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55번째 조선열전~
단군조선👇
단군 일연스님에 의해 처음 삼국유사에 실림
삼국사기에는 왕검(단군) 내용이 나옴
기자조선👇
상나라 마지막 왕 주왕의 숙부 기자
상나라가 주나라 무왕에 의해 멸망당하자 주나라를 떠나 조선으로 망명, 무왕이 기자를 조선왕으로 봉함 (상서)
위만조선👇
연나라는 한고조 유방의 고향 친구 노관이 왕으로 있다가 나중에 흉노로 도망가자 연 관리 위만도 패수를 넘어 망명, 스스로 나라를 세워 위만조선이라 한다 👇
진기장군은 진시황 암살하려던 자객 진무양의 할아버지라네요👇
#역사이야기
인문학 TV 고경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고대 역사에 등장하는 고조선의 여러 명칭을 구분 하십니까?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세 가지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사마천 사기 조선 열전을 시작하기 전에 고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1). 고조선의 명칭 세 가지 구분하기 (단군, 기자, 위만 조선)
-. 먼저 단군조선에 대해
단군조선이라는 명칭은 1281년 고려 시대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에 처음으로 단군에 대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환웅이 웅녀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사람이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단군은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겨서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기원전 1122년 중국 주나라 무왕이 은(상) 나라의 후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封)하자,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이라는 곳으로 옮겨갔다가, 훗날 다시 돌아와서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이때 단군의 나이가 1908세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이보다 몇 년 앞선 1145년 기록된 고려인 김부식이 기록한 삼국사기에는 왕검(王儉)이란 글자가 최초로 등장하는데 왕검은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檀君)의 칭호입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동천왕 편에서 “평양은 본래 선인 왕검이 살던 곳'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고려시대에 기록된 우리 역사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만 단군조선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 역사서에는 단군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단군은 고려 말, 몽고의 침입에 항쟁하던 시기에 주목받기 시작해서 조선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나라의 시작을 알리는 국조(國祖)로 추앙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세종대왕 때에는 평양에 고조선의 시조 단군과 고구려 동명왕을 모신 사당을 지어 국가적으로 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 고조선의 명칭 중 두 번째 기자조선에 대해서
기자조선은 철저히 중국 역사서에 등장하는 조선입니다.
중국 상서(尙書)에 기록을 보면 기자(箕子)는 원래 상(은) 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의 숙부인 왕족입니다. 그런데 상나라가 주나라 무왕에 의해 멸망당하자 기자는 주나라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조선으로 망명했는데 주나라 무왕이 이때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기록이 있고, 또 이와 반대로 사마천 사기 송미자세가에서는 주나라 무왕이 멸망시킨 상나라 왕족 기자를 조선에 봉해서 기자가 조선으로 가서 왕이 되었다는 상반된 기록이 함께 존재합니다. 사실 우리 역사 학계는 이러한 기자 조선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 고조선의 명칭 세 번째 위만조선
오늘 이야기 사마천 조선 열전에 등장하는 고조선이 바로 위만조선입니다.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로, 기원전 194년 중국 한나라 제후국 중 하나인 연나라에서 이주한 위만이라는 사람이 고조선으로 넘어와 왕위를 찬탈하고, 국호는 그대로 조선으로 한 뒤 왕검성에 도읍을 정하고 건국한 조선입니다. 그래서 위만조선이라 불려집니다.
위만조선은 중국계 유민들과 토착민이 혼합되어 양쪽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주변 지역을 활발히 정복했고, 중계 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위만조선의 세력이 성장하면서 위만 조선을 사이에 두고 동서 간의 교역이 가로막히게 되자 한나라 무제는 기원전 109년 사신 섭하가 고조선 군에 살해당한 것을 빌미로 대대적으로 위만조선을 침공하여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을 완전히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그 땅에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이 한사군의 위치를 두고 중국, 일본, 한국이 각기 다른 입장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사실 오늘날 역사에 대한 구분은 혈통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게 아니라 문화를 중심으로 분석하기 때문에 고조선을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근거를 찾아 영토와 영역에 대한 주장에서 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2).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하고 새롭게 설치한 한사군의 위치가 어느 곳이냐는 두 가지 주장입니다. (중국 요동설, 한반도 북부설)
#사마천 #조선열전 #한사군
https://youtu.be/J6hH1xJzV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