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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성공!(6) : 오신 예수님을 닮은 성공자가 되라!”
+ 본 문 : 마가복음 1장 1절 - 8절 (신약성경 53쪽)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아멘!
서로 축복 / “잘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잘 될 줄로 믿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앞으로는 더 평안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축복합니다. 앞으로는 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SNS에 떠도는 죠크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운 어느 날, 지옥에서도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습니다.
파티를 시작하면서 졸개 악마가 대왕마귀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면서,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대왕마귀님, 지상의 인간들도 우리들처럼 크리스마스를 흥청망청 즐겁게 지내도록 부추겨 봅시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만 크리스마스를 쾌락적으로만 즐길 뿐, 진지하게는 생각하지 않도록 합시다.’
대왕마귀는 무릎을 치며 참으로 좋은 제안이라고 기뻐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진지하고 깊이 생각하는 순간부터, 사탄마귀의 왕국은 파멸이 시작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요즘 사람들을 보면, 심지어 교회도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점점 가면,
갈수록 성탄절을 의미 없이 보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송년파티나 동창회 망년회 수준으로 보냅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성탄절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볼 수 없는, 연말 축제 중 하나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고자 이 땅에 내려오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죄인 된 저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죄 사함 받게 하시고, 죄로 말미암은 심판에서 구원해주시려고,
하나님이 친히 우리 인간과 똑같은 육신을 입고, 하늘에서 예수님이 이 땅으로 내려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오심은 기쁜 성탄이요. 너무나 감격스런 성탄입니다. 그래서 성탄의 의미는 너무나 심오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심오한 오심을 감격하며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Merry Christmas!”
2천 년 전 세례요한도 성탄절을 너무나 의미 깊게, 그리고 정말로 거룩하게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성탄을 거룩하게 맞이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할 하늘의 음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성탄절을 맞이하여야 할까요?
예수님을 닮는 영적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닮는 영적 성공자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을 닮는 성공자가 되려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 받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구원과 영생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우리의 존귀한 신랑으로 비유하고, 성도인 우리들을 순결한 신부로 비유합니다.
거룩한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하려면, 우리 자신을 정결한 신부로 다듬고 준비해야 합니다.
회개란? “마음을 180도 고쳐먹다. 생각을 돌이킨다. 행동을 바꾼다.” 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회개란 악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바꾸고, 악한 생각에서 돌이켜 선한 생각을 품고,
모든 악한 행동에서 돌이켜, 옛 사람이 아니라 180도 변화된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회개라고 말합니다.
회개는 이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첫 번째 설교 주제도, 예수님께서 외치신 첫 번째 외침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 회개하고 악한 마음도 고쳐먹고, 생각도 주님 생각으로 돌이키고,
모든 악한 행동도 180도 바꾸어야 천국에 들어가고, 천국의 복을 이 땅에서도 누린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사도들도, 세례요한처럼! 예수님처럼! 설교할 때마다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 회개하고 악한 마음도 고쳐먹고, 생각도 주님 생각으로 돌이키고,
모든 악한 행동도 180도 바꾸어야 천국에 들어가고, 천국의 복을 이 땅에서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혹 가족들에게 잘못 한 것, 이웃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손해를 끼친 것을 뉘우치고 회개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례 요한은 회개를 외치며,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뉘우치며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부도덕, 비리, 권력남용,
부정행위, 거짓, 이중성격, 비윤리적 삶을 산 것을,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5절, 누가복음 3:8-14)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성탄절을 앞두고, 또 한 해를 마무리하기 전에,
먼저 지난날의 우리가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모든 죄와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회개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이려면 먼저 깨끗한 성결작업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곧 회개입니다.
저는 이번 성탄절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깊은 회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도 용서를 빕시다.
어떤 분이 부도덕한 죄를 지은 후에, 그 죄가 생각이 나서 가슴 아픈 회개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의 모든 행동들이 기록된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은 물론 학창 시절, 결혼생활, 교회생활과 봉사에 관하여 상세하게도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도덕에 관한 항목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단지 그곳에 “회개!” 라는 한 단어와 함께 “하늘에서 기뻐하셨음”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구 밑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대가 회개한 죄를 깨끗이 용서하셨음”
우리의 죄가 주홍 같이 붉을지라도, 회개하고 고치기만 하면 깨끗이 용서해주십니다.
이것이 예수 성탄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회개하는 만큼 기쁨이 있고, 감격과 환희가 넘치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의 노래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회개하는 만큼 신비한 환희와 행복도 우리가 누리게 됩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찬송합니다. ‘너희 죄 사해 주사 기억 아니 하시네. 너희 죄 사해 주사 기억 아니 하시네.
불쌍한 사람들아 오라 하시네. 너희 죄 사해 주사, 너희 죄 사해 주사. 기억 아니 하시네. 2 X ’
이런 고백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우리의 모든 죄를 내어놓는 회개로,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닮는 성공자가 되려면 오신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최대한의 경의와 겸손을 나타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자!” 라고 겸손하게 고백을 합니다.(7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낮은 자리 마음의 겸손을 품어야 합니다. 사실 겸손한 자가 강자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겸손의 극치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화려한 예루살렘 수도에 오시지 않고, 베들레헴 시골 마을 마구간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만왕의 왕으로 입성하시면서, 겸손하게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야말로 우리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 마음의 겸손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자기를 내세우거나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교만에 빠지지 말아야합니다. 자기를 한없이 낮추어야 합니다.
겸손이란? 자기를 드러 내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자기를 드러 내지 않는 겸손이어야 합니까?
어느 기독교학교에서 해마다 연말이 되면 겸손한 학생을 선정하여 표창하고,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한 학생이 그 해의 가장 겸손한 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그 학생은 상도 받고, 메달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그 학생은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그 메달을 가슴에 달고 등교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드러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낮은 자리 마음의 겸손을 유지한다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하셨던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날마다 낮은 자리 마음의 겸손훈련이 필요합니다.
교만이란 말은 ‘자기를 다른 사람 위에 올려놓는다.’ 는 뜻입니다. 그러나 겸손은 흙이라는 뜻입니다.
즉 겸손이란? 땅처럼 자신을 낮춘다는 뜻입니다. 하늘은 높음을 상징하고, 땅은 낮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흙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입니다. 물도, 거름도, 각종 씨앗도, 심지어 오물도 받아들입니다.
쓰레기까지 수용합니다. 그러다가 그것들이 썩으면 그 땅은 옥토가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낮고 천한 자리! - 마굿간, 골고다까지도 다 받아들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든 상처도, 아픔도, 억울하고 분함도, 염려와 근심도, 절망까지도 다 받아들이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지옥의 고통까지도 다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자기 낮춤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성탄절은 예수님처럼 자기를 철저히 비우고, 그 어떤 아픔과 고통도 다 받아들이며,
다른 사람들 때문에 겪는 모든 상처와 아픔도, 억울하고 분함도, 다 비우는 겸손의 은혜를 체험합시다.
이 시간 이해인 님의 “겸허한 마음” 이라는 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주님! 저는 늘 제 귀를 기쁘게 하는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 하지만, 일부러라도 귀를 아프게 하는,
책망과 훈계와 충고의 말을 깊이 새겨듣고, 즐겨 청할 수 있는 성숙한 지혜를 키워가게 하소서.
꿀맛처럼 달디 달지만 유혹이 되는, 칭찬과 찬미의 말은 두려워하고, 씀바귀 맛처럼 씁쓸하지만,
약이 되는 어떤 충고나 비난의 말을, 오히려 즐겨 들을 수 있게 하소서. 조금쯤 억울하게 느껴지는,
말들이라도 변명하지 않고 받아 안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신을 넓혀가게 하소서.
남으로부터 부당한 판단을 받았다고 몹시 화를 내기 전에, 제가 남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함부로 말했거나 속단했던 부분을 먼저 마음 아파하고 반성할 수 있는,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어떤 모임에서건 누가 먼저 저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 주면, 조심스럽게 공손하게 듣기만 할 뿐,
수다스럽게 부풀려서 맞장구치는 뻔뻔스러움을 피하게 해주소서.
이웃에게 제 자신을 알리려 할 땐, 장점과 성공은 가능한 한 숨겨두고,
약점과 실수를 먼저 자랑할 수 있는, 어리석음의 용기를 주소서, 주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2015년 성탄절은 진실한 회개와 낮은 자리 마음의 겸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며 다시 오실 재림 예수님을 소망하는 거룩한 성탄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닮는 성공자가 되려면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다스림과 인도를 받으며 사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좀 더 큰 의미로 정의합니다.「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사람」입니다.
여기 ‘머문다.’ 는 말은 임시 거주가 아닌, 아예 집을 짓고 정착한다는 뜻입니다. 영구 거주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이 영구히 내주 – 성령님이 영원히 내 안에 계시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이후부터, 성령님은 내 안에 영원히 함께 해주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 믿는 성도의 몸을 성령의 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몸이 곧 성전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이 땅에 영으로 오셔서 머무는 곳이 우리 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대단한 호칭을 붙여줍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의 사람!”
한 마디로 성령님은 우리로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영성으로 살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그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는 삶의 변화! - 예수 안에서 영광스런 삶을 살게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성령님의 역할은 매우 실제적입니다.
첫째, 성령님은 우리로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우리의 속사람을 거듭나게 하셔서 새 생명을 주십니다.
둘째, 예수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셋째,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는 열정도 주십니다.
넷째 예수님을 닮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한 성령님의 영광스러운 사역이요. 최고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않을수록 사나워집니다. 사악해집니다. 거칠어집니다. 사탄처럼 됩니다.
반면에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게 하십니다. 성화시켜 주십니다. 성자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형상이신 예수님을 닮게 하십니다. 우리의 성품과 인격이 예수님을 닮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119 – 119번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을 본받아 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라고 명령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으로 죄성을 이겨야 하고,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온전하심을 닮아가야 합니다.
독일의 중세 수도사였던 토마스 아켐피스의 책 제목 그대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처럼 이 세대를 본받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슴에 이런 갈망이 필요합니다.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예수님을 본받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 살 수 있습니다.
넷째로, 예수님을 닮는 성공자가 되려면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 마디로 사랑입니다. 순수한 사랑입니다. 희생적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입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도 축복하는 사랑입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시는 사랑입니다.
원수까지도 품어주시는 사랑입니다. 그 어떤 배신과 실망 앞에서도 끝까지 인내하시는 사랑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주시는 사랑입니다. 달라고 해서 주시는 사랑이 아니라 그냥 주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우리도 할 수 있을까요? 성령 받고, 오직 성령이 주시는 가슴으로 하면 할 수 있습니다.
S N S 에 올라온 한 무명 시인의 고백이,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내가 나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했을 때, 참 많이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하여.
나의 사랑으로 남편을 사랑했을 때, 참 많이 울어야만 했습니다. 남편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나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사랑했을 때, 참 많이 화를 냈습니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하는 욕심 때문에.
내가 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했을 때, 참 많이 참아야만 했습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윤리 때문에.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하니 사랑하는 일이 쉬워졌습니다.
사랑하는 일이 감사가 됩니다. 사랑하는 일이 큰 기쁨이 됩니다. 사랑하는 일이 큰 행복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가능케 하십니다.
멕시코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 대니 오스트의 기도가 우리 가슴 깊이 감명을 줍니다.
“예수님의 심장박동기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의해 움직이게 하소서.
예수님의 콘택트 렌즈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로 예수님이 보시는 눈으로 사람들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보청기를 주셔서 주님의 음성과, 울부짖고 탄식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게 하소서.
이처럼 예수님의 가슴, 예수님의 눈, 예수님의 귀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닮는 성공자가 되려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 받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닮는 성공자가 되려면 오신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닮는 성공자가 되려면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로, 예수님을 닮는 성공자가 되려면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