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아침햇살이 유난히 곱던날 영남알프스 자락을 기웃거려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마땅히 생각지도 않은채 발길
닿는곳까지 머물다 돌아오리라 생각하고 백운산 자락에 들어섭니다
일렁이는 바람들이 옷깃을 여미게 만들고 나무가지는 겨울의 앙상함에 몸서리칩니다...곱디 고왔던 단풍의 흔적은 어
디에도 찾을수 없어...산자락은 메마른 나의 가슴을 들여다보듯 황량함에 백운산 암능을 올라섭니다
하얀겨울이 그리워지며 눈이 내리기전 까지는 산길은 앙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수없이 오름을 향해 걸었던 발걸음
속에 많은 시간들을 가슴에 담겨 추억의 저편으로 차곡차곡 낙엽이 쌓이듯 쌓여가겠지요
색이 바래 말라버린 낙엽들은 아름다운 가을을 뒤로한채 겨울속에 머물며 겨울을 맞이하는 시간... 산정의 추억이 함께
보관한 낙엽의 두께 만큼이나 깊어만 갑니다 ...낙엽이 쌓인 흔적만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모두 행복해 지기를 원하
는 소망도 담아보지요
산자락의 바람은 고요를 한순간에 지워버리고 벼랑아래로 떨어지는 낙엽의 잔재를 보면서 둥둥 떠서 움직이는 세월속에
산과 같이한 날들이 스쳐지나갑니다
산정의 바위처럼 굳어버린 사랑의 언어에도 푸른 솔잎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독야청청 머물고있습니다
보고 또 보아도 만남이 늘 가슴설렘으로 맞아주는 푸른 소나무가 있기에... 수없이 많은 시간이 흘러도 푸른솔의 장엄함
앞에서는 늘 가슴뛰며 바라보는 첫사랑 처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소나무는 알까
벼랑의 바위벽에 하나의 섬처럼 우뚝솟은 소나무의 기상은 언제나 위대해 보이여.. 바람서리에도 변하지 않았고 먼산
그리움에 손흔들어 답하며 머무는 소나무의 굳은 절개를 배워봅니다
변함없이 반기는 정상석은 우리의 삶이 움직이는 새벽부터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자리를 지키면서 길손에게 넉넉한 마
음 한번 베풀어 주니 이보다 지독한 사랑이 있을까
넉넉한 삶이 부러운 남명리의 모습은 언제나 따스해 보입니다... 가을의 풍요로움속에 얼음골 사과의 주산지이며 인심
좋고 포근해 보여... 훗날 새 삶을 산다면 꼭한번 머물고 싶은 곳이지요
산은 많은 바람이 스쳐지나 가기도 하고 비바람과 눈보라가 치기도 하지만.. 의연하게 그 자리에서 묵묵히 지키고 서있
는 모습이 너무나 당당하여 우린 그 기상을 담고자 산정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는 지도 모릅니다
가야할 산자락은 아늑합니다....낙엽을 밟으며 낙엽러셀을 해야할것 같습니다..눈길보다 때론 더 미끄러워 한발한발 내
려서야 합니다
뒤돌아본 백운산정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우뚝솟은 벼랑끝이 바위산이라는 것을 말해주듯 낮은산이지만 영
알의 산자락에 암벽코스로 한층 더 빛이나는 곳이기도 하지요
만산홍엽의 농익은 가을은 사라지고 겨울로 접어든 시간들이 하얀 분칠하고 곱게 기다리는 수줍은 여인같은 겨울풍경
을 그려만 보고싶다...사랑하는 이들과 어께를 맞대고 솜털처럼 푹신한 눈쌓인 오솔길을 따스한 손잡고 거닐면 아름다
운 겨울속 연가를 꿈꾸듯 잘 어울리는 주인공이 될까...
다른 어느것도 필요없이 하얀눈길에 서있는 상상만 하여도 아름답고 서로의 가슴으로 전해오는 따스한 온기만 느낄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아닐까
가지 산정이 가까울수록 초겨울의 하늘빛은 열두폭 파란 실비단 펼쳐 놓은듯 가을내 그리움에 지쳐 눈물조차 말라버린
텅 빈 가슴 닮아서 눈이 시리도록 곱기만 합니다
한낮 따스한 햇살에 졸고있는 억새풀섶에 햇살이 내려앉아 목청부더럽게 노래를 부르고 간간히 기지개 켜며 산책나섰
던 바람 한 두잎 목숨처럼 나풀거리고 마른 잎새 볼을 꼬집고 메마른 억새풀 겨드랑이 파고들며 간지럼도 태우며 애교
를 부려봅니다
나목들은 바람이 간지러운듯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다가도 이내 웃음짓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고... 이파리 다 떨구어
낸 중년의 나무들은 한참을 살아온 자신의 나이를 헤아려 보는듯 슬며시 한낮의 꿈속으로 들어간다... 함께걷은 자신도
입가엔 한아름 미소를 머금고 아름다운 청춘의 가슴이 되어보지요
꿈길같은 아름다운 가을날의 단풍빛 추억을 떠올리며 그날이 그리워집니다...그리움에 지쳐 바싹 타버린 가슴속을 쓸어
내며 찬찬히 불어오는 바럄결에 볼도 부벼보기도 하고 햇살품에 살풋 안겨보는것도 작은 기쁨이라
부채살처럼 쏟아지는 햇살이 한올한올 빗질하여 오선 그려넣고 빈가지 끝에 앉아 꿈꾸며.. 속살거리는 여린 바람소리
마냥 행여 그대가 불러주는 소리가 들리는듯 자꾸만 돌아보며 소중한 악보처럼 옮겨봅니다
온몸으로 맞이하는 햇살의 눈부심이 먼산 산그리메를 그려놓고 또 다시 머무는날은 하얀세상의 추억을 만들어 보리라
하늘빛 곱게 내려앉은 초겨울의 한낮꿈이 깨어나지 않기를....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북릉자락에 눈길이 머물까....운문사로 하산할 그날이 오면 내려서리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가을날이 머물렀던 가지산정은 첫눈이 오는날 다시 찾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등뒤에
따스한 햇살 처럼 포근한 마음이 늘 머물러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