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램이 부활하는 벼룩시장
-동묘 앞-
김 주 석 매서웠던 동장군의 기세가 경칩을 지나 뒷걸음치면서 겨울과 봄이 맞닿아 있는 계절에 구제시장이라 불리는 동묘 벼룩시장을 찾았다. 시장은 시내변두리나 환경이 열악한 곳에 있지 않고 고층빌딩과 학교, 아파트지역 사이의 도심한복판 교통이 편리한곳에 자리 잡고 있다. 입구부터 북적대고 번잡하다. 동대문 대로를 비롯하여 왕산로까지 난전이 벌어져 물건을 사고파는 흥정으로 온통 왁자지껄하며 소란스럽다.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세상물건의 집합소인 길거리시장으로 과거에는 이런 시장을 도깨비 시장이라 불렸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점 집 깃발이 휘날리고, 놋주발과 요강이 있는가하면 페인트로 굵게 쓴 낡은 간판들이 있어 세월을 수 십 년간 거꾸로 되돌려놓은 느낌을 주는 풍경을 연출한다. 그리고 서민들의 에너지가 넘치는 곳으로 각양각색의 표정이 풍성한곳이다.
벼룩시장이란 사람이 벼룩처럼 많이 모여들거나 벼룩이 들끓을 정도의 고물이 많다는 의미로 쓰여 지 고 있다. 이 말의 어원은 프랑스 파리시에서 허가를 받은 “정규벼룩”과 “무허가벼룩”들이 각자물건을 내놓고 판매를 하다 경찰이 단속을 나오면 “무허가 벼룩”들은 반대편으로 가거나 감쪽같이 사라졌다 경찰이 가면 다시원래자리로 모여드는 모습이 마치 벼룩이 튀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19세기 말부터 사용되었으며, 대표적인 것은 파리의 포로트클리냥크르로 이다.
동묘(동관왕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한 명나라 군이 관우를 잘 받들어 모시면 전쟁 때 관우가 나타나 도움을 준다는 믿음 때문에 지어진 관우의 사당이다. 임난 당시는 서울의 동서남북 중묘 다섯 곳에 지었으며, 명군이 주둔하는 곳마다 지방에도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서울지역에 남아있는 사당은 이곳 동묘와 남묘(동작구 사당동)가 있고, 지방에는 경북안동과 성주에 남아있다. 왜군과의 긴 전쟁으로 민생은 도탄에 빠져있고 피폐한 경제사정으로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유리걸식하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명군의 강압에 의한 노역을 부담해야하고 공사에 필요한 자재와 경비를 조달해야하는 고통을 당하였다. 시장바닥에 둘러싸인 지금의 관우는 그날의 후손인 한국국민들의 떠들썩한 소리에 편히 쉬지 못하고 귀를 막고 지내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이곳벼룩시장은 청계천복원공사로 인해 황학동시장이 철거되면서 밀려난 상인들이 주축이 되어 형성된 시장으로, 이때 생겨난 또 다른 시장이 신설동역부근의 “서울풍물시장”이다. 시장이 형성된 길거리는 동묘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청계천까지 뻗어있는 길이 메인로 이고, 동쪽으로는 신설동 전신전화국뒷길 끝까지 이어졌으며, 서쪽샛길은 동대문방향의 지봉로 까지 연결되어 전체길이가 약3km에 달고 있으며 날이 갈 수 록 대로는 물론이고 이면도로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실정이다.
좌판과 파라솔 밑에 좍악 널려있는 구제물품은 진귀한 골동품에서부터 잡동사니까지 신발, 시계, 가방, 자전거, 라디오, TV, 핸드폰, 카메라, 각종전자기기, 공구, 철물, 외재식료품, 기타 정체를 알 수없는 희귀한 물건 수천가지가 즐비하게 널려있다. 뒤 안에 숨어있던 물건들이 난전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물질문명의 용광로와 같다. 이 벼룩시장에서 구할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오래된 물건에는 오래된 기억이 있어 더욱 정이가고, 그리운 시절이 추억으로 머무는 고향과 같았다. 원형적인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우리들이 멀어져가는 추억을 그리며 마음편한 게으름의 호사를 누리며 천천히 살펴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적고 소소한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시장은 평일에는 300개정도이고, 주말과 휴일에는 600여개의 좌판과 파라솔이 들어서며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과 구경꾼들로 평균 10만의 인파가 찾아드는 곳이다. 벼룩시장의 매력은 머니머니 해도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물건을 한자리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기 있는 구제의류는 단돈 일이만원이면 위아래 한 벌을 갗 출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이다. 이와 같이 벼룩시장은 물가를 잡는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재래시장에서 “골라잡아 단돈 천원, 살거면 사고, 말거면 말아.” 목청 돋우는 상인들의 호객하는 고함소리가 여기서도 시장을 떠들썩하게 한다. 좌판에 있는 물건들은 조금은 후줄 끄래하고 수수하면서 낡은 듯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지만 정직한 날들의 기록을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다. 또한 벼룩시장에서 쇼핑을 가장 잘하는 노하우로는 시시각각물건이 바뀌고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이기 때문에 좋은 물건을 개시할 때 구입해야하고, 대박활인시간인 오후2시 이후 황금시간대 찬스를 잡아야한다. 이때는 무조건 천원을 외치는 소리가 시장에 가득하다. 그리고 환불과 교환이 되지 않는 벼룩시장의 특정상 자기사이즈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수적이며 구입해야 물건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장이 열리는 곳에 반드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약장수이다. 많은 사람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약장수는 신나게 열을 올리며 약을 선전하고 있었다.
“밤마다 마누라에게 달달 볶이며 고개 숙인 남자에게 여기 해결해주는 약이 있습니다. 그 약이 먼고 하니 「 야간에 빗장을 연다」는 진기한약입니다.”
“이약의 효과를 말하자면 부작용이 전혀 없고 효능은 100%믿을 수 있는 초강력정력제로 동의보감에도 나와 있는 천하명약입니다.”
이때한사람이 “서론을 길게 늘어놓지 말고 본론부터 빨리 말하시오.”
그러자 약장수가 “아따 그 양반 성질한번 급하구먼. 명약은 그렇게 쉽게 얻어 지지 않는 법이요.”
조금 뜸을 들이고 나서 “ 애 또, 여러분이 애타게 찾는 약은 바로「 야관문」 이란 약초입니다.”
중년이후의 남자들이 쭈빗뿌빗하면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주축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20대 이상의 젊은 남. 여 층은 물론이고 백인, 중동, 동남아시아, 흑인들까지도 뒤섞여 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이처럼 변신을 가져오게 된 직접적인계기는 얼마 전TV연예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아이돌가수인 지드래곤과 개그맨 정형돈의 뮤직 비디오를 방영한 이후부터 젊은 층들이 찾아드는 계기가 되어 신구세대가 함께 어울려 생기가 돌고 활력이 넘치게 되었다..
사람이 들끓는 시장에는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다. 이리저리 사람들을 헤집고 다니면서 간단하게 마시고 먹을 수 있는 커피와 토스트를 팔기도 하고, 벼룩시장과는 어울리지 않게 프렌차이즈 외식업체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시장의 정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옛 먹 거리인 장터국밥과 해장국, 멸치국수, 손칼국수, 파전, 막걸리, 짜장면 집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면 시간이 훌쩍지나 허기짐을 느낄 때 이곳에 들려 옛 음식의 맛을 보는 것은 더 없는 즐거움이다.
동묘벼룩시장의 유명세는 국내뿐만 아니라 이미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각국의 상인들이 한 달에 한두 번씩 정기적으로 찾아와 의류를 비롯한 물건들을 다량으로 구입해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중요시 여기는 것은 「Made In Korea」라벨이 붙어 있는 것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한국 상품의 인기가 세계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렌드 분석전문가인 김용섭 소장의 주장에 의하면 “가난하든시절 단순히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쓰기(아나바다)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옛 사람이 사용했던 물건은 그 당시 사람의 인생과 세월을 공유하고 새로운 소비문화 트렌드를 가진다. 또한 오랜 물건 속에 깃든 시간과 자취를 찾아내면서 아날로그적인 향수와 과거의 추억 외에도 빛바래고, 낡고, 오래된 물건들은 인터넷과 디지털의 차가운 환경에 찌든 세상으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운 감성을 느끼려는 층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복고성향은 리모델링, 업사이클, 히스토리델링 등으로 나타나 어제와 오늘을 연결하는 문화행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라고 했다.
사회현상이 복잡해지고 무한 경쟁에 쫓기듯 살아가는 가운데 경기불황이 계속되면서 우리사회는 탈락자가 늘어나고 소비자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때 벼룩시장은 지워지고 빛바랜 것들이 부활하여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고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끝.
첫댓글 한번 지나가다 수제구두를 하나 샀는데 아주 좋더라고요.다시 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