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 박주병
어릴 때부터 동네 친구들은 나더러 ‘집곰’이라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말할 나위 없고 1956년, 대학에 들어가서도 ‘집곰’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이런 별명을 가진 아들이 딱해 보여서 그리 하셨는지, 공부도 별로 하지 않으면서 집에만 죽치고 있는 모습이 따분하게 보여서 그리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1학년 겨울 방학이 되자 어머니가 이웃의 소녀 셋을 내 공부방으로 밤에 놀러 오게 하셨다. 하나는 열여섯 살, 둘은 열다섯 살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농촌 형편이 거의 다 그랬지만 여자는 대개 초등학교만 마치면 십리 밖을 모르고 조신하게 집에서 가사를 돕던 시절이었다. 이 소녀들도 그런 처지였다. 말하자면 ‘집곰’인 셈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아무리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도 ‘집곰’이라고는 하지 않던 그 시절에, 어머니가 길을 트셨다고는 하지만 소문이 나면 큰일날 일이었기에 우리의 은밀한 만남은 늘 조마조마했다.
내게 올 때면 그들은 꼭 고운 옷을 차려 입고 조금은 분 냄새를 풍기며 살며시 나의 방문을 열고는 했었는데,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 늘이고 앞가슴에 옷고름을 치렁하게 늘어뜨린 세 소녀가 지금 생각하니 아침 이슬을 머금고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이겠건만 그때는 내가 왜 그런 걸 느끼지 못했는지 괜히 속이 좀 상한다.
논다고 했댔자 참으로 어려웠던 그 시절의 농촌에서는 별다른 놀이도 없었다. 더러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국수 같은 걸로 밤참을 먹기도 하며 주로 화투를 치고 밤늦도록 놀았던 것 같은데, 놀이의 결과에 따라 ‘팔뚝 맞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다. 처녀들과 ‘팔뚝 맞기’를 하다니, 늙은 지금도 가슴이 싱숭생숭해지는데 젊은 그때는 이내 가슴이 왜 먹통이었는지 또 속이 좀 상한다.
거의 매일 밤, 이렇게 어울리기를 두 달 동안 그러다가 방학이 끝나고 내가 서울로 올라갈 전날 밤, 말하자면 이별의 전야에 그들은 과자며 음료수 같은 걸 잔뜩 가지고 와서 작별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하도 오래 되어서 확실치는 않지만 그날 밤은 서운해서였는지 아무 놀이도 하지 않고 그냥 보냈던 것 같은데, 헤어질 무렵에 돌아가며 노래 하나씩을 불렀던 모양이다. 그때 한 소녀가,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뜻밖에도 목이 메어 다 부르지 못했다. 덩달아 다른 두 소녀들도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는 그녀들을 일으켜 뒤란으로 갔다. 때는 3월 말, 적막한 뒤란에는 외로운 장미가 아직 꽃봉오리를 채 벙글지도 않았는데 어쩌자고 우리는 그날 밤, 가슴마다 이별의 꽃잎을 하나씩 떨어뜨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별이 아쉬웠던 걸까. 흐느끼는 그녀를 나는 그의 집 담 밑까지 따라갔고 아무 말도 없이, 아무런 뜻도 없이 그녀와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고개를 까닥, 했던 것 같다.
그 해 봄 6월에 나는 ‘학적보유병’으로 군에 가게 되었다. 그 후 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지만 그녀들과 다시 어울리지는 못했다. 다 큰 처녀들과 또다시 그렇게 하기란 그 당시에는 정말 큰일날 일이었고, 문득 공부에만 파묻혀 버리는 아들이 더는 심심할 겨를이 없겠다고 어머니는 생각하셨을 것 같다.
봄이 오고 가도 나는 그만, 그런 봄을 맞고 보내기를 몇 해를 그랬을까. 나는 방학이 되어도 전처럼 빈둥거리지 않았다. 뒷산 골짜기에 오막살이를 지어 놓고 공부에만 빠졌던 거다. 어느 친구는 이런 나를 ‘산골 중놈’이라 불렀다. 곰이 중이 된 셈이다. 조혼하던 그 당시 서른이 가깝도록 장가를 가지 않는다고 해서 중에 빗대는 소리란 걸 내가 왜 몰랐겠는가. 더러 금줄까지 걸려 있던 중놈의 산방에는 끝내 화창한 봄볕은 들지 않았고, 「봄날은 간다」라는 이 노래는 그녀로부터 다시는 들어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 세 소녀 가운데 이 노래를 부르던 소녀는 다른 두 소녀들보다 훨씬 늦게까지 시집을 가지 않았고 이따금 골목에서 마주치는 그녀의 눈빛이 어딘가 쓸쓸해 보였지만 예사로이 대했을 뿐 눈여겨보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가 고향을 떠났고 서로 소식도 모르는 채 세월은 정말 화살처럼 빨라 얼마만인가. 그때를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한데 그날 밤, 「봄날은 간다」를 다 부르지 못하고 목메어 흐느끼던 그 소녀, 손가락을 걸며 배시시 웃던 그 소녀가 어쩌자고 백발이 다된 지금에 와서 문득문득 떠올려지는지 모를 일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이 노래를 창가에 앉아 피아노를 치면서 나직이 불러 본다. 무단히 가슴이 울컥하여 건반에 엎드려 실없이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