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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
16세 |
17세 |
18세 |
19세 |
20세 |
21세 |
22세 |
이름 |
송우 |
득규 |
포온 |
종로 |
원부 |
안경 |
상도 |
생몰 |
?-1268 |
?-? |
?-? |
?-? |
1320-1398 |
?-? |
?-? |
처부1 |
구예 |
왕중귀 |
우탁 |
파평윤씨 |
신군평 |
임득충 |
김소광 |
생몰 |
?-? |
?-1369 |
1262-1342 |
?-? |
?-? |
?-? |
?-? |
처부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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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안 |
김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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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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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8 |
1341-13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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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부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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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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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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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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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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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규 |
만온 |
안노 |
숭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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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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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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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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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 |
임언인 |
안휴 |
심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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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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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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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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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규 |
공윤 |
안도 |
숭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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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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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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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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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군수 |
오부순(명) |
홍륜 |
염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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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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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374 |
?-1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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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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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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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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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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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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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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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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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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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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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질 |
운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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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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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93-14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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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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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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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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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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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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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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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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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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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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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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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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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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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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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庶)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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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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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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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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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득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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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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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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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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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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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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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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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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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달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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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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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7-1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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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연안차씨 족보에 의한 가계도와 혼인관계 검토(2)
연안차씨 족보상의 상계 가계도중 17세 차득규부터 20세 차종로까지 4대의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고려사등에 기록된 위의 인물등의 행적에 대하여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왕조 (제위기간) |
역사적 사건등 |
연안차씨 족보상 인물 고려사등 기록 |
원종 (1259-1274) |
최의,김준,임연등의 무신정권이 끝나고 1270년 왕정복귀하고 몽고와 강화 1274년 고려,몽고군일본정벌 |
◯ 17세 차복규의 장인 송군수 : 송군수의 아버지는 송유인(?~1179)이고 송유인은 정중부(1106-1179)의 사위로 1179년 경대승(1154-1183)과 14세 차척의 장인인 허승(? -1180)에게 정중부,송유인이 죽을때 같이 죽은 것으로 추정됨 ◯ 16세 차송우 : 1268년 김준등과 함께 죽음 ◯ 18세 차공윤 장인 오부순(명) : 1270년 홍다구(1244-1291, 아버지가 고려출신이나 몽고에 귀화한 무신, 1274년부터 시작된 고려,몽군 일본정벌시 이를 지휘) 에게 낭장 오부순(명)이 투항함 ◯ 18세 차공윤 : 1274년 중랑장으로 일본정벌에 참여했다가 돌아와 판천이 됨 |
충렬왕 (1274-1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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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 차득규 : 1267년 충렬왕이 세자에 책봉되어 원나라에 입국할 때 시종하여 입조, 1274년 충렬왕이 제국대장공주와 혼인하여 귀국하였고 이때 연안차씨 족보에 의하면 17세 차득규의 고조부되는 14세 차신(車信)도 사속인으로 몽고인 인후(1250-1311),아랍인 장순룡(1254-1297)도 함께 귀국 , 1278년 장군 차득규는 별감이 되었고 1281년 충렬왕이 옛날에 본인이 세자때 원나라 입조할 때 공이 있다고 하여 수종공신이 됨 |
충선왕~충정왕 (1308-1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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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1351-1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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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 차포온 : 1341년 공민왕이 세자에 책봉되어 원나라에 입조할 때 호종, 1352년 공민왕 되어 고려에 귀국할 때 함께 돌아와 판사복시사등이 되었고 1354년 용산군,1357년 동경유수가 되었음 ◯ 19세 차안도 : 1361년 홍건족침입시 판사복시사로 공민왕을 호종,1363년 호종공신이 됨 ◯ 19세 차종로의 장인 김제안 : 김제안은 김방경의 증손이고 김묘의 아들로 김구용(1338-1384)의 동생 ◯ 19세 차안도의 장인 홍륜 : 홍언박(1309-1363)의 손자로 1372년 약관의 나이에 자제위에 들어가서 1374년 죽임을 당함 |
우왕 (1374-1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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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연안차씨 상계의 계보 및 혼인관계의 문제점 검토(2)
1. 시대적 명백하게 혼인관계가 불가능한 경우
16세 차송우의 장인 : 구예(?-?)
◯ 16세 차송우는 1258년 별장동정으로 류경,김준,임연등을 보좌하여 최의를 죽이고 김준 무신정권을 세운 인물로 그 뒤 10년 뒤에 1268년 김준과 다시 변란을 하다가 임연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인데 구예는 정확한 생몰연도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아들 구영검은 출생년도는 미상이나 사망년도가 1356년으로 연안차씨 족보에 의하면 16세 차송우와 구영검은 처남매부지간으로 구영검은 130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그의 아버지인 구예는 1270년대쯤 태어난 인물로 볼 수이므로 시대적으로 16세 차송우는 1200년초반부터 1200년대중반까지 인물인데 어찌 구예가 차송우의 장인이 될 수 있겠는가?
◯ 능성구씨 족보에서는 아무런 고증도 없이 연안차씨 족보를 참조하여 구예의 사위로 차송우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대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구예의 사위를 차송우로 기록한 능성구씨 족보는 차후 이 부분을 고증을 하여 삭제하여야 할 것이다
17세 차득규의 장인 : 왕중귀(? - 1369)
◯ 17세 차득규는 1268년에 죽은 차송우의 첫째아들이라고 하는데 생몰년도는 알수는 없으나 고려사등에 1267년~1281년까지 등장한 인물인데 1310년대쯤 태어나 1369년에 죽은 왕중귀의 사위가 될 수 있겠는가? 참고로 17세 차득규의 아버지인 차송우는 김준과 함께 1268년 임연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차득규는 이때 원나라에 있어서 목숨을 부지했는지 아니면 16세 차송우의 아들이 아닐수 있는 인물이다.
◯ 왕중귀 및 그의 아버지 권재는 원래 안동권씨로 왕으로부터 안동왕씨 사성을 받아 왕후로 되었다가 다시 안동권씨로 복성했는데 안동권씨 족보에도 왕중귀의 사위로 차득규는 없다.
17세 차복규의 장인 : 송군수(?-?)
◯ 17세 차복규는 1268년에 죽은 차송우의 셋째아들로 고려사등에는 기록되지 않은 인물로 보여지고, 17세 차복규의 장인이라는 송군수의 아버지는 송유인(?-1179)으로 송유인은 정중부(1106-1179)로 경대승(1154-1183) 및 13세 차덕의 장인이라는 허승(?-1180)에 의하여 정중부 및 송유인은 1179년 죽었고 송유인의 아들 송군수도 같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어찌 1100년대 초반의 인물인 송군수가 1200년대 중반의 인물로 추정되는 17세 차복규의 장인이 될 수 있겠는가?
19세 차종로의 장인(1) : 김제안(?-1368)
◯ 19세 차종로는 고려사등 기록에는 없는 인물로 보여지는데 그의 장인이라는 김제안(?-1368)에 대하여 살펴보자. 김제안은 김방경(1212-1300)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김묘,어머니는 민사평(1295-1359)의 딸로 김묘의 처 민씨 묘지명을 보면 김제안은 3남 9녀를 낳았다고 하는데 큰아들 김구용의 생몰년도는 1338-1384이고 둘째아들인 김제안은 ? -1368년으로 단명했다고 볼수 있는데 생년을 1340년정도로 본다면 김제안은 18세 차포온과 사돈지간인데 사돈인 차포온은 1341년에 이미 출사하여 공민왕이 세자에 책봉되어 원나라에 입조할 때 호종을 하였는데 사돈지간인 차포온과 김제안은 적어도 30년이상 나이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또한 19세 차종로의 셋째아들인 20세 차원부(차종로의 셋째부인에서 태어났고, 김제안의 딸은 차종로의 둘째부인임)가 1320년생인데 차원부 입장에서 보면 김제안은 (이복)외조부인데 외조부보다 외손자가 먼저 태어날 수 있겠는가?
19세 차종로의 장인(2) : 구위(?-?) / 19세 차안노의 장인 : 안휴(?-?)
◯ 연안차씨 족보에 의하면 능성구씨와의 혼인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이(具怡 ?-?,구예의 형)
(구이의 사위) 안휴(安休 ?-?) --- (안휴의 사위) 19세 차안노
구예(具藝 ?-?)---
(구예의아들) 구영검(?-1356) --- (구영검의 아들) 구위(?-?, 具褘) --- (구위아들)구홍
(구예사위)16세차송우(?-1268) (구영검사위) 류계조(1333-1374) (구위의사위) 19세차종로
(구예의 사위)최안도(1294-1340)
◯ 16세 차송우가 능성구씨 구예의 사위가 될 수 없음을 이미 앞서서 밝혔음으로 생략하기로 하고 능성구씨 구위(具褘)의 사위로 19세 차종로가 될 수 있는가 살펴보자. 구위는 20세 차원부 기준으로 하면 외조부에 해당되고 마찬가지로 구영검의 사위는 문화류씨 류계조는 구위와 처남매부지간으로 류계조 또한 항렬상 외조부가 되는 인물로 류계조는 1333년생이고 항렬상 외손자인 20세 차원부는 1320년생인데 이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구영검이 1356년에 사망했으니 1300년대쯤 태어난 것으로 볼 수 있고, 그의 아들인 구위는 1320년대쯤 태어난 것을 추정되고 처남매부지간인 류계조가 1333년생이니 합리적인 추정으로 외조부인 구위와 외손자인 차원부가 비슷한 연대에 태어났단 말인가?
◯ 위와 같은 연안차씨와 능성구씨의 혼인관계는 능성구씨 족보에도 아무런 고증도 없이 연안차씨 족보를 보고 실려있는 것 같은데 능성구씨에도 연안차씨와의 혼인관계를 고증하여 오류가 있다면 하루빨리 삭제하고 그 사실을 족보에 기록하여야 할 것이다.
19세 차안도의 장인 : 홍륜(?-1374)
◯ 19세 차안도는 고려사에 1361년 홍건족 침임시 판사복시사로 공민왕을 호종하였고 1363년 호종공신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연안차씨 족보에 의하면 19세 차안도의 장인이라는 홍륜(洪倫)에 대하여 그의 직계등에 대하여는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으나 그 당시 인물로 홍언박(1309-1363)의 손자이고 홍사우(?-1374)의 아들인 홍륜이라는 인물로 보여지는데 홍륜은 1372년 약관의 나이에 자제위(명문가의 자제들로 구성되어 왕을 보필하는 기구) 소속 관리가 되어 공민왕을 보필하다가 고려사에 의하면 1374년 공민왕을 시해하였고 동시에 1374년에 죽은 인물인데 어찌 약관의 나이에 죽은 홍륜이 차안도의 장인이 될 수 있겠는가? 물론 19세 차안도의 장인이라는 홍륜이 고려사에 등장하지 않은 다른 인물 일수도 있을 것이다.
20세 차숭부의 장인 : 심입인(?-?)
◯ 20세 차숭부는 고려사등에 기록이 보이지 않고, 심입인(이름이 심입임,심오인등 다양하게 기록되고 있으나 부유심씨 시조로 심효생의 아버지이고 심도원의 할아버지로 심도원의 문과방목을 보면 심입인이 맞는 것 같다)은 심효생(1349-1398)의 아버지로 심효생은 세자 이방석(1382-1398)의 장인으로 1398년 왕자의 난에 죽었다. 따라서 20세 차숭부와 1349년생인 심효생은 처남매부간이 되는데 20세 차숭부는 1320년에 태어난 차원부의 형이므로 1315년정도에 태어난 났다고 추정하면 심효생의 아버지인 심입인과 비슷한 연배이거나 조금 많은 나이인데 어떻게 차숭부가 심입인의 사위가 될 수 있겠는가?
20세 차숭질의 장인 : 염정수(?-1388)
◯ 20세 차숭질은 고려사등의 기록등이 안보이고 장인인 염정수(?-1388)은 염제신(1304-1382)의 셋째아들로 염국보,염흥방등이 형으로 염정수는 1330년대쯤 태어난 인물로 딸들은 민보문,한계복에게 시집간 것으로 씨족원류,안동권씨 성화보등에 나오고 염정수의 사위로 차숭질은 보이지 않는데 차숭질은 1320년에 태어난 차원부의 형인데 어찌 차숭질이 1330년대쯤 태어난 염정수의 사위가 될수 있겠는가?
20세 차견명의 장인 : 왕우(?-1397)
◯ 20세 차견명은 고려사등에는 기록이 안보이고, 왕우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1345-1394)의 동생으로 출생년도는 미상이고 1397년에 사망하였고 그의 사위로는 신자근,이맹종,이방번(1381-1398,세자 이방석의 형),박석명등이 있고 그의 사위로 차견명은 보이지 않는다. 20세 차견명은 1320년에 태어난 차원부의 동생으로 1330년대나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어찌 이런 사람이 1350년정도에 태어난 왕우의 사위가 될수 있겠는가?
20세 차의남의 장인 : 문달한(?-1392)
◯ 20세 차의남은 고려사등에는 기록이 안보이고, 문달한은 문화류씨와 혼인하여 2남 1녀를 둔 것으로 문화류씨 가정보와 씨족원류에 나오고 2남은 문계종,문효종이고 1녀는 이정간(1360-1439)에게 혼인했다.
2. 혼인관계에 대하여 고증이 필요한 경우
17세 차덕규의 장인 : 권석(?-?)
◯ 17세 차덕규는 1268년에 죽은 차송우의 둘째아들이라고 하는데 생몰년도는 알수 없고 고려사등에도 기록되지 않은 인물로 보여지고, 그의 장인이라는 권석에 대한 고려사 기록은 1312년 충선왕때 중랑장(정5품무관직) 관직으로 원나라에 피화(조공물)을 보낼때 권석을 보냈다는 기사가 있고 그 외의 기록은 없는 것으로 보여 권석의 나이를 추정하기는 어려우나 한 30대정도에 중랑장을 했다면 1282년생이 될것이고 한 60대에 중랑장을 했다면 1252년생이 되는데, 어떻게 보던간에 16세 차송우(?-1268)과 권석은 사돈지간이 되기 어렵고, 또한 차덕규의 형인 차득규는 이미 출사하여 1267년부터 고려사에 등장하고 있으니 17세 차덕규의 장인은 권석이 될수 없다.
◯ 참고로 권석(權碩)은 김방경(1212-1300)의 사위인 권윤명의 아들로 남유손,김진,정길등과는 처남매부지간으로 확인된다. 즉 김방경의 외손자로 1280년대후반쯤 태어난 인물로 추정된다. 김방경의 사위로는 권윤명외에 조변등 몇명이 더 있는데 조변의 아들, 즉 김방경의 외손자인 조문간이 있는데 고려사 열전 김방경전에 보면 이 조문간을 연안차씨 14세 차신의 딸에게 혼인시켰다는 기록이 있는데, 연안차씨 족보에 의하면 김방경전에 나오는 차신의 딸에 대한 혼인관계는 나오지 않는 것 같고, 김방경의 같은 외손자로 보이는 권석(權碩)이 17세 차덕규의 장인이라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
18세 차공윤의 장인 : 오부순(명)(?-?)
◯ 18세 차공윤은 16세 차송우의 손자이자, 17세 차덕규의 셋째아들로 17세 차득규의 조카이며 18세 차포온과는 사촌지간이되는 인물로 고려사에는 1274년 고려,원나라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중랑장(?) 무관으로 참여해 살아 돌아왔다는 기사(이때 고려,원나라 연합군은 태풍을 만나 만명이상이 죽었음)가 있고 그 외의 기록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18세 차공윤이 1274년 일본을 정벌할 때 나이를 30대중반정도 본다면 1244년생, 40대중반정도로 본다면 1234년생인데 그런데 사촌형으로 보이는 18세 차포온은 출사하여 1341년부터 고려사 기록에 보이므로 사촌지간으로 보면 너무 나이차이가 많이 나므로 18세 차공윤과 18세 차포온은 사촌지간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 18세 차공윤의 장인이라는 오부순명(오부순이라는 인물은 고려사에 등장하지 않고 비슷한 시기에 오부순명이 나오는데 연안차씨 족보에서는 이를 잘못기록한 것으로 보인다)이라는 사람은 낭장으로1270년에 홍다구(1244-1291, 아버지가 원래 고려출신이나 원나라에 귀화한 사람으로 내정간섭목적으로 고려에 자주 파견된 무신)에게 투항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여러 가지로 보면 18세 차공윤과 그의 장인이라는 오부순명은 동일한 시대의 인물로 추정된다.
18세 차포온의 장인 : 우탁(1262-1342)
◯ 18세 차포온은 1341년에 공민왕이 세자시절 원나라에 입조할 때 호종했던 사람으로 1352년 공민왕이 고려로 귀국할 때 함께 돌아와 판사복시사등이 되었고, 1354년 용산군, 1357년 동경유수(정3품이상)가 된 인물로 생몰년도는 확인할 수 없다.
◯ 연안차씨와 단양우씨간의 혼인관계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중대
(우중대아들) 우천규--(우천규아들)우탁(1262-1342)--(우탁사위)18세차포온
(우탁아들)우원광-- 우순 --우윤민등
(우탁아들)우원명-- 우심 --우의(禹義)
= 20세차견질의사위
(우중대아들) 우천계--(우천계아들)우제(禹제) -- 無後
= 20세 차견명의 사위
(우중대아들) 우천석--(우천석아들)우칭 --(우칭아들)우길생 --(우칭아들)우현보(1333-1400)
◯ 단양우씨 족보에서는 우탁의 사위로 차포온을 기록하고 있지만 우중대의 손자가 되는 우제 및 우중대의 고손자가 되는 우의의 장인을 20세 차견질로 기록하지 않고 배위를 따로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18세 차포온이 단양우씨 우탁의 사위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차포온을 선대,후대의 생몰년도 및 고려사기록등을 무시하고 하나의 독립적인 인물이라고 가정하고 검토(그이유는 연안차씨 계보상 시대적으로 자주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 일단 연안차씨 족보상의 계보를 일단 배제할 필요성이 있다)해 보면, 고려사에 의하면 18세 차포온은 1341년 공민왕이 세자에 책봉되어 원나라에 입조할 때 호종하였고,1352년 공민왕이 고려로 귀국할 때 함께 돌아와 판사복시사가 되었고 1357년 동경유수(정3품이상)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때의 나이를 40대정도로 추정하면 1310년대생쯤되고 이때의 나이를 50대로 추정하면 1300년대생쯤되고 60대로 추정하면 1290년대쯤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18세 차포온의 장인인 우탁이 1262년생이니 그 사위가 될려면 1290년대생쯤이 되어야 하므로 18세 차포온은 60대쯤인 1357년에 동경유수가 되었고 50세쯤인 1341년에 공민왕이 세자시절에 원나라에 입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18세 차포온이 우탁의 사위가 될려면 출생년도가 1290년대쯤을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를 연안차씨 족보에 의한 나타나는 18세 차포온의 계보와 연결시켜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17세 차득규 --- 18세 차포온(1290년생? - ) ---19세 차종로(?-?) --- 20세 차원부(1320-1398)
이렇게 보면 연안차씨 계보상 문제가 있는데 첫째는 18세 차포온의 손자인 20세 차원부와 30세정도가 차이가 나므로 젊은 나이인 15세정도에 혼인하여 출산을 하였으면 가능할 것도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의심이 가고, 둘째는 18세 차포온이 1290년대생으로 보면 아버지인 17세 차득규는 1260년~1270년대생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17세 차득규는 1267년 충열왕이 세자시절 원나라에 입조할때 호종하였다고 고려사에 나오므로 18세 차포온의 아버지는 17세 차득규가 아닐수 있고,셋째 17세 차득규는 1274년 충렬왕이 제국대장공주와 혼인하여 귀국할때 같이 돌아왔는데 이때 연안차씨 족보에 의하면 17세 차득규의 고조부되는 14세 차신(車信)도 제국대장공주의 사속인으로 몽고인 인후(1250-1311),아랍인 장순룡(1254-1297)등과 같이 왔는데 어떻게 고조부와 고손자가 같은 시기에 살수 있다 말인가? 고려사에 의하면 차신의 본명은 차홀대로 원래 고려사람이었으나 원나라에 잡혀갔는데 차신의 어머니가 제국대장공주의 유모가 되었고, 그 인연으로 차신도 1274년 제국대장공주의 사속인으로 고려로 들어온 인물로 같이 들어온 사속인이 1250년대생으로 보아 차신도 같은 연배로 보여지고 20살정도에 고려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고 그의 상계는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는데 이를 무리하게 고증도 없이 연안차씨 족보에 넣다보니 이런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어찌되었든 면밀한 고증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III. 나머지는 앞서 살펴보았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복많은 좋은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