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가소: 피해야 할 후회라는 덫>
지구의 모든 바다 중에서도 유난히 특별한 바다가 하나 있다. 바로 *사르가소(Sargasso)의 바다다. 사르가소의 바다가 독특하고
묘한 바다인 데는 이유가 있다. 해안도, 바람도, 파도도 없는 바다이기 때문이다. 겨우 바다의 행색만 갖추었을 뿐 넓고 큰 바다의
모습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사르가소의 바다는 움직임도, 밀려오는 파도도 전혀 없는 ‘해양 사막’ 이라고 할 수 있다.
*사르가소 (Sargasso): ‘모자반’ 이라고 불리는 해조류다.
사르가소의 바다는 문어발처럼 보이는 커다란 해조류로 금세 뒤덮이고 또 뒤덮인다. 실제로 ‘사르가소’ 라는 말이 나온
‘사르가조(Sargazo)’ 는 스페인어로 ‘해조류’ 를 뜻한다. 사르가소의 바다를 최초로 탐험한 사람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다.
콜럼버스는 해조류로 뒤덮인 이 바다에서 3주나 헤매며 제대로 된 항해를 하지 못했다. 움직임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 바다에
갇혀 아메리카 대륙 두 곳을 미처 보지 못해 시간만 낭비한 것이다.
바닷사람들은 하나같이 사르가소의 바다를 두려워한다. 움직임이 전혀 없어 살아 있는 바다라고는 믿어지지 않아서다. 그런데도
장어 떼가 허니문을 보내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 이 이상한 바다에 온다니 신기할 뿐이다. 그야말로 장어 떼에게 이 바다는
신혼집인 셈이다. 장어 떼는 1만 킬로미터를 건너 사르가소의 바다에 도착한다. 그러나 허니문을 보내러 오는 장어 떼 이외의
생물들에게 사르가소의 바다는 피하고 싶은 덫과 같다.
우리도 바람과 해안이 없는 사르가소의 바다처럼 에너지와 희망을 잃어버린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다. 마치 바람이
없어서 움직일 수 없는 배처럼 말이다. 사르가소의 바다는 우리의 삶에 비유하자면 ‘후회’ 와 같은 것이다. 후회에 사로잡히는
순간, 머리는 복잡해지고 행동은 느려진다. 그래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정처 없이 서성이게 된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를 하느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르가소의 바다는 후회하는 우리의 감정들이 길게 늘어져 있는 바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후회만 하고 있으면 이미 지나간 행동과 놓쳐버린 기회에 대한 미련만 느낄 뿐, 현실 속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한다. 앞으로 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걷다가 끝없이 상실과 실패만 곱씹는다. 과거의 실수를 깨닫고 변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만 곱씹다가 끝나는 것이다.
이러한 후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쨌든 항해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과 같은 늪 속으로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은 없다. 사막을 건너려면 그저 묵묵히 걷고 걸어서 건너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걸어야 한다. 쓸데없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항해를 한다는 것은 길을 정해 따라 가는 것이니 확신이 들지 않아도 묵묵히 따라가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후회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자책을 확신으로 바꿔야 한다. 내가 이미 해버린 과거의 행동을 자꾸 곱씹고 후회하지
말자. 과거의 일에 미련과 환상이 남아도 이미 걸어온 길이다. 살아오면서 시행착오를 거친 과거의 순간을 앞으로 나아갈 길로
만들자. 그러면 과거의 일은 내 인생의 오점이 아니라 한 페이지가 된다. 또 과거는 미성숙이 남긴 부족함 가득한 순간들이 아니라 살면서 자연스럽게 거쳐온 단계로 생각된다. 애써 눈을 감고 부정하거나 억지로 변명을 찾지 말고 부족했던 점을 인생의 시나리오 안에 포함시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면 그뿐이다.
인생에서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과거에 후회가 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지나쳐온 여정이다.
인생의 여정은 후회의 총집합도, 죽을 정도로 무겁고 버거운 일도 아니다. 내가 실제로 항해하는 수많은 길 중 하나다.
실수투성이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바람을 헤치고 나아가자. 그렇게 해야 사르가소의 슬픈 추억을 곱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