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위에서
김 남 천
“그건 내가 들지요”
하고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K기사는,
“가만 좀 둡쇼, 내 거기까지 들어다 올리게”
하고 병을 제 옆에로 옮겨놓고 그대로 꺼꿉 서서 지카다비의 단추를 채웠다. 병이라는 건 아가리가 비교적 넓은 자그마한 흰 유리로 된 것인데, 그 속에는 모새¹를 얄따랗게 깔아놓은 물 속에 동전닢 같은 자라 새끼가 세 마리 떠돌고 있었다. 병은 농이로 얽어 매어서 들손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 세 마리의 자라를 대성리(大成里)서 하룻밤 묵은 기념으로, K기사에게서 얻어 들고 서울로
가려는 길이다.
실인즉 춘천까지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버스가 ‘빵꾸’를 하였다. 그 ‘빵꾸’한 고장이 여기서 가평(加平) 쪽으로 한 킬로쯤 간 곳이었는데 탔던 손님들이 길 위에 내려서 꼬드라졌던 다리도 놀려보고, 소변도 보고, 저만큼 떨어져서 경춘가도와 평행선을 그은 듯이 뻗어나가는 철롯길에서, 한참 흙을 쌓아올리는 공사장도 바라보고…… 구래서 나도 남들이 하듯이 신작로 옆에서 멀찌감치 북한강의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였는데, 그때에 이십여 명 인부들이 서물거리는² 공사장 가운데서, 골프 바지에 퍼런 감발을 치고 캡을 뒷데석³에 올려놓고 청년이 하나 이편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시궁창도 건너뛰고, 배추 포기에 싱싱한 밭두렁도 넘어뛰면서, 청년은 우리 편으로 가까이 걸어왔다. 처음 나는 그를 별로 눈여겨보지도 않았으나, 그 청년이 걸어오면서 내 쪽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 같아서 그가 신작로의 언덕을 기어오르고 있을 때엔, 나도 그의 몸뚱아리⁴를 눈 붙여서 굽어보고 있었다. 그러나 길 위에 올라서서 정면으로 이편을 향하여 걸어오는 청년의 얼굴을 바라보고도, 그 청년이 나를 찾아오는 것인 줄은 미처 알지 못하였다.
“박 선생 아니신가요?”
하고 묻는 말에도 나는 내 옆에 섰는 승객 중에 박가 성 가진 이가 없는가를 돌아보고서야,
“네에 , 내가 박영 찬이올시다”
하고 대답할 만큼, 지금 내 앞에 선 꺼머특하게 해에 거슬린, 건강한 얼굴엔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다시 찬찬히 훑어보니 몰라볼 사람이 아니었다.
오륙 년째 만나지 못하는 동안, 나의 얼굴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으나, 나보다 네다섯 나이 어렸던 그는 그새에 얼굴과 허우대가 모두 장대해졌던 것이다. 지금 스물여섯, 고등공업을 나와서 토목 방면에 종사하기도 사 년째 된다 한다.
본시 나는 K기사와 친구간이 아니었고, 물론 거래도 없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그의 종형⁵과 내가 막역한 친구간이었는데, 우리네가 사회 운동에 물불을 가리지 못할 때, 그는 중학교의 상급반으로 조용히 입학 준비에만 골똘해 있었다. 그의 종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미아리 묘지에서 보고는 지금이 처음인데 동기가 없고 친척이 많지 않은 K기사는 종형의 친구인 나를 여기서 만난 것이 다시 없이 반가웠는지도 알 수 없다.
우연히 만난 게 더욱 졸연찮은 뜻이 있는 것 같고, 이 시각 이 처소에서 승합 자동차가 고장을 일으킨 것 역시 돌아가신 종형의 지시인지도 알 수 없은즉 바쁘지 않은 길이거든 하루만 묵어가라고 졸라댄다.
바쁜 길은 아니었다. 내가 한직(閑職)에 있는 만큼 일갓집 혼수일로 춘천을 다녀오는 길이니, 하루 이틀 늦었다고 변통이 날 일도 없었다. 철롯길을 타고 여행은 해보았고, 공사 같은 것을 지나는 길에 바라다본 적이 있으나 그런 방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활 같은 건 생판으로 알지 못한다. K기사의 권하는 말도 어지간하였지만, 이러저러한 호기심 같은 것도 섞여서, 그가 끄는 대로 대성리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였다.
버스의 ‘빵꾸’를 때워서 고치고, 내렸던 승객이 다시 오르기 전에, 우리는 그곳서 ‘구미(組)’의 출장소가 있는 데까지 한 킬로 가까운 길을 걷기로 하였다. 사무실 가까이 왔을 때에야 버스는 우리의 옆을 지나갔다. 나는 그 길로 출장소의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그러나 숙소와 사무실이 멀리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함석 지봉으로 얇디얇은 바라크⁶였지만, 산 밑의 공사를 위하여 기다란 두 채의 단층집을 지였다. 사무실이 세 칸인데, 주임 기사가 한 방을 쓰고, 회계가 다른 한 방을 쓰고 남아서 널따란 한 칸엔 K기사의 커다란 책상을 위로, 금년 봄에 고봉⁷ 토목과를 갓 나온 내지인(內地人) 기사의 책상, 그리고는 공업학교를 나온, 머리가 더부룩한 스무 살 전후의 두 어린 청년의 책상이 각각 하나씩, 그럭하곤 청사진(靑寫眞)을 만드는 기계, 비품을 넣어둔 궤짝, 나무통, 함석 대야, 측량 기계, 깃대, 그런 것이 질서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옆방이 오락장으로 되어 있는데, 당구판 두 개가 가운데 육중하게 놓여 있고 가상으로 돌면서는 장기, 바둑판의 설비가 알맞추 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일 동(棟)이 되어 있고, 그와 평행선으로 뒤채에는 가족료(家族寮)와 독신료(獨身寮)를 갈라서 숙소를 꾸미고, 그 중 한 방을 넓게 잡아서 식당을 만들었다. 주임 기사와 회계의 두 내지인을 제하곤 전부가 독신료를 한 칸씩 차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침 주임 기사는 경춘 철도의 간부와 춘천서 공사비 ‘타합(打合)’을 한다고 자리가 비었고, 나머지 소원(所員)은 모두 K기사의 수하인 모양으로, 나는 그들의 정중한 인사를 받고, 다시 K기사의 작고한 형님의 친구로서, 친형님이나 진배없는 귀중한 손님이라는 대우를, K씨의 소개로 하여 받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책상 위에는 그리다 놓은 도면이 네 귀를 압정으로 눌린 채 흰 보자기를 쓰고 있었다.
“마침 한가한 때 잘 오셨습니다. 인저 공사는 얼추 끝나고 크지 않은 다리와 옹벽(擁壁) 몇 군데와 축저(築堤)가 좀 남었는데, 작은 것까치 설계할 것은 어제까지 모두 끝이 났습니다. 그 도면대로 공사를 감독하고 때때로 측량이나 해주면 별일 없으니까, 인저 머리를 썩일 일은 없어진 셈입니다. 그럼 저녁 전에 목욕이래도 허시지요.”
나는 K기사의 방 안에 들어서자, 곧 이러한 말을 들었다.
“난, 목욕 안 해두 좋습니다. 어서들 허십시오”
하고 사양하였으나, 먼저 하지 않으면 밑의 사람이 그때까지 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바람에, K기사와 전후해서 나는 목욕을 하였다. 몸에서 초가을날의 티끌을 털고 방으로 돌아오니 가벼운 ‘유카타’⁸를 내어준다. 옷을 갈아입고 다리를 뻗고 앉아서, 흡사 좋은 여관에 투숙한 것 같은 느낌을 품을 수 있었다.
나는 K기사가 잠깐 밖으로 나간 틈에 방 안을 둘러보며, 아까 오락장을 구경할 때에 은연히 느끼었고, 그 뒤에 목욕탕 속에 몸을 잠그고 앉아서 똑똑히 생각하였던 ‘기술자의 생활 상태’라는 것을 막연히 머릿속으로 되풀이해 뇌어보고 있었다. 벌써 퍽 전부터 기술 방면의 학교의 입학률에 대한 것과, 기술자의 구인난 같은 것에 대한 신문 기사는 많이 보았으나, 취직난이 유레가 없는 시대에서 이들의 대우란 과연 ‘특등석’의 느낌 이 없지 않다고, 지금 눈앞에 이들의 생활을 친히 목도하면서 거듭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선망이 절반, 질투가 절반, 그러한 온전하지 못한 나의 생각을 의식하고 고소를 입술 위에 그렸다. 그러나 문득, (K와 같은 청년은 연세로는 불과 사오 년의 차이지만, 우리와는 딴 세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와는 아무런 공통된 사
색도 경험하지 않으면서, 다른 개념과 범주를 가지고 세계를 해석하고, 통하지 않는 술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붙들리자, 뜻하지 않았던 공포를 새삼스레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방 안을 둘러 살펴 나의 생각의 반증이 될 것을 구해본다. 옷가지나 이불까지 골방에 집어넣었는지, 아무 장식도 없는 방 한구석엔, 화약통의 한쪽을 뜯어버린 나무통에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그 앞에 바둑판만한 작은 책상이 하나 달름하니⁹ 앉아 있을 뿐.
‘책! 책이 가장 K의 내면생활을 증명할 것이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내심에 꺼리는 것을 그대로 책궤 앞으로 기어갔다.
‘혹시 『킹구 청년』이나 『강담』의 애독자는 아닐는가?’
그랬으면 하는 생각과 제발 그렇지 않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함께 기묘하게 설켜 도는 것 같다.
『난센스 전집』이 한 권 끼었으나, 『개조』도 있고, 『중앙공론』도 끼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책은 합쳐서 네다섯 권, 그 나머지 네다섯 권은 토목에 관한 기술적인 특수 서적, 학생 시대의 노트, 그러나 그 밖에 근 스무 권에 가까운 책의 전부가 수학사나 과학사, 단 한 책이기는 하나 『자연 변증법』의 암파문고¹⁰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목을 굽히고 궤짝의 뒤를 살펴보니 한 자 길이로 두겨놓은¹¹ 책 가운데는 알랭의 번역이 한 권, 괴테와 하이네의 시집, 포앙카레의 작은 책자들이 섞여 있었다. 나는 가슴속을 설레고 도는 동계¹²를 스스로 의식하면서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감상의 결론을 찾으려고 애써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가 간단명료한 결론을 붙들기 전에, 기사는 작은 상자를 하나 들고 밖으로부터 들어왔다. 상자를 들여다보며 싱글싱글 웃는 것이 수상해서,
“그게 무업니까? 그 속에 무에 들었소?”
하고 물으니까, K기사는,
“장난감이 올시다”
하며 상자를 가만히 내 앞에 내려놓는다. 그것 역시 작은 나무통을 한쪽을 뜯어서 만든 것으로 시멘트로 한편엔 우물을 만들고 또 한편엔 모래로 사장을 장만해서 작은 세 마리의 자라 새끼의 놀이터를 꾸며놓은 것이었다. 두 놈의 자라 새끼는 물속에 목을 움츠리고 자갯돌을 기대어 숨어 있었고, 그 중의 한 마리는 사람과 친근해져서인지 우물턱을 기어서, 사장 위로 잔등을 말리러 아슬렁아슬렁 기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뜻밖의 것이 눈앞에 나타난 게 신기하고도 우스워서,
“허, 허어”
하고 여태껏 혼자서 생각하던 궁리조차 잊어버리고 나무 상자를 들여 다보았다.
“처음 보기 엔 그로테스크해서 징그럽지만, 보아나면 아주 귀여운 아이 코오모놉¹³니다”
하고 K기사는 손가락으로 자라를 엎어 눕힌다. 빨간 배때기를 드러내놓고 자라는 네 다리를 바둥거렸으나, 이내 목을 길게 뽑고 주둥이께로 모래판을 누르더니 발딱 잔등을 뒤집는다.
“하하하”
하고 K기사는 그것을 들여다보며 웃고 있다. 나도 자라가 제 몸을 뒤집는 것 이 재미가 나서 그의 웃음에 덩달아 껄껄껄 웃어보았다.
그때에 식모가 와서 저녁 준비가 되었다고 알리어서 나는 K기사의 안내로 식당에 갔다. 내가 손님이라고 가족을 가진 회계까지 함께 끼어서 저녁은 만찬회로 차렸다고 한다. 북한강에서 잡아들인 천어14로 회를 저며놓고 자라로 국을 끓였다. 통째로 뒤꼍에 놓은 ‘월계관’¹⁴을 따라서 따끈하게 데우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시골이라 아무것두 없지만, 술만은 보시는 바 한 통이 그득하게 준비되어 있으니까, 어데 하루나죽 거나하게 취하야주십시오.”
K기사의 이러한 말에 나는 일동을 향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고 그가 건네는 술잔을 받아 입술로 가져갔다.
네 시간 가깝게 술좌석을 가졌으나, 그동안 오고 가고, 주고받고 한 대화는 별것이 없었다. 좌중이 모두 즐기고 어울릴 만한 화제를 따라, 같이 수작하고, 함께 웃고 떠들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마지막 판엔 계집 있는 술집으로 이차회라도 가야지 홀아비술이란 게 궁상맞아 될 일이냐는 발론¹⁵까지 나게 되어, 일시 자리를 떠날 것도 같았으나, 간대야 술도 좋지 않고, 방방이 인부들로 하여 소란스럽고 그럴 테니, 얌전한 계집애를 두서넛 불러들여 앉은자리에서 그대로 내처 놀아보자는 의견이 주장이 되어, 드디어 젊은 작부가 둘이나 좌석에 끼이게 되면서는, 육담과 노래와 환성과 춤이 좌석을 떠들썩하니 독차지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자리를 물리고 K기사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엔, 노독(路毒)도 있고 하여 나는 거나한 정도를 넘어 잠뿍이 취해버렸다. 내 자리라고 깔아놓은 이불 위에 펄썩하니 주저앉는 것을 보며,
“공사장의 재미는 이렇게 무의미합니다”
하고 K기사는 말하고 있었으나, ‘재미라면 세상에 이런 재미가 어데 또 있을 게냐?’는 생각이 속으로 간절한 것을, 나는 그대로,
“덕택에 아주 유쾌하게 놀았는걸요”
하고 사례의 말을 했을 뿐이었다.
“어서 주무십시오”
하고 그가 권하는 대로 나는 자리 속으로 기어 들어갔으나, 취안으로 바라보는 눈에, K기사가 담배를 한 가치 피워 물고 아까 들여다 놓은 자라 새끼를 또다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몽롱하게 비치었다. 이윽고 K기사는 소매를 걷어붙인 굵다란 바른 팔로 자라 새끼를 주무르는 품이, 아까처럼 그놈을 모두 뒤집어 엎어놓논 장난을 하는 모양이었다.
“자라가 재미납니까?”
하고 감기는 눈을 비집고 말을 건네니,
“장난삼아 주물렀더니 인제는 습관처럼 되어서 심심풀이는 됩니다. 밖에서, 돌아와서 이놈을 한 놈씩 엎어놓고 기운 있게 발딱발딱 뒤집는 걸 보면 어쩐지 유쾌합니다. 맥이 없거나 병이 있을 땐 이놈이 엎어놓으면 엎어진 채, 제쳐놓으면 제쳐진 채, 겨우 다리만 두어 번 버둥거릴 뿐이지요.”
이렇게 설명하는 K기사에게,
“나두 왔던 기념으로 자라 새끼나 얻어갈까?”
하고 말하였으나,
“그럭허십쇼. 강에 나가면 얼마든지 잡을 수가 있습니다”
하는 K기사의 대답의 말은 잠결에 들은 둥 만 둥 하였다.
아침에 자리에서 눈이 뜨였을 때 벌써 K기사는 방 안에 있지 않았다. 자라에 관한 이야기 같은 건 잊어버리고, 어데 새벽에 볼일이 있는 줄만 알았더니, 뒤에 알고 보니 그는 공업학교 출신의 부하 한 사람을 데리고 자라를 잡으러 강에 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춘천서 오는 버스가 두 시간이나 있어야 이곳을 지난다고, 다음 정류장까지 세 킬로 남짓한 길을 공사 구경을 하면서 걸어가자고 제안하였고, K기사는 나의 간청대로 아침을 먹고 이렇게 지카다비를 신으면서 나서는 판이다.
지카다비의 단추를 채우고 난 K기사는 바른손에 자라가 든 유리병을 들고 일어섰다. 나는 소원 일동에게 출발의 인사를 하고 K기사와 함께 길 위에 나섰다.
얼마 가면 곧 철롯길이 바른쪽으로 나타났다. 다리목에서도 끊어지고, ‘옹벽’ 옆구리에서도 잠깐 중단되고 하였으나, 철로는 얼추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K기사는 철도에 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들려주었다. 그리고 도로와 교차되는 곳은 평면 교차는 절대로 허가하지 않고, 교통 사고가 발생하는 ‘후미키리’¹⁷라는 걸 굼후엔 허락지 않으므로, 육교(陸橋)나 ‘가드’로 서로 엇갈린다는 설명을 붙인 뒤에, 지금 자기가 가는 공사장은 그러한 교차점의 ‘가드’를 만들고 있는 데라고 말하였다.
K기사의 이러한 이야기는 물론 재미가 있었으나, 길 위에서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이러한 청년들의 세상을 대하는 근본 태도가 무엇인가? 하는 그런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잠깐 동안 이야기가 끊어진 것을 기회로,
“아마 인부들을 많이 취급하게 될 터인데, 그런 사람들의 생활상태 같은 데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게 됩디까?”
하고 물어보았다.
“인부를 한 때엔 몇천 명씩 다룰 때가 있지만, 우리와의 직접 관계는 별로 없습니다. 오야카타¹⁸가 있고 그 밑에 다시 십장이 있고, 그렇게 해서 노동자와의 직접 교섭은 대개 이런 계단을 거치게 됩니다.”
이렇게 대답은 하면서도 내가 묻는 근본 주지가 어데 있는지를 K기사는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한참 동안 덤덤히 걸었고, 나도 길을 따라 벌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듯 하며 아무 말 없이 따라갔다. 길이 엇비스듬히 커브가 진 곳을 돌아서니 멀리 보이는 고개턱에 공사장이 나타났다. 인부들이 자갈과 시멘트를 지고 나르는 가운데 십장과 오야카타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K기사는 이윽고 무겁게 입을 열면서,
“요컨대 인도주의란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일종의 센티멘탈리즘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물론 피할 수는 없는 사정이었겠지만, 내 종형 같은 이는 비극의 주인공이겠지요. 박 선생님 앞에서 이런 소리 하기는 무엇 허지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K기사의 말에서 아무러한 충격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종형이나 나까지를 범박하게 인도주의보 합쳐서 간주하려는 그의 의도가 밉기도 하였지만, 확실이 이러한 둔하게 보이는 그의 신경 속에는 꺾을 수 없는 어떤 신념 이 들어 보여서, 나는 두려움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으니, 그는 뒤이어 이렇게 띄엄띄엄 이야기하였다.
“처음 얼마는 몹시 신경에 거슬려서 제깐으론 고민도 해봤으나, 지금은 청년다운 센티멘탈이라고 집어치웠습니다. 가령 이런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터널의 천정 이 무너지든가, 화약이나 폭발물에 부주의하여 사고가 일어나는 경웁니다. 이런 경우에 나는 지금 확실히 부상자보다도 사망자를 희망합니다. 사망자에겐 장례비나 또 유족이 있으면 일이백 원 주어버리면 그만이지만, 한 달 두 달씩 걸리는 중상자는 아주 질색입니다. 돈뿐만이 아니라 성가시기가 짝이 없습니다. 이런 때에 심중을 오락가락하는 인도주의적 의분이란 그리 높이 평가할 것이 못 되는 줄 알었습니다. 언제나 큰 사업을 위하야 사람의 목숨이란 초개같은 희생을 받어왔고, 또 그것 없이는 커다란 사업이란 완성되지 않는 게 아닙니까. 이런 경우에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보는 건, 결코 사람의 가치 그 자체를 대수롭잖게 여기는 거와 혼동할 수는 없을 줄 압니다. 이 자라를 보시지요.”
K기사는 흰 병을 높직이 쳐들었다. 자라 새끼는 깜짝 놀라서 모새에 반신을 묻고 목도 들지 못한다.
“우리가 이놈을 보고 즐겁듯이, 이 자라들도 유쾌하고 즐거울리야 없겠지요. 이런 때에 자라의 입장에서 인도주의를 따진다면 그건 확실히 우스운 일이 아닐까요. 그러나 무엇이든 따져보면 이야기는 비슷비슷합니다. 그렇다고 자라 새끼와 사람을 한 자리에 세우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러한 말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따지면 이론이 서지 않을 리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이론을 세우는 데 있는 것은 아닐 것 같았고, 역시 이런 생각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던 내 자신에 대한 당황한 심정의 불안정 상태, 그런 것이 지금의 나의 심리는 아닐런가 생각되었다.
“그런 것에 머리를 쓰는 것보다도 많은 두뇌의 나타나지 않는 정신적 노력이 하나의 방정식으로 간단하게 표현된 것을 되새겨 생각해보며, 공식과 방정식과 공리와 정리의 싸늘쩍한 숫자나 활자 가운데서, 뜨거운 휴머니티를 느껴보는 것이 일층 더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결론처럼 이렇게 말해버리곤 그는 십장과 인부들의 인사를 받으며, 다리의 기둥을 쌓아올리는 세멘 콩쿠리¹⁹ 장으로 성큼성큼 뛰어갔다. 나는 그의 경쾌하고도 건강한 뒷자태를 쳐다보며, 나의 맥 풀린 초라한 모양을 눈에 보는 듯하였다. 나는 K기사의 손길 하는 대로 사다리를 올라가서 공사를 구경하고 ‘옹벽’ 쌓는 데를 지나서 한참 만에 다시 겉 위에 나섰다. 정류장은 이내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겉 옆에 있는 담배 가게에는 부녀자들의 승객이 많이 뭉켜²⁰ 있었다. 그 틈에서 열두어 살 났을 계집아이가 하나 일어서더니 K기사에 게 인사를 한다.
“오오 너, 길녀, 어디 가니?”
하고 K기사는 그의 앞으로 가까이 갔다.
“인제 공사가 끝나서 중앙선으로 이사가요”
하고 길녀라는 아이는 뒤꼍에 앉은 제 어머니와 동생을 돌려다 본다.
“중앙선 어데라던?”
하고 다시 묻는 말엔,
“인부 모집하러 온 사람도 모른다구 하면서 가보아야 알겠대요”
하고 대답한다.
“차가 만원이나 안 됐으면 좋으련만.”
“우린 여기서 도라쿠를 기대려요.”
“그럼 아버지랑은 그 도라쿠 타구 이리루 오시냐?”
“네에.”
그렇게 대답하곤 저의 동생이 찌드럭거려서 길녀는 어머니 옆으로 갔다. K기사는 가게에서 과자를 두 근 무게나 되게 사더니 길녀를 준다.
“길에서 아이들허구 입이래두 놀려라.”
주는 과자를 부끄러운 낯으로 몇 번 사양하였으나 길녀는 그것을 받았고, 그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던 그의 어머니도 머리를 약간 수그리었다.
버스가 느리게 흔들거리며 가평 쪽에서 굴러온다.
“그럼 서울 들르는 대로 한번 찾아오슈. 이번엔 너무 폐를 많이 끼쳐서……”
이렇게 나는 인사를 하고, K기사의 손에서 자라가 든 병을 받아쥐고, 만원 가까운 자동차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때에 차 안에서 웬 양복쟁이가 하나 머리를 내밀면서,
“여기 중앙선으로 가는 인부들의 가족이 없소?”
하고 고함을 질렀다. 이 물음엔 바로 창밖에 섰던 K기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길녀와 그의 가족이 따라 나왔다.
“주인의 이름이 뭐유?”
“김대성이야요.”
양복쟁이는 수첩을 조사하더니,
“그럼 이 차에 올라타슈!”
한다. 아이까지 셋이 더 차 안에 들어앉고, 지저분한 보퉁이까지 두 개는 뒤에다 넣다가 못 다 넣고 차 안으로 굴러들어왔다.
나는 자라 새끼의 병을 건사할 길이 걱정되었다. 가까스로 추켜들고 다리를 오그리고 앉아서 나는 차가 떠날 때에 K기사에게는 변변히 인사도 하지 못하였다.
차는 소란스레 덜그락거리고 길이 험한 대선 한두 자씩 까불었다. 그때마다, 주의도 하고 조심도 하지만 병 속의 물은 출렁거리고 그 물은 연방 나의 옷을 적시었다. 그러나 K기사가 자라를 장난하던 정 경 이 눈에 선해서, 나는 극진히 병을 간수하기에 애썼다.
내 옆을 뚫고 앉은 길녀는, 앞자리에 겨우 궁둥이나 붙이고 앉았는 어머니와 동생 에게 K기사에게서 받은 과자를 옮겨주었다.
“엄마두 먹어보려마”
하는 딸의 말에, 부인네도 과자를 한 조박 입으로 가져가며
“백의 한 사람두 드문 양반이다”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이 부인네의 말이 K기사를 칭찬하는 말인 것을 이내 알아차리고, 그는 인부들간에도 친절한 청년이라는 대접을 받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K기사가 길에서 하던 말을 되새겨보며, 그가 선물한 자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한참 동안 병 속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차는 급커부를 돌며, 바퀴로 돌덩이를 넘는지 한 번 커다랗게 바운드를 하였다. 몸의 자세를 잡느라고 엉겁결에 의자를 붙들 새도 없이, 한 손에 들었던 병이 창문 창살에 부딪쳐서 깨어지고, 내가 허겁지겁하는 통에 병은 갈라져서 팔소매와 무릎에 물과 모새가 쏟아지고, 자라는 두 놈은 창문 밖으로, 한 놈은 구두 코승이 밑으로 굴러떨어져버렸다. 깨어진 유리 쪼박²¹을 붙든 채,
“스톱해주!”
하고 부르짖었으나, 운전수는 기관의 소음으로 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였고 같은 자리에 앉은 승객들의 표정이, ‘자라는 낫살이나 먹은 양반이 무슨 자란가! 한강에두 흔한 게 자란데…….’ 하고
못마땅히 생각하는 것 같아, 그 다음에 다시 한번 불러본,
“여 운전수 스톱!”
한 나의 목소리는, 더욱 당황하고 나직하여 차는 귀담아 들을 턱이 없었다. 나는 다시 외쳐볼 기력도 없어서, 한참 어쩔 줄을 모르고 깨어진 유리를 들고 멍 청하니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己卯六月 二― 日於病床)
-끝-
2016년 5월 30일 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