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의 시인을 만나다|신작시-이월춘
칠선계곡에 가서 외 1편
산이 깊어 설까
마음이 넓은 사람이
눈이 시원한 사람이 산다
함양 마천 칠선계곡 언저리
산등성이 뭉게구름을 불러
가끔 빙벽을 만드는 재주가 있고
산 아래 뭇생각들이 물소리에 씻겨가니
화장기라곤 없는 저 검박함에 당당함까지
눈 쌓인 노송 사잇길을 걸으면
경건함에 발길이 떨리고
말을 한다는 게 참 하찮다 싶어
무수히 솟는 생각들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마음이 넓어 설까
물이 깊어 설까
망설임 하나 없는 사람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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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물염정勿染亭에서
살면서 약간 허무감이 밀려올 때면
물염정에 가서 마음을 두드리곤 하네
이른바 사물잠四勿箴을 생각하면서
비례물동非禮勿動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듣지도 않으면
수신修身과 처세處世에 문제가 없다는 말씀
처음에는 맑고 그윽하기 그지없었지만
풍진 세상의 온갖 티끌이 달라붙었네
풀꽃은 뿌리내릴 한 줌 흙이면 충분하듯
세상의 풍광 마주하니 비로소 넉넉한 줄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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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춘
1957년 창원출생. 진해중앙고와 진해남중에서 교사, 교감, 교장으로 재직하고 2020년 정년퇴임. 1986년 무크지 《지평》과 시집 『칠판지우개를 들고』로 작품 활동. 경남문인협회, 경남작가회의, 경남시인협회 부회장, 계간 《진해》 편집인, 《문학청춘 지역》 주간 역임. 현재 한국작가회의, 진해문협, 하로동선, 계림시회, 포에지창원, 경남가톨릭문협 회원. 《영남문학》 주간, 경남문학관 관장. 시집 『칠판지우개를 들고』, 『동짓달 미나리』, 『추억의 본질』, 『그늘의 힘』, 『산과 물의 발자국』, 『감나무 맹자』, 『간절함의 가지 끝에 명자꽃이 핀다』. 시선집 『물굽이에 차를 세우고』, 문학에세이 『모산만필』, 산문집 『모산만필 2』, 편저 『서양화가 유택렬과 흑백다방』, 『벚꽃 피는 마을』. 경상남도문화상, 경남문학상, 경남시학작가상, 경남작가상, 경남문학우수작품집상, 산해원문화상, 김달진창원문학상, 진해예술인상, 토지문학제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