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韓國)에 있어서의 부락제(部落祭)의 사회적기능(社會的機能)은 첫째로 그 종합기능(綜合機能)이 될 것이다. 혈연성(血緣性)이 강한 한국(韓國)의 마을에서 성족(姓族)을 초월한 친목(親睦)과 단합(團合)의 기회를 제공하며, 그 준비(準備)를 제관(祭官)이나 화주의 선출(選出)에서부터 제후(祭後)의 식복(食福)과 대동회(大同會)에 이르기까지 동민(洞民)의 일체감(一體感)을 가져오고 아울러 마을 자치(自治)의 정치적기능(政治的機能)도 볼 수 있고 풍어(豊漁)를 기원(祈願)하는 어민(漁民)의 생산성(生産性)도 높임을 볼 수 있다.
남녀노소(男女老少)가 함께 모이는 동해안(東海岸) 여러 마을의 별신(別神)굿에서는 종합기능(綜合機能)과 정치기능(政治機能)과 함께 아울러 축제기능(祝祭機能)도 볼 수 있다. 별신(別神)굿에서 각 거리의 신을 모신 김에 놀고 가시게 한다고 하여 놀음굿으로 무당들과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가무(歌舞)와 연희(演戱)로서 즐기는 오락(娛樂)도 제공하고 있다. 이같이 별신(別神)굿은 종교적기능(宗敎的機能)과 함께 아직도 마을 생활(生活)에서 축제(祝祭)와 오락․예능적기능(娛樂․藝能的機能)을 함께 갖고 있다.
문화재위원회(文化財委員會)는 이미 1976년에 강릉(江陵)의 대관령산신(大關嶺山神)을 위하는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를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第) 13호(號)로 지정(指定)하여 해마다 이를 거행(擧行)하도록 조처(措處)한 바 있지만 아울러 동해안어촌(東海岸漁村)의 풍어(風魚)를 위한 마을굿도 동해안(東海岸) 풍어제(豊漁祭)로서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로 지정(指定)하여 그 명맥(命脈)을 잇도록 조처(措處)하는 일이 요망(要望)된다고 사료(思料)되는 바이다.
二. 서언(序言)
동해안(東海岸) 풍어제(豊漁祭)는 보통 별신(別神)굿이라고 불리우며, 경상남․북도(慶尙南․北道)와 강원도(江原道)에 걸친 동해안일대(東海岸一帶) 즉 부산시(釜山市)에서부터 북(北)으로 고성군(高城郡)에 이르는 지역(地域)의 마을들에서 해마다 혹은 3年, 4年, 5年, 7年, 또는 10年마다 행해지는 마을굿(部落祭)이다.
동해안(東海岸) 별신(別神)굿을 맡아하는 사제무(司祭巫)들은 대체로 다섯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최길성(崔吉城, 1978)에 의하면, 감석출(金石出, 一名 金京南)派, 송동숙파(宋東淑派), 김창수파(金昌洙派, 申石南派), 이금옥파(李琴玉派), 제갈봉오파(諸葛奉伍派)인데, 그 중에서 김석출(金石出) 일행(一行)이 맡아하는 풍어제(豊漁祭)를 주대상(主對象)으로 하여 조사(調査)하였다.
김석출(金石出)은 1922年 2月 29日 경북(慶北) 영일군(迎日郡) 의창면(義昌面) 옥성리(玉城里)에서 무가(巫家)인 김성우가(金城宇家)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씨일가(金氏一家)는 조부(祖父) 김천득(金千得) 이래로 70여명의 무인(巫人)을 배출한 무가(巫家)이며, 현재도 30여명이 무업(巫業)에 종사하며 경남․북지방(慶南․北地方)과 강원도지방(江原道地方)에서 제일 알려진 무가(巫家)이다.
조사자(調査者)는 이미 김석출(김석出) 일행(一行)이 주제(主祭)하는 동해안풍어제(東海岸豊漁祭)의 참여관찰(參與觀察)을 강릉단오굿(江陵端午굿, 1973, 1977), 이가리별신굿(二加里別神굿, 1976, 1977), 미포별신굿(尾浦別神굿, 1976), 백석동별신굿(白石洞別神굿), 송정별신굿(松亭別神굿, 1978), 구만리별신굿(九萬里別神굿, 1981)에서 실시(實施)한 바 있으므로 본보고서(本報告書)는 그 중에서 이가리별신굿(二加里別神굿)을 주로 하고, 백석동별신굿(白石洞別神굿)도 참고로 하여, 이번 조사기간(調査期間)에는 김석출(金石出)과 만나 다시 확인하며, 보충기술을 하였다.
三. 청하면(淸河面) 이가리(二加里)의 이세(里勢)
이가리(二加里)는 행정 구역상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일군(迎日郡) 청하면(淸河面)에 소속되어 있으며, 포항(浦項)에서 시내버스로 2시간 거리의 바닷가에 있다. 1977年을 기준으로 134戶, 747명이 사는 작은 어촌(漁村)이나 어촌계(漁村契)의 수입으로 비교적 부촌(富村)이 되어 있으며 새마을 사업(事業) 모범부락으로 표창을 받은 바도 있다.
인구구성(人口構成)을 보면 10-19세까지의 초중고생(初中高生)이 많고 20-25세는 군(軍)에 많이 가 있으며, 25-29세는 외항선(外航船)의 선원(船員)과 선장(船長)등이 많아 30-40명에 이른다고 한다. 마을의 농사(農事)와 생업(生業)은 주로 40-50세의 세대가 맡고 있다.
행정기관(行政機關)으로는 리사무소(里事務所), 새마을회관(會館)이 있으며 이장(里長) 이송학(李松鶴, 50세)외에 6명의 반장(班長)과 6-8명의 개발위원(開發委員)이 있다. 어촌계(漁村契)는 어업(漁業)에 종사하는 집에서 30-50세 사이의 남자가 각 호당(戶當) 1명씩 나오므로 77년 현재(現在) 65명의 계원(契員)이 있다. 계장(契長)은 김호달(金好達, 45세)이며 간사(幹事) 1명과 운영위원(運營委員) 8명이 있는데 이 마을의 성씨(姓氏) 중 많은 수를 차지하는 월성 이씨(月城 李氏, 20%), 김해 김씨(金海 金氏, 15%), 평해 황씨(平海 黃氏, 10%)의 문중대표(門中代表)가 각 2명씩 나오고 기타 성씨(其他 姓氏, 55%)중에서 2명이 나온다.
이곳은 71년 이후(以後)로 방파제(防波堤)를 축조하여 77년 현재(現在) 전장(全長) 76m나 되며, 이 방파제(防波堤) 때문에 인근에 알려진 좋은 어항(漁港)이 되었으며, 76年부터 정치망업자(定置網業者)가 들어와 마을 사람 28명이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여기에 종사하고 있다. 어촌계(漁村契)는 76년도(年度)부터 2.5톤 짜리 새 어촌호(漁村號)와 공동어장(共同漁場)을 갖고 있으며, 미역과 전복을 양식하고, 그 밖에 성게, 천초, 진저리(飼料用,사료용)를 주로 채취하고 잡어(雜魚)도 잡아 미역은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분배하나 나머지 해산물(海産物)은 어촌계원(漁村契員)에게만 분배한다. 공동 분배의 비율은 어계(漁契)가 2-3할, 생산자(生産者)가 7-8할이다. 이 어촌계(漁村契)돈으로 도로보수(道路補修), 새마을 회관(會館) 건립(建立), 별신굿(別神굿) 비용 등 공동비용과 새마을 사업 기금(基金)을 충당한다. 이 밖의 생산시설(生産施設)로는 사료공장(飼料工場, 닭, 돼지, 소를 위한 飼料)이 하나 있고, 창고(倉庫)가 세 곳 있다. 우리 나라의 많은 어촌(漁村)과 마찬가지로 이 마을도 반농반어촌(半農半漁村)으로, 농업(農業)은 자작농(自作農)이 많고 논이 과반(過半)이며 밭에서는 보리, 콩, 고구마를 재배한다.
교육기관(敎育機關)은 이가리(二加里) 국민학교(國民學校)가 있어 6학급 316명의 아동이 다니고 있으며, 졸업생(卒業生)의 70-80%가 청하중학교(淸河中學校)에 진학하며, 그 졸업생(卒業生)의 반수(半數)가 포항(浦港)의 수산고등학교(水産高等學校)와 공고(工高), 상고(商高) 등에 진학하고, 대학생(大學生)은 한 명이 있다. 또 이 마을에는 대한예수교장노교회가 있고 교인(敎人)은 60명이다. 어머니회와 청년회(靑年會), 4H클럽이 있으며, 문화시설(文化施設)로는 72년부터 전화사업(電化事業)이 이루어져 라디오는 호당 1-2대, TV는 마을에 52대, 냉장고 5대, 선풍기 호당 1대씩 있다. 시장(市場)은 청하시장, 월포시장, 포항시장의 순으로 이용하며 혼인권(婚姻圈)은 이웃 연암마을과 월포와 청하와의 사이에 제일 많이 이루어진다.
의료기관은 작은 약국(藥局)이 하나 있을 뿐이고 병(병)이 나면 청하면 소재지(淸河面所在地)까지 나가야 하는 무의촌(無醫村)이다. 행정전화(行政電化)와 일반전화(일반전화)가 있다.
四. 특징(특징)
별신굿(別神굿)은 주로 경상남․북도(慶尙南․北道)와 강원도(江原道)에 걸친 동해안(東海岸) 일대, 즉 부산시(釜山市)에서부터 북으로 울주군, 월성군, 영일군, 영덕군, 삼척군, 명주군, 강릉시, 양양군 그리고 고성군에 이르는 지역에서 해해진다. 일명 풍어제라고도 하는 이 별신굿은 매년, 혹은 3, 4, 5, 7 ,10년마다 한번씩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1972년 4월에 최길성(1974)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165곳에서 행하여졌으나, 1977년 본 조사자가 김석출과 김재출 형제에게서 확인한 바로는 5년 사이에 118곳으로 줄어 있었고 1981년 12월 하효길(1981)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다시 81곳으로 줄어들고 있다. 물론 3자의 조사 대상지역에서 혹 누락된 곳도 있을지 모르겠고, 이 숫자가 반드시 정확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별신굿이 해마다 줄어 들어가고 있는 추세에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해마다 별신굿을 거행하고 있는 이가리의 경우도 30-40세의 연령층에서는 그 개최에 대한 찬반시비가 그치지 않고 있으며, 당맞이 굿에서 서낭대를 내릴 때마다 3년이나 5년 두리로 물려줄 것을 소원하나 빈번히 받아들여지지 않아 매년 거행하고 있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신굿이 풍어제로서 거행되며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비는 축제로서 끈질기게 계속되어오는 것은 물론 그들 어촌사람들의 신앙심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겠지만, 한편 어민들의 영세성에서 오는 불안과 그 예술성 및 오락성 때문인 것 같다.
대부분의 어촌계가 20척 내외의 배를 갖고 있으나 그것은 3톤 미만의 작은 배들이며, 년간 동해안에서 100명에 가까운 어부들이 배사고로 죽는다하니 별신굿뿐만 아니라 사령(死靈)들을 위해 수망(水亡)오구굿이 그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 외에 동해안무당들의 예술성과 오락성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한국무당의 기능으로 사제(司祭), 무의(巫醫), 점복예언(占卜豫言) 외에 예능오락적인 기능을 하나 더 첨가시킨 논자(村山智順, 1932)도 있었지만,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해안 무당들의 예능오락성일 것이다.
별신굿의 굿놀이(巫戱 또는 巫劇)는 위와 같은 특징들과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도, 특별히 주목을 요하는 것이다. 동해안별신굿에서 놀아지는 굿놀이는 세존굿에서의 <도둑잡이>, 천왕굿에서의<원님놀이>(일명 곤반놀이)와 <탈놀음>과 <범굿> 그리고 <거리굿>이다. 이중 탈놀음굿은 김석출에 의하면 영덕군 강구동에서 북상하여 삼척군 평해면 후포리와 거일리를 거쳐 기성면 구산리에 이르는 지역의 별신굿에서 행해진다고 한다. 하효길(1981)이 구체적으로 <탈놀음굿>이 행해지는 곳을 조사한 바도 있다.
굿과 서사무가가 판소리의 모체가 될 수 있음은 이미 발표된 바 있으나 (이정구 1957, 김동욱 1961, 정주근 1967, 서대석 1980. 8) 동해안굿에서 지금 가창되고 있는 가사무가의 형태는 그대로 판소리의 그것과 동일함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기무속에서는 말미에서 무녀가 장고를 세워 바른 손바닥으로 둥둥 두드리며, 왼손으로는 방울을 들고 앉아서 [바리공주] 무가를 한 시간 이상 단조로운 구송창으로 계속하는데 반해 동해안굿에서는 무녀가 부채를 들고 서서 [바리데기] 무가를 바라지의 장구에 맞춰 아니리와 창과 발림을 곁들여 연희창으로 시종 관중의 흥미를 이끌어 간다. 이것은 [당금애기], [성주굿], [심청굿], [손님굿]무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이러한 동해안 가사무가의 무창형태는 다분히 판소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되지만, 판소리의 생성 초기단계에 있어서도 이같은 무가와 판소리와 밀접했음을 상호 관계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석출에 의하면 자기 형님들 때까지만 해도 판소리를 다 알고 잘 했다고 한다.)
거리굿에서는 형식면에서 볼 때 경기 무속 뒷전의 영산거리와 황해 무속의 마당굿에서는 무녀가 독연 형식으로 여러 귀신이 내려 그 귀신의 서러운 이야기며 동작의 시늉을 내고 마을 사람들과 수작하는데 그치나, 동해안 거리굿에서는 주역인 만무가 역시 독연 형태로 일인이역으로 진행하나 바라지군이 대사에 참여하여 그 진행을 돕고 판소리의 경우처럼 추임새에만 그치지 않는다. 또 얼사촌이며 사장 어른과 아배 같은 역은 관중 속에서 마을 사람들을 끌여 들여 상대역으로 참여시킨다. 이러한 연출 형식은 판소리보다는 한 걸음 연극에 가까우나 독연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는 대화를 가진 가면극보다는 미흡하다. 이같은 형식면에서 거리굿은 판소리와 가면극의 중간형태인 놀이(Performing art)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거리굿의 내용에 대해서는 서대석(1980. 6) 양반 생활의 풍자, 일상 생활의 재현, 성의 노출 등으로 나누어 이미 고제(考祭)한 바 있는데, 일부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탈굿의 주제도 이와 유사하다. 다만, 영남 가면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파계승에 대한 풍자가 나타나지 않는 점은 하나의 논점(論點)으로 남는다고 하겠다. 또 세존(世尊)굿에서의 중의 마임이 가면극의 노장의 거드름과 같고, 거리굿의 사장거리와 과거거리의 가면극의 취발이와 서방님의 익살과 재담과 동일한 내용이 보이는 점등은 가면극과의 서민적 표현의 formula의 상호 교류를 생각게 하며, 가면극과 가면극의 Parody로 보이는 탈놀음굿과 남사당패의 덧뵈기와의 삼자간의 장르상의 상호 관계로 하나의 문제로 남는다.
끝으로, 이가리 별신굿은 음력 9월 9일의 가을 자정의 유식(儒式) 제사에 이어 아침 식사 후부터 이튿날 정오까지 행해진다. 이것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에서 가납2리 대지동(대못)의 경우처럼 전 동민이 참석하는 도당굿을 매 3년마다 10월초에 돌 앞산 산신님께 한번씩 올리는 형태와,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의 경우처럼 남자들만 참가하는 산고사가 유식(儒式) 동제로 치러지고 여자들만 참석하는 당굿이 따로 있어 이중조직을 갖게 된 예의 중간적인 복합형태라 생각한다. 즉, 남녀노소 전 동민이 참석하는 도당굿이 보다 원래적인 것이라면, 동해안의 동제와 별신굿은 그 중간적인 복합형태이고, 유양리의 예는 남녀와 무유(巫儒)식의 분리로 이중조직을 갖게 된 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五. 풍어제 절차와 내용
1. 당제
이가리 당제는 해마다 구정월(舊正月) 15일과 9월 9일 자정에 마을 남쪽 당산의 제당에서 제사를 올린다. 가을의 제사에는 별신굿이 따른다. 풍어제로서 제사와 굿을 올리는데, 풍어와 마을의 평안과 자손번창을 비는데 그 목적이 있다. 모시는 신은 서낭님(남신)으로 골매기할배인데, 두 칸 남짓한 와가(瓦家)인 제당을 삼령각이라 했고, 위패도 “삼령지신위(三靈之伸位)”라고 모셨는데, 이 곳은 “도씨(都氏) 터전에 김씨(金氏) 골매기할배”라고 일러와 거기에 지신을 더 모셔서 삼령삼신위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축문은 없고 제관이 염언(念言)으로 외는 데에 특색이 있다. 제관은 세 사람을 선정하는데, 내외 친척까지 감안하여 초상, 출산 등이 없었던 깨끗한 사람들을 뽑는다. 제관중 한 사람이 도가(都家)를 겸하고 심부름꾼 아이 하나를 데리고 제사를 올린다. 9월 제사는 8월 20일에 제관을 뽑고, 제관 3인과 부인들까지 9월 3일에 제수(祭需) 마련을 위해 포항까지 갔다 온다. 이날 제당에 올라가 제주(祭酒)를 담그고 제(祭)줄을 치고 내려와서 제관들 집에도 금(禁)줄을 친다. 제관들은 9월 6일에 당에 돌라가서 제수를 마련하고, 9일 자정에 제사를 올리고, 오후에 내려온다. 3박 4일을 당에서 정성 드리는 것이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그때부터 하루에 한두 차례 목욕하고 제사를 올리기 전에도 목욕재계한다. ‘77년 가을 제사에는 도가제관으로 김해룡(金海龍, 42세), 나머지 제관으로 최상환(45세)과 강대지(52세)가 맡았는데, 심부름하는 아이 하나를 데리고 제사를 진행했다. 자정에 시작한 제사는 40분 가량으로 모두 끝났다. 먼저 제관들은 제물을 고였는데, 메 세 그릇, 탕 세 그릇, 나물 세 그릇, 흰 떡 세 그릇, 식혜 세 그릇, 오색과일(배, 사과, 감, 대추, 밤), 유과 세 그릇, 쇠고기 산적, 닭 삶은 것, 육포와 어포, 그 밖에 평소부터 선주들이 바친 건어가 많았다.
먼저 향로(香爐)에 향을 피워 강신(降神)하고, 제관들이 재배한 다음,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으로 술 석 잔을 올리고 마을을 위해 염언(念言)하는데 마을이 평안하고 풍년 들고, 고기 많이 잡히기를 빌었다고 한다. 또 물고기들을 바친 선주들이 돈을 많이 벌게 염원한다. 다시 재배하고 나서 소지(燒紙)를 올린 다음 물고기를 바친 선주들이나 마을밖에 나가 사는 사람들 중 제비를 보내온 사람이 있어 그들을 위해 소지올리고 끝으로 3제관을 위한 소지를 올리니 아홉 번의 소지를 올렸다. 다음으로 음복(飮福)하고 제순을 모두 마쳤다.
2. 별신굿
당제가 끝난 후 아침 식사를 하고 10시 반부터 바닷가 굿당에서 무당들에 의한 별신굿이 진행되었다. 굿당은 바닷가 어촌계 창고(倉庫) 앞에 다락을 매고 병풍(屛風)을 둘러 굿당을 꾸몄는데, 무당이 굿당을 향하여 굿을 하도록 굿당이 마을 뒤 골매기당산을 바라보도록 자리잡았다. 무가를 부를 때는 무당이 관중을 향하여 노래와 사설을 하고, 그 앞에 양중(男巫)들이 자리잡고, 장고․징․제팔이(제금)․꽹쇠(꽹과리)․북․호적 등 무악기로 반주하며 바라지를 한다. 굿당 왼쪽에 청․홍․황․녹 색지로 만든 굿장의 표시인 괫대를, 오른쪽에는 용선(龍船)을 달고, 신대는 꼭대기에 푸른 잎이 달린 7m 가량 높이의 큰대(竹)에 흰 종이(紙錢)를 매달았는데, 왼쪽에 일월(日月)맞이대[도가(都家)에서 바친 속적삼도 함께 매달았다] 오른쪽에 물국용왕대, 바깥족에 처낭대[천왕(天王)대․제물로 바친 건어 등을 함께 매달았다]를 세웠다.
굿당은 병풍 위 상단부에는 상당으로 높은 신을 모시는데, 일월맞이상(床)․세존상․군웅(軍雄)상으로 떡․식혜․배․감등을 올렸고, 홍․黃․분홍색의 덤불국화(紙花)를 꽂았다. 병풍 아래쪽에는 중당으로 토지신상․산신령상․조상(祖上)상으로 소반 셋을 놓고, 메․떡․건어․식혜․두부․배․사과․감 등 3색 과일과 잔대 받쳐 술잔을 올렸고, 그 밑에 향로 상을 놓았다. 제상에 꽂는 꽃을 덤불국화․출화작약․사계(경)화 등이다.
이때 굿을 진행한 사제무들은 다음과 같다.
김석출 (일명 경남, 남 56세, 양중 또는 화랭이, 부산시 동래구 거주)
김유선 ( 녀, 46세, 무당, 김석출의 처)
이금옥 ( 녀, 55세, 무당, 김석출의 형수)
김재출 ( 남, 53세, 양중, 구룡읍 거주)
정채란 ( 녀, 40세, 무당, 김재출의 처)
김정희 ( 남, 17세, 양중, 김재출의 아들)
김영희 ( 녀, 37세, 무당, 김석출의 장녀)
김동연 ( 녀, 27세, 무당, 김석출의 차녀)
김동언 ( 녀, 23세, 무당, 김석출의 삼녀)
김용택 ( 남, 32세, 양중, 김석출의 조카, 포항시 거주 )
김영숙 ( 녀, 32세, 무당, 김용택의 처)
김주향 ( 녀, 47세, 무당, 김석출의 이복妹)
박순옥 ( 남, 37세, 양중 )
안명화 ( 녀, 40세, 무당, 박순옥의 처 )
신석남 ( 녀, 51세, 무당, 강릉시 거주 )
김명대 ( 남, 14세, 양중, 신석남의 四男)
* 이상 나이는 1977년을 기준한 것임.
* 김재출은 1979년 사망했음.
1977년 10월 21일(음력 9월 9일) 아침부터 22일 낮까지의 별신굿은 모두 16거리로 1976년의 별신굿과 같았다.
1) 不淨굿 (이금옥 무)
각거리와 그 主祭巫들을 들어보면 아래와 같다.
굿의 진행은 먼저 전주악(前奏樂)으로 장고와 꽹쇠(꽹과리), 징과 호적을 곁들인 풍악을 요란히 울리고 나서 이금옥 무녀가 평복 차림으로 부정굿을 시작하였다. 머리는 구식으로 얹었고, 이마에 맨 흰 띠 수건은 기혼녀의 표시이다. 먼저 제단을 향해 두 번 절하고, 푸너리 장단으로 춤을 추고 나서 부정굿 청배무가를 앉아서 시작하였다. 장고는 김석출 양중이 잡았다. “천하부정, 지하부정, 문내부정, 중문부정, 외문부정, 천망부정, 지망부정, 근가부정, 원가부정, 이(耳)문부정, 안(眼)목부정, 정칠월에 인신부정, 이팔월에 지망부정, 삼구월에 육성부정, 사시월에 제망부정, 오동지 육석달에 말면부정을 다 가셔내고, 남자는 갓지시레 따라 들던 영정, 여자는 치맛자락에 묻어들던 영정, 동방청제영정, 남방적제영정, 서방백제영정, 북방흑제영정, 중앙황제영정”을 우수경대타나니(于手經大陀羅尼)과 도장경진언(道場經眞言)으로 가셔내고 씻어 내는데, 청배 초장에서 5장 말장까지 받아서 청배무가를 계속하면 한시간 반은 걸리나, 말장을 받아서 비교적 짧게 끝냈다. 무당은 무가를 마치고 나서 바가지에 물을 떠서 칼로 굿당 주변 사방에 뿌리고, 이어 짚단에 불을 붙여 역시 굿당 사방을 돌아 물살 불살을 쳐서 제장을 깨끗하게 하였다.
2) 일월맞이굿 (일명 세존굿, 김영숙巫)
김영숙 무녀가 종이 대고깔에 활옷(장삼으로)을 입고, 사방배를 한 다음에 징을 갖고 독경하고 나서 청배무가를 불렀다. 무가는 먼저 경북 영일군 청하면 동네는 이가리 시우 해마다 올리는 별신굿임을 알리고, “이번 모시는 성황님은 삼한세존님네를 모십니다.” “ 해 돋아 일월맞이, 달 돋아 월광맞이굿을 올리는데 어쩌다 삼한세존님네를 아니 모실까요?” 로 시작하여 삼한세존님네의 도움을 빌어 자손만대 번창하고, 해상어업을 하는 분네들이나 농사짓는 분네들이나 소원대로 재주 주고 불가 줄 것을 축원하였다. 굿이 30마디로 이루어진다면 보통 원 사설은 10마디에 축원이 20마디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김석출 談) 이때 김영술 무녀는 축원을 끝낸 다음 잠시 동안 풍악에 맞춰 춤을 추고, 풍악이 멈추면 제단을 향하여 두 번 절을 하고 나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조는 시늉을 한다. 그러다가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며 눈을 뜨고 옆구리, 엉덩이, 가슴 등을 긁고, 세수하는 흉내를 낸다. 다음으로 활옷 띠를 풀어 방에 걸고 짚신 삼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일어나서 풍악에 맞춰서 바라춤을 춘다.
동해안 별신굿에서는 일월맞이굿의 내용은 세존굿과 같으나, 이 굿은 축원과 노승 흉내와 바라춤으로 끝내고, 나중에 다시 세존굿을 하여 당금애기풀이를 하는 수도 있다고 하였으나 (김석출 談), 77년 10월 21일의 이가리 별신굿에서는 김영술 무녀는 당금애기풀이는 빼고(그러나 당금애기풀이와 도둑잡이는 함께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축원만으로 끝내고, 노승의 잠 깨는 시늉(중춤)과 제팔춤을 추고 난 다음 제주(김해룡)를 불러 자기 활옷과 고깔을 벗어 입히고, 바가지와 제상(祭床)의 제물을 담는 자루를 걸머지게 하고 앉혀 놓고 제비와 제주치례 문답을 한다. 무녀가 제주를 일으켜 마주 잡고 춤을 추는데, 김명대와 김정희 두 남무가 “얼사촌”이 되어 등장하여 도둑 잡으러 왔다고 하고, 무녀와 제주를 잡으려고 장내를 돈다. 제주를 상제 또는 도둑이라 부르는데, 얼사촌이 도둑을 잡아 자루 속에서 주걱․바가지․사과․대추․쌀 등을 꺼낸다. 주걱과 바가지는 살림살이에 쓴다고 하고, 사과는 천도복숭아라 하고, 어촌계장을 주며 여러 재담을 하다가 쌀을 쥐어 사방으로 뿌리고, 바가지를 엎어놓고 제주가 앉아 깨뜨리게 하고 끝냈고, 제관들을 불러 음복시켰다.
3) 골매기 청좌(請坐)굿
정채란 무녀가 맡아 하였고, 장고는 그 남편 김재출이 잡았다. 골매기는 영남지방 일대에서 부락의 수호신으로 이가리에서는 “ 골매기 도씨와 김씨할배 ” 이다. 골매기 김씨 조상은 이 마을의 시조신이고, 창건신인 동시에 수호신이 된다. 무녀는 푸른 쾌자(혹은 검은 쾌자도 입는다)에 녹색 띠를 매고 오른손에 부채 들고, 청배무가를 부른다. 무가는 연창(連唱)하지 않고 적당히 띄어 부르고 만수받이 대신 악기 반주를 한다. 무가반주는 그 무녀의 남편인 양중이 장고를 잡아 맡는다. 골매기 청좌의 청배가는 초장에서 5장까지 계속하여 약 1 시간 가량 걸렸다. 바라지꾼 (악사)이 장단으로 되풀이 받아주고 무녀와 서로 교대하여 주고받고 하는데 무녀가 무가를 부르다가 길게 끌면 바라지가 받아달라는 신호가 된다. 바라지꾼이 반주하는 동안은 무녀가 춤을 춘다. 느린 푸너리장단으로 시작하여 초장에서 5장에 이르기까지 장단은 점점 빨라져서 무녀의 춤도 거의 도무(蹈舞)에 가깝게 된다.
청배가 끝나면 무녀는 제단을 향해 대구포와 신칼을 들고 잠시 묵념한 뒤 몸을 비칠하며 토걸음준다. (강신하여 떠는 것을 말함) 무녀는 골매기할배가 되어 제주와 동장, 어촌계장 등 마을 유지를 불러내어 성의부족을 꾸짖고 제단에 배례를 시키고 절하는 동안 무릎으로 꽝꽝 등을 누르고, 신칼로도 누르며 벌을 주고, 살을 잡아준다고 한다. 이것은 한강 이북지방 굿의 공수주는 장면과 흡사한데, 강신무가 아닌 이들도 경북과 강원도굿에서는 이같은 트걸음준다는 것은 주목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이왕 골매기할배를 모셨으니 놀다가게 한다고 놀음굿이 시작된다. 노래와 춤으로 엮어지며, 조무들이 나와서 노래를 곁들이기도 하고 마을사람들이 나와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노래는 노래가락․민요․신구잡가․현대유행가에 이르기까지 총동원되며, 무속의 예능 오락적인 기능을 가장 세속화된 모습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4) 당맞이굿(김영희巫)
김영희 무녀가 쾌자를 입고 부채를 들고 굿청에서 잠시 축원을 올린 다음 제주에게 처낭대(골매기대)를 들고 앞에 서게 하고, 다음은 일월맞이대와 용왕대, 무녀, 장구, 징, 꽹과리잽이와 마을사람들의 순서로 행렬을 지어 마을 뒤 제당으로 올라갔다.
제당에서 제물을 진설하고, 제관들은 잔을 부어놓고 절을 한다. 제관들의 절이 끝나면 무녀의 축원과 덕담이 계속된 다음 소지를 올린다. 대동소지와 세대주별 소지를 올려 길흉을 점친다. 골매기처낭대를 잡고 옆에서 이금옥 무녀가 제팔을 치면서 말을 넣어 대를 내렸다. 먼저 당제 지내는 일을 물어 골매기서낭님이 “이번 굿을 만족하게 흠향하셨냐고 묻자, 대를 상하로 흔들어 만족하다고 표시했다. 이어 ”이가리별신굿을 해마다 올리던 것을 3년두리로 올리게 해주시면 더 성대히 해올릴테니 그렇게 해주시냐“고 물으니 대를 크게 가로 저어 부정하였다.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이렇게 대를 내려 3년두리나 7년두리 혹은 10년두리로 날짜를 물려줄 것을 물으나 번번히 거절당한다.
골매기할배에게 묻는 대내림이 끝나면 “어업이 잘되고, 농사도 잘되고, 군에 간 장정이나 배탄 선원들이 무사히 돌아오겠느냐”고 묻는다. 별신굿에서 대를 내릴 때는 영험이 있다고 해서 골매기처낭대로 내리는 곳이 9할은 되나 강원도 거진 등지에서는 소나무 작은 대를 쓰는 데도 있다.
5) 성조굿 (김유선 巫)
이어서 김유선 무녀가 쾌자 입고, 부채 들고, 갓을 쓰고, 성조를 위하는 굿을 계속하였다. 무가는 성조풀이로 솔씨 뿌려 나무를 키워서 베어다가 대목집짓기와 온갖 세간마련과 갖은 치장을 다하여 집을 꾸미는 내용이다. 김동연 무녀도 함께 나와 농부가와 잡가와 소리를 불러 놀음굿을 벌인 다음 제당에 모인 동민이 함께 음복하였다. 이때 남자 50여명 여자 30여명이 올라와 좁은 제당안 뜰을 메웠다. 낮 12시 반에 시작한 굿이 음복까지 끝나니 오후 3시가 되었다.
6) 마당밟이(무당과 양중일행)
무당들이 풍악을 울리며 담안 당둘레를 두 번 돌고, 마당밟이 축원을 올린 다음 다시 담 밖 당둘레를 한바퀴 돌고, 처낭대와 일월맞이대와 용왕대를 앞세우고 마을로 내려와 먼저 마을우물굿을 치고 나서 각호(戶) 마당밟이를 하였다.
먼저 3제관 집을 돌고 나서, 어촌계장집 차례였으나 그 부인이 기독교신자이므로 안가고, 어촌조합총대집 다음으로 이장집과 동사무소에 들르고, 돈과 쌀을 내놓고 원하는 집에 들르고, 세든 사람이라도 부탁을 하면 복을 빌어준다. 각호에서는 신대들을 지붕에 기대세우고 방안에 제상을 차렸으면 방안에서 먼저 이 집안이 잘 될 것을 축원 올리고, 마당에 나와 마루나 마루앞마당에 멍석을 깔고 제상을 차리는데 여기서도 축원을 올리고, 풍악을 울리면서 부엌, 곳간, 장독 등 집안을 돌고 마당을 밟는다. 제상에는 술 석잔, 시루떡, 식기에 쌀 담고 돈 (500원에서 1,000원까지) 얹고, 건어, 사과와 감 등 과일을 올렸다. 이것은 정초의 지신밟기나 걸립(乞粒) 혹은 매귀(埋鬼)치기와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7) 세존굿 (김주향 巫)
각호의 마당밟이를 끝내고, 다시 굿당에 돌아와 오후 4시 30분에 김계향 무녀가 쾌자 입고 부채 들고 화해굿을 시작하였다. 화해굿은 산신과 용왕신 또는 당신과 성조신을 합석시키고(이때 합석시킨다함은 동석시킨다는 뜻이라 함) 동시에 동내 모두가 화해를 도모하는 굿이라고 한다. 김무녀가 풍악에 맞춰 춤추고, 청배무가를 끝낸 다음 제단에 배례하고 제물인 건어를 들고, 제관들과 어촌계장, 이장 등을 불러내어 꾸짖고, 굿당에 절을 시키고 시주를 걷었다. 여기서 저녁 식사를 위한 휴식이 있었다.
8) 화해굿 (김주향 巫)
저녁식사 후 8시부터 다시 굿이 계속되었다. 이때 마을 사람들 300여명이 모여 굿판의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김주향 무녀가 세존굿 축원과 놀음굿을 하였는데, 아침에 올린 일월맞이굿에서 이미 중춤이나 도둑잡이 놀이도 끝냈기에 세존굿은 사실상 이미 끝난 느낌으로 후반의 놀음굿 분위기가 주였다.
9) 조상굿 (김동언 巫)
김동언 무녀가 쾌자 입고, 부채들고, 무가로 조상신을 청배하여 재수를 빌고, 자손들을 잘 돌보아 달라고 축원하였다.
속초 지방 오구굿에서는 유족들이 대내림을 받는다고 하나, 별신굿의 조상굿은 축원굿이다. 건어들고 거무 장단에 빠른 춤을 추고 나서 토걸음 주고, 사방배로 끝냈고, 이어서 춘향가를 비롯한 소리와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놀음굿이 시작되었다. 이때가 밤 10시가 지났는데, 일반 부녀자들뿐만 아니라 선주들과 선원들, 남자 관객까지 모여들어 천막 안이 꽉 찼다. 밤들어 기온이 내리므로 저녁때부터 천막을 쳤다. 놀음굿은 한강 이북지방 굿의 무감서기와 맞먹는 것이나 보다 세속화되고 유흥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가리에서는 각호를 위한 성조굿은 이미 제당에서 제당 성조굿으로 함께 축원했기에 생략했다.
10) 천왕굿 (김동연 巫)
천왕굿은 김동연 무녀가 쾌자를 입고 부채 들고 청배무가를 부른 다음 축원하고 놀음굿으로 소리를 하고 끝냈다. 천왕은 사방지두천왕(四方地頭天王)을 말하는 것으로, 땅위에 머리든 신, 즉 천상의 신이라고 하지만, 불교의 사천왕과 도교의 오천왕 등의 영향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김동연 무녀의 천왕굿이 끝나자, 김석출 장중이 신관 사또(원님)가 되고 김용택 양중이 도리강관이 되고 김정희 양중이 막돌애비가 되어 [원님놀이]를 시작하였다.
원님놀이는 일명[천왕반공놀이]라고도 하는데, 곤반은 권번(券番)을 말하는 것 같다. 신관 사또가 고을에 도임하여 각 관속들을 점고(點考)하는 내용을 익살스럽게 보인다. 먼저 치도를 위해 도리강관을 부르면 자기 수하인 막돌애비를 불러 익살스런 재담이 있고, 현신하고, 이어 사방 현신으로 사방과 질청 고지기의 재담, 도굴루도세랑(使命)과 따깨비세랑(使命)과의 재담과 현신이 있은 다음, 수통인(首通引)과 호장을 불러 기생점고(妓生點考)를 시키고, 황수가 기생(春香)을 수청(守廳)들게 한다. 그러나 전에는 기생 점고며 춘향을 잡아오는 대목은 판소리조로 연출하였으나 근래(1955년 이후)에 와서는 익살스런 재담만으로 하여 마을 사람들을 웃기는 소극이 되었다 한다. 가령, 기생(춘향)을 수청 들인다고 하여 마을 어촌계장을 불러내어 사또로 꾸미고, 양중 김용택이 춘향으로 여장하여 만반 교태를 보이는 등이다.
곤반놀이는 전반에 원님놀이로 고을의 높은 어른(원님)의 힘을 빌어 마을에 관재와 불상사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노는 것이고, 후반의 기생 점고와 춘향이 수청드는 놀이는 굿의 끝 부분에서 하는 놀음굿으로 노는 것이라고 한다.
11) 놋동이굿 (군웅굿) (김동연 巫)
놋동이굿은 군웅굿의 속칭이라고 생각된다. 자정이 지나서 김동연 무녀가 청부가를 불러 여러 장군신을 청하고, 여러 생업에 대해 잘 되기를 축원해 주고, 여러 장수가 들어와 놀았다. 이어 놋동이를 입에 물고 시주를 받았는데, 이 대목은 군웅장수의 위력(신이성)을 나타내는 굿이라고 하나, 마주 선 무녀가 놋동이를 받쳐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녀의 입술이 시퍼렇게 마비되어 처량한 느낌마저 들게 하였다. 군웅신은 재산을 맡아주는 신이고, 위력으로 여러 잡신을 쫓아주는 신이라고 하는데, 한강 이북지방에서는 가업 수호의 신이고, 장군신이며 여로의 수호신이라는 복합된 신격인데, 그것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라 한다.
12) 심청굿(李琴玉 巫)
심청굿은 새벽 2시가 조금 지나서 이금옥 무녀가 快子입고, 갓 쓰고, 부채 들고, 紙花 달린 손대(짐대, 神竿)를 메고, 請陪歌는 장고만의 반주로 판소리 심청가와 같은 내용을 장시간 口誦했다. 전부의 길이는 5 ~ 6 시간 걸리는 것이라 하나 보통 4 시간을 요한다. 이때도 새벽에 5시 반 날이 밝을 때까지 심청가를 불렀는데, 10여명이 안 되는 할머니들이 담요를 쓰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이 거리는 원래 “창부굿”이라 했고(金石出 談), 한 시간 가량의 길이로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죽는 대목에서 끝냈다고 한다. 신석남 巫女도 지금처럼 심청가의 내용 전부를 부른 것은 그의 30대부터라고 한다.
請陪巫歌가 끝나면 무녀가 심봉사가 되어 바라지꾼과의 재담으로 먼저 봉소(奉事)놀이 재담이 있고, 심봉사의 육담으로 방아타령이 있다. 그러나, 이 거리는 보통 거리굿의 봉소놀이에서 한다. 각덕(各宅) 아주먼네 3 동서가 방아를 찧으면서 봉사를 욕하는 노래를 부르고, 심봉사가 이 욕갚음으로 방아찧기 품을 들고 육담으로 방아타령을 한 뒤, 3 동서에게 뺨을 맞고 좌우와 아래로 치받임을 당한다. 이어서 심봉사가 강 건너는 시늉이 있고, 무사히 건너 왔으니 점이나 쳐 달라고 한고, 祭主․魚村․契長․船主들과 마을 사람들이 복채 놓고 단수 친다고 하여 점을 쳐 받는다. 점은 쌀 점이거나 솔잎을 따다가 算을 뽑아 가지고 그 잡히는 수효로 보아 짝수면 길하고 홀수면 흉하다고 하여 그 액을 보여준다. 점을 치고 나면 심청이를 만나 눈을 뜨는 장면을 놀고, 巫女가 손대를 메고 관중석을 돌면 여기저기서 눈이 맑아진다고 손대술로 눈을 닦고, 손대의 백지술에 시주로 돈을 묶어준다. 이 굿은 노인들이나 어부들의 눈이 밝으라고 하는 굿이라고 한다.
13. 손님굿(김영희 巫)
손님굿은 김영희 무녀가 아침 5시 반에 쾌자에 손대를 메고 청배무녀를 불렀다. 손님풀이는 강남 대한국의 손님네 삼세분(마마 역신)이 나올 적의 노정기와 김장자 일가가 손님네를 잘못 대접하여 삼대 독자 철언이를 마마병으로 잃고 망한다는 줄거리이나. 무녀에 따라 다소 motif의 차이를 보여준다. 김영희 무녀의 손님풀이는 흥부가의 제비 노정기와도 같은 손님네의 노정기가 있고, 각시 손님을 탐내다 아들 삼형제를 잃는 사공 이야기와, 가난한 마고할미가 손님네를 잘 모셔서 나중에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비해 김장자 일가는 인색하여 손님네를 푸대접하고 외아들 철언이가 마마병에 걸리고, 죽어서 손님네의 푸대접하고 외아들 처언이가 마마병에 걸리고, 죽어서 손님네의 마부 막둥이가 된다. (변연호 무녀와 김영숙 무녀의 손님풀이에서는 부모의 치성으로 다시 살아난다. 또 무가 속에 덕대 초분이 나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전반부의 노정기는 경기 무가의 별상거리와 도당굿의 손님굿에서도 있었다.
손님풀이가 끝이면 자손들을 「손님네 고이 시켜주고 수명 자수 시켜달라」고 축원을 하고 나서 손님네를 “자리 좋고 정자 좋은 곳”으로 모시려면 말이 있어야 한다며 마을 사람 하나를 말로 만들고 이어 양중 김용택이 막둥이(말뚝이)가 되어 손님네를 拜送하는 말놀이를 하였다. 막둥이가 말을 옆구리에 끼고 아이들 말놀이처럼 하는데, 말이 발길질을 하니 불알을 긁어주라고 하여 관중을 웃긴다. 무녀는 이에 말치레 타령을 하고, 어촌계장과 본부석 재무 담당에게서 쇠값이라고 돈을 받아냈다.
그러나 전에는 김석출의 이야기에 의하면 말놀임은 주로 재담 좋은 남무가 맡아하였고, 바라지꾼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먼저 바라지꾼이 「임막둥아, 임막둥아」라고 부르면 「예- 막둥이 똥눕니더」 두 번째로 「막둥아-」하면 「막둥이 세수합니다」, 세 번째로 「막둥아-」하면 「막둥이 망건씁니다. 갓쓰고 곧 나갑니다」라 응대한다. 「네 이놈 막둥이 소리만 나고 형용은 안보이노」하면 그제서야 바라지꾼 앞으로 나와 서는데 짚으로 만든 말에 오쟁이를 지운 것을 끌고 나온다. 바라지꾼이 「흙비 3년 돌비 3년 석 3년을 맞고 손님들 밑에 말고삐를 끌고 따라 다니며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플 때가 많았으나, 오늘은 이 손님들을 모두 배송낸다커니, 술이영창, 밥이영창, 노소돈도 영창 모두 만만히 말에 식고 정자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데로 떠나시니까 막둥아 너도 오늘 함포고복되도록 실컷 먹고, 정자 좋고 반석 좋은 데로 떠나것다.」「예-」대답하면 「네 이놈, 네가 몰고 다니던 말치장을 할 수가 있나」「예- 말치장을 하지요」막둥이가 싸리말을 들고 唱調로 말치장 타령(打令)을 한다. 말치장 타령을 하면서 쇠값을 받아내고 술을 받아먹고, 「이랴!」하고 말을 몰고 간다며 늦은 굿거리 장단에 맞춰 장내를 한 바퀴 돌고 나가는 시늉을 한다. 이때 재담이 있다. 말은 오쟁이에 돈과 제물을 넣은 채로 갖고 나가 마을 밖 외나무솔에 위를 보도록 매고 손대를 함께 꽂아놓고 온다. 이 동해안 손님굿의 마마배송(拜送)놀이는 경기도 도당굿의 배송과 양주군과 황해도의 소놀이굿과의 비교를 위해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또 막둥이 처음 나오는 대목은 영남 가면극의 오광대와 야유(野遊)의 그것과 비교할 때 서로의 교류를 생각케 한다.
14) 계면(명)굿 (김영숙 巫)
계면굿은 아침 8시에 김영숙 무녀가 쾌자 입고 부채 들고 청배무가를 불렀다. 영해(寧海), 영덕, 포항 등 경상북도 지방에서는 계면굿이라 하고, 부산, 대변 등 경상남도 지방에서는 걸립굿, 강원도에서는 말병굿이라고 한다. 청배무가의 내용으로 보아 계면할머니를 위하는 이 거리는 경기 지방 굿의 무조신(巫祖神)을 위하는 말명거리와 같고, “욕심 많고 심술도 많은” 계명할머니의 걸립(乞粒)은 황해도의 만수대탁굿의 걸립대감(乞粒大監)거리와 비교된다.
계면은 무당의 단골 구역을 말하며, 이 굿은 단골을 위하는 굿이라고 한다. 김석출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 큰어머니와 형수가 보리철과 나락철에 자루를 메고 동네를 돌아 걸립하였다고 한다. 집집마다 몇 되씩 또는 한두말씩 내 주어 40-50 가마씩 거둬 뒤주에 넣어놓고 살았다고 한다. 진도 당골판은 1950년 후반까지도 걸립을 하였다고 하는데 (박승우 談), 호남지방과 마찬가지로 영남지방에서도 같은 단골판이 있었던 것을 상정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청배무가가 끝나면 무녀는 계면할머니가 되어 바라지꾼과 대화로 재담을 하고 계면떡을 팔았다.
15) 용왕굿 (김영숙 巫)
사해용왕을 모시는 굿으로 어선의 안전과 풍어를 빈다. 김영숙 무녀가 아침 9시부터 계면굿에 이어 청배가 다음 주로 축원가를 계속하고 나서 7-8명 나와 앉은 선주들을 건어로 등을 눌러 굿당에 배례시킨다음 머리에 백지를 매고, 청기․홍기를 꽂았다고 하고, 음복주를 내려 술값을 받고, 축원한 다음 바다의 고기를 가두는 강쇠때를 판다고 하여, 어촌계장에게서 쇠값을 받는다. 이어 용왕님 놀고 가자고 하고 김동연과 김주향 무녀가 함께 나와 뱃노래를 불렀다.
이때, 용왕굿하는 동안에 액막이한다고 다섯 집에서 무녀와 함께 바닷가에 나와 용왕상을 차리고 무녀가 축언을 한다음 바다에 헌식(獻食)을 했다. 경남지방과 강원도 별신굿에선는 선주마다 자기 배를 위해서 용왕상을 따로 차려오나, 경북 영일지방에서는 용왕상을 따로 차려오는 일이 없다고 한다. 또 경남지방에서는 용왕굿에 이어 원래(遠來)굿이 있어 조상상을 차려 집집마다 조상을 맞이하나 경북지방에서는 조상굿만으로 끝내고 원래굿이 따로 없다고 한다.
16) 탈놀음굿
백석동 별신굿에서는 용왕굿 다음 거리굿 앞에 탈굿(말놀음굿)이 있었다. 이때 바가지 탈을 썼는데, 70년 전인 김석출의 부친 대에는 바가지탈을 썼지만 근래에는 종이탈을 쓰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경북 영덕군 병곡면 백석동은 성황지신(城隍之神)(맹씨할배)과 토지지신(장씨할배)을 위해서 5년마다 한번 별신굿을 한다. 1977년 11월 20일에 김석출 일행이 연희한 탈굿은 다음과 같다.
① 첫째마당 : 느린 굿거리 장단에 맞춰 양반의 소실인 서울애기가 나와 춤을 춘다. 이어서 나이 30여세의 노총각인 양반의 큰아들인 말뚝이와 그 동생인 싹뿔이가 나와 노총각 타령을 한다. 이어 말뚝이가 「우리 아배가 재산을 다 팔아 서울 애기를 갖다 주고 술을 사 먹으니 서울애기가 얼마나 좋은지 우리도 서울애기한테 술 사 먹으러 가볼까?」하며 돈을 꺼내어 서로 자랑하고는, 곧「투전놀음을 하여 본전은 살려 두고 딴 돈을 가지고 술 사 먹으러 가자」고 하며 투전놀음을 하고 투전 뒷풀이를 한다.
② 둘째마당 : 60세 가량의 양반이 등장하여 바라지꾼과 대화로 자기 내력을 이야기한 뒤 서울애기와 어울려 춤을 춘다. 이때 말뚝이와 싹뿔이가 나와 방해하지만 양반과 서울애기는 춤을 계속하다가 앉아서 술상을 차리고 시조를 읊는다.
③ 셋째마당 : 이때 영감을 찾아 할미(무녀가 분장)가 등장한다. 장내를 한 바퀴 돌고 치마를 걷고 오줌도 누고, 몸을 긁다가 이도 잡는다. 동네 사람들(바라지꾼)에게 신세타령을 하고 나서 영감을 찾다가 셋째 아들 어둥이와 말뚝이, 싹뿔이 삼형제를 만난다. 아들들의 인도로 서울애기와 양반이 술 먹는 곳에 가서 문구멍으로 엿보다가 뛰어들어 서울애기를 상대로 싸운다. 양반은 싸움을 말리다가 자기 성질에 못 이겨 졸도한다.
④ 넷째마당 : 의원을 부르고 봉사를 불러 독경을 해도 효염이 없다가, 무당을 불러 존신을 정좌시키니 양반이 살아서 일어난다. 모두 붙잡고 좋아서 춤을 추며 퇴장하고, 이어서 재비가 「이 굿으로 옛날 옛적에 오입장이 놀던 어르신네 귀신을 모시는 곳입니다. 이 귀신을 불러줘야 동네 잡성스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요」라고 설명한다.
탈놀이가 끝난 다음 굿거리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범이 등장했다. 큰 바가지로 만든 호랑이탈을 쓰고, 누런 옷으로 온 몸을 가린 범이 나와 한창 춤을 추고 있을 때, 양반과 할미, 말뚝이와 싹뿔이가 횃불을 들고 나와 범을 쫓고, 범이 달아나면 모두 퇴장한다. 범굿을 간단하게 논 것이다.
17) 거리굿
각 굿거리에서 청배한 신들을 따라온 수비 귀신들을 먹여 퇴송(退送)하는 굿이다. 한수(漢水) 이북지방 굿의 뒷전 또는 마당굿에 해당한다. 이 거리의 진행은 남무들이 맡는데, 굿청에서 제상을 모두 치운 다음 제상에서 거둔 밥과, 국, 반찬 등을 모두 섞어서 밥 한 통을 만들고 탁주 한 말을 놓고 시작한다. 시간관계로 몇 가지만 놀고 얼른 마치는 것은 쪽박거리라하고, 삼석거리로 2시간이나 2시간 이상 하는 것을 대거리라 한다.
1976년의 이가리 별신굿과 미포 별신굿에서 남무 김석출이 대거리를 놀았고, 1977년의 이가리 별신굿과 1981년의 구만리 별신굿에서는 김용택이 쪽박거리로 노는 것을 참관하였다.
① 서장(序章) : 남무 김석출이 평복 차림으로 나와 거리굿을 하는 내력과 그 의미를 설명하고 나서, 반드시 보태는 말로 「거리굿은 유식한 말만 들어가도 안 되고 잡답과 서러운 원정과 욕을 합해야 하니 설혹 욕과 온갖 잡담이 나오더라도 여러 보살님네들이 이해해주시오」라고 한다.
② 사장(訓長)거리 : 엉텅리 훈장과 그 제자와의 사이에 일어나는 익살스런 문답으로 진행한다. 문답은 남무가 일인이역으로 진행하고, 가다가 바라지꾼은 남무의 곁말이나 비속(卑俗)한 표현을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사장이 아이들 글강을 받는 대목에서 언문뒷풀이로 ㄱ에서 ㅎ까지의 풀이로「기역자로 집을 지어 지긋지긋 살잤더니 인연 없어 못 살겠네 ........」하는 대목은 양주 별산대놀이와 봉산탈춤에서 취발이가 아이에게 글 가르치는 언문뒷풀이 대목과 같은 표현임이 주목된다.
③ 과고(科擧)거리 : 훈장이 한양에 과고보러 가서 급제하나 벼슬을 거절하호구강간이라는 신직(神職)을 맡고 이승에 오기까지의 엉터리 과거 이야기다. “동강”이라고 자살하여 저승 과거에 급제하여 귀신을 다스리는 고 운자(韻字)로 시를 짓는데, 그 시의 후반은 「나막신 뒷청이 검으리짝하니 짚시기 앞총이 헌겊총이라」고 읊어 버린다. 이 대목은 그대로 봉산탈춤에서 서방님이 읊는 시구와 같다. 이렇게 하여 사장거리와 과거거리에서는 양반들만의 특권이요 자랑이던 글공부와 과거를 parody 와 black humor로 여지없이 풍자한 점은 가면극과 퀘를 같이 한다.
④ 관례(冠禮)거리 : 관중석에서 마을사람 하나를 골라 얼사촌이라 하고, 노인 두 분을 모셔내어 사장님과 아배로 만들고 우스꽝스러운 관례를 행한다. 귀신들도 관례로 어른이 된 사람의 말만 듣기에 행하는 중요한 행사이나, 짚으로 만든 상투를 허리에 둘러 상투 끝이 성기 있는 곳에 오도록 매어 주며 익살을 부린다. 글공부와 과거거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양반들의 중요한 평생의례인 관례마저 이처럼 희화화(戱畵化)하여 버린다.
⑤ 골매기할매거리 : 남무는 치마 저고리를 관중석 부인들로부터 빌어 입고 수건을 쓰고 여장을 한다. 할머니 죽은 영혼이 등장하여 친구들을 찾아보며 며느리 흉보기와 칭찬하기를 일거일동을 실감나게 흉내낸다.
⑦ 봉소(사)거리 : 男巫는 골매기 할배 그대로의 복색으로 봉사놀이를 한다. 앞서 심청굿에서 소개한 대로 육담(肉談)방아타령이 그 주 내용이고, 약수(藥水)를 길어다가 눈을 뜬다.
⑧ 어부거리 : 어부로서 수사(水死)한 귀신이 등장하는 고기잡이 장면인데, 노를 젖는 흉내와 배가 파선하기까지를 사실적으로 연출한다.
⑨ 머구리거리 : 잠수부가 물 속에서 미역 따고 해삼을 찾고 조개를 찾는다고 하면서 관중속의 부인들의 치마 아랫쪽을 드려다 보면서 웃긴다.
⑩ 해산(解産)거리 : 남무는 치마 저고리에 수건 쓰고, 짚토매에 바가지를 씌워 사타구니에 넣고, 아기 낳는 과정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이때 관중석의 부인네들이 말참여를 한다. 이어서 아기가 병들어 죽기까지의 애처러운 과정을 흉내내는 산모의 귀신거리이다.
이상의 각 거리는 그 거리마다의 죽은 귀신의 이야기이므로 과거거리부터 거리 하나씩 마칠 때마다 남부는 마련한 밥통에서 밥 한그릇씩 떠서 잡귀(雜鬼)들을 먹인다고 바다에 나가 탁주와 함께 던진다.
이상 10거리로 나눌 수 있는 거리굿의 구성은 양반들을 풍자하는 사장, 과거, 관례거리, 고부관계와 연장자를 모시는 일마저 희화화(戱畵化)한 골매기 할매․할배거리와 뱃놀이 이하 주로 어촌의 생산과 해산이라는 일상생활을 리얼하게 연출하는 부분으로 크게 삼분할 수 있는데, 남무의 실감나는 연기가 높이 평가되며, 음산한 잡귀 퇴송의 에필로그를 블랙․휴머의 웃음으로 끝맺게 한다.
3. 동회
거리굿이 끝난 다음 오후 1시지나 도제관집에 역원들과 동민대표들이 모여 이번 별신굿에 든 비용을 셈하고 음복한 다음 헤어졌다. 3제관과 무당들에게는 특별히 떡과 고기 등 제물을 백지에 싸서 나누었다. 이 해의 비용은 제수와 제주, 식사 접대비 등이 약 25만원이었고, 무당에게는 조화(造花)값 4만원, 왕복여비 1만원, 사례비로 26만원, 제 31만원을 지불했다. (24시간 하는 별신굿에서는 약 40만원을 받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이 해의 별신굿 총비용은 56만원이 들었는데, 기부금이 약 40만원 들어왔다. 1981년도에는 약 1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무당들의 보수분배를 보면 여비와 식비 그리고 꽃값을 제외한 보수 전액에서 당주(굿을 맡은 주무당)가 3분의 1을 받고, 나머지 성원들이 3분의 2의 금액을 분배한다고 한다.
六. 풍어제 무악과 무무(巫舞)
1. 무악
동해안 풍어제 즉 별신굿에 쓰이는 무악기는 장구, 징, 꽹과리 등 타악기만 쓰이고, 타지방에서처럼 피리, 젓대, 해금 등 (여율)旅律악기는 쓰이지 않는다.
굿에는 무가, 장구, 징, 꽹과리 편성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장구, 징, 꽹과리 반주로 무가가 불리워질때도 실제로는 무가가 불려질 동안은 꽹과리가 쉬고, 장구, 징만이 반주하며, 무가가 쉬는 동안 간주로 꽹과리, 장구, 징으로 연주하고, 이때 무당이 춤을 춘다.
김석출일행의 굿에 제일 많이 쓰이는 장단은 청보와 제마수이다. 그 밖에 쪼시개, 드렁갱이, 삼공잽이, 도장, 고삼, 자삼, 도깨끼, 동살풀이, 부수채 등이 쓰이며, 한 장단이 초장, 2장, 3장 등 여러 장으로 구분되는 것이 색다른 점이다.
각 장단의 세분된 설명과 무가의 여율(旅律)에 대해서는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무의식편)중 부산지방의 무의식의 무악(이보형)조로 미루겠다.
2. 무무
김석출일행의 무무는 무가와 더불어 대부분 허튼춤을 춘다고만 하였으나 한국민속종합보고서(무의식편)중 부산지방 무의식의 무무에 대해서는 그 종류를 나비춤, 바라춤, 부채들고 추는 춤, 방울들고 추는 춤, 쾌자자락을 잡고 추는 춤, 제물들고 추는 춤, 꽃을 들고 추는 춤, 탈춤, 중춤, 신칼춤 등으로 나누었고, 춤사위로는 아래와 같이 열거하고 있다. 즉, 갈매무관, 돌머리무관, 손신무관, 비비무관, 상대무관, 등맞추기, 좌우치기, 겨드랑이무관, 양사우치기무관, 까치딛기, 뒤로돌려뿌리기, 한발뛰기 등이다.
춤사위 명칭을 [무관]이라 부르며, 주된 춤사위는 비비무관을 비롯하여, 손신무관, 양사위치기무관 등 활달한 움직임이 많은 편이다. 자세한 설명은 동서(同書)무무조(條)로 미루겠다.
七. 풍어제(豊漁祭) 무가(巫歌) 가사(歌詞)
1. 부정(不淨)굿
부정님네 난데 본(本)은
뒷산에 올라가서
청솔잎이 난데 본이요
흑솔잎이 난데 보이요.
소상반죽(瀟湘班竹) 열두마디
마디마디 솟아나시던 부정님네.
대천지 저 한바다
왕바우 덕바우
갈메 제덕밭에
물결 색결 속에
고래 타고 상천하고,
이태백이 놀음 노시던
슬거리 대여왕 부정님네
용궁에 솟은 물로
부정 가겨내나이다.
오리신이 감네수(甘露水)를 내리시니
옥계수 천년두골의 만년수물로
부정 가셔내고 해와내나이다.
뉘취(누추)한 부정은
원근 만리 소멸시키나이다.
<창법> 초장 : 긴소리
2 장 : 짧은소리
3 장 : 아주 짧은소리
박자는 3박자.
2. 일월맞이굿
해 돋아 일월맞아
달 돋아 월광맞이
새벽맞이를 올리나이다.
삼한세존네 가가호호마다
금실궁에 좌정하시고
놋실궁에 좌정하시던
삼한세존님네.
금강산 여래보살
백두산 나오님아
삼불부처 앞에
아홉 상자 명짐을 짊어지고
뒤에 열 상자 복짐을 짊어지고
차(此)동네 오시던
일월 제위(諸位)분네.
사내 자손들 명복을 점지하옵소서.
<장단> 초장 : 제마수 장단, 6박.
2 장 : 빠른 6박.
3 장 : 조금 더 빠른 6박.
4 장 : 대마디 대 장단( 자진모리 )
3. 골매기 청좌(請座)굿
뫼시자 뫼시자
성황님 청좌를 모시자
남산은 본이요
주산은 국이요
사도강남은 실여지고
안간은 강이요
갑산이 제자요
여산이 도읍이요
중님이 행차라.
웃당사 성황님
아래 당사 성황님
두 가운데 삼당사
성황님네 봉봉이
성황님 매기 매기
성황님 골매기 돌아들어
앞산은 너름잡고
뒷산은 주름잡아
우청룡(右靑龍) 좌청룡(左靑龍)
나이 많아 첨주 쌀네
나이 적어 동주 쌀네
일좌상 이공수
삼해수( 학사 ) 동( 도 ) 원수
푸(부)원당사 한림학사
골매기 성황님네 천지
성황님 하신 후
차동(次洞) 수호신으로
위하고 대하나이다.
백화창창하시어
단단히 구워(굽어)보옵소서.
<장단> 초장 : 느린 5박
2 장 : 조금 빠른 5박
3 장 : 조금 더 빠른 5박
4 장 : 미다지․여다지 5박
5 장 : 대마디 대장단 (자진모리)
<춤사위> : 허튼춤.
4. 당(堂)맞이굿
제(재)배로다 제배로다
상당의 성황님
존전에 제배로다
앞문에 제관 짤네
뒷문에 화주 짤네 제배로다.
이 잔 부어 여기 놓고
저 잔 부어 저기 놓고
삼일 삼잔에 제배로다.
차동지사들도 제배로다.
구장님도 제배 제배요
제장님도 제배요
노존우님도 제배로다
현관 집사 제배로다.
무당 양중들도 제배로다.
차(此)동네 농사도 풍년되고
어업도 풍어되고
자손들도 창성하고
제배로다 횡액횡사(橫厄橫死)
관재(官災) 구설 재액질병
속거철리 하옵시고
만복을 주옵소서.
<장단> 초장 : 느린 5박.
2 장 : 조금 빠른 5박.
3 장 : 조금 더 빠른 5박
4 장 : 미다지․여다지 5박
5 장 : 대마디 대장단 (자진모리)
<춤사위> : 허튼춤.
5. 성조굿
뫼시자 뫼시자
성조님을 뫼시자
성조님 난데 본(本)은
천상천궁이 난데 본이요
옥황님 전에
굴헌 귀 잘못 짓고
옥황상제께 득죄하고
지하로 정배하야
은신처가 바이 없어
수꾸대 움막집에
시대를 모르다가
눈비 삼 년 돌비 삼 년
흙비 삼 년 석삼 년을
맞고 나니 원이로다.
집 짓기가 원이로다.
나무 깎는 일 배우다
강남서 날아나온
연자(燕子)를 따라
강남을 들어갔어
제비원에 숙소하고
제비원 솔씨 받아
용문산에 숙소하고
삼정승이 물을 주고
육판서가 가꿔내어
소부동(小不等)이 되었구나
대부동(大不等)이 되었구나
중재목이 되었구나
대재목이 되었구나
갈엽선을 모아 타고
제련쇠를 구해 올려
낮은 데 소풍구
높은 데 대풍구라
풍구에 불을 달궈
갖은 연장 지어낼제
소도끼 대도끼
소자구 대자구며
소거도(小鋸刀) 대거도(大鋸刀)며
소대패 대대패
소끌 대끌
또드락 똑딱 장도리며
대갈맛치 치여놓고
용궁용천 흐른 물에
달궈놓으니 연(鍊)쇠요
일궈놓으니 강쇠로다
망태없어 어이하랴
뒷동산 올라갔어
이리저리 벋은 칡줄
사래지어 걷어다가
떠서 놓으니 망태로다
온갖 연장 다 갖추어
비단 망태 다여지고
유대성(요대성)을 찾아간다
앞집의 김대목
뒷집의 최대목
둥글 박자 박대목
오얏 이자 이대목
윤대목 증대목
신대목 남대목
나대목 송대목
진대목 함대목
손대목 주대목
버들 유자 유대목
권대목 변대목
양대목 석대목
지대목 민대목
채대목 구대목
임대목 서대목
엄할 엄자 엄대목
당대목 현대목
받을 봉자 봉대목
설대목 염대목
일천 천자 천대목
장대목 원대목
흰 백자 백대목
노대목 방대목
하대목 문대목
용 용자 용대목
황대목 한대목
고대목 홍대목
탁대목 조대목
우대목 배대목
전대목 허대목
마대목 어대목
편안 안자 안대목
선대목 오대목
곽대목 옥대목
여대목 육대목
공대목 예대목
상대목 동방대목
남궁대목 선자대목
왕보대목 제갈대목
맹공대목
이룰 성자 성대목
각 대목이 다 나왔어
유대승을 찾아가니
엎어졌다 엄나무
자빠졌다 잣나무
십리 안에 오리나무
마주섰다 부부나무
사이청청 사철나무
절개 결연 왕대나무
가시총총 모개나무
낙엽송 수기목에
원도자 빚나무며
황백목 물푸레
짜장나무 능수버들
고리쇠 단풍나무
굴피목과 피나무며
부처님전 공양나무
은행나무 유자목에
주두황목 도리나무
신주재목 율목이며
고욤나무 군영목에
기엽양봉 뽕나무와
실여소실 개암나무
춘당좌객 참죽나무
구골목중 살구나무
선목신전 박달나무
작속시화 가죽나무
정직유목 느릅나무
행실조에 매화나무
육산전님 두릅나무
전단목출 자단나무
피후향다 계피나무
일명단체 석류나무
엽대재경 오동나무
공자모목 해나무며
송지출모 관솔나무
백엽송신 전나무와
백목지장 소나무라
등간하여 둘러보니
성조목이 서있기로
한 번 찍고 쳐다보니
까막까치 집을 짓고
알을 품고 앉았으니
내 성조를 위하고자
남의 성조 빌(벨) 수 있나.
한 고개를 올라가니
성조목이 서있기로
한 번 찍고 쳐다보니
청학 백학이 집을 짓고
새끼 품고 앉았으니
내 성조를 위하자고
남의 성조 벨 수 있나.
용문산 산상봉 올라가니
성조목이 서있는데
아람은 열두 가람
뿌리도 열두 뿌리
가지는 서른 가지
잎은 피어 삼백 육십
동쪽으로 벋은 가지
일산봉이 열려있고
남쪽으로 벋은 가지
노적봉이 열려있고
서쪽으로 벋은 가지
증손봉 외손봉 열려있고
북쪽으로 벋은 가지
문필봉 장재봉 열려있고
중앙으로 벋은 가지
부귀공명이 열려있고
그 나무끝 쳐다보니
일광 월광
해 달이 열려 있다.
그 나무 밑에다
연장망태 벗어놓고
갖은 연장 모두 내어
찍기 좋은 도끼 들고
한 번 찍고 두 번 찍고
삼세 번을 거듭 찍으니
도끼날은 나무에 붙고
도끼자루 거듭 찍으니
도끼날은 나무에 붙고
도끼자루 손에 붙어
무섭구나 무섭구나
목신귀가 무섭구나
산심님이 기른 나무
공덕 없이 벨 수 있나.
산신제만 드려보세
제물 갖추 장만할제
산톱잡아 칼을 꽂아
은소반에 구워놓고
산 소머리 도끼치고
죽은 소머리 칼을 대어
앞다리 선각(先脚)
뒷다리 후각(後脚)
소양푼 갈비지짐
대양푼 전육이며
회갈님 적갈님
양지머리 파사족에
천엽에다 양간 놓고
해어물(海魚物)을 다 갖춘다.
대방어 대삼치
농어 칼치 대연어
홍치 눈치 대광어
송어 공치 대청어
새치 고등어
며루치 우래기
종달치 가부리
복쟁이 가재미
대열기 전어
조기 양미리
(以上 略)
<장단> 초장 : 느린 5박
2 장 : 조금 빠른 5박
3 장 : 조금 더 빠른 5박
4 장 : 미다지․여다지 5박
5 장 ; 대마디 대장단 (자진머리)
<춤사위> : 허튼춤.
* 톱질하는 장단은 8박인데 농부 후렴 장단과 같음.
6. 마당밟이
이 굿은 성황대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그 집의 조상님을 빌거나, 성주신을 빌거나, 어업하는 집은 용신을 빌거나 한다. 그 집에서는 백미 한 그릇․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촛불을 밝힌 다음 존신을 빈다. 그 뒤 부엌에 들어가서 조왕신을 빌고, 장독간에 가서 빌고, 마굿간에 가서 빌고, 곳간에 가서 빌고, 화장실에 가서 빌고, 오방지신을 빌고, 대문밖에 나가서 샅(煞)을 막는 가사를 빌어 마친다.
<장단>은 무덩덕궁 장단에 징은 네마치, 박자는 7박이다.
7. 화해굿
뫼시자 뫼시자
화해님을 뫼시자
성황님도 화해로다
세존님도 화해로다
성조님도 화해로다
조상님도 화해로다
용왕님도 화해로다
각각 존신 제위분들
화해동참 하옵시고
꽃비단 속에 화해하소
잎비단에 화해하소
상당으로 화해동참하소
중당으로 화해하소
하당으로 화해동참하소
임무동참하시고
언제 자시던 밥이라고
밴들 아니 고프시며
언제 자신 술이라고
목인들 안마를까요.
좋은 안주 좋은 술에
빛을 응감(應感)하고
맛을 응감하옵소서
밤이면 처상의논
낮이면 지하화해하시고
태산도 평지를
만들어 주시고
국태민안시켜 주시고
안과태평(安過太平) 소원성취
비옵니다.
<장단> 초장 : 느린 5박
2 장 : 조금 빠른 5박
3 장 : 조금 더 빠른 5박
4 장 : 미다지․여다지 5박
5 장 ; 대마디 대장단 (자진머리)
<춤사위> : 허튼춤.
8. 세존굿
뫼시자 뫼시자
세존님을 뫼시자
열에도 삼열에
부처님도 삼부처
관음도 삼관음
동자도 삼동자라
불법은 인도에서 나오시고
신법은 서천 서역국에서 났습니다.
우리나라 불법은 퍼져
인도에서 나오시고
서역서 나올 때는
강원도 금강산을 당도하니
절 짓기가 원(願)이로다.
개골산의 나무를 베어
금강산 상상봉에 실어올려
용의 모리에 터를 닦고
학의 모리에 집을 지으신다.
높은 곳에 암자 짓고
낮은 곳은 종각 짓고
종각 앞에 큰 법당 짓고
법당 앞에 노전(爐殿) 짓고
노전 앞에 일주문 달고
그 앞에는 구천탑을 쌓고
탑 앞에는 염주밭에
염주를 심어 놓으시고
여러 스님들이 모여
염주밭을 매시면서
여러 스님 의논하되
아침 저녁으로
공양올릴 백미쌀 모자라
서천 서역국 당금아가씨
집으로 동냥간다.
여러 스님들 치레 보소.
어떤 스님은 광새(괭과리) 들고
어떤 스님은 대징을 들고
어떤 스님은 목탁 들고
어떤 스님은 요령(搖鈴) 들고
어떤 스님은 정발 들고
또 한 스님 거동 보소
한 자 한 치 호꼬깔
두 자 두 치 접꼬깔
서른 대장 홑장삼
쉰 대장 접장삼
오른 어깨 홍가사
왼 어깨 청가사
일천 비단 금단가사
오이둘려 올게입고
하늘거리고 냅다선다.
(以上 略)
<장단> 초장 : 제마수 장단 6박.
2 장 : 빠른 6박.
3 장 : 조금 더 빠른 6박
4 장 : 대마디․대장단 (자진머리)
* 승무장단
초장 : 25박
2 장 : 25박
3장 : 도깨끼 25박
4장 : 업박으로 5박.
9. 조상굿
조상님 난데 본은
묵망산천이 난데 본이요
자손들이 굿준단
말씀을 듣고
굿 받으러 나오신다.
백두산 길 모롱지(모롱이)
고룩산 저 재너머
꽃 끊어 머리에 꽂고
잎 뜯어 초경 불고
가지 끊어 이슬 치고
송기 끊어 짝지 집고
썩은 갓을 털어 쓰고
대왕전에 수기 받아
오느라 하루 만 리
가느라 하루 만 리
굿 받으러 하루 만 리
사흘 수기 말미 받아
까마귀 각마실로
나그네 손마실로
사천 제마실로
휘헝휘쳐 넘어오니
산도 보던 청산이며
물도 보던 녹수로다.
녹수 청산 넓은 들에
오기는 왔건마는
실연이 자취 없어
오면 온 줄 누가 알며
가면 간 줄 그 누가 날리
먼저 가신 선망 조상
나둥 가신 후망 조상
진조 여덟 외조 여덟
양 여덟 쉰 여덟
푸줏 철망 원래(遠來) 조상
아이 조상 질짐지고
어른 조상 뒤따르고
가자 끌고 오자 끌고
밀거니 섬거니 골이 잦아
길이 비좁게 오시던 조상님네
상을 좌정하고 중당을 좌정하시어
금생미 바람에 녹음에 정신에
많이 많이 응감(應感)하시어
산에 자손들 명복을
굽어살펴 주옵소서.
<장단> 초장: 느린 5 박
2장: 조금 빠른 5 박.
3장: 조금 더 빠른 5 박.
4장: 미닫이.여다지 5 박.
5장: 대마디 대장단(자진머리)
<춤사위>:허튼춤.
10. 천왕굿
청용승마 지국천왕
백용승마 광목천왕
황용승마 제석천왕
이칠화(二七火) 남문이요
사구금(四九金) 북문이요
적용승마 증장천왕
흑용승마 다문천왕
일육수(一六水) 동문이요
삼팔목(三八木) 서문이요
오십토(五十土) 중문이요
새신(賽神) 제자둘 원역(願力)으로
소원성취 비나이다.
천지현황 생긴 후에
만물이 번성하고
곤륜산 제일봉에
낙양은 천하 중에
영주는 서북이요
팔도강산 굽어보니
평안도 묘향산은
황해도 구월산은
함경도 백두산은
경기도 삼각산은
충청도 계룡산은
전라도 지리산은
경상도 태백산은
강원도 금강산은
매기 매기 성황님
아버님은 사모 쓰고
아드님은 투구 쓰고
천하지맥 둘러보니
도리천 수미산장
천상의 부명받아
조기처를 모르신
수세 후에 웅녀와
함백산 영모태기
영이신인(靈異神人) 탄생하니
인생관의 주체되어
배달나라 단군성에
팔괘괘상 태극기에
단군왕 만물지령
삼월이라 십오일날
일월영축 되었으니
산천이 개탁(開柝)하야
산악지조종(山岳之祖宗)이로다.
오초는 동남이요
남영은 고국이라
평양 대동강 둘러있고
신천 쇠류강 둘러있고
하동 섬진강 둘러있고
상주 낙동강 둘러있고
춘천 소양강 둘러있다.
봉봉(奉奉) 성황님
어머님은 작대 띠고
며늘아기 족두리쓰고
성황님 지세맥에
환인타라 천왕세자
지하로 정배하야
환웅천왕 웅호(熊虎)불러
조혼해야 태백산 단목하게
지혜가 명민하고
천 이백 년 통솔하니
무궁화 만발하고
조선국의 시조로서
단군 성조 조법교가
숭명전 대종교라
선천지 후천지에
대한국 억만 년에
삼한국을 바라보니
인왕산이 대본되어
국자감이 박사로다
태고라 천왕씨는
유우씨는 하우씨
장유수 양자강은
소산강 합류점에
남경은 신라조요
한당시 장안되고
장원후로 태원이라
서경은 하남부요
북경은 대동부라
지금 한양 서울되고
앞산은 내룡작고
우(좌)청룡 우백호요
나이 많아 첨지다라
일좌상 이공수
부원당사 한림박사
부군당 성황님은
좌도병은 좌로 치고
소상강 물소린가
배반이 난잡하야
흰 기(旗)를 들었으니
영재당 본재당
상통천문(上通天文) 하달지리(下達地理)
존신전에 입원가세
동(東)은 갑을(甲乙) 청룡 일육수(一六水)
지국천왕은 청제천신
삼만 약사 여래불은
선악자를 가려내어
조선시국 삼신왕이
신도법 전통이라
한라산이 남산이요
학사마다 과객이요
이목득(以木德)을 왕하였으니
섬기섭적(歲起攝得) 하시고
중앙부를 황류하야
동정호로 위치하니
북경은 발해조라
지덕후에 봉상부요
동경은 개봉부요
남경은 웅천부요
온조왕이 치세 후에
이 골매기 돌아들어
뒷산은 주령잡아
좌철룡 좌(우)백호라
나이 적어 동치(자)다라
삼학사 도원수
가사타고 만호병장
우도병은 우로 치고
동중에 북소린가
검은 옷에
사방천왕이 분명하다
과학영 수판정
통판하신 성황님하난이다.
이지고 청용대기를
드리작고 팔천보살
거느리고 청룡방을 지친천왕
<장단> 초장 : 느린 5박
2 장 : 조금 빠른 5박
3 장 : 조금 더 빠른 5박
4 장 : 미다지․여다지 5박
5 장 ; 대마디 대장단 (자진머리)
<춤사위> : 허튼춤.
11. 놋동이굿(군웅굿)
뫼시자 뫼시자
군웅님네를 뫼시자
천황제 군웅님
지황제 군웅님
인황제 군웅님
시황제 군웅님
선황제 군웅님
태황제 군웅님
환황제 군웅님
범황제 군웅님
현황제 군웅님
치황제 군웅님
사신황제 군웅님
안황제 군웅님
군웅장사 모두 모아
만 과거를 보러간다.
앞 남산에 소포 묻고
밖 남산에 대포 묻어
소포․대포 과녁이라
세월없는 활을 메고
좌우 궁을 쏘자하니
조병하여 조전할까
상장말기 되었구나
중장말기 되었구나
오장말기 되었구나
활 과거를 마다하고
문수과를 보러 간다.
서책을 품에 품고
한양 서울 지치달려
팔만 장안에 억만 가호
선재판을 바라보니
예부 명지 걸렸구나
그 글을 운(韻)을 달아
요지연에 먹을 갈고
조맹부의 체를 받아
왕희지 필법으로
당황모 무심필로
일필휘지 선장하니
상시관이 글을 보고
글자마다 관주요
글귀마다 비점이라
삼정승이 둘러앉아
선조에 입조하고
열명기(列名記) 살펴보니
군웅장사 필서로다.
유지(諭旨) 났네 유지 났네
평양감사 유지 났네
황해감사 유지 났네
함흥감사 유지 났네
경기감사 유지 났네
충청감사 유지 났네
전라감사 유지 났네
제주감사 유지 났네
경상감사 유지 났네
강원감사 유지 났네
울릉감사 유지 났네
유지 받아 품에 품고
병부 받아 고름에 차고
머리 위에 어사화요
머리 밑에 좌수화라
용의 대단 조철역에
암소아치 전대띠
숭복통에 눌러매고
장안유수 얼른 돌아
해 나는 데 일산이요
비 오는 데 우산이라
독가마 독을 싣고
흙가마 흙을 싣고
쌍가마 화약 싣고
새 명기 이름 두고
모구에 수기 받아
모(某) 명당 사당문
전이 열고
홍패 백패 맞이하고
영춘(친)하고 도문할 제
산 소머리 도끼 치고
죽은 소머리 칼을 꽂아
앞다리 선각(先脚)에
뒷다리 후각이며
소양푼 갈비찜에
대양푼 전육이며
회갈님 적갈님
양지머리 파사죽을
은쟁반에 구워놓고
온갖 어물 다 갖출 제
( 以上 略)
<장단> 초장 : 느린 5박
2 장 : 조금 빠른 5박
3 장 : 조금 더 빠른 5박
4 장 : 미다지․여다지 5박
5 장 ; 대마디 대장단 (자진머리)
<춤사위> : 허튼춤.
12. 심청굿
신춘화류 호시절에
초목군 생지물이
개유이 자락한데
춘풍도리 화개야 하고
백화 만발하다.
춘수만사 택하고
하운이 다기봉이라
간수는 잔잔하야
산곡간으로 흘러가고
푸른 언덕 위에는
학이 무리지워서 왕래하고
황금같은 꾀꼬리는
양류간으로 날아들고
소양강 떼기러기는
북천으로 날아가고
낙화는 유접같고
유접은 낙화같이
펄펄 날리다가
임당수 흐르는 물에
힘없이 떨어짐에
아름다운 봄 소식은
소리를 따라 흔적없이
나려가는 곳은
황주 도화동이라.
심학규라 하는
봉사 있으니
세대 잠영지족으로
성명이 자자터니
가운이 영세하야
소년에 안맹하니
향곡간에 곤한 신세로서
강근지족이 없고
겸하야 안맹하니
뉘라서 대접할까마는
본이 양반의 후예로서
행실이 청렴정직하고
기개 고상하야
일동 일정을
조금도 경솔히 아니 하니
그 동리 눈 뜬 사람은
모다 칭찬하는 터이라.
그 안해 곽씨 부인
또한 현철하야
임사의 덕과 장가의 색과
목란의 절개와
예기 가례 내측편과
주남 소남 관저시를
모를 것이 바이 없고
봉제사 접빈객과
린리에 화목하고
가장 공경 치산 범절
백집사 가감이라
그러나 가세가 빈한하니
이제의 청렴이요
안자의 간난이라
기구지업 바이 없어
일간두옥 단표자에
반소음수 하는 터에
곽외에 편토 없고
낭하에 노비 없어
가련한 곽씨 부인
품을 팔아 품을 팔제
삯바느질 삯빨래
삵질삼 삯마전 염색하기
혼상대사 음식설비
술 빚기 떡 찌기
일년 삼백 육십 일을
잠시라도 놀지 않고
품을 팔아 모으는데
푼을 모아 돈이 되면
돈을 모아 량을 만들고
량을 모아 관이 되면
린근동 사람 중에 착실한 데
실수 없이 받아드려
춘추시향 봉제사와
앞 못보는 가장 공경
시종이 여일하니
가난과 병신은
조금도 허물될 것 없고
상하면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칭찬하는 소리에
재미있게 세월을 보내더라.
그러나 그같이
지내는 중에도
심학규의 가슴에는
한갖 억울한 한을 품은 것은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으므로
하루는 심봉사가
마누라를 곁에 불러 앉히고
여보 마누라
거기 앉아 내 말씀 들어보오
사람이 세상에 나서
부부야 뉘없을까마는
이목구비 성한 사람도
불칙 계집을 얻어
부부 불화 많거니와
마누라는 전생에
나와 무슨 은혜있어
이생에 부부되어
앞 못보는 가장 나를
한시 반때 놀지 않고
불철주야 벌어들여
어린 아해 받들 듯이
행여나 치워할까
배고파 할까
의복 음식 때를 맞추어
지성으로 봉양하니
나는 편타하려니와
마누라 고생살이
도로혀 불안하니
괴로운 일 너무 말고
사는 대로 살아 봅시다.
그러나 내 마음에
지원한 일이 있오
우리가 연광이 사십이나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으니
조상 향화를 끊게 되니
죽어 황천에 돌아간들
무슨 면목으로
조상을 대하오며
우리 양주 사후 신세
초종장례 소대기며
연년 오는 기제사며
밥 한 그릇 물 한 모금
뉘라서 떠노릿가
병신 자식이라도
남녀간 낳아보면
평생 한을 풀 듯하니
어찌하면 좋을는지
명산 대천에
정성이나 드려보오.
옛글에 있는 말씀
불효 삼천에
무후위대라 하였으니
자식 두고 싶은 마음이야
뉘 없사오리까.
소첩의 죄가
응당 내침즉하오나
가군의 넓으신 덕으로
지금까지 보존하였으니
몸을 팔아 뼈를 간들
무슨 일을 못하리까마는
가장의 정대하신
성정의향을 알지 못하야
발설치 못하였삽더니
먼저 말씀하시니
무슨 일을 못하리까
지성껏 하오리다
이렇게 대답하고
그 날부터 품을 팔아
모은 재물
온갖 정성 다 드린다.
명산 대천 신령당
고묘 총사 석왕사에
석불 보살 미륵님전
노구마저 당짓기와
칠성 불공 나한 불공
백일 산제 제석 불공
가사 시주 연등 시주
창호 시주 연등 맞이
다리 적선 길 닦기와
집에 들어 있는 날도
성주 조왕 터주 제신
갖가지로 다 지내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힘든 나무 무너지랴
갑자 사월 초파일날
꿈 하나를 얻었으니
이상하고 맹랑하고 괴이하다.
천지 명랑하고
서기 반공하며
오색 채운 두루 뜨니
선인옥녀 학을 타고
하늘로서 내려온다
머리 위에는 화관이요
몸에는 하의로다
월패를 느짓 차고
옥패 소리 쟁쟁하며
계화 가지 손에 들고
언연히 내려와서
부인 앞에 재배하고
곁으로 오는 양이
뚜렷한 월궁 항아
달 속으로 들어온 듯
남해 관음이
해중으로 돌아온 듯
심신이 황홀하야
진동치 못할 적에
선녀의 고운 모양
애연히 여짜오대
소녀는 다른 사람이 아니오라
서왕모의 딸이러니
반도 진상 가는 길에
옥진비자 잠깐 만나
수작 하옵다가
때가 조금 늦었기로
상제께 득죄하고
인간으로 정배하여
갈 바를 모르더니
태상노군 후토부인
제불보살 석가님이
댁으로 지시하야
지금 찾아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하고
꿈에 와 안기거늘
곽씨 부인 잠을 깨니
남가 일몽이라.
양주 봉사를 의논하니
둘의 꿈이 한가지라
태몽인줄 짐작하고
마음에 희한하야
못내 기뻐 여겼더니
그 달부터 태기 있으니
신불의 힘이런가
하늘의 도우심이런가
부인이 정성이 지극하므로
하늘이 과연 감동하심이러라
곽씨 부인 어진 범절
조심이 극진하여
좌불변하고 입불필하며
석부정부좌하며
활부정불식하고
이불청음성하고
목불시사색하야
십삭을 고히 채우더니
하루는 해복 기미가 있어
부인이 애고 배야
애고 배야 애고 허리야
몸저 누워 않으니
심봉사 겁을 내어
이웃집을 찾아가서
친한 부인 다려다가
해산구원 시켜낼 제
짚 한 단 들여놓고
새 사발 정한수를
소반상에 받아놓고
좌불안석 급한 마음
순산하기 바랄 적에
향취가 진동하며
채운이 두루더니
혼미 중에 탄생하니
선녀같은 딸이로다.
(以上 略)
<장단> 제마수 장단
1 장, 2 장, 3장으로 맞춤.
<춤사위) 헛튼춤.
13. 손님굿
옛날에 큰님 잣님 압시기 혼욕신도 신이요, 시두손도 손이요, 명신손도 손이요, 굵은 구실은 대감님이고 큰 왕손님이고, 자세한 구실은 혼역대감 이라고 하는데, 이 손님굿은 손님네 난데 본이 어디냐 하면 강남 대안국이 난데 본이요, 손님네 앉아 들으매 조선땅에 물 좋고 정자 좋고 밥 좋고 하다 하기로서 조선땅에 나와서 인물적간 가구적간 한번 해보자 하옵시고, 오십 삼불이 조선땅을 나오시려고 차리시는데, 명신손님 각시손님 이렇게 이렇게 모시는데 오십 삼불이 나오실라 할 적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해보니 조선이 소국이라, 싸립잎같이 좁은 곳이라 오십 삼불이 나와서 앉을 곳이 없고 설곳이 없어서 오십불은 도로 내향하시고 다만 삼 불이 나오시는데, 문신(文臣)손님 호반(虎班)손님 각시손님 이렇게 삼불이 조선을 나오시려 할 때 그 강남땅을 손님네 자시는 밥이 무엇이냐 밥은 피밥이요, 탕은 참노내기 같은 나물을 했사옵고, 탕은 개구리 갖고 탕을 했다. 하옵고, 옷은 나무껍데기를 벗겨갖고 옷을 지어 입고 하니 손님네가 생각하니 밥도 험하고 옷도 험하고 여러 가지가 조선땅은 들오보니 그렇게 좋다는데 우리 조선땅을 나가서 인물 적간을 한번 나오자 하고 하실 적에 치장이 찬란하죠. 문신손님 거동 보시오. 차레 치장이 찬란하죠. 거래 좋고 호걸 좋은 손님 삼백 쉰 돌림 통량갓에다 기알 탕건을 안을 받쳤어. 옥관자를 떡 붙이고 쓰시고 미라(밀화)근파 죽림갓끈을 넌짓 달아매시고 옷치장이 찬란합니다. 잔준립이 분주받이 삼성보선에 토행전에 자물단추를 달아입고 앞에서 홍광산 좋은 부채 흰살 부채 일광을 희롱하면서 나오시려고 채리시고, 각시손님 치장 보시오. 감태같이 채진머리, 반달같은 용얼개로 어리설설 가려내어 동백기름에 광을 내어서 갑사댕기 서광을 물려 맵시있게 잡아매시고 앞에는 죽절이요 뒤에는 근봉채요 입에 반약수요 손에 옥지환이요 찌시옵고 순금대단 겹저름에 명지고름을 살피 달고 귀맞은 짝저고리 이리저리 살피 달아 입고, 옷치장이 찬란하던가배. 신에는 흑갑사 안을 받쳐 무지개로 끈을 다시고, 범나비 주름을 잡고 물명주 고드누비에다 실명주 꽃신 만속곳단 입으시고 또 이렇게 차리시고, 그 담엔 또 호반손남거동 보래요.
한 자 한 치 홑고깔에 두 자 두 치 접고깔에 서른 댓 자 겹장삼에 열댓자 호장삼에다가 구리벽통 받은 장도칼 차시옵고 왼녘에 청가사를 오른녘에 홍가사를, 진홍띠 매고, 자주바랑을 등짐을 하시고 육환장을 드등지고 나올실라고 하실 때 어떻게 나오시나. 나무배를 모아타고 나오실라고 하시니 밑 썩어서 못나오시고, 돌배를 모아타고 나오실라 하니 지남철에 붙을까봐 못나오시고, 흙배를 모아타고 나올라고 하니 풀어질까봐 못나오고, 잎사귀를 베어 모아타고 나올라하니 바람 날려가서 못나오시고, 뒷동산 올라가 소상반죽을 열두 마디를 끊어내서 죽대선을 지어가지고 삼 분이 타고 나오시는데, 삼색(색)도끼 청포장을 높이 치시옵고, 바람은 비를 주고 비는 바람을 주고, 돛도 없고 닻도 없지만 대하수중 허공바다에 손님의 도술로써 허공바다에 떠나서 어디에 당도하나 하니 의주 압록강에 당도했던 가비여. 당 도할 적, 인막둥이 불러들여라 천막둥이 불러들여라 말 대령하렸다 쌍가마, 돛가마 대령하렸 다. 가마 포장은 호피단이요, 가마 방석은 돛방석에다 그즉시 쌍가마 돛가마를 대령할 때, 각 손님 모셔서 태우시고, 호반손님․문신손님은 가마꼭지는 주홍일레라. 가마문 예경수요 말을 타시는데 말치장이 찬란하던가배요.
(以下 略)
<장단> 제마수 장단
1. 장 : 느린 6박
2. 장 : 조금 빠른 6박
3. 장 : 미닫이․여다지
4. 장 : 대마디 대장단(자진머리)
<춤사위> : 헛튼춤
14. 계면굿(말명굿)
말명할머니 난데 본은
전라도 전주
원아장자집이 난데 본이요
열 일곱에 신을 끌고
스물 일곱에 내외를 갖춘다.
한양성내 이정승 집으로
출가를 했다.
시집간지 삼 년만에
시아버지 돌아가시니
지관을 불러
묘를 썼는데
자구통봉에다 징허리다
묘를 쓰고 나니
삼 년이 지나가니
말명할머니
한 해 앓고
두 해 앓고
칠 팔 년을 앓더니
온 몸이 떨리고
푸른 헝겊을 보면
둘고 춤추기가 일쑤요
청산지산 지껄여댄다.
손에 육갑을 짚으며
이집저집 다니며
신수를 가려준다
신수를 보는 곳마다
용하게 다 맞춘다
아이가 앓으나
어른이 아프나
가서 객구(客塊)를 내몰라면
덜껄덜꺽 다 낫는다.
이렇게 알기는 어떤 것은
남한무당 이라고 햇다.
그런데 이젠
많은 단골이 사귀어졌다.
말명할머니가 질삼을
유명하게 잘했다.
삼베 길쌈하기 시작한다.
삼씨를 받아
아랫밭 윗벌에 심어놓고
새야 새야 원앙새야
우리 밭의 심씨를
주워 먹지 말아라.
우여 우여
그 삼이 일취월장
삼이 잘됐다.
육칠월에 삼을 베어
삼굿에 삼을 쩌 가지고
앞 냇물에 나가
삼을 베껴서
삶아서 물레를 자아가지고
삼을 익혀가지고
옥난간에 베틀 놓아
베틀 다리 네 다리고
잉앗대는 삼현제요
눌림대는 獨身(독신)이요
절로 벋으신 나무는
지상은 학이 알을 낳고
들락거리는 것 같아
예주 예천 차치병가
잘그락 잘그락 잘도 짜네
밤에 짜면 월광단이요
낮에 짜면 일광단이요
춤포 짜고 마포 짜고
베를 몇 필 짜서
칠성포로 자주를 짓고
육성포로 전대를 지어
두 귀는 나는 자주에다
외귀나는 전대를 짓고
네 귀 나는 보 자를 지어
좁쌀같은 많은 단골
입쌀같은 왕단골
다니면서 재미(齊米)를 해다가
경신년 경신월
강태군의 조적방아에
일크럭 쿵쿵 찧어내어
재미떡을 찧어낸다.
안반 위에 빚은 떡은
재미 할머니 떡이요
안반 옆에 빚은 떡은
며늘애기 딸애기 재미떡인데
빚다가 보니
청삽사리 흑삽사리 와서
옆에 있는 말명떡을
주워 먹었다.
며늘애기 거동 보시오.
부지깽이 손에 들고
이 개 치고 저 개 치니
그 개가 다 죽었다.
말명할머니 그거를 내다
거름 틈에 묻어 놓으니
열흘 보름이 지나간 다음에
꺼내어 앞 냇물에 털 지우고
뒷 냇물에 기름을 빼서
오동나무 장구통에
아주 팽팽하게 매놓으니
한 번 둘러치니
천하무당 춤을 춘다.
두 번을 둘러치니
지하 무당 춤을 춘다.
말명할머니가 그렇게
신이 났습니다.
( 以下 略)
<장단> 1장 : 느린 6박
2장 : 조금 빠른 6박
2장 : 많이 빠른 6박(대마디․대장단)
<춤사위> 헛튼 춤
15. 용왕굿
용왕님께 뫼시자
빌러가자 빌러가자
사해 용왕님전 빌러가자
동해 광연왕님전 빌러가자
남해 광뢰왕님전 빌러가자
서해 광덕왕님전 빌러가자
북해 광태왕님전 빌러가자
사해 용왕님전 빌어올려
고기 생산을 많이 많이
불러 주옵소서
동해 바다 놀던 고기
해운대 골 안으로 점지하소
남해 바다 놀던 고기
해운대 골 안으로 점지하소
서해 바다 놀던 고기
해운대 골 안으로 점지하소
북해 바다 놀던 고기
해운대 골 안으로 점지하소
가는 고기 손을 치고
오는 고기 눈을 감겨
물 밑에 잠긴 고기
물 위에 뜨는 고기
억수 많도 취급하고
뱃머리는 장을 보이고
나룻머리 재자 보여
청깃발에 홍깃발에
이물 칸도 채워주고
고물 칸도 채워주소
<장단> 1장 : 느린 삼공제비, 징을 세마치 친다.
2장 : 빠른 삼공제비, 징을 세마치쳐서 마친다.
<춤사위> : 헛튼춤
16. 탈놀음굿
등장인물
1. 팔대부 영감
2. 할미광대
3. 서울애기
4. 말뚝이
5. 싹불이
6. 어둥이
7. 의원
8. 봉사
9. 박수무당
덧배기 장단에 맞춰 총인물 등장하여 군무하다가 퇴장, 서울애기 등장하여 덧배기 장단에 춤을 춘다. 이어 말뚝이와 싹불이 등장하여 중중모리 장단에 춤추며 타령을 한다.
<아이고 여보 아주머님, 장가라니 웬말이요 서른 먹은 노총각이 색시 생각이 간절하여 새벽잠 못 이루어 이불을 따르르 말아가지고, 이 골목 가며 색시 있소 없소 골목가며 색시 있소 없소, 아이고 아이고 내 팔짜야> (울음 운다)
말뚝이 : 싹불아~
싹불이 : 외야~(대답하고 돌아온다.)
말뚝이 : 우리 아버지가 우리의 좁은 살림살이 재산을 서울애기를 다갖다 주고 술을 사먹고 서울애기한테 녹아 빠졌으니. 서울애기가 얼마나 좋은지 우리도 돈을 주고 술 사먹 으러 가보자.
싹불이 : 형, 너 돈 있나?
말뚝이 : 나 돈 있어.
싹불이 : 나도 돈 있어. (서로 엽전을 꺼내들고 공중에 던져본다.)
팔대부영감 : (등장하여)에라 쉬~ 화란춘성 만화방창 때 좋다. 벗님내야 산천 경치 구경 가 세. 죽창망효(혜) 단포자로 천리강산 들어가니 폭포도 좋다마는 여산 경치가 더욱 좋다. 장안 호걸 아히들아 행화촌 잔치 가자. 행화촌 앞 길도 황혼에 오가더니 소식 조차 돈절하다. 이화집에 맺은 인정 거제포번에 서봉군하여 추풍영상 경별군고 동 화낙지에 춘무족하니 월명하야 경봉군고 여보소 벗님네들.
악 사 : (대답하여) 예~
영 감 : 내가 시골 양반으로 앞에는 팔대부요 뒤에는 사대부라, 근본 있고 신분 있는 양반 인데, 주색을 좋아하다가 그만 그 많다는 재산을 서울애기에게 다 갖다주고 지금은 검은 구름에 흰백로같이 도중걸객(途中乞客)이 되었소.
악 사 : 영감 재산이 얼마나 되었소.
영 감 : 내 재산을 낱낱이 말하리라. (중중모리 창으로)
내 재산을 논지하면
논이 천 접 밭이 천 접
소 백 마리 말 백 마리
돝 쉰 마리 개 백 마리
닭 백 마리
좀좀이 다 팔았어.
서울애기를 다 주었고
보기 좋은 갖은 보화
사기 좋은 상평통보
조롱조롱 꿰매다
서울애기를 다 주어도
날보면 싯죽 뱃죽한단 말이야.
허허허~
(말로)여보소 벗님네들.
악 사 : 예~
영 감 : 내가 서울애기를 데리고 한 잔 먹고 놀아날 제, 개 잡아 장고 미(메)우고 소를 잡 아 큰 북 미워 안성내기 웅붕치정에 용궁 예천 굉과리에 한 바탕 노는데, 쿵마절 사 홀아삐쭉 사장고 복판에 당실 당실 라지라아~ 라루지나아~ (덧배기 장단에 맞춰 서울애기가 등장하여 춤을 춘다. 말뚝이와 싹불이도 등장하여 영감과 서울애 기 사이를 두 번 방해한다. 조금 후에 할미광대 등장하여 춤을 추다가 영감을 찾 는다.)
할 미 : 보소, 동네 사람들요.
악 사 : 예~
할 미 : 내 설움의 말 들어보소.
악 사 : 무슨 설움이 있소?
할 미 : 내가 옛날에 우리집 살림살이가 너무너무 많은 재산을, 우리 영감이 다 없애버렸 소, 내가 내가 원도 많고 한도 많소.
악 사 : 무슨 원이 그리 많소?
할 미 : 논밭 다 팔아 서울애기 다 갖다주고, 소, 말, 망아지 끼워 다 팔아주고 개, 돼야지, 병아리 끼워 다 팔아주고 자식들은 말뚝이, 싹불이, 어둥이 아들 삼형제 다 병신이 바로 만들어두고 서울애기한테만 가고 없으니 내가 원통해서 어이 사노.
(창으로)
영감 영감 내 영감아. 당신과 내가 만날 적에
쌍거 쌍래 하던 일들
일주에 이별 되나
보고지고 보고지고
우리 영감 보고지고.
(말로)보소, 동네 사람요.
악 사 : 예~
할 미 : 영감 하나 못 봤소?
악 사 : 영감 어이 생겼소?
할 미 : (말뚝이 싹불이를 부른다)말뚝아, 싹불아, 어둥아 내 자식들 어디 있노?
말뚝이, 싹불이, 어둥이 : (동시에)엄마, 여기 있다.
할 미 : 내 자식들 이리 다 오너라.
말뚝이 : 엄마, 아버지는 서울애기하고 살고 있으니, 엄마는 내하고 살자.
할 미 : 애라, 이 놈의 자식 아무리 그리한들 그럴 수가…….
싹불이 : 엄마, 말뚝이 형이 그말이 아니고, 아버지는 서울애기한테 가고 없어도 우리끼리 오실랑 도실랑 살자 그말이다.
할 미 : 오냐, 내 자식들, 그럼 그렇지, 얘들아, 네 아비 찾아가자.
영감 그리워 못 살겠다.
말뚝이 : 엄마, 조금 전에 아버지가 요옆에서 서울애기와 같이 술 마시고 소리하고 노는 음 성이 들리더라, 뒤 봉창 구멍을 뚫어서 봐라.
할 미 : (박 바가지를 뚫어 그 구멍으로 본다) 말뚝아 싹불아, 와~. 니 아비 저기서 서울 애기하고 놀고 있다. 내가 서울애기 저년을 뜯어 죽여야지. (팔을 둥둥 걷으며)아 이고, 영감아, 여기 있었구나. 오래간만이다. 너무도 그리워 못 살겠다. 영감아 집 에 가자.
영 감 : 나는 집에 갈 수 없다. 나는 서울애기 아니면 못 산다.
할 미 : (서울애기 가리키며) 그래도 이 년이 그리 좋나?
서울애기 : (비껴서 되돌아 간다.)
영 감 : (서울애기를 데리고 온다)
할 미 : (손뼉을 치며)네 요 년, 내 재산 다 빨아 먹고, 에 요 년 에 요 년.
영 감 : (이리 말리고 저리 마리고 하다가 부딪쳐서 졸도한다)
할 미 : (손뼉을 치며)허허, 동네 사람들요. 우리 영감 죽었네. 싹불아, 말뚝아, 의원 데리고 오너라.
싹불이 : 의원님~. (의원 등장)
의 원 : (진맥하고 침을 놓는다)
할 미 : 우리 영감 죽지는 않겠소?
의 원 : 살다가 살다가 못 살게 되면 공동묘지로 가겠소.
할 미 : 말뚝아, 등 넘어 봉사 데리고 오너라. 경이라도 읽어보자.
말뚝이 : 봉사님 - .(봉사 등장)
봉 사 : 이 집 성씨가 뉘시며, 나이는 많이 되었소?
할 미 : 우리 영감 성씨는 김씨고, 생기는 을사생입니다.
봉 사 : 그 생기 좋습니다. 을사 절사 지화자 절사. ( 경문을 읽고 나서 ) 내가 경을 읽어 잡신을 쫓았으니 박수 무당을 불러 굿을 하여 모든 존신을 모시어 안접을 시키려 면, 집안이 편안하고 영감이 일어나리다.
할 미 : 싹불아, 등 넘어 가서 무당 불러 오너라.
박수 무당 : ( 등장하여 굿을 한다. 청배 5장으로) 에이시자 뫼시자.
존신님네 뫼시자 세존님을 뫼시자.
성조신을 모시자. 군웅신을 뫼시자.
잡귀잡신은 물러가고 속거철리 하옵소서.
(모두들 일어나서 영감은 서울에서 업고, 말뚝이는 할미 업고, 덩더쿵 춤을 춘후에 정사 타령창으로 마친다.)
창 : ( 중중모리 장단으로 )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시구나 절씨구 경사로세, 경사로세.
팔대부 영감의 경사로세.
팔대부 영감이 살아 났으니
이런 경사가 또 있느냐.
얼씨구나 어 -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시구 절씨구.
17. 거리굿 ( 또는 退送굿 )
남선부주(南贍部洲) 대한민국
경상북도 모군 모음
모면 모롱리
시위 삼 년 두리
시위 오 년 두리
십 년 두리호
우별신 좌별신
거리네 별신을 뫼시는데
각각 존신 제위분은
상당 중당에 죄정하여
음감하시옵고
지금에는 거리 해반을 물리치는데
잡귀 잡신 현모 잡신
요귀 요신을 불러주나이다.
사람이 죽어 귀신 되고
구신 죽어 영신 되면
영신 죽어 흥신 되고
흥신 죽어 수부사제가 되나이다.
도살풀이를 불러주는데
(살풀이 장단에 창으로)
온다 귀신아 -
온다 영신아 -
어던 귀신을 먼저 불러주며
어떤 귀신을 먼저 위로할까요.
말도 선후가 있고
글도 선후가 있는데
거리굿이라 해서
선후가 없을까요.
사람은 의미인 경우에 매었고
귀신은 경문에 매었으니
악한 귀신은 악으로 대하고
선한 귀신은 선으로 대하리라.
하늘에 올라가면 옥황님이 어른이고
땅에 내려오면 토지지신이 어른이고
물에 가면 용왕님이 어른이고
산에 가면 산신령이 어른이고
동네 동네 들어가면
골매기 성황님이 어른이고
저승에 들어가면
귀신의 어른은 열 대왕님이 어른이라
제 1 진광대왕 제 2 초장대왕
제 3 송재대왕 제 4 오관대왕
제 5 염라대왕 제 6 변성대왕
제 7 태산대왕 제 8 평등대왕
제 9 도시대왕 제10 오도전륜대왕
이 어른들은
염라국의 용상 좌계 좌정하시고
그 밑에 맡은 바 여러 귀신의 신하들 직거총솔, 태산부근, 결관무사, 제위판관, 이호분명, 이구제왕, 광도군미, 제도귀왕, 경순도통, 오도대신, 삼원장군, 이부동자, 우리아면, 조리제 반, 변종권속, 유언좌비, 광림도량, 수차권량 .......
(以下 略)
이상의 청배가에 이어 ①사장거리, ②과거거리, ③관례거리, ④골매기할매거리, ⑤골매기할 배거리, ⑥봉소(사)거리, ⑦어부거리 ⑧,머구리거리, ⑨해산거리 등을 남무(男巫)가 재담(才 談)과 함께 연기(演技)한다.
부기(附記) :
이가리별신굿(二加里別神굿)은 아침식사후 10시경에 시작하여 이튿날 정오까지 만하루만 에 마치는 굿이기 때분에 각(各거)리의 무가(巫歌)를 다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굿이 가령 30 마디로 이루워진다면 보통 원사설(巫歌)은 10마디에 축원이 20마디의 비율로 이루워진 다고하는데 위에 채록한 각(各)거리의 무가(巫歌)는 그 10마디에 해당하는 것을 후반부(後 半部)는 생략(省略)되었다.
굿이 5-6일(日)씩 계속되는 경우 정창(定唱)하게 된다고 한다.
(金石出 談)
풍어제(豊漁祭)에 쓰이는 무구(巫具)와 무복(巫服)에 대해서는 五. 풍어제(豊漁祭) 절차(節次)와 내용조(內容條)에서 각 거리마다에서 설명하였지만 다시 요약하여 보면 아래와 같다.
무구(巫具)로는 구장(場)의 표시인 괫대, 용선(龍船), 신(神)대 ( 竿 )로 일월(日月)맞이대, 용왕(龍王)대, 처낭(天王)대와 손대, 지화(紙花, 연봉, 작약, 살재비, 덤불국화, 다래와 등), 부채, 신칼, 어포, 놋동이 등이 쓰인다.
(2) 무복(巫服)
무복으로는 무당은 쾌자, 활옷, 고깔, 머리수건, 홍띠 등이 있고, 양중들은 두루마기에 갓을 쓰는 것이나 요새는 갓을 쓰지 않고, 두루마기도 입지 않으며, 바지 저고리와 조끼에 마고자바람으로 굿판에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성 명 : 김석출(일명 김경남, 남)
생년월일 : 1922년 2월 28일생
본 적 : 경상북도 영일군 의창면 옥성리26
주 소 : 부산시 동래구 온천 2동 954-4
직 업 : 무업(악사)
학력 및 경력 : 서당수업, 조부 김천득, 조모 이옥분, 부친 김성수, 모친 이성옥, 형 김호출에 게서 5세때 이래로 무악반주, 무가, 굿절차, 지화제작 등 무업 전반에 대하여 배 우다.
보유종별 : 무악반주( 장고 특히 호적), 무가, 지화제작
성 명 : 김유선(녀)
생년월일 : 1935년 3월 16일생
본 적 : 강원도 명주군 강동면 길리
주 소 : 부산시 동래구 온천2동 954-4
직 업 : 무업(무당)
학력및경력 : 무업, 20세에 6․25동란으로 남편이 전사하자 22세때 安人津에 살면서 강신하 여 점복을 하였고, 1955년 24세때 김석출과 재혼하여 이래 남편 김씨로부터 무 업을 배워 동해안일대에서 큰 무당중의 한 사람이다.
보유종별 : 무가, 무무, 지화제작
성 명 : 이금옥(녀)
생년월일 : 1932년 2월 3일생
본 적 :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교가리 옥계동 414
주 소 : 상동
직 업 : 무업(무당)
학력 및 경력 : 국졸, 12세에 강원도 속초거주, 남무 백운악에게서 무업을 배웠고 그집 맏며 느리로 있다가 남편 사별후 1957년부터 남무 김호출과 재혼하였고, 1965년 김호 출이 사망하자 현재 그 아우인 김석출일행과 함께 무업을 계속하고 있다.
보유종목 : 무가, 무무, 지화제작
성 명 : 정채란(녀)
생년월일 : 1938년 7월 20일생
본 적 : 경북 영일군 구룡포읍
주 소 : 경북 영일군 구룡포읍
직 업 : 무업 (무당)
학력 및 경력 : 무학, 19세때 김재출에게 시집와서 그에게서 무업을 익혔고, 김석출굿패의 일원으로 무업을 계속하고 있다.
모유종별 : 무가, 무무. 지화제작
성 명 : 김영희(녀)
생년월일 : 1945년 6월 7일생
본 적 :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 186-9
주 소 : 경남 양산군 일광면 이천리 399
직 업 : 무업(무당)
학력 및 경력 : 국졸, 14세때부터 부친 김석출에게서 무업을 배웠고, 남무인 제갈태오와 무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유종별: 무가, 무무, 자화제작
성 명 : 제갈태오 (남)
생년월일 : 1943년 2월 27일생
본 적 : 부산시 돌래구 온천동 186-9
주 소 : 경남 양산군 일광면 이천리 399
직 업 : 무업 (악사)
학력 및 경력 : 고졸, 조상대부터 무가인 부친 제갈성도, 모친 박악이의 외아들로 태어났고, 여무 김영희와 결혼한 후 18년간 김석출에게 무업을 배우고 그 일행으로 함께 다니고 있다.
보유종별 : 장고, 징 꽹과리, 지화제작
성 명 : 김용택 (남)
생년월일 : 1947년 1월 7일생
본 적 : 강원도 강릉시 남항진동 산1
주 소 : 경북 포항시 거주
직 업 : 무업 (악사)
햑력 및 경력 : 중졸, 어려서부터 부친인 남무 김호출을 따라다니면서 무업을 배웠다.
보유종별 : 장고, 징 꽹과리, 지화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