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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13 집안 혼사 뒷이야기
안 종 문
진갱빈 과수원집 여섯 아들이 구정 설에 모여서 곧 있게 될 다섯째 아들의 둘째 아들 그러나 개혼이 되게된 집안 조카의 결혼식에 편치 않는 어머님을 시골에 두고서 과연 아버님을 서울 예식장으로 어떻게 모시어 가야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을 예정이었다. 그 이야기를 미리 아시게 된 아버지께서는 회의에 앞서서 단호하게 “나는 못 간다. 아니 안 간다. 저런 네 어미를 두고 어떻게 간단 말인가?”라고 말씀하시며 논의하기 자체를 거절하셨다.
이어서 여태껏 오전에 평해에서 올라와서 엄마 뒷바라지 해주시고 가시는 요양사 아주머니의 보살핌으로는 엄마의 보살핌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공감하며, 다섯 아들이 엄마의 여생을 어떻게 극진히 보살펴드릴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눔 끝에 넷째 붉은바위 형님의 제안인 즉 당번 순번제로 한달씩 효도하는 방법을 제안하였고, 모두가 적극 동의함으로써 채택하게 되었다. 곁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었던 막내아들이 자신도 합류할 것을 피력하여 결국 여섯 아들이 모두 참여하되, 당장 2월 달은 곧 봄 방학을 맞는 여섯째아들부터 적용하기로 하였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형수님과 내자 쪽에서 한 달의 시골 생활은 너무 길어서 갑갑하니 보름으로 줄여주고, 여섯째 아들네가 2월 달에 피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가족행사가 있음으로 순번을 달리하게 해달라는 추가 협의 제안이 있게 되자 막내아들은 기꺼이 자신이 2월 17일 정월대보름날까지 제일 먼저 책임지겠노라고 응답하면서 고맙게도 첫 적용 당번제 안을 수락하였다.
그러던 참에 2월 7일 평해장에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느닷없이 시골 엄마의 안부를 묻던 아들들의 문안전화 통화에서 본인과 막내아들이 온정에서 바로 서울로 가는 장거리 직행버스를 타고 서울 혼사에 참석하겠다고 떼를 쓰게 되었다. 특별히 엄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함도 없이...... 다섯 아들들과 형수님들이 애초 약속과 다르게 그렇게함이 옳지 않으심을 간언하였으나 상경하겠다는 결심이 너무나 완고해서 몹시 놀랐고 황당해 하였다. 막내아들의 엄마 책임 돌봄 약속 번복도 야속하였거니와 무책임하게 3급 치매로 쇠약하여진 근력 때문에 각별한 돌봄이 필요한 노령의 엄마를 생각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처사에 대해 많이 실망을 하면서, 그 대책을 새로이 모색하던 중 영덕에서 교사 직분을 수행하며 살고 있는 외사촌 이선생에게 아버지를 모시고 대구에 나와서 여섯째아들의 11인승 승합차로 함께 올라갈 수 있겠느냐는 전화 문의를 하였더니 고맙게도 흔쾌히 수락을 하여주었다. 그렇게 하게 되었음을 집안 진갱빈 과수원집 카페에 공지를 할 수 있었고, 모두 한시름 놓으며 잘 해결되었는가 싶었다.
그러나, 예식 날을 불과 사흘 앞두고 동해안 지역에 급작스럽게 폭설이 내렸다. 100년만의 큰 눈이 내리게 되자 아버지는 '갈 수 있으면 가고, 아니면 못 가게 되었다.'며 그 뜻을 한 발자국 물리셨다. 오후 5시의 결혼식이므로 영덕에서 당일 아침 일찍 모시려가려던 외사촌이 빙판길을 두려워한 나머지 12일 오후에 들어가겠다는 전화연락을 받게 되자 이를 즉시에 알려드렸고, 이를 전해들으신 아버지께서는 몹시 반가워하며 안도의 심정으로 응답하시던 떨리는 음성이 지금도 또렷이 회상되며 전율된다.
한편 두 자가 넘게 온 울진 지방의 눈길을 잘 헤쳐서 오후 5시경에 시골에 도착하였던 외사촌이 아버지를 모시고 저녁 8시 20분쯤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두 살 위인 여섯째아들은 수고를 해준 이선생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내자가 정성들여 차린 저녁 밥상 식탁 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성공적인 임무수행을 함께 기뻐하였다. 팔공산 자락에 사시는 외숙모님 전화 통화도 미리 있었고 해서 모처럼 같이 자고 동시에 함께 출발하자는 나의 권유를 물리치고, 본인의 엄마를 찾아 떠난 외사촌을 하는 수 없이 마중보낸 후 아버지와 함께 거실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단잠을 잤다. 이튿날 일찍 일어나서 머리를 감겨드리곤 면도도 해드렸다. 세월의 깊은 골을 담은 얼굴을 조심조심하며 수염을 밀고나니 보기가 좋았다. 정성껏 양 손의 손톱도 손질하여 드렸다. 온갖 궂은 농사일을 85년 이상 감당해낸 굵고 투박한 아버지 손을 새삼 만져보며 가슴 깊은 곳에 몰래 눈물을 담았다. 어느 듯 93세의 노령임에도 천리 먼 길 손자 결혼식 참석함을 전혀 힘들어 하지 않으시고, 직접 생생히 눈으로 보시겠다는 일념이 존경스러웠으며, 그러한 열정이 아직도 남이 부러워하는 건강을 유지하심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8시 40분에 부산에서 대구로 온 분식누님 도착하였다는 전화가 와서 9시 4분에 도착예정인 울산 누님 네와 역 앞에서 함께 기다릴 것을 부탁하고, 마중하려 차를 몰고 갔다 오니 9시 반이 되었고, 조금 있으니 팔공산 자락 지묘동에 사시는 외숙모님께서 둘째 아들과 함께 오셨다. 반갑게 둘러앉아서 차 한 잔을 나누고는 일찍 출발하자는 아버지 성화로 예상되었던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미리 도착하여 어쩜 생애 마지막이 될 반가운 사돈 댁 어르신들을 만나 세상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보고 싶어시단다. 오후 5시의 예식시간에 무려 6시간 반을 앞 둔 10시 20분에 집을 출발하여 가는 길에 만촌동 맏형님 모셨고, 이어서 사촌 금자 동생네 부부를 합승시켜서 북대구 톨게이트를 지나니 10시 43분.... 괴산, 덕평 휴게소에 각각 들려 쉬면서 갔어도 2시에 서울에 도착되었다. 버스 전용차로를 이용하여 거침없이 달려갈 수 있었던 덕을 톡톡히 보았다.
남산 1호 터널을 지나자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청와대 뒷산 북악 스카이웨이 길 팔각정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구경을 한 후에 예식장에 가자는 그 누구의 제안에 모두 동의를 한 후 종로 3가에서 세종로 길을 선택 광화문 새 단장 길을 구경하며 효자동 길로 좌회전하여 전에 가보았던 낯익은 북악스카이 웨이 길로 올라갔더니 처음이라던 외숙모님, 분식 누님과 금자네 부부가 매우 흡족해 하였다. 팔각정에 도착해서 기념사진도 찍었고, 평창동을 위시하여 주위를 둘려 내려다보고 다시 효자동 길로 내려오니 3시였다. 청와대 앞길을 선택해서 삼청동 쪽으로 둘려서 예식장에 도착하니 3시 15분..... 아버지를 대기실로 모셔두고 연세대학이나 이화여대를 둘려보려다가 앞 타임의 결혼식이 거행중이라 마땅히 쉴 곳을 찾지 못해 기다리던 중 다행히 일찍 도착한 새신랑을 만날 수 있었고, 연세대학 응원단장 출신답게 사무실 측에 마땅한 쉴 곳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고는 예식 도우미 대기실로 안내하여주었다. 곧 용인에서 출발한 성균 조카네 식구에 이어서 혼주가 찾아와서 반갑게 해후의 시간을 가졌고, 이내 대구 맏형수님을 모시고 온 차량의 손자 손녀네 축하객들과 인사를 나누다보니 4시가 넘었다. 3시 타임의 예식이 어느듯 끝나면서 식장 자리가 비게 되자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둥근 테이블을 마련해 놓은 연세대학 동문회관 3층 큰 예식장 에서의 감동적인 결혼이야기는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으로 대신을 한다.
특별하게 언급해두고픈 바는 너무나 많은 축하객으로 준비한 음식이 모자랄 지경이었으며, 축의금을 계산하고 정리함에 다섯 조카님들이 정신없이 매달려 일하였지만 모두가 가족 단체사진 촬영에 참석을 하지 못하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양가의 혼주가 무척 보기가 좋았고, 현 연세대학 총장님의 체험적인 이야기를 진솔하게 곁들여 나긋나긋하면서도 신념에 찬 차분하고 힘찬 목소리의 설득력 있는 주례사도 오랫만에 경험해보았으며, 주례사 내용도 매우 감동적이었다. 연이어 우렁찬 축가도 멋있었고..... 하여 통상 지루해하던 결혼 축하객의 여타 식장 내 모습들과는 판이하게 흥미진진해 하며 웃음 띤 얼굴의 모습들이 참 보기가 좋았다. 더구나 신랑이 사회생활을 잘 하며 놀라운 인맥을 유지하였음의 놀라운 결과와 몹시 출중한 신부의 학업성적 이야기가 젊은 청소년들에게 귀한 귀감이 되었을 것이고, 천 오백리 길 그 먼 길을 마다않고 더구나 자신의 뜻을 번복하시면서까지 직접 참석하신 아버지의 판단이 참으로 훌륭하였음을 뒤늦게 공감되었다. 사실 만류하기에 급급하였던 아들들을 조금은 쑥스럽게도 만들었음을 솔직히 느낄 수가 있었다. 가까운 친척들 및 지인들의 많은 축하객들이 식장 참석 최 고령 아버님의 두 손을 꼬옥 잡아드리며 반가운 인사를 올려드렸고, 폐백 시간도 곁에서 목도를 하시며 많이 즐거워하셨기 때문이다.
7시 반경에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며 대구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2층 주차장에서 짐과 탑승객을 확인하여 출발하니 7시 45분..... 내비게이션의 친절한 안내 길을 따라 내부순환도로를 이용하여 구리 IC를 통과해서 충주 휴게소에 들려 쉬며 대구에 도착하니 11시였다. 노래를 부르며 오느라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는 금자, 김서방을 새마을 오거리 직전에 내려드리고, 맏형님 집에 1박하시고 동부정류장에서 무정차로 진갱빈 고향에 내려가시겠다는 아버지 뜻을 받들어 만촌동 메트로 팔레스 아파트 입구에 모셔드리고, 집에 도착하니 11시 30분...... 함께 주무시고 아침을 드시고 가시라는 간청을 물리치고 곧장 떠난 외숙모님과 영덕 이선생을 보내드리고서야 양복을 벗고, 두 다리를 펴보며 보람차고 즐거웠던 하루의 긴장을 풀며 마음을 놓았다. 울산 누님네와 부산 분식 누님은 침대방 잠자리를 기어코 마다하시며 거실의 큰 전기장판에서 잠을 주무셨다. 물론 쉽게 잠들지 않고서 많은 이야기 나누다 새벽 1시에 ......오늘 혼사 여러 장면을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일부를 카페에 올리기에 바빴고, 용량이 오버된 동영상은 메일용으로 다시 재편집하려 새벽 6시에 일어나 거실에 마련된 노트북으로 허겁지겁 마무리 지어서 마져 올려두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난 누님께서 거실 창밖을 내다보시고는 “대구에도 눈이 왔네...”라는 함성에 나도 놀라서 뒤 돌아보니 하얀 설경을 덮어쓴 풍경이 보기가 좋았다.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왔음에 안도의 한 숨과 흰 설경이 선물해주는 그 무엇의 감사함이... 본인이 어렸을 때 등에 업고 키웠던 고마운 울산 누님을 하룻밤 주무시게 하고 보낼 수 있어서 더욱 만족스러웠다. 비록 귀한 손님을 동대구역으로 직접 모셔드리려던 계획에 차질이 왔어도.....
떡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나서 택시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가시겠다며 서두르신다. 콜택시를 불렀으나 불티가 나서 대중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였고, 루이를 안고서 기쁜 마음으로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 드렸는데 함박눈이 쏟아져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예고 없었던 날씨 탓에 혼잡한 버스 편으로 보내드린 마음이 조금 아팠지만 어제 수고가 많았다는 혼주와 붉은바위 형님의 감사 및 위로 전화를 받고서는 그 모든 수고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든든한 진갱빈 허리진 아들이 이와 같이 건재하기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자에게 덩달아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왔더니 시골 요양사 아주머니께서 대구에서 1박하고 가시려던 할아버지께 시골로 오시게 하지 말라는 당부의 전화가 왔다. 평해에서 온정 간의 도로에 새로 내린 눈으로 차가 다시 다닐 수 없게되어서 자신도 엄마를 돌보려 못 올려가게 되었다는 부언 설명과 함께..... 하지만 이 사실을 맏형님댁으로 전화를 걸어서 바로 전해드렸지만 아버지께선 굳이 출발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으셨고, 부득이 맏형님께서 10시 반 무정차로 보내드렸다는 전화를 나중에 연락 받았다. 계속되는 TV 뉴스에서는 동해 지방에 또 다시 많은 폭설로 7번국도 교통에 큰 혼란이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 계속되어 마음을 졸였으나, 평해 온정간 교통이 두절되었으면 평해 자형님 댁에 찾아가시리라 위안하고 있을 적에 오후 3시 경 무사히 도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걱정하셨던 넷째 붉은바위 형님의 확인 전화로 알려주었기에 한 걱정을 덜었으며, 고령에도 눈길 귀향을 아랑곳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결단과 용기 넘치는 행동에 고개가 숙여졌다. 아마도 간절히 기다리실 엄마를 사랑하시는 깊은 내면의 마음이 더 머물다 가실 것을 권한 철없는 아들들의 권유를 뿌리치며 단숨에 가시게 하셨나 생각되어서 한 편으로 많이 기뻤다. 한 나절 낮잠을 푹 자고 난 후 몇 권의 수필 글을 읽고나서 이 번 집안 혼사를 되돌아 보며 뒷이야기들의 요지를 남겨둔다. 세월에 묻혀 잊어버리게될까 염려되어서.....
(2011. 2. 14 밤...거실에서 진갱빈 카페의 마음 건강 위한 음악실 명상곡 음악을 감상하면서.....)
첫댓글 사실 기록과 묘사에 뛰어난 글 솜씨 덕택에 한편의 다큐멘트리 영감과 감동적이네! 이번 행사에도 창균아빠가 제일 수고 많았고, 특히 제수씨는 혼주 대신 여러손님 치루시느라 힘들었셨는데 가슴에 감직하겠습니다.
매사에 진심으로 열심히 적극적으로 노력허는 별과바람 동생 참 으로 수고 가 많앗다.제수씨도 여러사람 즐겁게 유캐하게 車 안에서 배 부러게 입이 즐겁 게 간식을 많이 준비해서 그 먼길 지루하지 않앗으며 서울 구경도 잘하고 , 웅장한 결혼식도 잘구경하고 , 아버지도 무사히 잘 구경시키고 ,여러치척들과 반가운 인사와 대화도 나누고 , 집안의 큰경사를 잘 치루엿으니 ,참행복하고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대구 형제분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부족한 동생을 잘 키워주신 여러 형님께 미력하나마 보답하고자 노력할 뿐이지요..... 행복을 나누면 두 배가 됨을 집안 카페를 통해서 새삼 실감하고요..... 건강한 삶이 참으로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이 번 혼사가 가르켜주어서 여러 형님 내외분께 거듭 존경을 드립니다.
카페지기 실수로 먼저 댓글 달아주신 분의 이야기가 본문과 함께 삭제되어버린 사고가 있었기에 공개적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많이 죄송하게 되었네요....사연을 말씀드리면 수정할 내용을 발견하게 되어서 고쳐놓고자 하였더니 스크렙으로 게시한 글이라서 수정이 되지 않기에 ..... 앞으로는 절대로 편하고자 스크렙 방식으로 글을 올리지 않겠으며, 크게 반성하는 계기로 삼고, 또 댓글 표기한 회원님께 쪽지 알림으로 미리 양해를 드렸어야 옳았는데 면목이 없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수정할 내용인 즉 유찬 재율 아빠 성함을 집에서 발음대로 부르는 '선균네'로 서술 이야기가 잘못 표기되어 있어서 ..추가로 제가 대신 올려드릴깨요....
유찬 재율 맘 : 매우 훌륭한 결혼식 참석하게 되어서 행복하였습니다. 고운 한복 차림의 혼주 참으로 아름다웠으며, 늠름한 새신랑 정말 멋있어서 우리 유찬 재율이도 그렇게 장가보낼 수 있도록 잘 키우겠습니다.....
별과바람 : 사랑은 기적을 낳으니 잘 키워서 충분히 뜻을 이루리라 믿습니다.....
아~~ 별과바람 작은아버님께서 제 댓글에 댓글을 달아주셨었군요.. 제 댓글이 사라진것 보다.. 제 댓글에 대한 댓글이 달려다고 알림이 떠있는데.. 어떤 내용인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 조금 궁금했어요..
그리고.. 혹시나.. 카페 검열에 걸린것은 아닌지.. 부적합한 내용이 있었던 건지.. 소심한 마음에 잠깐 고민했거든요.. 너무 과한 사과의 말씀을 주셔서 오히려 제가 송구합니다. ^^;;
꼼꼼한 후기 정말 감사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값지고 빛나는 기록이 되리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