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노력(마르 4,26-34)
ㄱㅅ본당 수녀 소임을 받고 이사했다. 거기 주방 옆에 조그맣게 붙은 임시 건물 공간에서는 간단한 조리 세탁과 건조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고 집기들을 보관할 수 있었다. 겨울철이라 빈 화분이 겹쳐 쌓여 있었다. 서너 달의 시간이 지나,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듯한 봄이 무르익던 날, 중간쯤 쌓여 있는 화분에서 ‘사랑초’ 한 줄기가 잎사귀를 달고 몸을 내밀고 있었다. ‘세상에나, 저 생명의 경이로움이라니’.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진작에 생을 마감했고, 그 자신도 한 방울의 물도 먹은 적이 없는데.
오늘은 복음 말씀(마르 4,26-34)중 일부가 좀 거북하게 느껴진다. 하느님 나라(마르 4,26-34)가 ‘저절로 도래’ 하는 것처럼 오해하기 때문이다.(나에게) 물론 본문을 마저 읽으면 ‘씨’란 보이는 존재의 노력보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은총’의 지대함을 말하고자 가르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절대적 진리이다.
그러나 사랑초가 햇빛과 적당한 온도라는 혜택을 받았겠지만, 자기 생명의 유지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사람과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민주화 복음화라는 것도 소수의 선구자적 훌륭한 인물들의 눈물과 땀과 심지어는 피와 목숨까지 바친 대가로 오늘 이만큼 나를 포함한 인류가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저절로 온다면 예수님께서 육화하실 필요도 없으셨고, 당신 자신이 앞당겨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하시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필요도 없으셨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대로 살려고 스스로 깨어 노력하는 세상과 사람들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뿌리가 나무에게- 이 현주 목사님
네가 어린 싹으로 터서 땅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와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바늘 끝 같은 틈을 찾아야했다
...
모든 시련이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
잎 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입력: 최 마리 에스텔 수녀 2023년 1월 27일 금 PM 2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