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일년을 기다려왔던 출발일..카페 초행인 두분 여자분과 영윤이와 동행하기로 했다....어떻게 하다보니까...약간의 부담은 된다. 모든 준비는 끝나고 이제 장만 보고 출발만 하면 되는데, 일기가 심상치 않다. 거의 전국이 호우경보에다 지리산은 출입통제라고 노고단 아저씨가 수화기에 한마디 하신다. 일~구 올해도 역시 비맞고 갈려나...아니 갈 수나 있었음 한다. 서울에서 바라본 하늘에선 하염없이 나를 울리듯 비만 억수로 쏟아진다. 원 구멍이 났는지 저리두 오누~ 결국 포기다. 동행하기로 하신 두분 여자분에게 전화를 했더니만...억울해 하신다..꼭 가야되는데 하면서 목소리가 떨려왔다. 아쉬움에 배낭을 그대로 둔 채로 누워서 티비를 켰다. 전화 한통....몽고다...
'어...여기 직전마을인데...민박집에 갇혔다...'
이구 이넘도 참 박복하구나. 몇시간 뒤에 다시 전화가 왔다...또 충수다...창밖만 바라보는 나에게 이렇게 희소식을 전한다.
'입산통제 풀렸다'
어케 해야되나 고민하다 시계를 봤다. 오후 5시다. 같이 가기로 한 카페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만약 갔다가 원망들을까봐 차마 연락을 못했다. 시간도 없구해서~(실은 면접보고 턴거지). 작년에도 노고단에 갇혀서 하룻동안 노고단 고개까지 힘들게 산행하고 돌아왔다. 억울해서 그 담주에 왕칠이랑 또 갔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지리산의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다. 서둘러서 장을 보고 영등포역으로 향했다. 구례구행 기차는 향상 설레는 먼가가 있다. 왠지 모를 고향으로의 포근함이 다가올 힘든 산행을 넉넉히도 누그러 뜨리나보다.
28일 5:00. 구례구역 도착이다. 흙 냄새가 향기롭다. 군내버스로 화엄사 이동. 드디어 지리산이다. 어~ 국립공원 아저씨들 아직 안 일어났나보다. 무료통과다.(죄송해요~ 관리공단 아저씨들) 화엄사 계곡은 어제의 일을 말해주듯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아스팔트를 따라서 화엄사에 도착한다. 말로만 듣던 대사찰.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지리산을 그렇게 와 봤어도 절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신 사진을 찍어되지만,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기술이 문제인겨, 아님 사진기가 문제인가. 대웅전 앞에서 합장으로 이번 산행의 무사함을 기원하고 처자4명이 사진 찍어달라고 해서 사진 찍어주고 슬슬 출발 준비한다.
7:00. 드디어 종주 시작이다. 노고단 7km라는 이정표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앞으로 힘차게 첫 발을 내딛었다. 길이 좋다. 넓직하고 차도 지나가겠다. 영윤이 투덜거린다.
'이상하네. 화엄사길이 왜 이리 좋아. 힘들다든만'
좀가다 연기암 2.9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제 1km 왔네'
암튼 신이난다. 비도 안오고 날씨도 상쾌하다. 근데 길이 이상하다. 택시도 지나다닌다. 한참 가니까 아침에 일착으로 매표소 통과한 남자분 2분이 처마밑에서 식사를 하고계신다. 논산 아저씨들과의 인연의 시작이다. 우리보고 왜 그쪽에서 오냐고 한다. 우리가 멍한 표정으로 처다보니까 화엄사 기점에서 왼쪽으로 꺽어 와야 한단다. 이구~ 거리상으로 두배나 손해봤다. 어쩐지 이상했다 했다. 영윤이 막 날 욕한다.
'머야. 지리산 10년 넘게 다녔다면서 길도 모르누.'
이 넘이 죽을려고. 나중에 복수해야지. 벼르고 다시 배낭을 둘러멘다. 넘 마니 쉬었나. 논산 아저씨들 밥 많다고 먹고 가라는거 꾹 참으며 일어선다. 아침도 못 먹었는데 먹고 갈까나 하다 그냥 일어선다. 드뎌 제길을 찾아서 산길로 들어선다. 점점 말도 없어지고 화엄사 코스의 험난함을 몸소 경험한다. 이넘의 길 끝없이 올라가네. 국수등을 넘어 중재다. 았사~ 내리막이다. 50미터도 안되네. 이구. 다시 올라간다. 삐질삐질 올라가는데 사람은 없어서 좋다. 한 두어명이 추월해서 막간다. 이런~ 비다. 한 방울씩 흩내리기 시작하더니 점차 굵어질려고 하고있다. 눈썹바위~ 참 좋다. 쉬기에. 영윤이가 코재 다가서 쉬자는걸 그냥 한번 째려보고 쉰다. 해님만 있음 더 좋을건데. 그래도 덥지는 않아서 좋다. 이구 한 오백미터 더가니 다왔다. 성삼재길과 만난다. 다시 널찍한 길. 이제부터 익숙한 길이다. 구석구석 나의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 힘이 생긴다. 노고단 산장까지는 금방이다. 화엄사에서 지체하고 길 잘못 들어 시간을 허비했지만 오늘은 크게 신경이 안 쓰인다. 어차피 뱀사골까지는 넉넉하리라~ 노고단산장에서 아침겸 점심을 해먹는다. 영윤이 밥하라니까 투덜대더니만 생쌀을 덥썩 내민다. 이눔아~ 이기 사람먹는거가. 맛있단다. 저걸 죽일 수도 없고. 밥먹고 배부르니까 움직이기 싫다.
'우리 좀 쉬었다 갈까. 시간도 많은데?'
영윤이 좋다구 한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잔에 화엄사계곡의 힘듬이 날아갈 것 같다. 오후에 출발하기로 하기 등산화를 풀었다.
13:00. 노고단고개에 오르니 안개인지 운핸지 자욱하다 1m앞이 안보인다. 고개에 주저앉자 담배 한개 물어피다 영윤이 공단직원한테 걸렸다. 허걱~ 50만원 ㅠ.ㅠ. 아저씨 다행히 주의만 주신다. 휴~
이제부터 본격적인 주능선 코스다. 임걸령까지의 길은 언제와도 너무 좋아서 마치 소풍가는 느낌이다. 이 길을 갈때마다 3.7km(정확히 생각 안난다)의 이정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못된것 같다. 조금가다보면 1.6km 지나왔다고 돼 있는데 거기서 부터 한참을 더가야된다. 1.6km를 20분도 채 못되서 왔는데 나머지를 40분씩이나 갈 일이 없지 않은가? 암튼 돼지평전의 평화로운 풍경은 구름 뒤로 묻어둔채 임걸령에 도착해서 약수 한잔 떠 먹고있는데 저기서 논산아저씨들 온다.
'이제 오세요?'
노고단산장에서 우리보다 먼저 출발했었더란다. 한명이 초행인데 억지로 끌려왔는데 죽을려고 한다.그래도, 약수 한잔 안하시고 부지런히 가신다. 30분 뒤 노루목에서 다시 고민에 빠진다. 반야봉~ 절대 가기로 철썩같이 약속했는데, 막상 노루목에 오니까 고미된다. 날씨도 안좋고 올라가도 아무거도 안보이겠지? 영윤이 끄덕거린다. 초행인 논산아저씨 죽어도 못올라가겠다고 옆에서 투덜거리면 연신 깡통을 꺼내 짐 줄이기 바쁘다. 지리산 자락 중에서 아마 간식 소모량이 노루목에서 가장 많으리라. 의례히 여기 오면 다들 고민한다. 반야봉이 3대봉우린데 올라가야지 하면서 초코바나 과일 등을 먹거나 맥주 한잔 하면 의지를 보이다 90프로는 그냥 가자며 지나친다. 우리도 10프로의 의지를 따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이건 순전히 날씨 때문이다. 반야봉의 전경도 못 보는데 가서 무엇하랴~ 천왕봉에서 반야봉을 감상하자. 스스로 자조한다. 근데 반야봉을 들르지 않으니 시간이 무지 남는다. 이구. 몸도 산악 체질로 환골탈태해서 산행속도도 빨라진다.
삼도봉. 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의 경계가 꼭지점을 이루고 있다. 봉우리라고 하기엔 너무 낮다. 그냥 평평한 바위 하나가 펼쳐진 느낌이다. 배낭에서 주섬주섬 다시 카메라를 꺼내든다.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운무가 자욱하다. 영윤이 삼도봉 삼각뿔을 배경으로 한장 박는다. 흐리게 잘 안나온다. 여기서부터 화개재까지는 내리막이라~ 오늘의 마지막 일정을 향해 다시 출발~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가며 '여기 올라 오려면 어케 하누'하는 생각을 해본다. 화개재에서 드디어 지리산의 푸른 전경이 한눈으로 들어왔다. 운무도 걷히고 해도 나려고 노력중이다. 연신 푸른 지리산을 카메라에 담는다. 많은 비가 지리산을 촉촉히 적셔주고 있었다. 화개재 나무의자에 앉자 다음일정을 논의하다가 뱀사골산장으로 내려간다. 200m나 내려가야된다. 내일 다시 올라와야되는데... 아마 그래서 뱀사골에서 지내려는 산꾼들이 적나보다.
16:00 뱀사골산장은 처음이다. 드뎌 지리산의 마지막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낼수 있게 됐다. 챙피하게 일착이다.산장지기 아저씨가 반긴다.
'먼 비들이 그렇게 쏟아졌는데도 이렇게 악착같이 올라오나?'
핀잔아닌 핀잔을 주신다. 예약을 한 관계로 자리를 바로 배정받고, 저녁 준비를 한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역시 어제의 호우경보의 영향이었을까? 몇명되지 않다. 평소의 발 딛딜때 없는 그런 산장이 아니다. 논산아저씨들 오신다. 원래 연하천이나 벽소령까지 가실려고 하는걸 꼬셨다. 소주나 한잔 하자면서. 초행아저씨가 적극적으로 옹호해서 결국을 이리로 오셨단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한다. 테이블 한개 잡아서 저녁준비를 한다. 허걱. 논산아저씨 가방은 70리터짜리. 그 안에서 별개 다 나온다. 우리는 즉석국에 스팜한개 밑반찬이랑 김 김치가 다다. 감자 양파 돼지고기 고추 양념통 번데기 ..안나오는게 없다. 우리는 꼬마김친데 그 아저씨들 김치도 1kg짜리다. 코펠도 7~8인용이다. 두명 왔으면서. 크~
'우와~ 이걸 어케 다 지고 왔어요?'
초행 아저씨 자기가 힘든게 다 이것들 때문이라고 한다.(이 아저씨 가방은 45리터) 최대한 마니 먹으라 한다. 덕분에 맛있는 저녁 먹고, 드뎌 소주먹을 시간이다. 그나마 삼겹살 사와서 체면치례 정도 했다. 처음 봤는데도 도착해서 여기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온 인연 때문일까? 전혀 낯설지 않다. 아마 이런 분위기가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리라. 출발역에서의 홀로 여행도 이 정겨운 지리산은 가만 두지 않고 어느새 친구를 만들어주고 연인들을 엮어준다. 한잔 두잔 주고 받다 보니 어느새 지리산의 밤은 어두워 지고, 여기저기서 랜턴을 키고 소주한잔에 산행의 피로함을 달래고 있다. 더 많은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못나눈 아쉬움을 뒤로 한채 내일 산행을 준비해야만 했다. 이제부턴 지리산의 별들만의 시간이다.
29일 5:00 아침준비를 한다. 장난이 아니다. 어제 먹은 쓰레기를 한쪽으로 치워두었는데 소주병이 10개가 넘는다. 산에서 기본적으로 한 두잔의 술은 피로를 풀어주리라~ 이렇게 과음해보긴 처음이다. 하기사 술을 세시간 넘게 퍼마셨으니 이정도는 되야지. 아침을 먹고 쓰레기를 주워담으니까 한봉다리다. 내가 코펠 버너 쌀 등 기본적인 것을 지고 영윤이넘이 주로 부식을 담당해서 그런지 영윤이 배낭이 반으로 홀쭉하게 줄었다. 쓰레기를 쑤셔 넣어서 연하천까지만 가면 된다고 하니까 투덜대면서 주워담는다.
7:00 산장지기님께 잘 보냈다는 인사를 하고 출발하려고 하니, 논산 아저씨들 부시시 나온다. 오늘은 장터목에서 한잔 하잔다. 당연 좋다고 했다. 근데 남은 술이 있을까나 모르겠다. 어제 내려온 200미터를 힘겹게 올라 다시 주능선상으로 접어든다. 토끼봉을 향해서 출발이다. 토끼봉은 왜 토끼봉일까? 토끼가 많았나보다. 본격적인 산행이다. 어제 과음한 일 때문일까? 속이 편치 않다. 구토가 나올 것 같다. 연하천까지의 길은 편하게 생각되었는데 몸이 무겁다. 힘들다. 10m가기가 버겹다. 연하천 길이 이렇게 힘들었던가. 꾸역꾸역 나간다. 다른 힘든 길도 많았는데 이 길이 젤 힘들었던것 같다. 영윤이 또 핀잔이다.
'모야. 역시 약하네. 내 이럴 줄 알았지.'
저 눔이...반드시 복수하고 말리라. 겨우 토끼봉에 올라서 사진한장 찍는다. 어제와는 달리 화창하다. 해빛도 들이 쬐인다. 더도 말고 이정도만 되어도 좋으리~ 어제밤에 별도도 지리하늘을 빽빽히 메워 놓아 일출의 장관을 기대하기에 무리가 없다. 기대로 다시 힘을 내본다. 역시 시작이 젤 힘들다고 했던가. 몸이 차츰 풀리기 시작한다.
9:00 연하천이다. 연하천의 낡은 산장 모습이 나무계단 사이로 들어온다. 뱀사골 오기 전 나무계단 갯수를 헤아려봤는데 540개다.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연하천 나무계단도 한번 헤아릴려다가 헷갈려서 그만둬 버렸다. 연하천에만 오면 너무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만큼은 지리산의 포근한 냄새가 아닌 악취다.특히 연하천 화장실은 생각도 하기싫다. 우리들때문에 이렇게 몸살을 앓으리라~ 영윤이 쓰레기통부터 찾는다. 짐 줄인다고 좋아하다가 나를 째려본다. 앗! 없다. 작년까지 있었던 철철 넘치던 쓰레기통이 없다. 치웠단다. 욕 무지하게 얻어먹고, 연하천 명물인 맥주 한캔을 깐다. 시원하다. 연하천을 출발해서 몇십분쯤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다. 이정표가 약간 삐닥하게 새워졌다. 왼편은 음정으로 오른편은 벽소령으로 가는 삼각고지 길이다. 초행때 여기서 길을 잃었다. 한시간을 음정 가는 길로 가다 다시 되돌아 와서 벽소령에서 쓰러졌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큼지막하게 이정표밑에 글이 써져있다. 아마 여기서 길 잃는 분들이 많나 보다. 저기 형제봉의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언젠가 지리산 카페에서 아침향기님의 사진을 보면서 바위로 한번 올라보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역시 지나치고 만다. 잠시후 벽소령의 우체통이 나를 반긴다.
벽소령! 몇 년 전인가 지리산 첫 종주시 묵었던 나의 첫 산장이다. 얼마나 황홀했던 명월이었던가. 아직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내 맘 속에서는 어두운 산장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밝은 보름달이 떠올랐다.
'일행분은 안오세요?'
뱀사골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온 팀이 나를 감상으로 부터 헤어나오게 했다. 어~ 이상하네. 이넘이 길 잃고 헤매나. 20분이 지났다. 그래도 안온다. 불안하다. 이거 사고난건가. 다시 형제봉을 바라보면 뒤걸음질을 했다. 큰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들려온다. 다행이다. 잠시 후 나타난 발군. 캬캬~ 오바이트 했단다. 나오는건 없고 위산만 쏟아내고 왔단다.
'역시 약한넘은 할 수 없네. 너 이길로 음정으로 가서 서울로 가라.'
드뎌 복수했다. 점심은 항상 그렇듯 라면이다. 발군한테 라면 물 떠오라니까 환자를 부려먹는다고 무지하게 투덜된다. 점심 후 이젠 세석을 바라보면 다시 세시간의 여정을 가야한다. 지리산에 오면 향상 목표가 있게 마련이다. 그 목표를 하나씩 점령해서 결국은 정상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 이러한 성취감은 저 까마득히 1915m 아래에 있는 세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르리라~ 내일이면 그 중 한사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서글프다. 막 배낭을 짊어지고 떠나려는데, 논산 아저씨가 도착한다.
'엇! 한분은 아직 안오셨네요.'
초행인 분이 안보인다. 연하천에서 포기하고 내려가셨단다. 안타까웠다. 논산아저씨 짐을 부리나게 풀더니, 먹을걸 막 우리에게 준다. 친구 먼저 내려보냈더니 속이 편치 안나 보다. 혼자라도 갈려고 왔다가 도저히 안될것 같아서 음정으로 내려가서 친구분 찾아야겠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먹을게 한가득 생겼다. 영윤이넘은 쓰레기 비워서 짐줄었다고 좋아했는데 다시 원위치다. 물론 받은 음식은 다시 영윤이 배낭으로 다 들어갔다. 벽소령 마당에서 담배 한대 피워 물고 난 후 이쁜 벽소령 목책길을 따라 새석으로 출발이다.
12:30. 벽소령산장에서 새석으로 향하는 초입길은 언제 봐도 너무 이쁘다. 평평한 꽃길이 십여분 쯤 연결되다가 덕평봉으로 가는 오르막이다. 거기서 내리막을 내려가면 선비샘이다. 시원한 물줄기기 언제나 시원하게 쏟아지는 샘터이다. 항상 여기선 사람들이 취사한다고 북쩍거린다. 그 덕분에 커다란 플랭카드까지 나붙었다.
'밥 해 먹으면 벌금 50만원'
아마 벽소령의 샘터가 한참을 내려가야 되기 때문이리라. 몇년전에 왔을때 벽소령에서 선비샘까지 30분만에 주파한적이 있었다. 이번엔 이 기록을 깨보리라 맘을 먹고, 열심히 달려왔지만 역시 실패다. 제법 빨리 속보로 왔다고 생각되었는데도 45분이 걸렸다. 역시, 세월을 어떻게 할 수 없나보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선비샘엔 많은 취사인구로 북적거린다. 머라고 한마디도 못하고 그냥 일어선다. 뒷처리라도 잘하길 바라면서. 이제부터 주능선 중 가장 건조하고 힘들다는 칠선봉 영신봉을 거쳐 새석까지 2시간을 가야된다. 배낭을 고쳐메고 등산화 끈을 질끈 조이고 출발이다. 칠선봉까지는 힘들지 않게 올랐다. 드디어 몸이 산에 적응을 했나보다. 영윤이 속 안좋아서 오바이트까지 하더니만 머가 신나는지 계속 조잘 거린다. 하기사 이런 넉넉한 지리산에서 신이 나지 않는다면 어떤일이 잼있으라~ 나도 계속 맞장구 쳤다. 영신봉을 눈앞에 두고 가파른 철제계단을 오를 각오를 하고 부지런히 걸어갔지만, 나무계단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분명 그사이에 공단에서 새로 설치했으리라. 철제계단보다는 경사도도 약하고 발에도 부담이 없었지만, 훨신 길어졌다. 나무계단 중간에 쉬는 곳을 두군데 만들어났다. 아마 두번은 쉬고 가란 소린가 보다. 하지만, 그저 곁눈질로 한번 눈길만을 준 채 지나쳐 나를 반겨줄 영신봉의 전경을 향해 꾸역꾸역 올라왔다.
눈앞이 탁 튀면서 지리의 모든 자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지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한군데이다. 멀리 섬진강이 눈앞에서 흐르듯 꾸물꾸물 남으로 흘러가고 지리산 산자락마다 흰 구름이 걸려있다. 시원하다. 발밑에 펼쳐진 풍경들이 너무 푹신해 보인다.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까? 저렇게 푹신해 보이는데..떨어져도 끝이 아닐 것 같아'
'번지점프를 하다'의 대사가 떠오른다. 한번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 마저 일으킨다. 같이 온 발군 고생시킬까봐 마음을 고쳐먹고 영신봉 정상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바로 눈앞에 촛대봉의 전경이 펼쳐지고, 새석산장이 보인다. 언제봐도 평화로운 풍경이다. 예전에 새석에서 야영을 했을때는 이런 풍경이 아니었다. 다시한번 공단직원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해본다. 이제 거의 산행도 막바지다. 새석에 도착하니 3시 10분이다. 장터목까지 1시간 반이면 넉넉하니까 시간적 여유도 많다. 새석에서 짐을 풀고 물을 끓였다. 카푸치노향을 음미하며, 새석의 전경을 감상하고 있는데 뱀사골에서 같이 출발한 일행 6명이 도착한다.
'커피들 한잔씩 하세요'
다들 좋아한다. 이런 저런 애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후닥 간다. 어제 뱀사골에서 우리 위쪽에서 저녁을 드셨단다. 우리보고 무슨 술을 그렇게나 마시나고 핀잔이다. 그냥 하하 웃으며 원래 술을 좋아한다고 한마디 해줬다. 슬슬 출발하려고 하는데, 하늘에서 또 빗방울이다. 새석의 화장실이 깨끗해졌다. 새로 수리한 기념으로 흔적을 남기기로 하고, 출발을 잠시 미루고 화장실로 들렸다. 화장실에 앉으니 촛대봉으로 오르는 경사길이 보이고, 사람들이 올라가는 모습도 보인다. '잠시 후면 저기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근데 저곳에서 보면 볼일보는 모습도 다 보이겠네 하는 생각이 든다. 화장실에 왠 전면 유리창...ㅎㅎ...설마 힘든데 볼 정신도 없을거다. 일행6명은 비가 오니까 새석에 눌러앉았다. 발군이랑 배낭을 매고 마지막 산장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4:30. 새석에서 1시간 30분을 지체했다. 영윤이넘 화장실 가서 나올 생각을 안한다. 촛대봉에 오르니 빗방울이 굵어진다. 저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우의를 입으려다가 그만 두고 그냥 비를 맞으면서 걸어간다.
누가 연하선경을 지리산10경이라 했던가. 말문이 막힌다. 매번 볼때마다 항상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느 훌룡한 화가가 이런 풍경을 한폭도 안되는 화폭에 담을 수 있으랴~ 연하봉을 올라 비줄기 때문에 다시 넣은 카메라를 꺼내들어서 얼른 풍경을 담고 다시 배낭에 담는다. 아마 이젠 카메를 끄내지 않으리라. 아쉽다. 많은 모습을 담아서 가고 싶었는데 겨우 50여장이다. 드디어 장터목 산장이다. 어제 직전마을에서 전화했던 충수가 저 멀리서 우리를 반겨준다.
'수고했다.'
한마디에 피로가 가시는 듯 하다.
30일 5:00 하늘만 원망하고 있다. 이번에 기필코 보리라면 기대를 했건만, 아직도 쌓을 덕이 마니 부족한가 보다. 비오는 하늘만 처다보며 서있는데 후배넘 옆에서 천왕봉을 오르자고 재촉한다.
'천왕봉 마니 가봤는데...안가련다. 비오는데 가면 머하남...'
아쉽지만, 충수와 의견일치를 보고 아침준비를 한다. 영윤은 초행인지라 꼭 오르고 쉽다고 혼자 뛰어갔다 온다고 한다. 덕분에 아침준비를 혼자했다. 발군 제법 빨리도 갔다온다. 1시간 20분걸렸다. 비와서 막 뛰어갔나보다. 아침을 먹고 마지막 담배를 피려고 하는데 담배가 올인이다. 옆에 라면 준 김해에서 온 커플한테 담배 없냐고 하니까, 없단다. 그냥 백무동에서 피자며 내려갈려는데 커플 아가씨가 뛰어오더니 담배 세까치를 내민다.
'없다면서요?'
'옆에서 앵벌이 했어요. 라면도 주셨는데.'
하고 싱긋 웃는다. 웃는 모습이 이쁘다. 지리산에 오는 처자들은 다 이쁘게 보이는 건 산처럼 푸른 마음이 나타나서 일까?
9:00 장터목을 출발해서 백무동으로 발길을 향했다. 내려오는 중에 사진작가를 만나서 영윤이랑 모델을 해줬다. 어느 잡지에 나오는 건지 물어보는걸 잊었다. 혹시 '산'일려나. 백무동 참샘근처에서 노란 우의입고 가는 두명 있는 사진이 있음 그게 바로 우리다.
11:40 백무동 매표소를 지나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다. 내려온지 일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또 오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 아마 내년이나 다시 올 수 있으리라~ 매년 여름이 기다려 지는 이유는 바로 '지리산'이 나를 부르기 때문일 것이다.
첫댓글 고개에 주저앉자 담배 한개 물어피다 영윤이 공단직원한테 걸렸다. 허걱~ 50만원
8월의 감동!!! 전율이 다시 느껴진다~~~
스크롤의 압박!!!
스크롤 500만번 반복하면 지리산의 종주한 길이 나올려나ㅎㅎㅎ
저도 제작년 삼월에 혼자서 구두신고 노고단 오른적있는데...길이 제법 험했죠. 한 20번은 굴렀던거 같은데^^ 하지만 신기하게 산에가면 절로 힘이 나더라구요^^ 담에는 저도 일행에 껴주세요.- 마이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