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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두 얼굴
도시가 어두워지고 불이 켜지면, 일과를 마친 사람들과 눈부신 야경으로 한강은 더욱 활기를 띤다. 무대에선 째즈 선율이 들려오고, 삼삼오오 모여 치킨과 맥주를 즐긴다. 그 때 갑자기 119수난구조대의 수색이 시작됐다. 30대 초반의 남자가 서강대교에서 투신한 것. 다리 위엔 가방과 운동화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소방재난본부 119특수구조단에 따르면, 8월 1일부터 26일까지 영등포 119수난구조대가 출동한 횟수는 121건. 지난해 같은 달, 67건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어떤 이에겐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공간, 누군가에겐 생의 마지막 장소가 되는 곳. 두 얼굴을 가진 한강이다.
옆에서 놀고, 맥주 먹고 해도 사람이 금방 뛰었는지 모르는 사람들고 많고
한가롭게 더위를 식히기 위해 왔는데,
옆에선 사경을 헤매는 분도 있고 한강이 그런 곳입니다.
시민의 휴식공간이기도 한 반면에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 되는...
그런 곳입니다_노수길, 44세
흔히 말하길, 한국처럼 다른 자원이 많지 않은 나라는 인적자원의 활용이 무척 중요하다고 그런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인적자원이 중요하지 않은 나라가 과연 있겠냐만은, 그래도 한반도가 걸어온 역사를 보거나 요즘 국제적인 활동을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어쨌든 기본적인 국토의 크기나 인구 규모, 과거에 식민지 지배 또는 제국의 경험, 천연자원의 보유 정도 등 여러 가지를 놓고 봤을 때 대한민국은 다른 주도국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국(小國)'에 가까운데, 각종 경제지표나 세계적인 활약상(?)은 우리와 비슷한 부류의 다른 나라들 중에서 상당히 눈에 띄는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사회가 유난히 '최대' 또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여 남들에겐 별 것 아닌 일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과대포장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올림픽과 같은 국제적인 운동경기라도 벌어지면 고질적으로 집단주의와 민족주의 등을 자극하며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고, 이런 세계적인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다른 나라들처럼 일상적으로 준비하기보다는 뭔가 과도하게 집작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스포츠만 해도 그렇다. 소위 말하는 선진국들이 보통의 학교체육과 생활체육에 중심을 두고 투자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투자 자체가 빈약한 걸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너무 엘리트체육 위주다). 그래서 그런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손꼽히는 결과물을 낼 때가 많기는 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런 '기록'들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무튼, 대한민국 성장의 핵심요소는 '인적자원'이라고 보통 이렇게들 말한다. 그래서 뜨겁다 못해 과열되어 터지기 일보 직전인 교육열도 이런 측면에서 정당화되기도 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특정 개인의 능력으로 성공한 사례를 마치 사회적인 성공인냥 갖다붙이기도 하며, 전체 시스템 자체가 잘못된 것을 그저 한 개인의 문제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최근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묻지마 범죄'에 대한 대처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인적자원 활용 실패는 별로 인정하지 않은 채 단순히 한 개인의 경제적 낙오나 인간관계 단절을 위주로 분석하려고 하는 게 일반적인 시각인 것이다. 단언컨대, 이렇게 '눈 가리고 아옹'식으로 문제를 바라봐서는 절대 상황을 개선시킬 수 없으리라.
[사진자료: 연합뉴스 (2012년 9월 9일)]
바로 어제, 우리는 주목되는 두 개의 뉴스를 보게 된다. 하나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經濟協力開發機構,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통상적으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수를 자살률이라고 한다)이 8년째 1위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18번째 작품 <피에타(2012)>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위의 왼쪽 도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통계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OECD 평균과는 약 20명 넘게 차이가 나고, 2위 국가보다도 무려 10명이나더 많다. 쉽게 말해 다른 회원국들에서 일반적으로 자살하는 정도보다 거의 3배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현재 자살하고 있다는 말인데, 자살률이 아니라 일일 평균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에서는 하루에 42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땅 어디선가는, 항상 35분마다 한 명씩 계속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출산율 최저와 동시에 자살률 최고, 대한민국 인적자원의 양적 붕괴
다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출산율이 최저 수준이다. 그래서 총인구가 (4천만 명을 넘어선 지 29년 만에) 올해 5천만 명을 넘어섰다고는 하나, 저출산으로 인해 2030년쯤에 약 5천2백만 명을 정점으로 2045년 즈음에는 다시 5000만 명 이하로 감소한단다. 그러니 20년 이내에 우리 사회의 인구감소가 진짜 현실화된다는 것이고, 이는 평균수명 증가와 함께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가 한국의 근로인구 감소나 부양인구 급증 문제로 곧바로 직결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와 같은 경제활동인구 감소는 세수 감소와 사회보장비 증대로 이어지고, 결국 국가의 재정수지 악화가 불을 보듯 뻔하다. 저출산 고령화 자체가 국가 전체적으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셈이며, 앞으로 우리가 중점적으로 대비해야 될 문제인 것이다. 이번포스트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저출산의 원인을 단지 경제적인 부분에만 한정해서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2011년 5월 10일 한국일보 보도]
어쨌든 대한민국은 급속한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상황인데, 앞에서 살펴봤듯이 더 큰 문제는 이와 동시에 자살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우리 사회가 암울하면, 출산율은 최저이고 자살률은 최고일까? 묻지마 범죄의 급증을 포함해서 이 세 가지 결과는 무척이나 슬픈 일인데, 인적자원의 측면에서도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이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고도 하는데, 이런 식으로 한국의 인적자원이 악질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손실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사회의 전반적인 에너지 자체가 쇠퇴하게 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말이 그리 멀지 않은 시일 내에 사라지게 될 수도 있고, 기운이 다 빠져버린 한국사회는 영속적인 장기불황시대에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이미 어느 정도의 초저성장은 기정사실화 됐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인적자원이 양적으로 완전히 붕괴되는 것이다.
웬만해서는 나오기 힘든 극소수의 김기덕, 대한민국 인적자원의 질적 붕괴
한편, 많은 사람들이 김기덕의 '피에타'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기뻐하며 찬사를 보내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마이너 또는 아웃사이더로 불리는 인물들이 성공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주류와는 동떨어진 일을 하는 이들이 남들 눈치 안보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고통이 뒤따를까? 솔직히 한 번 말해보자. 김기덕이, 한국에서 성공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철저히 소외된 예술가였으며, 외국영화제라는 외적 기회가 없었다면 지금도 여전히 찬밥 신세였을 것이다(한국인들의 주체성 없는 사대주의에 대해서 여기서는 일단 논외로 한다). 단지 김기덕이라는 한 개인이 이상해서 그럴까? 안타깝게도,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요즘 외국에서 공부한 엔지니어들은 다시 한국에 돌아오기를 꺼린다고 한다.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엔지니어를 대우하는 태도는 엉망진창이면서 거의 노동력 착취 수준인 한국의 작업 환경도 큰 이유 중에 하나란다. 김기덕과 다수의 엔지니어들을 보면 이런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에디슨이 한국에서 태어나면 전파상 주인, 아인슈타인은 시간강사, 노엄촘스키는 과외선생이 된다는 말..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천박한 사회 인식과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야 할까? 제발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김기덕은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대단히 아주아주 특수한 경우다.
[이미지 출처: 이현승 감독 트위터(@blueinu)]
문제는 또 있다. 얼마 전부터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상속재산이 없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기덕 감독을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로 바라보는 듯한데, 좀 냉정하게 말하자면 김기덕 세대(70년대 이전에 태어난 세대)가 거의 끝이 아닐까 싶다. 물론 예술은 상당히 특별한 분야라서 다를 수는 있겠지만, 예술이고 아니고를 다 떠나서 사회 전반적인 흐름을 보면 어느 분야에서나 상속재산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요즘 사회적으로 비교적 성공적인 위치에 오른 젊은이들을 보면 예전보다 훨씬 더 '대물림'의 분위기가 강한 듯하고, 박정희 후손이나 삼성가 같은 재벌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세습'이 더욱 견고해지는 느낌이다. 과연 이런 후진적인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상호 기자의 말대로, 삼성특검의 아들 정도 되지 않으면 이제 평범한 집안의 자식들은 대기업에 취직하기도 쉽지 않은 대한민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사회에서는 인적자원의 질적 붕괴를 절대 피할 수 없으리라.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먼저 우리 자신부터 변하자
사회 전체의 시스템적인 문제는 다른 포스트에서 항상 매번 하는 얘기니까, 이번 포스팅에서는 약간 다른 시각으로 마무리를 해보겠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각자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는 사회도 전혀 바뀌지 않는다. 자기는 집단에 숨어서 다른 사람을 왕따시키면서, 절망형 외톨이들이 사회문제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직장내의 자신은 중간관리자로서 비정규직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고 함부로 대하면서, 아무리 노동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해봐야 소용 없는 일인 것이다. 마치 2007년에 이명박에게 표를 줬으면서, 맨날 정부 욕해봐야 부질없는 짓인 것처럼..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정치인의 수준은 곧 유권자의 수준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정치인들을 뽑은 게 애초에 잘못인데, 도대체 누굴 탓하는가? 사실, 정치 개혁은 애써 소리칠 필요도 없다. 그냥 유권자들 각자가 제대로 잘 뽑으면 된다. 어차피 그 사회의 수준에 걸맞는 인간들이 정치를 하게 되어 있다. 지금 한국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이들은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계속 한국사회에서 살아오던 사람들이고,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나름 성공했다고 하는 인물들이다. 한국정치가 개판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한국사회 자체가 개판이라서 그렇다.
우리 스스로 한 번 생각해보자. '피에타'를 비롯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 단지 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배척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았는지.. 물론, 당연히 개인적인 호불호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문화라는 건 원래 그런 것이다. 아무리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고 해도, 본인의 마음에 안 들면 그건 싫은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취향이 아닌 집단의 취향 뒤에 숨어서 제대로 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건 분명히 문제다. 우리들 각자가 집단에 의해 억지로 길들여진 취향에서 벗어나 예술에 대한 관용을 갖는다면, 김기덕 같은 감독들도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한국 영화계 성숙도의 바로미터가 김기덕 아닐까?).
비단 예술분야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관심과 관대함은 정말 필요한 미덕이다. 왕따가 왜 사회문제가 되고, 묻지마 범죄가 왜 폭증하는가? (사회시스템적인 문제인 건 당연하고) 각자가 너무 여유가 없고, 관용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 자살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 각 분야에서 우리 자신부터 변한다면, 대한민국의 인적자원 붕괴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개인적으로, 몇년 전부터 삼성제품에 대한 자발적인 불매 습관을 실천하고 있다). 한사람 한사람 바뀌기 시작하면 곧 문화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면 사회 자체도 저절로 변할 수밖에 없으리라.
에스토니아(김기덕 미나 수바리 박칼린 리투아니아 로스 앤젤 리스)프레드릭(박지아 채림 남보라 줄리엣 비노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