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금융위기로 인하여 금융산업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기는 하였지만 선진국 경제로 진입하는데 금융산업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적극적인 투자로 금융산업을 육성하고 경쟁력을 향상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각국의 제도적 수준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개별 금융기관들의 역량에 의해 좌우된다. 금융기업의 핵심역량은 역시 마케팅, 리스크 관리, 투자능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중에서도 고객들에게 투자상품을 판매하거나, 카드를 발급하거나, 보험을 판매하는 마케팅 활동은 나머지 두 활동에 선행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마케팅을 주변활동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짙다. 그리고 마케팅 마인드 부족으로 아직 영업 마인드로 금융 상품을 판매하려 들고 있다. 그러나 금융상품을 ‘면대면’으로 판매한다는 것은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에서는 좋은 방법이지만 한국 정도의 경제에서는 결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 즉, 금융판매도 면대면 영업에서 마케팅을 통한 소비자의 자발적인 구매로의 변신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업은 Push-판매를 하지만 마케팅은 Pull-판매를 하고 있다. 그리고 마케팅이 활성화되면 영업의 필요성이 감소되어 비용절감으로 이어지게 된다.
현대 마케팅 이론은 실물 제품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이 중에서도 소비재 회사들이 중심이었는데 미국의 P&G나 영국의 Unilever사는 ‘마케팅 사관학교’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마케팅 전문가들을 타산업으로 배출하였다. 그러나 과연 세탁세제와 콜라를 마케팅하는 방식이 금융상품을 마케팅하는 곳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소비재와 금융상품은 많은 차이점이 있다. 우선 소비재는 형체가 있지만 금융상품은 형체가 없는 정보의 집합이다. 또한 생산공정이 없는 금융상품은 개인에게 맞춤 설계가 가능하다. 그리고 제품의 경우 초기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금융상품의 경우 초기 도입보다 계속적인 사용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보험은 가입 후 고객이 불만족하면 납입금을 중단할 수 있고 카드는 휴면상태로 둘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나 PC같은 경우 불만족하더라도 제조사에 환불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금융 소비자는 상품을 초기에 도입한 후에도 계속적인 사용문제를 놓고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금융상품은 복잡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상품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소비자의 정보 니즈가 많기도 하지만 과도한 정보는 소비자의 처리능력 밖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규제 당국의 개입이 많고 소비자와의 잦은 시비가 발생한다.
위와 같은 이유로 금융상품의 마케팅은 일반 상품마케팅과 부분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공통점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것은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고객만족을 실현하며, 브랜드를 육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통점을 제외하면 금융상품과 일반상품의 마케팅에서 강조점이 다르며 금융 마케팅에서 특별히 강조해야 할 마케팅 활동은 다음과 같다.
1. VIP 마케팅을 하여야 한다.
마케팅에서 많이 언급되는 20:80법칙이 금융 마케팅에서는 10:90, 나아가서는 05:95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금융기관은 필히 VIP마케팅을 하여야 한다. 10억의 투자금을 예치한 고객은 1천만원을 예치한 고객의 100배 몫을 기여한다. 일반 제품의 경우 20:80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극히 드물지만 금융의 경우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제품의 경우 구매가 많건 적건 기업 이익에 기여하지만 금융의 경우 고객 중 일부는 연체나 휴면 상태로 인해 손실을 주는 마이너스 고객이다. 그러므로 마이너스 고객들의 손실을 커버할 만한 수익성 있는 고객층이 꼭 필요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금융기관들은 고객의 평잔, 투자액, 사용액 등이 경쟁사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미국의 온라인 증권사인 Charles Schwab의 경우 동종업의 온라인사들보다 고객의 평균 투자액이 5~10배나 많으며 Amex카드는 마스터카드보다 사용액이 두배이다.
2. 고객체험을 극대화 하여야 한다.
금융 소비자는 매순간 사용여부를 결정하여야 하기 때문에 계속적인 행동 강화가 (reinforcement) 있어야 한다. 이러한 행동강화를 위해 소비자의 사용 체험을 계속 관리해 주어야 한다. 마일리지 프로그램, 문화 및 체육 행사에 초대, 사은품 등은 고객의 체험을 향상시키는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행사로 인해 사용자는 브랜드에 대한 긍지와 서비스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객과 만나는 접점에서 고객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 수집을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3. 계량적인 마케팅을 하여라.
금융기관은 고객의 모든 거래 내역을 전산으로 수집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재 회사보다 훨씬 더 많은 고객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일반 소비재 마케팅이 마케터의 직관에 많이 의존하는 방면, 금융 마케팅의 경우 데이터에 의존하여야 한다. 모든 마케팅 목표가 수치화 되어야 하며 마케팅 활동의 근거도 데이터로 정당화 되어야 한다. 수치에 근거한 마케팅 활동은 마케팅 비용의 효율성을 높여주며 부서간에 합의를 도달하는 데도 유용하다. Google에서는 ‘데이터가 직관을 이긴다’라는 말은 한다. 즉 데이터와 직관이 상충되었을 때 항상 데이터 쪽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제 마케팅도 감에 의존하는 마케팅이 아니라 데이터에 의존하는 마케팅이 되어야 한다.
4. 인터넷 투자를 과감히 하여라.
인터넷은 고객과의 적극적인 소통 수단이 된다. 금융고객은 자신의 금융 현황에 대해 늘 체크하길 원하기 때문에 인터넷을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소비자의 인식 속에서 잊혀진 금융상품은 기업에게도 이익을 주지 않기 때문에 고객에게 인터넷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존재감을 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존재감이 알려진 기업 사이트에서는 계속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즉, 증권사 사이트로 주식시세를 체크하면서 주문을 낼 수 있는 것이고 보험 회사 사이트에 들어온 김에 새로운 보험의 필요성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은 면대면 접촉을 줄여줌으로 비용절감에도 큰 도움이 된다.
5. 혁신하는 조직이 되라.
금융회사도 신제품 출시나 신 서비스 제공 측면에서 혁신을 하여야 한다. 고령화, 환경친화, 글로벌화 등으로 소비자의 니즈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아직도 90년대에 판매하던 형태의 제품만을 취급하고 있다면 이는 혁신이 느리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서비스 측면에서도 새로 나오는 모바일 기술과 소셜네트워킹 기술을 사업 영역에 접목시켜야 한다. 취급하는 영역도 계속적으로 확장하여야만 내 시장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금융마케팅은 기존 마케팅과는 좀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마케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경영자라면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금융산업에 접목시키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을 예상할 수 있다.
첫번째는 계량 마케팅으로의 전환이다. 계량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마케터의 직관과 수치모델링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가져야 하는데 이를 충족시키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도 역량을 교육이나 채용을 통해 먼저 확보하는 기업은 분명히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브랜드에 대한 투자이다. 브랜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기대수준을 이해하지 않고 브랜드 투자에 뛰어들었을 경우 일관성 없는 브랜드 정책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확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브랜드에 대한 투자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전사적인 컨센서스 빌딩과 준비작업이 필요하다.
삼성그룹은 소비재 마케팅, 산업재 마케팅, 서비스 마케팅, 금융마케팅을 다 포괄하는 넓은 사업 범위를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산업의 마케팅 노하우를 공유하되 서로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교류한다면 정보교환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는 마케팅 노력이야말로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길에 가장 필요한 활동이 될 것이다.
글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주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