자는 200여 명(1%)뿐이고, 영어가 가능한 교사도 3,000여 명 정도라고 한다. 이 정도의 수효로는 영어 조기 교육 시행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셋째, 현행 중학교 영어 교육 제도와 방법을 현실에 맞게 개선하지 않는 한 실질적인 영어 조기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과거의 영어 교육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것은 영어 조기 교육 여부와 별개로 교육 제도와 방법에 더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영어 조기 교육 못지않게 국어 교육을 더 강화하는 일이다. 글쓰기 교육, 독서 교육, 말하기 교육, 토론 교육, 어문 규범 교육, 국어 문법 교육 등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은데도 국어 교육이 정상적으로 실천되지 않고 있다. 오직 입시 교육에만 매달려 실제 언어생활과는 거리가 먼 내용만을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이 또 있는데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영어 조기 교육에는 그렇게 열을 올리면서 왜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국외에 알리는 일은 뒷전에 두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언어 교육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국어 교육과 외국어 교육을 신중하게 검토해 보는 교육 당국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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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연세대 교수) ![]() ‘지아비’와 ‘지어미’에 보이는 ‘아비’와 ‘어미’는 그 뜻을 알겠지만, 그 앞에 붙어 있는 ‘지’는 그 형태만으로는 뜻을 알기 어렵다. “제가 무얼 안다고 그래?”를 “지가 무얼 안다고 그래?”로 발음하기도 하니까 혹시 ‘제(자기의) 아비’나 ‘제(자기의) 어미’가 ‘지아비’와 ‘지어미’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잘못 안 것이다. 왜냐 하면 ‘지아비’와 ‘지어미’의 중세국어 형태는 ‘집아비’와 ‘집어미’였기 때문이다. 갓 집아븨게 랑오져 여 괴이면 <1518정속언,006b> 그러니까 그 의미는 ‘집의 아비(어미)’란 뜻이다. 그런데 왜 이 ‘집아비/집어미’가 ‘지아비/지어미’가 되었을까? 중세국어에서 ‘집’의 속격형은 원래 ‘짒’이다.내 슬호 가난 짒 리 오래 羅襦裳 어더 뒷다니 <두시언해(1481년)> 그런데 15세기에 ‘짒’에서 ‘ㅂ’이 탈락하여 ‘짓’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은 어간말자음군의 단순화에 말미암은 것이다. 그래서 ‘집’의 속격형인 ‘짒’은 15세기에만 보이고 그 이후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신 15세기에는 ‘짒’의 변화형인 ‘짓’이 동시에 등장한다.짒사 더브러 고기와 보리밀 잇 나가 江湖ㅅ 가 늘고리라 <두시언해(1481년)> 그 짓 리 가져 나오 婆羅門이 보고 깃거 <석보상절(1447년)> 위의 예문들에서 ‘가난 짒 리’(가난한 집의 딸이)가 ‘그 짓 리’(그 집의 딸이)로 변화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집아비’와 ‘집어미’는 ‘짓아비’나 ‘짓어미’로 나타난다.善友ㅣ 닐오 그듸 뉘 짓 리완 내 겨지비 외요려 다 <월인석보(1459년)> 이욷짓 달기 산 드러오나 <삼강행실도(16세기)> 가난야 바배 짓 긔 고기 인 주 셜워노이다 야 <삼강행실도(16세기)> 얼운니 짓아비 도여셔 <이륜행실도(1518년)> 그런데 16세기에 와서 ‘사이시옷’의 ‘ㅅ’이 탈락하는 현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예들은 1527년에 간행된 ‘훈몽자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문헌에서는 새김과 음 사이에 ‘ㅅ’을 붙이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한다. 이것은 이 시기가 사이시옷이 탈락하기 시작하는 시기임을 암시한다. 몇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짓아비 부(夫) <신증유합(1576년)> 짓아비 부(夫) <석봉천자문(1583년)> 만약 쳐가 그 짓아비 버리고 곳쳐 시집가 쟈면 한 음 미니라 더라 <예수셩교전서(1887년)> 예수 갈오샤 가셔 네 짓아비 불너 여긔 오라 <예수셩교전서(1887년)> 사이 각각 한 부인 두고 부인은 한 짓아비 둘데 지아비가 부인의게 당연물 고 <예수셩교전서(1887년)>
아도 보고져 도 보고져 지아비도 보고져 각고 <순천김씨언간(1565년)> 그래서 19세기말까지 ‘짓아비’와 ‘지아비’ 그리고 ‘짓어미’와 ‘지어미’가 공존하였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와서 ‘짓아비’와 ‘짓어미’가 완전히 사라지고 오늘날의 ‘지아비’와 ‘지어미’만 남게 된 것이다. 그 지아비 만나 죽디 아녇거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이믜 내 지애비 더위고 날조차 므로려 냐 범이 이예 나가다 지아비 긔졀여 김시 어버 지븨 도라가니 새배 지아비 도로 사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지아비 셔울 이셔 죽거 곽글 븓드러 고을희 도라와 묻고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君子 지아비 닐온 말이라 <1658여훈언해(1658년)> 夫主 지아비란 마리라 <여훈언해(1658년)> 이 업슨 지어미니이다 <오륜전비언해(1721년)> 지아비 이시면 지어미 이시니 <어제경세문답(1761년)> 나희 지어미 업스면 물이 님재 업고 계집이 지아비 업스면 몸이 님재 업다 <박통사신석언해(1765년)> 져믄이 그 지어미와 식을 잇글고 안고 흐텨져 다른 듸로 가고 <윤음(1783년)> 그 지어미 화치 못고 그 지아비 공경치 아니며 <경신록언석(1796년)> 제가 랑지 안 지아비가 어 잇겟서요. <무정(1917년)> 아다온 풍속에 한 지아비가 한 지어미를 거나리 규모도 본밧지 못고 <설중매(1908년)> 그렇다면 오늘날 ‘집사람’이란 말은 왜 지금도 ‘지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집사람’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집사람’이란 말은 ‘집아비’나 ‘집어미’보다 후대에 발달한 것이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집’의 속격형이 ‘짓’일 때에는 ‘집사람’이란 말이 없었기 때문에 ‘사이시옷의 탈락’이란 규칙이 적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집사람’이란 단어는 ‘가인(家人)’의 번역어로 보이는데, 16세기부터 등장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일컫는 말’이 된 것은 후대의 일이다. 원래는 ‘집안 사람’이란 뜻이었다. 家訓 집사 친 글월이라 <소학언해(1586년)> 그런데 왜 오늘날 ‘지아비’와 ‘지어미’는 ‘남편’과 ‘아내’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 변화하였을까? 그것은 ‘아비’와 ‘어미’의 의미 변화 때문이다. 원래 ‘아비’와 ‘어미’는 평칭이었으나 ‘아비’와 ‘어미’가 ‘애비’와 ‘에미’로 음운변화를 일으키면서 낮춤말로 변하였다. 그래서 ‘지아비’와 ‘지어미’도 같이 웃사람 앞에서 자신의 남편과 아내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겨집’이 원래는 낮추는 말이 아니었는데, 이것이 ‘계집’이 되면서 낮추는 말로 된 것과 동일하다. ‘지아비’와 ‘지어미’ 중에서 특히 ‘지어미’는 그러한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지아비’와 대응하는 단어들에 변화가 보여서 그렇게 추정할 수 있다.家訓 집사 치 글이라 <소학언해(1586년)> 웃 관원 셤김을 兄 셤기 며 동관 향야 홈을 집사 티 며 모 아젼 졉홈을 죵 티 며<소학언해(1586년)> 삼가 禮法을 딕킈여 모 子弟와 믿 집사 거느릴디니 <소학언해(1586년)> 처음에는 ‘지아비’에 대응하는 단어는 ‘지어미’였었으나 점차로 ‘겨집’이나 ‘계집’과 대응하다가 ‘안’로 바뀌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관용적인 표현에만 사용하고 ‘지아비’와 ‘지어미’란 단어는 입말에서는 사라질 운명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어미 공경로 그 지아비 셤기며 지아비 和동므로 그 지어미 졉야 夫婦ㅣ 서 和동며 공敬면 <여훈언해(1658년)> 결국 ‘지아비’와 ‘지어미’는 ‘집의 아비’ ‘집의 어미’란 뜻이어서 ‘집아비’ ‘집어미’였는데, 이 ‘집’의 속격형 ‘짒’에서 ‘ㅂ’이 탈락하여 ‘짓’이 되어 ‘짓아비’와 ‘짓어미’가 되고, 16세기에 사이시옷이 탈락하기 시작하면서 ‘짓’이 ‘지’로 변화하면서 ‘지아비’와 ‘지어미’가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그 ‘집’의 의미를 알아볼 수 없는 ‘지’가 됨으로써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이 된 것이다. 분덕이 닐오 지아비과 겨집 이 비록 듕나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지아비 모로미 계집을 권념고 계집은 모로미 지아비 슌죵야 <1658경민해,002b> 지금 세샹에야 지아비라도 안의 유를 지 못닛가 <무정(1917년)> |
첫댓글 영어조기교육 문제에 동의함~~
영어조기교육에 관한 문제를 잘 짚어주셨지만..글을 쓰신 샘의 자녀들은 어떻게 교육 받는지..갑작스레 궁금해졌습니다...ㅠㅠ
저도 '지아비'가 '자기 아비'를 줄인 것인가 했었어요.ㅋㅋ 자료 감사합니다.
'영어 조기 교육이 어린이들에게 고통을 주고 이들을 병들게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눈 나빠져서 안과 병원을 찾는 어린이가 많아지고 안경을 쓰는 어린이가 점점 늘어만 가'는 것까지 영어 조기교육의 폐해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도 영어 조기교육 열풍은 설레발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요즘보면 부모의 학식이 높을수록 조기교육열도 높은 것 같더군요. 백운대 선배님 말씀처럼 이런 글쓴이의 실제교육방식이 궁금합니다.
적어도 글쓴이는 자신의 아이들이 영어 과외나 영어 공부를 고통스러워한다면 억지로 시키지는 않겠지요. 근데 여기서 글쓴이가 자녀를 어떻게 교육시킬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애초에 언어감각이 뛰어난 아이들, 자기주도형 학습이 가능한 수재들을 제외하곤 이 나라에서 자식의 영어실력을 걱정하지 않을 부모는 없습니다. 글쓴이도 영어조기교육을 시키는 부모님을 나무란 게 아니라 정책과 인식을 이야기한 거고요. 그래서 국어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절실히 중요합니다. 말하기, 쓰기 교육, 토론 교육을 정상적으로 한다면 다시 말해 모국어로 훌륭하게 사고하고 말하고 쓰고 토론할 줄 안다면 외국어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밑빠진 독에 열심히 색칠만 해대면서 왜 물이 새지?? 하는 꼴이라고나 할까.. 저도 요새 열심히 색칠만 하고 있다니깐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