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한글 창제자, e-Book으로 활자 종주국의 정통성 증명
“미래지향적 출판 시스템과 인프라 구축 방안 연구할 것”
이기성 한국전자출판교육원(eBook Academy) 원장/ 계원디자인예술대학 명예교수
활자는 당대의 지식과 문화, 새로운 가치를 널리 파급하고 전승하는 최적의 수단이다. 세계 역사적 예로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을 들 수 있겠다. 활판에서 대량으로 찍혀 나오는 독일어 성서는 라틴어와 양피지 성서에 의존하던 로마 가톨릭의 유럽 지배력을 종식시켰다. 이러한 메가톤급 파급력을 지닌 활자 인쇄술의 가장 깊은 뿌리는 놀랍게도 우리나라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이를 줄여 ‘직지심체요절’ 혹은 ‘직지’라 불리는 이것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공장에서 첫 인쇄물이 나오기 78년 전에 이미 존재했다. 사실 활자는 기록을 목숨만큼이나 중시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상징이며 구체적 증거다. 21세기 인터넷 시대에서 활자는 e-Book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맞춰 진화했다. 언제 어디서든 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고급 출판물을 열람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능성·확장성은 고려시대 활판의 혁신과 오버랩 된다. IT강국 대한민국에 걸맞게 e-Book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이를 꽃피운 주역인 한국전자출판교육원 이기성 원장을 찾아 그간의 노고와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출판은 민족 DNA 전승의 과정…‘아버지의 뜻 이어갈 것’
아직 컴퓨터라는 것이 생소하던 시절, 당시에는 컴퓨터 제조회사에 따라 한글 입력 값이 제각각이었기에 호환이 어려웠다. 그러나 현재 한글을 인식하는데 필요한 처리·통신 표준 코드가 각 워드프로세스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한글 입·출력에 전혀 막힘이 없다. 이는 DTP(Desktop Publishing) 발전과 한글 폰트 개발에 주력한 이기성 원장의 노고의 산물이다. 이 원장은 “온 국민이 고급 정보를 정확히 전달받기 위해서는 통일된 DTP프로그램과 폰트의 필요성을 느꼈다. 국가적 관점에서 각 분야의 지식들이 상호 교류되고 융합돼 한층 진보된 지식으로 재탄생되는 ‘지식순환’에 일조하겠다는 일념으로 전자출판에 힘을 쏟았다”며 지금껏 연구에 쏟아온 열정의 취지를 밝혔다.
사실 이 원장이 전자출판을 포함한 출판업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부친의 영향이 크다. 한국 출판업의 반석을 다진 그의 부친은 유서 깊은 교과서 출판사인 ‘장왕사’의 대표 이대의씨다. 일제시대 일본의 메이지대학에서 유학했던 그의 부친은 해방 조국을 맞이해 한글을 모르는 젊은이들의 현실을 개탄하며 출판업에 뜻을 세웠다고 한다. 부친이 설립한 ‘장왕사’는 곧 국내 교과서 출판업의 독보적 존재로 성장했고, 이러한 성공이 아들인 이 원장에게 영감을 준 듯하다. 1960년대 부친의 뜻을 이어 출판업에 뛰어든 이 원장은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발상인 ‘컴퓨터를 이용한 출판의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다. 이어 그는 1971년 유네스코와 일본 TBDC에서 실시하는 출판편집 교육과정에 합격, 선진 출판기술을 습득했다. 이후 한국에 귀국한 그는 전자출판기법에 대한 청사진을 공식적으로 발표해 큰 혁신을 예고했다. 그는 “당시 한국 출판계의 대표격의 편집자를 배출한 출판엘리트 코스에 UN군 사령부에서 익힌 영어실력과 현장 노하우를 바탕으로 합격했다”며 당시의 감회를 밝혔다.
통신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다
이 원장이 컴퓨터를 이용한 출판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발전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유년기 시절부터 남달랐던 기계에 대한 관심을 꼽았다. 이 원장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청계천 주변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진공관, 콘덴서를 구해 라디오 송수신기, 무전기 등을 만들었다. 마땅히 조립법을 배울 곳이 없어 독학으로 만들어 봤는데 아마도 기계 조립에 감각이 있었나보다. 송신하는 전파가 전 세계에 송출될 정도로 강력하다보니 정부에서 나를 간첩으로 오인해 수사한 적도 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원장은 경기고등학교 시절 신문부원으로 활동하며 ‘주간경기’를 발간했고,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기계체조를 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진학해 지리학을 전공하는 등 당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재다. 대학 시절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갖고 독학으로 관련 프로그램과 언어 공부를 시작한 그는 컴퓨터에 대한 열정을 본격적으로 불태우기 시작했다. 또한 현재까지 약 3백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컴퓨터는 깡통이다」라는 책을 발간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속적인 교류와 연구…‘한국 전자출판은 계속 된다’
이 원장은 1988년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에 세계 최초로 ‘전자출판론’ 강좌를 개설, e-Book출판 산업에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와 함께「전자출판(CAP)」을 출간해 국내 전자출판의 반석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을 꼽으라면 출판·인쇄분야에 있어서 한글 처리 표준 코드와 한글 통신 표준 코드를 제정해 보급한 것을 들 수 있다. 즉 어느 컴퓨터나 단말기에서라도 같은 방식으로 한글을 출력할 수 있도록 일종의 규약을 제정하고 구체적 구현 툴을 개발한 것이다. 그는 “당시에는 컴퓨터 제조회사마다 한글 입력 값이 달랐다. 즉 A社 PC에서 작성한 한글 파일을 B社의 PC에서 출력하거나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제약사항들이 국내 전자출판의 발전 가능성을 옭아매고 있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원장은 출판업 1세대로서의 의무감에 한글 처리 표준 코드와 한글 통신 표준 코드의 정립 필요성을 더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다. 또한 이 원장의 대표적 업적은 한글 기반의 원거리 데이터 교환이다. 80년대 말, 컴퓨터 간 한글 전송이 불가능한 점은 국내 컴퓨터 통신 발전에 있어 먼저 수정돼야할 사안이었는데 이 점을 개선한 그의 성공은 혁신적인 일이었다.
출판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
이 밖에 그는 PC에 통일된 한글 코드인 KSC-5601-92의 제정을 주도했다. 전두환 정권 당시 공업진흥청에서 주관한 KS규격코드는 이미 완성된 글자형태를 쓰는 시스템으로써 확장코드를 포함 한다 쳐도 4280자 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그는 한글 1만 1,172자를 모두 구현할 수 있는 조합형을 주장했으며 이는 당장 도래할 컴퓨터 간 데이터 통신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시 문화부 협조를 바탕으로 바탕체, 돋움체 등을 개발했고, 이로써 모니터 상에 출력되는 한글의 기본형을 완성했다.
이런 그의 개발은 그가 몸담았던 국내 최초의 PC통신 동호회, ‘엠팔(Electronic Mail Pal)의 역할이 주요했다고 한다. 엠팔은 컴퓨터 1세대들의 모임으로 묵현상 메디프론디비티 대표, 박순백 드림위즈 부사장, 안상수 홍익대 교수,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박흥호 나모인터랙티브 대표, 안대혁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이사, 염진섭 전 야후코리아 사장 등 국내의 기라성 같은 컴퓨터 데이터 통신 분야의 거목들이 젊은 시절 몸담았던 동호회였다. 이 원장은 엠팔의 2대 회장을 역임했다.
이 밖에 그는 연구단체 설립에도 열정적으로 임했다. 1988년에 ‘한국전자출판연구회’를 설립, 2003년에는 ‘한국전자출판학회’로 이름을 변경했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출판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전자출판학회’는 학술적 교류를 통해 출판기술에 대한 업계의 이해도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DTP방식 최초의 서적인 「알기 쉬운 베이직 프로그램 모음」을 IBM 컴퓨터로 출판했고 컴퓨터 한글 교신을 성공시켰다. 이외에 그는 전자출판학의 정립에 힘을 썼는데, 1995년에 국내 최초로 계원디자인예술대학에 ‘전자출판 전공’을 개설하는 업적을 달성했다. 지난 9월에 정년을 맞이한 그는 그간 69권의 저서(공저 26권 포함), 100여편의 학술논문 발표, 1000여명의 제자배출 등 빛나는 업적을 세웠다. 이제 그는 계원디자인예술대학의 명예교수로 후학 양성에 모든 열정을 쏟고 있으니 그의 학문적 열정은 끝이 없는 듯하다. 대한민국 출판업계의 선구자로서 약 40여 년간 전자출판 분야와 한글폰트 개발에 공헌한 이기성 원장. 그는 미래 올바른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정체성을 살린 출판학계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국내 기업, 정부, 연구단체, NGO를 포함한 각종 단체와 기관들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전자문서는 업무처리에 있어 기본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용자들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한글폰트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과거를 회상해보면 이기성 원장의 위대한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가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온라인상 소통이 중요시되고 있는 현실을 참고하면 그가 만든 한글 코드는 조선 초기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에 버금가는 위업이 다. 때문에 그가 지금에 와서 ‘제 2의 한글 창제자’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정혜미 기자 olivedot@economym.com
<프로필>
경기·중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문리과대학 지리학과 졸업
일본 도쿄 Training Course on Book Production 수료
단국대 경영대학원 정보처리 전공 석사
단국대 전자계산학과 박사과정 수료
경기대 재료공학과 한글세라믹폰트디자인전공, 공학박사
계원디자인예술대학 출판디자인과 교수
한국전자출판학회 명예회장, 한국전자출판협회 부회장
도서출판 장왕사(주) 상무이사 역임
한국콘텐츠출판학회 회장 역임
사이버출판대학 학장 역임
한국국어정보학회 이사 역임
한국글꼴개발원 운영위원 역임
EBS, KBS, MBC, SBS 등 방송프로그램 진행 활동
체신부장관 표창(1990), 국무총리 표창(1992)
대한인쇄문화협회 특별상(1999)
한국출판학술상 우수상(2001), 한국출판학회상 저술/연구부문(2008)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감사패 수상(2008),
계원디자인예술대학 모범교수상 수상(2010),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 수상(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