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편 23편 강해 (3)
+ 제 목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
+ 본 문 : 시 편 23장 1절 - 6절 (구약성경 818쪽)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
오늘 본문 시편 23편 3절 말씀을 다 함께 큰소리로 선포하겠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오늘 이 시간은 전반부에 있는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고,
다음 시간에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라는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나눌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라는 말씀은 저와 여러분에게 참으로 좋은 소식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소생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우린 이런 저런 상처를 입고 힘들게 정말로 힘들게 살아갑니다.
우리들은 실망과 좌절감으로 마음이 산산조각이 날 때가 있고, 삶에 지치고, 실수하여 넘어지면,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겐 과거로부터 받은, 남들이 모르는 마음의 상처가 있고,
우리들은 그 상한 마음의 아픈 상처 때문에 폭발하고, 항상 감정적인 불안을 안고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과 상처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기 위하여,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의 영혼, 저와 여러분의 영혼을 소생시키십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기 위해서, 우리의 죄의식을 제거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 가지게 되는 죄책감은, 우리의 영혼을 정말로 빨리 파괴시킵니다.
그래서 시편 38편 4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며 선포합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아멘! - 우리 모두는 불완전합니다. 아멘입니까?
우리 모두는 실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죄의식을 안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쉽게 이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항상 죄의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삶에 항상 도사리고 있는 죄책감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요?
먼저 죄를 부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 자신에겐 죄가 없는 것처럼 부인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다. 내가 아무리 부인해도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은 죄를 부인한다고 해서, 죄로부터 영원히 자유함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작게 여기는 방법입니다. “내가 지은 죄는 큰 죄가 아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어!”
여러분! 그렇다고 죄의식이 없어집니까? 아무리 그래도 죄책감의 문제가 해결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합리화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놈이야” 하면서 자신의 지은 죄를 합리화시킵니다.
죄를 두 번 세 번 저지르다 보면, 처음 저지를 때보다도 훨씬 죄의식을 덜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어떤 죄를 계속 반복해서 짓다 보면, 우리의 양심이 그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집니다.
그렇다고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죄의식이 완전히 사라집니까?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 정도는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하는 일 아닌가?” 하면서 아무리 합리화 시켜도,
솔직히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혹 다른 사람들이 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는 것은,
자신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항상 나보다 더 나쁜 사람을 찾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합리화는 거짓말입니다. 우리 양심에 잘못된 것이라 하는데, 머리가 괜찮다고 괜찮은 것입니까?
여러분! 우리 양심에 잘못된 것이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요. 죄의식은 여전히 남게 됩니다.
우리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과,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한 것을 저울질합니다.
나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합니다. 그래서 쉽게 비난합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을 비난한다고 해서 내가 지은 죄와 죄의식이 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의식을 부인하는 방법, 죄의식을 아주 작게 여기는 방법,
자신이 지은 죄를 무시하거나 합리화시키는 방법, 그리고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방법으로는,
결코 우리 마음에 자리 잡은 죄의식을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해결책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은 물론, 그로 인한 죄의식까지도 하나님께 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고 깨끗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 24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우리가 믿는 가장 근본적인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지은 모든 죄값을 지불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위하여 지불하신 대가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죄의식이 제거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상담사들이 우리 죄를 해결 못합니다. 죄를 용서해 줄 능력도 없습니다.
오직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무슨 죄들을 저질렀는지를 모릅니다. 내가 지은 죄도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죄의 용서는,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이냐에 달려 있고, 내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시므로, 이미 용서하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지은 죄를 온전히 용서함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아멘입니까? 하나님께 빌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래서 구원과 속죄는 복음입니다. 은혜의 선물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수없이 많이 간구했는데도 아직도 죄의식을 느끼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용서해 주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우리가 처음에 간구했을 때, 우리의 죄를 완전히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미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해서 다 용서해 주셨는데도, 또 다시 똑같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까? 골로새서 2장 13절, 14절 말씀입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다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 우리의 모든 죄가 완전히 지워졌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때는 완전하게 용서하십니다. 완전히 용서해 주시고 잊어버리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시므로, 우리의 죄의 대가를 완전히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백한 죄를 잊어버리시는데, 우리가 안고서 고민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더 이상 문제도 삼지 않으시는 것들을 가지고, 왜 자꾸만 자신을 괴롭히십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못 박을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기 위해 우리의 죄의식을 제거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죄의식을 제거하도록, 하나님께 다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제거해 주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기 위해 우리의 슬픔을 제거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은, 모두 자신의 잘못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향한 말들과, 나에게 행한 행동들 때문에 상처를 받게 됩니다.
때로는 내가 당한 일이 아니지만, 가족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상처를 받게 되면, 괜히 사람이 싫어지고 세상이 싫어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항상 불완전 한 곳입니다.
그래서 상처 받으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습니다. 절망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어느 교회 성도님이 자기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께! 지난 해 20년 간 함께 살아온 저희 부부의 결혼 생활이 끝장났습니다.
이혼을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나, 결과는 불행한 이혼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목사님께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제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너무나 감정이 상해 있고, 저의 미래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절망감에 빠져 있습니다.
저는 하루의 일을 끝내고, 다 떠난 빈 집, 빈 방에서 통곡하며 울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우는 것을 들어줄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로 너무 바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저는 순간 순간 끌려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순간을 이기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 저의 삶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목사님! 제발 상처받은 저의 마음을 도와주세요. 그리고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여러분! 누구든, 어떤 이유든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힘든 삶을 다 아십니다. 그 마음의 깊은 상처까지도 다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과 함께 마음 아파하시며, 우리의 아픈 곳을 돌봐 주십니다.
우리의 텅 빈 마음과 허전한 아픈 마음을, 오직 우리 예수님께서만 채워 주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만 내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만 내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다윗은 슬픔을 많이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가 마음에 상처를 받을 때에,
그것이 얼마나 우리 자신에게 아픔을 주는지를 잘 이해했던 사람입니다. 시편 31편 9절입니다.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다윗은 마음속에 상처를 입는 것이, 얼마나 자기 영혼에 영향을 끼치는가를 이해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남편 우리야를 죽인 어리석은 일로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다윗은 자기가 저지른 죄로 인하여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런 불륜의 관계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금식하며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아들은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다 제 실수입니다. 제 아들을 살려 주시옵소서.”
그러나 그 아이는 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런 슬픔 가운데서 다윗은 세 가지를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기를 원하신다면 이 세 가지를 해야 합니다.(삼하 12장)
첫째로,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무엘하 12장 12절, 13절 말씀입니다.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아파도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는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을 찾기 위해서는 이 단계가 꼭 필요합니다. 변경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십시오.
두 번째 단계는, 내가 상처를 입은 그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과장하지 말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살아가면서 고통은 받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걸 아십시오. 분명한 것은 고통은 피할 길이 없으나 불행함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나를 망했다.” 말하지 말고 “주님! 이 일을 통해서 역사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했던 다윗에게, 잃어버린 아들 대신 솔로몬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다 할지라도, 주님 안에서 우리 삶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의 남은 삶이, 우리 삶의 최고가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기 위해서 우리의 원망을 바꾸시게 하십니다.
불평이란? 다른 사람들이 내게 행한 말과 행동으로부터 오는, 아주 나뿐 부산물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들 때문에 우리들은 마음에 죄의식을 느끼며, 마음 아파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한 말과 행동들 때문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불평하게 됩니다.
살면서 상처를 받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삶의 현장입니다. 삶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상처를 줍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상처를 줍니다.
어떻든 상처를 받으며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삶의 상처를 받을 때에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나는 쓴 마음을 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내 삶이 절망일 수도 있고, 내 삶을 새 방향으로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슬픔, 죄책감, 그리고 원망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의 상한 심령을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고쳐 주십니다.
시편 42편에서 다윗은 다음과 같이 기도하며 선포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 왜 우리가 낙망합니까? 왜 우리가 실망합니까? 왜 불안해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는데, 왜 우리가 낙망합니까? 왜 실망합니까? 왜 불안해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소생시켜 주시는데, 왜 낙망합니까? 왜 실망합니까? 왜 불안해합니까?
우리가 낙망하고, 실망하고, 불안해 할 때, 우리를 소생시켜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소생시켜 주실 때에, 우리에게 자신과 기쁨과 평안과 힘이 오게 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이 시간 통성으로 나의 모든 낙심을, 나의 목자되신 하나님께 다 맡기는 기도를 드립시다.
그리고 나의 모든 낙심을 평안이 되기를, 주여! 세 번 크게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 마무리기도 / 김대용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