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구절을 읽었어.
"다만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는 이른바 비활성 기체라는 것이 있다. 이것들은 박식하게도 그리스어에서 따온 진기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각각, '새로운 것(네온)', '숨겨진 것(크립톤)', 그리고 '낯선 것(제논)', '움직임이 없는 것(아르곤)' 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들은 정말 활성이 없어서, 그러니까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어서 어떤 화학반응에도 개입하지 않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도 않는다. (···) 그 가운데는 공기의 일 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히 많은 양이 존재하는 아르곤, 곧 움직임이 없는 것' 이 있는데도 말이다. 다시 말해 그 양은 이 지구상에서 생명체의 혼적이 유지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이산화탄소보다 스무 배 또는 서른 배나 많은 양이다." 신기하지 않니? 원소들이 제 처지에 만족하고 있다는 표현이라니.
네온 크립톤 제논 그리고 아르곤 들 같은 친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주변에는 그렇게 네는 크립톤 제논 들이 있었고 한때 그렇지 않은 내 친구들도 모두 그런 원소로 변해 있었다. 나는 아르곤이 되고 싶었지만 이미 그럴 수 없었다. 하다못해 크립톤, 하다못해 제논, 하다못해 안정된 그 무엇이라도 되고 싶었지만 언제나 그 원소 군에의 입장을 제지당했다. 마지막 출구도 봉쇄되었다. 내 인생은 난파했고,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내 온몸은 상처들로 가득했다. 나는 먼 훗날 있을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병원에 가서 떼어두었던 진단서들을 다 찾아 찢어버렸다. 나는 내 인생이 이런 진단서를 제출하고 그 남자가 나쁜 인간이 되는 것을 만천하에 증거하고 불타는 전투욕으로 이 세상 모든 핍박받는 여성들을 위하여 법정에 선, 전도사가 되도록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는 내려갈 수 없이 비뚫어졌고, 모든 행복해 보이는 것들에 대해 극도로 민감했으며 망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만둬라 한스 한젠, 외로워서 우는 왕이 내게 무슨 상관이겠니? 울부짖던 토마스만의 토니오 크뢰거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 왔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었어. 넌 왜이 책을 썼니? 프리모레비가 아니라 너." 나는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넌 왜이 책을 썼니? 프레모 레비가 아니라 너...그러니까 나.
공지영 '맨발로 글목을 돌다' 중에서
몇 년 전 나는 폴란드 여행길에 그곳을 들렀었다. 예정되어 있던 일정이었다. 여행을떠나기 며칠 전부터 나는 그곳에 들를 일이 실은 걱정이었다. 언젠가 음악을 하는 후배가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허리를 휘청 꺾으며 그대로 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춘기 시절, 그 지겨운 조회시간에 기절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만큼 튼튼한 나는 내 신경이 혹시 그 후배처럼 섬세할까봐 겁이 났었나 보다. 크라카우를 출발한 버스가 아우슈비츠에 도착할 무렵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비였다. 멀리서 몇 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연한 회색 구름 아래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뜻밖에도 고즈넉하고 평화로워서 얼핏 아름다운 유럽의 일상적 풍경처럼 보였다. 그 입구에 쓰인 독일어 구호 "노동만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글귀는 건전하기까지 했다. 나는 기절하지 않았다. 그 수용소 진열장에 작은 언덕처럼 쌓인 잘려진 머리카락들, 신발들, 아이들의 부서진 인형들의 규모가 내 상상을 훨씬 더 넘는 것들이어서 그저 어안이 벙벙했을 뿐이었다. 단테가 《신곡》에서 묘파해낸 지옥의 입구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말이 입가를 뱅뱅 돌았다. 두 시간 남짓 우리는 그 죽음의 수용소를 돌았다. 마지막으로 당도한 곳은 시체를 태우는 소각장이었다. 반지하라고나 할까. 텅 빈 듯한 공간에 난로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죽음의 흔적도, 기미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평범한 공간이었다. 아니, 이미 나 자신이 그 죽음 속에 들어와 있기에 모든 것이 무감각했는지도 모른다. 군데군데 뚫린 작은 창문 밖으로 잘린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비는 쉴 새 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때 시체를 소각하는 난로 같은 기구 옆으로 영국의 가톨릭교도들이 가톨릭교도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사람들올 위해 바친 비석 하나가 눈에 띄었다. 우리를 인솔한 분이 비석에 새겨진 그 글귀를 해석해주었다. 성서의 한 구절이었다.
어두움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순간 다 합쳐서 50대도 되지 않는 이 철자들이 아우슈비츠를 떠받치고 있는 그런 이상한 느낌에 나는 사로잡혔다. 몇 십만 평방길로에 이르는 아우슈비츠에서 행해지는 악과 비참과 말살과 공포를 한쪽추에 달고 다른 쪽 추에 단다면 양쪽이 아주 팽팽해질 것 같은... 그때처럼 언어의 위대함을 생생하게 느껴본 적은 그후로도 다시 없었다.
공지영 '맨발로 글목을 돌다'
토니오 트뢰거
"세련되고 상궤를 벗어난 것, 악마적인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그것에 깊이 열중하는 자는 아직 예술가라 할 수 없습니다. 악의 없고 단순하며 생동하는 것에 대한 동경을 모르는 자, 약간의 우정, 헌신, 친밀감 그리고 인간적인 행복에 대한 동경을 모르는 자는 아직 예술가가 아닙니다. 평범성이 주는 온갖 열락(悅樂)을 향한 은밀하고 애타는 동경을 알아야 한단 말입니다!"
토마스 만 '토니오 트뢰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