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의 아들인 조선 22대 왕 정조. 그의 태몽은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꾸었다. 혜경궁 홍씨가 임신하기 두세 달 전 용이 침실에 들어와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꿈이었다. 태몽이라는 것을 직감한 사도세자는 흰 비단에 그 용을 그려 벽에 걸어놓았다. 용 태몽으로 아들이 태어날 것임을 예상한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는 임신 전부터 태교에 온 힘을 쏟았고, 음식부터 몸가짐까지 왕실의 태교법에 따라 생활했다. 일찍이 태교의 필요성에 대해 깨닫고 <태교신기>라는 태교백과를 저술한 사주당 이씨는 임신 전 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녀는 <태교신기>에서 “훌륭한 의사는 병들기 전에 치료하고 잘 가르치는 사람은 문제가 생기기 전에 가르친다. 그러므로 스승이 10년 동안 가르치는 것보다 어머니가 뱃속에서 10개월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며, 어머니가 10개월간 뱃속에서 기르는 것보다 아버지가 하룻밤에 아이를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왕세자를 낳기 위한 계획임신 부부에게 찾아오는 반가운 소식인 ‘임신’. 하지만 계획하지 않은 임신은 오히려 걱정거리를 낳기도 한다. 임신부들이 임신 사실을 아는 것은 대개 임신 6~8주 사이. 그사이 태아는 약물이나 흡연, 알코올 등에 노출되기 쉽다. 임신부에게 질환이 있는 경우, 미리 치료하지 않으면 합병증이 오거나 기형아를 낳을 위험이 높다. 미래의 새로운 왕을 키워내는 왕실태교는 매우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임신 전부터 자녀교육은 시작된다고 여겼고, 부부가 신체적·정신적으로 안정되고 평화로울 때 합방을 해야만 훌륭한 아이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큰 지혜와 인격을 갖춘 아이가 태어나려면 우선 부부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임금의 병과 건강을 돌본 어의(御醫) 허준은 자신이 쓴 의학서적 <동의보감>에서 “자녀를 갖고자 한다면 부인은 월경이 순조로워야 하고, 남자는 정액이 충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욕정을 줄이고 함부로 교합하지 않아야 기운과 정액이 쌓인다. 그러다가 때에 맞게 교합하면 능히 자녀를 가질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제조상궁(중궁전의 모든 재산을 총괄하여 맡아보던 상궁)이나 관상감(천문을 관장하는 관청)에서 정한 길일에 왕과 왕비는 “양전마마, 오늘은 한 온돌에서 침소하십시오”라는 상궁의 안내에 따라 왕위를 이어받을 왕자를 잉태하기 위해 합궁을 한다. 길일이라도 비가 오고 천둥이 치거나 안개가 끼고,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일식 또는 월식이 있는 날, 병을 앓고 난 후에는 합궁해서는 안 되었다. 혹여 명이 짧거나 질환을 가진 아기가 태어날까봐 우려했기 때문이다.
유익한 것을 실천하는 적극적인 태교 최근 방영을 시작한 SBS 드라마 <왕과 나>에는 우유부단하고 여성편력이 심했던 로맨티스트 성종, 그의 후궁 폐비윤씨, 그리고 폭군으로 이름 높은 연산군이 등장한다. 성종은 <경국대전>을 편찬하고 조선 초기의 왕조 체제를 완성한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성종의 맏아들 연산군은 할머니 인수대비를 때려 죽이고 어머니인 윤씨의 폐비에 찬성했다 하여 수십 명을 살해한 잔혹한 왕이다. 성종에게서 어떻게 연산군이라는 폭군이 태어날 수 있었을까?
성종은 스무 살 때 첫째 부인 한씨가 죽자 열두 살이나 연상인 후궁 윤씨를 사랑하여 아이를 갖는다. 윤씨가 왕비로 책봉된 후 성종과 폐비 윤씨의 관계는 소원해지기 시작한다. 태아의 건강을 위해 부부관계를 멀리했기 때문이다. 혈기 왕성한 스무 살의 성종은 다른 후궁들을 가까이 했고, 임신 중이던 폐비 윤씨는 그들을 질투하고 증오하기 시작했다. 연산군이 태어난 후 성종과 끊임없이 싸우던 폐비 윤씨는 결국 사약을 받고 만다. 임신 중 품었던 증오심이 뱃속의 태아에게 그대로 물려진 ‘최악의 태교’였던 것이다. 어머니의 기쁨과 슬픔은 고스란히 태아에게 전해진다. 왕비 스스로 바른 행동을 하고 마음으로도 바른 생각을 해야 아이도 올바른 사람으로 태어나 자란다. 연산군의 비극은 아이를 가진 여성의 건강한 마음가짐뿐만 아니라 임신한 부인의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남편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왕비는 임신 3개월이 되면 별궁에서 태교에 온 정성을 기울인다. 별궁 출입은 상궁이나 내관 외에는 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히 제한한다. 임신부는 바르게 앉아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보고 좋은 이야기만 들으며 시·서·화 수업을 통해 자신과 태아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노력한다. 아이는 태어난 후 뱃속에서 들었던 모습과 소리를 닮으므로 임신부가 선한 것을 보고 들으면 자녀도 선하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해·나무·거북이·사슴 등 영원히 죽지 않거나 오래 사는 것 10가지를 소재로 한 십장생도를 보며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여 자수를 놓는 것도 왕비의 하루 일과 중 하나다. 장차 태어날 아기에게 입힐 누비옷도 직접 만든다. 임신부의 손가락 운동은 태아의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되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요즘은 일명 ‘DIY 태교’라고 불릴 정도로 그 효과가 입증됐다.
임신한 왕비의 처소에는 늘 조용한 가운데 궁중악사들의 가야금·거문고 연주가 잔잔히 흘렀다. 다만 피리 독주는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피했다고 한다. 아기의 태동이 시작되고 청각이 발달하는 임신 5개월이면 내관들이 왕비의 방 앞에서 사서삼경을 읽어주었다. 이처럼 덕을 행하고 바른 길로 나아가는 총명한 군주를 기르기 위한 왕실태교는 소극적 태교가 아니라 태아에게 유익한 것을 실천하는 적극적 태교라 할 수 있다.
음양오행에 맞춘 음식태교 조선 역사상 최초로 임금의 주치의가 된 대장금. 성종의 아홉 번째 부인 숙의 홍씨가 태기가 있는 것 같아 진맥을 해보니, 임신을 주관하는 임맥의 기운이 활발했다. “마마, 감축드리옵니다.” 진맥을 하는 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숙의는 기쁨에 장금의 손을 덥석 잡았다. 대장금은 숙의 홍씨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마, 지금부터 태교에 온 마음과 정성을 기울이셔야 합니다. 시기와 계절에 따라 영양과 정서를 두루 함양할 수 있는 음식을 드시옵소서. 청태 콩을 소로 넣은 송편이나 해삼·전복과 함께 조리한 죽순은 태아의 두뇌를 좋게 합니다. 또 순무죽은 마마의 원기를 북돋아 드릴 것입니다. 오장을 이롭게 하고 몸을 가볍게 만들어 기를 늘리기 때문입니다. 순무로 짠지를 만들어 드시면 입덧을 가라앉히는 데 그만이옵니다. 또 눈만 골라 곤 잉어와 내장을 뺀 붕어의 뱃속에 전복, 석이, 해삼, 잣을 넣고 황토로 구우면 젖을 많이 돌게 합니다. 잉어는 절대 설당과 아욱, 마늘을 넣어 함께 조리하면 안 되는 재료이니 각별히 유의하셔야 합니다.” 임신한 왕비를 위한 태교음식은 태아와 임신부의 건강은 물론 출산 후 아이의 두뇌 발달, 성격 형성, 성장 발육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 조리했다. 임신부에게는 균형 잡힌 영양을 공급하고, 제철에 나오는 식재료로 요리한 제철음식을 먹게 했다. 각각의 음식물은 갖고 있는 맛, 빛깔, 냄새, 온도, 생산되는 장소에 따라 음양오행으로 나누었고. 음식물들을 요리하거나 차릴 때는 상생관계가 되게끔 했다. 즉 여름에는 수(水)에 속하는 콩과 목(木)에 속하는 닭고기를 먹어 여름 더위를 이기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왕비가 먹었던 대부분의 음식에는 태아의 성장과 두뇌 발달에 도움을 주는 콩, 해조류, 흰살 생선, 조개·새우 등 해산물, 싱싱한 야채 등의 재료를 사용했다. 임신부의 특별 영양식으로는 잉어, 오골계, 쇠고기, 전복, 해삼이 들어간 용봉탕이 올랐다. 특히 ‘임금의 물고기’라 불리는 잉어는 왕세자를 낳으려는 임신부에게 특별한 의미가 담긴 영양식이었다.
조선 왕실에도 존재했던 부성태교 임신 열 달 동안 아이와 한몸이 되는 임신부는 그 누구보다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탕약은 함부로 먹지 말고, 칼로 생물을 베거나, 무거운 것을 들거나 높은 곳에 오르지 않아야 했다. 또 구부리고 엎드리거나 구부린 자세로 자거나, 천둥 번개가 치는 것을 보는 것도 금지했다. 나쁜 것에 대해서는 ‘눈 가리고 귀 막고 벙어리’로 지내야 했던 답답한 10개월을 견뎌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훌륭한 왕세자를 낳을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 때문이었으리라. 건강하고 똑똑한 아기를 기다리는 일은 가족 모두의 축복이다. <태교신기>에서는 “태교란 임신부 자신뿐만 아니라, 온 집안 사람들이 서로 조심하고 화난 일을 드러내지 말고, 천하고 흉한 일도 알려서 두렵고 놀라게 하지 말며, 난처한 일도 알리지 않는 것이다. 이는 임신부가 놀라게 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라며 남편과 가족도 태교의 주체임을 강조한다. 태교에서 남편의 역할이 부쩍 강조되는 요즘과 마찬가지로, 권위적인 조선 왕실에도 부성태교가 존재했었다. <동의보감>의 임신 금기 중 첫 번째가 ‘임신 후에는 남녀 교합을 크게 금기시한다’는 것이었다. 임신 중 부부생활이 자칫 유산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왕비의 임신을 확인하면 왕도 뱃속의 태아를 위해 부부생활을 자제해야 했다. 궁궐 안에서는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도 모두 금지했고, 매를 때리는 형벌도 중지했다. 궁궐 안에서 죽은 짐승의 원혼이 왕비와 뱃속 태아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해 온 나라에서 짐승을 잡는 것도 금했을 정도니, 지금처럼 바로 옆에서 함께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앞으로 태어날 왕세자를 걱정하는 아빠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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