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기쁨. 빌 1:3-11
밤이면 밤마다 혼자 사는 여자 집에 괴전화가 걸려 왔다. “여기는 화장터! 여기는 화장터!” 하면서 신음소리를 내는 사내의 다급한 숨소리가 온몸을 오싹하게 하곤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화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 진 여자의 집에 하루는 시골에 사는 어머니가 올라 왔다. 그날도 역시 밤중에 괴전화가 걸려오자 마침 엄마가 받았다. 전화를 받던 엄마가 한참 듣고 있다가 한마디로 쏘아 붙였다.“ 야! 네 주둥이는 언제 타냐?”그 뒤로 다시는 전화가 걸려오지 아니 했다.
회사에서 사원들이 잡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박 대리가 성공하려면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니까 오대리가 아니야 새벽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김 대리가 아니야 저녁형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저녁부터 새벽이라고 생각하고 일해야 된다나 뭐라나 하면서 그때 김 부장이 지나가면서 한 마디 했습니다. 여보게들 먼저 인간이나 되라고 했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기쁨에 대해서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인간의 행복은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더 큰 행복은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릭 프롬의(Erich Fromm)이 말 한대로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이며, 그 고독감과 공허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사람은 사랑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고독감과 공허감을 극복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 안에서 직장 동료들 간에 그리고 교회 성도들과 마을사람들과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고독과 공허감을 극복하고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잘 하지 못합니다. 그렇지 못한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기술을 잘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에릭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우리는 사랑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어떤 기술을 배우고 습득하는 과정과 동일한 과정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사랑에 대한 이론을 배우고 그것을 삶에 실천함으로 사랑의 행동을 습득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단 시간에 뿅 가는 감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살아가면서 이론을 배우고 또 실천하면서 사랑의 기술은 점점 개발되고 성숙되어 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도 초기 선교시대는 허약하여 선교여행에 끝까지 동참하지 못한 마가 때문에 선교동역자인 바나바와 갈등하다가 심히 다투고 갈라서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마가를 나의 동역자라고 하며 나의 일에 유익한자라고 하며 그의 연약함까지도 받아드리고 사랑하며 함께 동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기술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로 배신감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때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것이 두려운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지만 결코 제자들에 대한 신뢰감을 잃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후 배신하며 떠나간 제자들을 일일이 찾아가시어 사랑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우리 예수님의 성숙한 사랑의 기술을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까운 사람을 사랑할 때 배우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나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전 9:9)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을 배워보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행복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도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의 기술 첫째
1.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_장애물을 _ 을 분별하십시오.
[빌]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로 가까운 사람 간에 자꾸만 예의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예의를 갖추고 행동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말도 함부로 하고 행동도 함부로 하게 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원수와 웬수의 차이를 아시는지요.. 먼저 힘들게 하면서 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원수고 웬수는 같이 살아야 할 처지의 힘든 관계를 말한다고 합니다.. 여자 50세가 되면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이 생긴다고 합니다. 필요한 것은 안경과 비타민제 등 이런 것이 필요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필요 없는 것이 꼭 하나있답니다. 그것은 50대 여자에게 남편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50이 넘은 목사님은 밖에 나갔다 집에 들어갈 때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전화로 꼭 물어 본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그렇지 않은 것 보면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내가 너무 좋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편들이 눈치가 없어서 착각하는 것이랍니다. 내가 돌아가면 아내가 좋아 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까운 사람끼리 사랑하지 못하고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이렇게 왠수가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첫째가 소유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1) 사랑을 인격적 만남이 아닌 --소유---로 생각하는 것이 장애물이라는 것입니다.
에릭 프롬은 사람에게는 두 가지 삶의 양식이 있는데 하나는 소유양식이고 하나는 존재양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양식은 존재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존재양식이란 소유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 자체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꽃밭에 꽃이 피어 있으면 그 꽃이 거기에 있는 것,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유양식의 사람들은 꽃이 있는 것만으로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꽃을 꺾어서 집에 가지고 가야 기쁩니다. 자신이 그것을 소유해야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소유양식의 사람은 소유 집착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소유 집착증은 소유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고 그냥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하는 것입니다. 왜 이것을 소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이 그냥 소유하면 되고 소유하면 행복한 것인 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남자는 결혼 전에는 아내를 소유하기 위해서 잘합니다. 꽃도 사다주고 좋은 음식점에서 맛있는 것도 사줍니다. 그러나 소유하고 난 다음은 잘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잡아 논 물고기에 왜 미끼를 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말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소유양식의 사람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소유양식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만남은 인격적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인격적 만남은 소유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랑을 가꾸고 키워가는 것입니다. 소유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노력하며 사랑의 꽃밭을 함께 가꾸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동화 속에 나오는 잘못된 사랑의 ____신화 ___ 를 믿는 것이 장애물입니다.
동화 속의 사랑이야기는 그렇게 만나서 서로 행복하게 잘 살았다. 로 끝납니다. 신데렐라도 어릴 적에 고생이 많았지만 왕자와 결혼 하는 것으로 불행 끝 행복시작으로 결말이 납니다. 백설공주도 왕자님 만나서 결혼하여 잘 살게 되었다. 로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 세계의 모든 여성들은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잘 못된 신화가 생겨난 것입니다. 결혼하면 저절로 행복해 질 것이라는 생각은 잘 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신화를 믿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조수아 리브만-은 ‘그 후 행복하게 살았다’ 는 말은 문학에 나오는 가장 비극적인 문장들 중 하나이다. 그 말은 거짓이기 때문에 비극적이다. 이것은 여러 세대에 걸쳐 가능하지 않은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신화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명한 심리상담가 스캇 팩은 우리는 사랑에서 빠져 나오게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로맨스의 만발한 꽃은 시들게 마련이다. 라는 것입니다. 노력 없는 행복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웃으면 세상이 나를 보고 웃는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행복은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기술을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3) 친밀해지기 보다는 ___익숙해 ___ 해지는 것이 사랑의 장애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친밀함과 익숙함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친밀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함께 대화하고 아껴주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익숙하면 함부로 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익숙한 것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천대합니다. 예수님도 고향에서 배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며 목수생활을 하며 살았던 것에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익숙하면 그 가치를 몰라봅니다.
그러나 사람은 변화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내가 아닌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기호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서로를 계속 알아가며 더 친밀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신비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는 좀 떨어져 지내보기도 해야 합니다. 제가 다녔던 대학원에 30대 젊은 부인이 있는데 남편이 항해사입니다. 6개월 내지 8개월마다 한 번씩 우리나라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들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이라고 자랑합니다. 한 날은 이 부인이 너무 기분이 좋아 들떠 있기에 좀 의아해 하다가 제가 아! 남편이 돌아왔구나. 싶어서 물어보았더니 그렇다 하더군요.. 오랜만에 만나면 신비로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저도 안식년은 못해도 안식월로 좀 나가 있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면 서로에게 필요성을 더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인생은 권태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여백이 필요합니다. 떨어져 있어 보고 홀로 있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부도 서로의 갱년기의 고통을 진지하게 들어보고 아픔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슬기롭게 권태기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나가라고 하고 무조건 이혼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친밀함으로 더 가까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는 이런 탁월한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 감격을 유지하고 재생하는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4) 상대방의 변화와 성숙에 대한 잘못된 기대와 __조급함___ 이 장애물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상대방을 고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잔소리합니다. 그러나 상대는 갑자기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변화와 성숙도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급 때문에 불안해하고 싸웁니다.
독일 신학자-프리드리히 휠덜린-, “깊이 생각하는 저 신이 역겨워 하는 것이 있으니, 곧 이것은 때 이른 성장이다.” 라고 했습니다. 너무 조숙한 성장은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성장하면 갈 곳은 한 곳 뿐입니다. 그래서 미래를 보고 참고 살아야 합니다. 앞으로 좋아 질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2.두 번째 사랑의 기술은 2. 긍정적인 ___생각____ 을 가지고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빌 4:8)“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가까운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무엇이든지 긍정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느냐?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가능성을 보고 무한한 잠재의식으로 보고 서로를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긍정적인 눈으로 상대를 대하려면 복음의 안경을 써야 합니다. 우리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로 구원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이 은혜의 안경으로 사람을 보면 잘 못된 것은 용서하고 감싸주고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을 보는 틀이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적인 시각으로 사람을 대하면 모든 잘 못된 것을 지적하게 됩니다. 서로 고발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을 긍정적인 눈으로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적인 교회는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하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우리는 복음 안에서 교제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철저히 핍박했던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을 용서하시고 일꾼으로 삼아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철저히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그렇게 사랑받을 존재였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바울은 그들은 은혜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면 사랑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참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변화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 케데사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아주 역설적인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창녀라는 뜻이고 하나는 성자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은혜로 보아주었습니다. 그를 친구로 삼아주고 사랑했습니다. 그러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해 옥합을 깨어서 예수님을 가장 위로해 주는 성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보아야 주어야 합니다.
3. 사람들의 ______좋은 점______ 들을 찾아서 감사하십시오.
[빌] 1:7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면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복음 사역에 너무나 헌신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좋은 점들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며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눈에 사람들의 좋은 점만 보이면 행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복음의 안경을 가진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의 눈은 사람들에게서 좋은 것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군위장로교회에서 집회를 하는데 옆에 있는 목사님이 왜 시간을 안 지키느냐? 순서를 이렇게 하느냐 하면서 계속 투덜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님 은혜가 많이 떨어지셨네요?? 하고 농담을 했습니다. 지금 이 분은 행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행은 사람의 단점만 보이는 것이 불행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좋은 것이 있어야 선한 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 보이고 선한 것이 보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 이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내가 은혜 받으면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모든 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84:11)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시 85:12)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 103:5)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11)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 11:13)
교회에서 나온 사람 복음 굳 뉴스를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좋은 것을 선물로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았고 성령이 내주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착한 것 , 선한 것, 좋은 열매, 예수님의 성품의 열매, 전도의 열매, 믿음, 소망, 사랑, 우정,, 지혜 총명 이런 것들인데 이런 것들의 특징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다. 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이는 것은 사라지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히 남아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것들이 우리 안에 가득해 지는 것이 은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그 엄청나고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고 세상의 모든 것이 좋아 보이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관점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게 하고 어떤 것들은 지나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들 정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들은 지나칠 수 있는 것, 이것도 은혜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어떤 분은 제직회 때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다고 교회에 안 나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헌금 봉투에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고 삐집니다. 이런 것은 은혜 받아서 지나쳐야 하는 것은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적인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간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눈이 변하는 것입니다.
곱사등의 편지라는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의 외모는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저는 노예 수용소의 땅 밑에서 작업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고를 당하여 곱사등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소년이 저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등에는 뭐가 들어있어요? 그 아이가 저를 놀리려고 그 말을 하는 줄 알았지만 어쨌든 그에게 대답해 주었죠.. 나는 곱사등이란다. 그러자 그 아이가 그렇게 말하더군요..아니에요 하나님은 사랑이셔서 사람을 불구로 만들지 않으신다고 했어요! 아저씨는 곱사등이 아니라 아저씨의 어깨 아래는 상자가 감추어져있는 거예요 그 상자 안에는 천사의 날개가 감추어져 있을 것이에요 그래서 언젠가는 그 상자가 열려서 아저씨는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갈 것이에요 ..이 이야기를 들은 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똑 같은 곱사등을 보고 이 아이는 천사의 날개를 보고 있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안경이 변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틀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을 괴롭게 했던 사람들까지도 감사하는 안목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아프게 했던 사람도 우리의 생에 은인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은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를 괴롭게 했던 사람 때문에 교만을 꺾게 되었고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인지를 알게 되었고 치유와 회복의 기쁨을 알게 되었으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모든 것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사람들의 좋은 점만 바라보는 좋은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을 사랑함으로 행복해지고 기쁨이 넘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4. 있는 모습그대로를 용납하고, 성장하기 까지 _____인내 _______ 하십시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1:6)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 (롬 5:5)
마지막으로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고 성장하기 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그래서 에릭 프롬은 사랑이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아주고 그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변화 하려면 변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변화 되는 것입니다. 바꿀 수 없는 자는 사랑해야 합니다.
미국의 어떤 농촌에 민들레가 극성을 부려서 농사가 안 됩니다. 그래서 농림부 장관에게 호소를 하니 민들레 없애는 약을 보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민들레를 없애는 여러 가지방법들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농림부가 보내 준 방법 다 써도 안 됩니다. 하고 농림부 장관에게 다시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자 장관의 답장이 왔습니다. 여전히 민들레가 자란다면 그것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면 가까운 사람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에너지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있을 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장할 때 까지 인내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허물을 덮어 주며 기도하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사랑의 저수지에 나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받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 아내, 남편 자녀들, 교우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이 우리 속에 들어있기에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그런 사랑이 풍성해야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풍성하게 되는 것은 교회에 나와서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고 더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자원 말고 하나님의 자원 십자가 안에 있는 사랑을, 성령께서 부어주신 사랑을 받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부탁할 때 자원을 주시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기름 치지 않으면 기계는 마모된다. 기름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풍성히 받고 사랑해야 합니다. 음식점에서 음식만 보고 가면 배부르지 않습니다.. 말씀을 풍성히 받고, 열심히 기도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들을 찾아 왔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