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화타는 조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화타의 치료를 거부한 조조는 병색이 짙어져 맏이 조비로 하여금 왕위를 이어받게 하고 숨을 거둔다. 일세의 영웅이며 당대의 으뜸 가는 조조의 마지막 길 또한 여느 사람과 다름없었다.
감옥에 갇힌 화타는 날마다 엄한 문초를 받았다. 그런데 감옥을 지키는 졸개 중에 오압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소 화타의 의술과 인품을 우러르고 있었는데 죄 없이 고초를 당하고 있는 화타가 딱하게 여겨져 몰래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화타도 매우 고맙게 생각하던 중 어느 날 오압옥을 불러 말했다. "나는 이제 곧 죽게 될 몸이오. 죽는 것은 한스럽지 않으나 다만 의술의 비결인 <청낭서>를 세상이 전하지 못함이 한이오. 나는 그대에게 각별한 은혜를 입었으나 갚을 길이 없어 마음이 무거웠소. 이제 내가 글 한 통을 써 줄테니 그대는 내 집으로 가서 <청낭서>를 가져오시오. 그대로 하여금 책을 읽어 내 의술을 잇게 하겠소". 오압옥은 화타의 말에 몹시 기뻐하며 다짐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만약 그 책을 얻는다면 당장 옥사쟁이 노릇을 그만두고 의원이 되어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주며 선생의 덕을 천하에 전하겠습니다." 화타는 그 즉시 글을 써서 오압옥에게 주었다. 때마침 조조의 병이 위중해졌다는 소문이 돌면서 궁문 안팎과 각 청의 경계가 엄해졌다. 오압옥은 화타로부터 받은 글을 품에 간진한 채 틈을 내지 못해 10여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칼을 든 무사 몇사람이 위왕의 명을 받든다며 우르르 감옥으로 달려와 옥문을 열게 했다. 옥문을 열자 무사들이 안으로 달려오고 얼마있지 않아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오압옥이 달려가 보니 칼을 든 무사들이 돌아가며 말했다. "대왕님의 명령으로 방금 화타를 죽였다." 오압옥은 관을 사서 화타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낸 뒤 그날로 옥사쟁이를 그만두고 금성으로 갔다. 화타의 집으로 찾아간 오압옥은 글을 보여 주고 <청낭서>를 받아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옥리를 그만두고 의원이 되겠소. 천하의 명의가 되어 병든 사람을 구할 것이오. 그의 아내는 남편의 말에 아무런 대꾸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오압옥이 무심코 뜰을 내다보니 아내가 낙엽을 쓸어 모아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오압옥이 보니 그 낙엽과 함께 <청낭서>가 불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오압옥이 달려가 급히 발로 불을 껐으나 이미 책은 다 타버리고 끝에 한두 장만 겨우 남아 있을 뿐이었다. 오압옥은 벌컥 화를 내며 아내를 꾸짖었으나, 아내는 펄펄 뛰는 남편에게 눈물을 머금으며 말했다. "설령 당신이 이 책을 읽어 화타처럼 유명한 의원이 된다 하더라고 만약 그 의술 때문에 당신이 옥에 갇혀 죽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는 그 화근이 될 책을 태워 버린 것입니다. 오압옥은 어리석은 아내가 자기의 앞날을 걱정하여 그 <청낭서>를 태워버렸다는 말에 꾸짖어도 소용 없음을 알고 길게 탄식만 할 뿐이었다. 이로 인해 화타의 <청낭서>는 세상에 전해지지 못했다. 다만 닭이나 돼지를 거세하여 살찌게 하는 등의 하찮은 것만 전해졌는데 타다 남은 끝의 한두 장에서 전해진 내용이었다. 뒷날 사람들이 화타의 죽음을 시로 지어 탄식했다. 화타의 선술, 장상군과 견줄 만하고 담 안 들여다보듯 오장육부 훤휘 아내. 슬프다 사람 죽고 글마저 끊어지니 뒷날 사람들 청낭서 다시 못보네.
조조는 화타가 죽은 후로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거기다가 오와 촉에 대한 일을 어떻게 결정지어야 할지 근심하고 있는데 근신들이 들어와 알렸다. "동오에서 사자가 글을 가지고 왔습니다." 조조는 사자를 불러들이고 글을 읽어 보았다. 신 손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천명이 주상께로 돌아갔음을 알고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하루라도 빨리 대위에 오르시고 장수를 보내시어 유비를 쳐없애 양천을 평정하옵소서. 양천이 떨어지면 신은 곧 따르는 무리들을 거느리고 항복하겠습니다.
뜻밖에도 손권이 자신을 한껏 높이며 스스로 항복해 오자 조조는 껄껄 웃더니 문무관원들에게 글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이 아이가 나를 화롯불에 올려 앉히려는 수작이로구나." 참으로 묘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원래 한 나라는 화덕으로 일으킨 나라이니 한 황실을 뜻한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손권이 자신을 대위에 오르게 함으로써 위험한 지경에 빠뜨리려는 것을 화로에 견주어 한 말일 수도 있었다. 그러자 시중 진군등이 입을 모아 말했다. "한실은 이미 기운이 다해 기울어진 지 오래입니다. 전하의 공덕은 날로 높아가니 천하의 백성들이 우러르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손권도 스스로 신하 되기를 청하며 항복하니 이는 하늘의 뜻과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이 원하는 것임을 뜻합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하늘의 뜻을 받드시고 백성들의 소원을 따르시어 하루 빨리 대위에 오르시도록 하옵소서." 조조는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그 말을 받았다. "내가 한조를 섬긴 지 오래다. 비록 공덕이 백성들에게 미쳤다고 하나 이제 왕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름과 벼슬은 이미 오를대로 오른 것이다. 어찌 딴 마음을 품을 수가 있겠느냐? 만약 천명이 내게 이르렀다면 나는 다만 주의 문왕과 같으면 족하리라. 조조가 그렇게 잘라말했다. 주의 문왕은 그 아들 주 무왕대에 이르러서야 천자가 되었으며 자신은 끝내 은나라를 섬겼다. 곧 스스로는 천자가 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으나 다음 대에 대한 양망을 암시한 말이기도 했다. 조조가 그렇게 말하니 여러 신하들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있는데 사마의가 나서 손권의 일을 꺼냈다. "지금 손권이 스스로 신하라고 일컬으며 따르니, 대왕께서는 그에게 벼슬을 내리시고 유비를 막도록 하십시오." 조조도 그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오와 촉을 싸우게 할 구실이 생겼으니 실로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조조는 곧 황제계 표문을 올려 손권을 표기장군 남창후에 형주목으로 삼고 사자를 동오로 보내 조칙을 전하게 했다. 천자의 조칙을 손권에게 전하게 한 조조는 이제 발을 뻗고 잘 수 있었으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밤 조조는 꿈을 꾸었는데 세 필의 말이 한 구유에 머리를 박고 여물을 다투어 먹는 꿈이었다. 아핌이 되어서도 그 꿈이 잊혀지지 않아 문안차 온 가후에게 물었다. "나는 오래 전에 말 세 마리가 한 구유통에서 여물을 먹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그 때는 마등 삼부자가 화근이 되리라 여겨 그들을 죽였으나 어젯밤에 또 그와 똑같은 꿈을 꾸었다. 이 꿈의 길흉이 어떠한가?" 가후가 조조를 안심시키려는 듯 길흉을 헤아려 주었다. "대왕께서는 길한 꿈을 꾸셨습니다. 녹마는 길조이며 그 말이 조로 모인 것인데 대왕께서는 걱정하실 게 무엇입니까?" 조는 구유토을 뜻하는 조자와 조조의 조자가 같으니 말들이 밖에서 돌아와 구유의 여물을 먹는다는 뜻으로 둘러댄 말이었다. 그러나 세 마리의 말이 암시하는 실제의 뜻은 사마의.사마사.사마소의 세 부자였다. 마침내 조가를 대신하여 사마씨의 새로운 시대가 열림을 뜻하는 꿈이었으나 조조는 가후가 한 말을 좋은 뜻으로 넘겨 듣고 말았다. 그날 밤이었다. 조조가 침실에 누워 있는데 삼경 무렵이 되자 머리가 몹시 어지럽고 눈앞이 흐려 왔다. 잠을 이룰 수 없어 가까스로 일어나 탁자에 엎드려 있는데 갑자기 비단을 찢는 듯한 소리가 났다. 조조가 깜짝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니 홀연 눈앞에 복황후와 동귀인, 두 황자와 복완.동승등이 나타났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스무여명은 모두 그에게 끔찍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었는데 음습한 구름 속에서 소리쳤다. "조조 네 이놈! 네 목숨을 내놓아라!" 조조는 그들을 보자 몸을 떨며 급히 칼을 뽑아 허공을 향해 후렸다. 그러나 그 칼이 서남쪽 전각 한 모서리를 베니 전각 한구석이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조조는 그 솔리에 놀라 뒷걸음질치다 넘어졌다. 가까이서 모시던 신하들이 그제야 달려와 조조를 부축해 일으켜 별궁에다 옮기고 보살폈다. 다음 날이 되자 또 괴이스런 일이 일어났다. 전각 밖에서 남자와 여자들의 구슬픈 곡소리가 울려 왔다. 그 소리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조조는 날이 새기가 무섭게 여러 신하들을 불러 놓고 입을 열었다. "내가 말을 타고 싸움터를 누볐으나 요사스런 일은 믿지 않앗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일어나는 이 괴이한 일들은 대체 무엇인가?" "대왕께서는 도사들을 불러 초제를 베풀어 악귀들을 물리치도록 하십시오." 신하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권했다. 그러나 조조는 고개를 젓더니 한숨 지으며 탄식했다. "성인께서 이르시기를 '하늘에 죄를 지은 자는 빌 곳이 없다'고 했다. 이제 나의 천명이 다 된 듯싶으니 하늘에 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조는 신하들의 권고를 물리치고 말았다. 다음 날이 되자 조조의 병세는 더욱 나빠져 눈앞도 잘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조조도 스스로 그 명이 다했음을 알고 뒷일을 의논하기 위해 하후돈을 불러 오라 했다. 하후돈이 조조의 부름을 받고 급히 전문으로 드는데 문든 음습한 구름 속에 복황후,동귀인과 두 황자 및 ㅂ고완,동승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하후돈은 놀라 그 자리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좌우 사람들이 하후돈을 부축해 나가 보살폈으나 그 이후에는 일어나지 못하고 병들어 눕고 말았다. 조조는 다시 조홍과 진군,가후,사마의 등을 불러 오게 했다. 그들이 조조의 병상 앞에 이르자 조조가 뒷일을 부탁하려는데 조홍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옥체를 보중하시옵소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실 것입니다." 그러나 조조는 조홍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채 이미 다가오는 죽음을 알고 있다는 듯 조용히 뒷일을 당부했다. "내가 천하를 종횡한 지 30여 년에 모든 영웅들을 평정했으나 다만 강동의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 남았다. 그러나 이제 내 병이 위중하니 그대들과 다시 의논할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다. 특히 그대들에게 집안일을 부탁하려 하니 부디 잘 돌봐 주기 바란다. 나의 맏아들 앙은 유씨의 소생이나 불행히도 지난날 완성싸움에서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지금 나에게는 그대들도 잘 알다시피 변씨 소생의 비와 창, 식과 웅, 이렇게 내 아들이 있다. 내가 평생 사랑한 자식은 셋째 식이었으나 겉으로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성실함이 부족하며 술을 좋아하고 태도가 단정치 않아 세자로 세우지 않았다. 둘째 창은 용맹스럽기는 하나 지혜가 모자라고, 넷째 웅은 몸이 약해 앓기를 자주 하니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거기에 비해 맏이 비의 사람됨은 인정이 두텁고 공손한데다 치밀하니 내 뒤를 이을 만하다. 경들은 내가 죽고 없더라도 그를 도와 내 뜻을 이루게 하라." 조조가 후사를 정해 부탁하니, 그 자리에 있던 조홍 등은 그 말이 조조가 남긴 마지막 말이라 여기고 눈물을 흘리며 그 말을 받들었다. 조조는 근시를 시켜 평소 간직해 오던 좋은 향과 옥기들을 가져 오게 하여 자기를 섬기던 시녀들에게 나누어 주며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에 너희들은 부지련히 여공을 배우도록 하라. 길쌈을 하고 그 실로 신이라도 만들어 팔면 너희들이 쓸 돈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것이다." 조조는 다시 첩들을 불러 말했다. "너희들은 동작대에 모여 살며 매일 제사를 올리도록 하되 상식을 올릴 때마다 기생들에게 춤을 추고 노래하게 하라." 또한 조조는 뒷사람들이 자기의 시체를 파헤칠까 봐 염려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당부했다. "창덕부 강무성밖에 거짓 무덤 일흔 개를 만들어 나의 무덤이 어느 것인가를 알지 못하게 하라." 조조는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끝내며 긴 탄식과 함께 눈물을 주르르 쏟더니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나이 예순 여섯이요, 건안 25년 봄인 정월이었다. 일세의 영웅이며 무장으로서나 치자로서나 당대의 으뜸가는 인물이었던 조조의 마지막 길은 천하의 패자답지 않은 조용하고 담담한 것이었다. 후세 사름들이 한 편의 시를 지어 조조의 일생을 노래했다. 업군 업성에 물은 장수이니 이 땅에서 나야 할 이인이 일어났네. 계략과 빼어난 일, 글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임금과 신하가 형제와 부자같이 지냈다. 어찌 영웅을 속된 마음으로 알랴. 들고 나는 일 또한 여느 사람 모르네. 큰 공 큰 죄 두 사람이 아니고 악행과 선행이 모두 한몸이었네.
글 빼어나고 패기 드높아 어찌 속된 무리와 함께 될 수 있으리. 창을 놓고 대를 쌓아 태행산과 맞서니 기운과 운세 따라 쳐들기도 굽히기도 했네. 이런 사람이 어찌 역적질은들 못할까. 작게는 패자요, 크게는 왕이네. 패왕되어 아녀자도 울리니 불평해본들 어찌할 수 없구나. 목숨 비는 일 빌어야 소용 없음 알았고 여인들에게 향 나누니 무정하다 못하리라. 오호라! 옛사람 일 크고 작음 가리지 않으나 적막하든 호화롭든 모두 뜻이 있네. 서생들아, 무덤 속 사람 가벼이 말하지 말라. 오히려 무덤 속 그 사람이 서생 행태 비웃겠네.
조조가 죽자 모든 문무백관들이 모여 소리 높여 통곡하며 발상을 하는 한편 아들인 세자 조비, 언릉후 조창, 임치후 조식, 소회후 조웅에게 부음을 보냈다. 그런 다음 조조를 염하여 금관에 들인 뒤 은으로 만든 곽을 둘러 밤을 도와 업군으로 갔다. 조비는 여러 관원들을 거느려 성 밖 10여 리까지 나아가 통곡하며 엎드려 곡을 하는데 곡소리가 언제 끝날지 몰랐다. 그때 문든 한 사람이 일어나 조비에게 말했다. "바라건대 세자께서는 잠시 슬품을 누르시고 대사를 의논하십시오." 모두 그를 보니 그는 다름아니 중서자 사마부였다. 사마부는 여러 관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위왕께서 돌아가셨으니 천하가 들썩일 것입니다. 급히 세자를 받들어 왕위를 이어 천하의 민심을 안정시키도록 하십시오. 지금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닙니다." 사마부의 나무라는 듯한 말투에 여러 신하들이 조비를 대신하여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세자께서 마땅히 왕위를 이으셔야 하나 아직 천자의 조칙을 받들지 못했소이다. 어찌 함부로 즉위식을 행할 수가 있겠소?" 그러자 병부상서 진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대왕께서 밖에서 돌아가셨다 해서 사랑받았던 아들들이 제각기 왕위를 잇겠다고 나서서는 아니 될 것이오. 그렇게 되면 골육간에 변고가 일어나게 되어 사직이 위태로워지고 말 것이오." 진교는 그 말과 함께 칼을 뽑아 소매를 후려쳐 잘라 보이며 외쳤다. "오늘 세자께서는 왕위를 이으셔야 합니다. 만약 딴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소맷자락 자르듯 베어 버릴 것이오." 진교의 험악한 기세에 눌려 여러 관원들은 두려운 얼굴로 입도 열지 못하고 있는데 사람이 와서 알렸다. "허창의 하흠께서 이르렀습니다." 조조의 팔다리와 다름없는 화흠이 급히 말을 달려오자 여러 신하들은 그가 온 까닭을 알 수 없어 놀라며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화흠이 들어오자 백관들이 물었다. "무슨 일로 급히 오시었소?" 화흠이 백관들을 둘러보며 나무라듯 대답했다. "지금 위왕께서 돌아가시어 천하의 인심이 어지러운데 경들은 어찌하여 세자를 왕위로 받들지 않고 있소?" "그렇지 않아도 왕후 변씨의 뜻을 받들어 세자를 왕으로 모시려는 참이오. 다만 천자의 조칙을 받들지 못해 의논하던 중이었소." 백관들이 그렇게 대답하자 화흠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이미 천자의 조칙을 받아 왔소." 화흠은 원래가 한실을 받들기보다 조조를 따르던 사람이었다. 조조가 죽자 바로 조서를 만들어 헌제에게 강요했다. 헌제는 하는 수 없이 조비를 위왕으로 삼고 승상에 기주목을 겸하게 하는 조칙을 내린 것이었다. 천자의 조칙까지 얻자 조비는 지체하지 않고 그날로 왕위에 올랐다. 조비는 여러 문무관원들의 하례를 받고,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크게 경하의 잔치를 열었다. 잔치 기운이 무르익어 갈 즈음 문득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언릉후 조창이 군사 10만을 거느리고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조비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형제 중 용맹이 뛰어나 창이 군사를 이끌어 온다는 소리에 조비가 낯빛을 달리하며 신하들에게 물었다. "수염 노란 아우는 원래 성정이 거칠고 무예에도 능하오. 지금 군사를 이끌어 온다 하니 반드시 나와 왕위를 다투려는 뜻일 것이오.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러자 계하에서 한 사람이 나서며 소리쳤다. "바라건대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언릉후를 만나 말 한 마디로 그를 물리치겠습니다." 조비가 바라보니 그는 간의대부 가규였다. 그 자리에 있던 관원들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소이다. 대부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맡아 하겠소?" 조비도 기뻐하며 대부로 하여금 성 밖으로 나아가 조창을 맞게 했다. 가규가 성 밖으로 나가 조창이 머물고 있는 곳에 이르자 창이 대뜸 먼저 물었다. "아버님의 옥새와 인뒤웅이는 어디 있는가?" 그 물음에 가규가 정색을 하며 되물었다. "집안에는 맏이가 있고 나라에는 세자가 있는 법입니다. 둘째 왕자이신 군후께서는 물어 볼 바가 아니지 않습니까?" 가규의 엄한 목소리에 조창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가규가 성 안으로 조창을 인도하자 말 없이 뒤따랐다. 창이 성 안으로 들어가자 궁문 앞에 이르자 가규가 문초라도 하듯 조창에게 물었다. "군후께서 이곳에 오신 뜻은 분상하려 오신 것입니까, 아니면 왕위를 다투러 오신 것입니까?" "나는 분상하려 왔을 뿐 딴 뜻은 없소이다." 조창이 얼른 머리를 내저으며 그렇게 대답하자 가규가 다시 나무라듯 되물었다. "군후께서 다른 뜻이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장수와 군마를 거느리고 오셨습니까?" 조창도 그 말에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얼른 따르던 군사들을 물렸다. 조창이 군사들을 물러가게 하고 홀로 궁 안으로 들어오자 조비도 마음을 놓고 반가운 마음으로 맞았다. 두 사람은 아버지를 여윈 슬픔에 서로 끌어안고 목을 놓아 울었다. 분상을 마친 조창은 자기가 이끌고 온 군마를 모두 조비에게 바쳤다. 자신이 군마를 이끌어 온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님을 밝혀 두고자 함이었다. 조비는 아우에게 군마를 다시 돌려 주며 언릉 땅으로 돌아가 그곳을 지키라고 당부했다. 조창이 언릉 땅으로 돌아가고 업성이 안돈되자 조비는 건안 25년의 연호를 연강 원년으로 고쳤다. 이어 문무백관들의 벼슬을 높이고 상을 내려 사기를 드높였다. 가후를 태위로 삼고, 화흠은 상국으로, 왕릉은 어사대부로 삼았다. 그리고 다른 문무백관들에게도 상을 내려 위로했다. 조비는 또 아버지 조조의 시호를 무왕이라 내리고 업군 고릉에 장사지냈다. 그리고 우금으로 하여금 그 무덤을 지키게하여 고릉으로 떠나게 했다. 우금이 조비의 영을 받들어 그곳에 가보니 무덤 안의 흰 벽에는 군사들이 싸우는 그림 한 편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니 관운장이 물로 칠로군을 무찔렀을 때의 광경이었다. 관운장이 윗자리에 위풍당당히 앉아 있는데 방덕이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우금 자신은 땅에 엎드려 살려 달라고 애걸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은 조비가 그리게 한 것이었다. 전에 우금이 관 공과 싸워 패해 사로잡혔을 때 절개를 지켜 목숨을 버리지 못하고 투항했다가 동오가 살려 주어 되돌아온 것을 보게 된 이후로 조비는 우금을 비루하게 여겼다. 이에 미리 사람을 시켜 무덤 벽에 그 그림을 그려 놓게 하고 우금을 그리고 보낸 것이었다. 그 그림을 보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욕스런 지난날을 되돌아 보게 한 것이었다. 우금은 그림 속에 그려진 자신의 꼴을 보자 부끄러움과 괴로움으로 견댈 수 없어 울화로 마음 속을 끓이다 마침내 병을 얻어 자리에 눕더니 숨을 거두고 말았다. 조창이 언릉 땅으로 돌아간 이후 어느 날 상국 화흠이 넌지시 조비에게 말했다. "언릉후는 군마를 대왕께 바치고 자기 땅으로 돌아갔습니다만 두 아우이신 임히후 식과 소회후 웅은 끝내 분상도 오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그 죄를 물어 기강을 바로잡으셔야 합니다." 조비도 화흠의 말을 옳게 여겼다. 조창이 다녀간 뒤로 마음에 걸리는 것은 넷째보다 셋째인 식이었다. 식은 한때 아버지 조조가 세자 자리를 그에게 물려 주려 했을 만큼 재주있는 아우인데다 아직도 그를 세자로 받들려는 무리들이 있었다. 이에 조비는 화흠의 말에 따라 사신을 보내 장례에도 오지 않은 죄를 물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지 않아 소회후에게 갔던 사자가 돌아와 눈물을 흘리며 알렸다. "죄를 묻는 영지를 받으시자 병약한 마음에 두려움이 일었던 듯 그만 목을 매어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넷째 아우 웅은 항상 병이 들어 앓는 몸인데닥 마음까지 약해 죄를 묻자 그만 겁이 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조비가 그제서야 그에게 죄를 물은 것을 뉘우쳤다. 조비는 조웅을 후하게 장사지내 주게 하고 벼슬을 올려 소회후에게 소회왕으로 봉했다. 다음 날이 되자 임치로 갔던 사자가 돌아와 임치후 조식을 만난 일을 알렸다. "임치후는 날마다 그의 신하 정의, 정이 형제와 함께 술을 마시며 지내는데 그 태도가 오만스럽고 무례했습니다. 신이 들어가 왕명을 전하려 하는데도 일어나지도 않았으며 정의만이 신을 보고 개 꾸지지듯 험한 말로 꾸짖었습니다. '지난날 선왕께서는 우리 주인을 세자로 삼으시려 했는데 간신들이 가로막아 금상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형제지간에 어찌 죄부터 묻는다는 말인가? 친형제에게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뿐만 아니라 정이도 덩달아 나서며 저를 나무랐습니다. '우리 주공께서는 그 재주를 천하에 떨치신는 분으로 마땅히 왕위를 이어받으서야 할 분이시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셨으니 너희들 조정의 신하들은 어찌 이리도 인재를 몰라 보느냐?' 정이가 그렇게 신을 꾸짖자 임치후도 벌컥 성을 내며 좌우 사람을 시켜 신을 몽둥이 찜질하여 내쫓았습니다." 조비는 그 말을 듣자 격분했다. 곧 허저에게 소리쳐 영을 내렸다. "그대는 호위군 3천을 이끌고 임치로 가서 조식의 무리를 잡아 대령하라!" 허저는 그 길로 군사 3천을 거느리고 바람처럼 임치로 내달았다. 임치성에 이르자 성을 지키는 장수가 허저를 가로막았다. 허저는 여러 소리 할 것도 없이 한칼에 그 장수의 목을 베고 말았다. 허저가 그길로 바로 성 안으로 뛰어들어가니 그 기세에 겁을 먹어 감히 덤벼드는 자가 없었다. 허저가 부중 당에 이르러 보니, 임치후 조식은 정의,정이 형제와 함께 술에 취해 코를 곯며 자고 있었다. 허저는 그들을 꽁꽁 묶어 수레에 싣고 조식을 따르는 무리들을 사로잡아 업군으로 돌아왔다. 조비는 성난 눈으로 정의,정이 형제를 노려보더니 영을 내렸다. "우선 그 두 놈부터 목을 베어라!" 조비의 영이 떨어지자 그들 형제는 이끌려 나가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조식을 따르는 문사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이었다. 정의의 자는 정례요, 정이의 자는 경례로 패군 사람이었다. 일찍이 글재주가 뛰어나 이름을 떨쳤으나 조식을 따르다 덧없이 죽으니 그들을 아깝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조비의 어머니 변씨는 막내아들 조웅이 목을 매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식마저 사로잡혀 오고 그의 신하 정의 형제가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듣자 깜짝 놀라 내전으로 달려나왔다. 변씨가 황급히 조비를 청해 부르며 전에 이르자 조비는 황망히 어머니를 맞아 절하며 뵈었다. 변씨가 눈물을 흘리며 조비에게 말했다. "네 아우 식이 평소 술을 좋아하며 몸가짐에 거리낌에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건 자기의 재주를 믿고 제 마음대로 구는 것일 뿐이다. 네가 같은 피를 나눈 형제간의 정리를 생각해서라도 그의 목숨만은 살려 주도록 하거라. 그리하면 내가 죽어서라도 편히 눈을 감을 있을 것이다. 조비는 어머니의 간곡한 청을 물리칠 수 없었다. "저 역시 그 아이의 재주를 아끼는 터입니다. 어찌 그 애를 죽이겠습니까? 다만 그 버르장머리 없는 성정을 고쳐 주려 했을 뿐입니다." 조비가 그렇게 말하며 안심시키자 변씨는 눈물을 씻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조비는 편전으로 나가 조식을 불러들이라고 분부를 내렸다. 그때 화흠이 다가오더니 가만히 물었다. "조금 전에 태후께서 나오셨는데 혹시 전하께 자건을 죽이지 말라고 청하러 오신 것이 아니십니까?" "그러하오." 조비가 무건운 목소리로 대답하자 화흠은 근심스런 얼굴로 말했다. "자건은 재주가 있고 지혜가 있으니 끝내 못 속에서만 있을 인물이 아닙니다. 빨리 없애 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말씀을 어길 수는 없지 않소." 조비가 퉁명스런 어투로 대답했다. 화흠은 생각에 잠기다 조비의 귀 가까이 입을 대고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자건은 입을 열기만 하면 바로 문장을 이룬다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업슨ㄴ 말입니다. 주상께서는 그를 불러 재주를 한 번 시험해 보십시오. 만약 그 말대로 글을 잘 짓는다면 살려 주시어 귀양을 보내시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천하 문사들도 뒷공론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실로 묘책이 아닐 수 없소." 조비가 머리를 끄덕이며 화흠의 말에 찬동했다. 화흠의 말대로만 하면 천하 선비들의 원성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식을 불러들이게 했다. 조식은 조비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엎드려 죄를 빌었다. "술에 취해 앞뒤를 헤아리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형님께서는 너그럽게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조비는 조식을 굽어보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으로 말한다면 너와 나는 형제이나 예로 보면 임금과 신하이다. 그런데도 너는 어찌 감히 네 재주만을 믿고 예를 우습게 여겼느냐? 이제 임금과 신하의 예로 너에게 명을 내릴 것이니 너는 내 말을 잘 듣도록 하라. 아버님께서 살아계실 때에 너는 항상 글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뽐냈으나 나는 그 글이 정말 네가 지은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니 이제 내가 너의 글솜씨를 한 번 시험해 볼 것인즉 너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틈을 줄 테지 그 사이에 시 한수를 짓도록 하라. 만약 시를 잘 짓는다면 살려 둘 것이오, 만약 잘 짓지 못한다면 방자하게 군 죄까지 더해 그 죄를 물을 것이다. 그러자 조식이 얼굴을 쳐들며 흔연히 대답했다. "바라건대 시제를 주십시오." 그 말에 조비가 주위를 둘러 보았다. 벽에는 마침 수묵화 한 폭이 걸려 있었다. 두 마리의 소가 흙담 옆에서 싸우다 한 마리가 상대에게밀려 우물에 떨어져 죽는 그림이었다. 조비가 그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금림을 제목으로 삼으라. 그러나 시 속에 '두 마리 소가 흙담 옆에서 싸우다 한 마리는 우물에 떨어져 죽었다'는 말이 한 마디도 들어가서는 아니 된다." 그 자리에 있던 문무백관들은 조비의 가혹한 명에 깜짝 놀라며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러나 조식은 담담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하여 일곱 걸음을 옮긴 후에 낭랑하게 시를 ㅇ기 시작했다. 두 고깃덩이가 함께 길을 가는데 머리 위에 오목한 흰 뼈가 달렸다. 서로 볼고한 산 밑에서 만나니 홀연 머리 맞부딪쳐 서로 받았네. 두 적수가 다 함께 굳세지 못해 한 고깃덩이는 토굴 속에 스러졌네. 힘이 없어 쓰러진 것이 아니라 넘치는 기운 한꺼번에 내쏟지 못함일세. 조식이 시를 다 읊자 그 자리에 있던 문부백관들은 모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을 나타내는 직접적인 말은 한 마디도 넣지 않고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그 그림을 읊는 훌륭한 시 한 편을 지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비는 거기서 조식을 용서해 주지 않았다. 다시 조식에게 말했다. "일곱 걸음 만에 시를 지었으나 너의 요란스런 이름에 비해 그건 시간을 너무 많이 준 것 같다. 정말 재주가 있다면 말이 떨어지는 즉시 시를 지을 수 있어야 한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조비의 물음에 조식이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짓겠습니다. 제목을 주십시오." 조비가 조식을 굽어보며 새로운 시 제목을 말했다. "너와 나는 형제간디다. '형제'란 말을 시제로 삼되 '형'이니 '아우'니 하는 말이 들어가서는 아니 된다.." 조식은 그 말을 듣자 생각에 잠기는 기색도 없이 그 자리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시 한수를 읊었다. 콩깍지를 태워 콩을 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울고 있네. 본디 한 뿌리에서 났는데도 어찌 이다지도 급히 볶아대는가. 조비는 조식이 콩과 콩깍지로 자기 형제의 일을 비유한 시를 읊는 소리를 듣자 그제야 뉘우치는 마음이 일었다. 문득 눈물을 흘리며 새삼 형제의 정을 되살리고 있는데 어머니 변씨가 편전 뒤에서 달려나오며 나무랐다. "형이 되어 어찌 그리 아우를 괴롭힌다는 말이냐?" 어머니 변씨의 말에 조비는 급히 용상에서 내려오며 대답했다. "나라에 법이 있으니 어찌 그 법을 어길 수가 있겠습니까?" 조비는 법을 핑계대어 그렇게 대답한 후 조식의 벼슬을 안향후로 낮추고 임지로 가게 했다. 조식은 절하며 하직한 후 형이 있는 위왕궁에서 쫓겨나듯 물러났다. 그런데 봉건 중국에서 드문 예가 조씨 형제의 경우이다. 유교 도덕에 의해 지배당하던 그 당시에 부모 자식의 단절이나 형제간의 불화는 다른 나라에 비해 드물었다. 그러나 조비의 동생 색은 물론 창에 대한 비정함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조비가 왕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가혹한 처사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란 높은 지위에 오르면 누구나 자기를 앞지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권력자는 자기보다 명성이 높거나 인기가 있는 사람을 몹시 싫어한다. 설사 그 사람이 육친간이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비는 이후에도 식에게 근거를 마련할 땅도 주지 않고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게 했으며 끝내 궁에 드는 것조차 막았다. 조식은 건안 시대의 대표적인 문사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그의 문집으로는 조자건집이 있다. 일곱 걸음의 시는 그의 문집에는 들어 있지 않으나 다른 서적에 실려 전해진다. 중국 시인 사이에 우상화 되기도 했던 조식은 형 조비와의 불화로 인해 한과 울분으로 세월을 보내다 병이 들어 마흔한 살에 죽고 말았다.
조비는 왕위에 오른 뒤로 법령을 고치고 자신의 위세를 드높였는데 한제를 핍박함은 아버지인 조조 때보다 더 심했다. 이 일은 세작에 의해 곧 성도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