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서서히, 그야말로 서서히 예술가 - 정확히는 영화감독 - 이 된 사람이다.
셀지오 레오네의 페르소나로 시작해서 돈 시겔을 거쳐 조용히, 하지만 꾸준히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영화를 찍어왔으며 결국은 영화계에서도 드문 완전작가(각본, 연기, 연출...등등을 혼자 도맡아서 하는사람) 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수많은 액션히어로들이 스크린을 스쳐지나갔지만 그처럼 용의주도하고 끈질기게 영화자체를 탐구하는데로 나아간 배우는 없었다. (아놀드 슈왈즈네거? 커트 러셀? 어림도 없는 얘기다. 혹자는 멜 깁슨을 떠올릴지도 모르나그는 그저 자신의 취향대로 영화를 찍어댈 뿐이지 성찰하는 사람은 아니다,)
'사선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캐릭터를 스스로 이용하여 자신을 반사하는 거울로 이용하는 '묘기'를 보여준 작품으로써 헐리우드의 안정된 시스템이 훌륭한 배우, 그리고 연출가와 행복하게 만난 몇 안되는 걸작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야기는 이렇다. 케네디 대통령 알살때 경호원이었던 프랭크 호리건에게 어느날 '부스'라는 암살범이 대통령의 저격을 예고하면서 도전해온다. 이미 경호에서 손을 떼고 은퇴한 프랭크는 자신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이 암살을 막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그를 늙은 퇴물로 보는 젊은 경호원들, 정치적인 보신에만 신경쓰는 상관들, 이미 노쇠한 육체사이에서 프랭크는 곧 사면초가의 상태에서 부스와 마주선다.
그는 과연 대통령살해를 막을 수 있을까?
불후의 잠수함영화 '특전 U보트'로 이미 뭔가를 보여준 볼프강 피터센의 안정감 있으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연출, 존 말코비치와 르네 루소의 연기,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존재감은 빛을 발한다.
대통령의 시가행진을 경호하면서 자동차와 같이 보조를 맞추며 뛰는 장면에서 프랭크는 이미 나이를 속이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헉헉댄다. 배우가 스스로의 늙은 육체를 전시하며 그 자체를 영화속에서 풀어내는 그 장면은 유머러스 하면서도 가슴뭉클한 무언가가 있다.
게다가 르네 루소와의 뒤늦은 로맨스는 이스트우드의 능글맞은 연기로 꽤나 사실적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AS YEARS GO BY'를 연주하는 장면은 매우 로맨틱한 순간을 선사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무르익는 예술세계를 보여준다는 것은 정말이지 닮고 싶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시스템 안에서 그걸 해냈다. 존경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