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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는 은혜입니다.
(고린도후서12:7~10)
깊어가는 가을이라서 제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하고 시작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얘들을 키우다 보면~갑작스럽게 돌발적으로 생기는 사고 중에 하나가 ~얘들이 동전 가지고 놀다가 삼켜 가지고~기도가 막혀서 잘못하면 죽을 수 있거든요.
어떤 엄마가 자기 얘가 갑자기 동전을 삼켜 가지고~숨을 못 쉬고 죽을 지경이라서~
급하게 얘를 데리고 병원으로 뛰어 가려고 하는데~ 때 마침 문 앞에 지나가던 어떤 남자분이~발견하고는~~얘 두 다리를 꽉 잡고 거꾸로 세워서~동전을 꺼내 줬어요.
구사일생으로 살았어요.
너무너무 고마워가지고~엄마가 그 남자 분에게~‘선생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훌륭한 의사이시구만요.’ 그러니까 이 분이 얘기했습니다.
‘아니 나는 의사가 아닙니다. 나는 국세청 직원입니다.’
이 수준 높은 얘기를 아시겠습니까?
2부 예배는 상당한 지적 수준이 있기 때문에 제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기가 막힌 문장이여
자기 아내가 쓰는 것 보다 많이 버는 남자를 우리는 성공한 남자라고 말한다.
그런 남자를 찾아내는 여자를 성공한 여자라고 말한다.
잘 이해가 안 되시는가 보네~~
부부가 여기 앉아 계시면 서로 인사하십시오.
“당신 성공한 사람 여”
한번 따라서 하십시다.
가시 덕분에~
대한한국 지성을 대표하는 석학 중 한분이신 이어령 박사는 평론가에서 언론인, 교수, 그리고 문화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이력이 화려합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인생의 아픔이 많이 있습니다.
그의 어린나이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외롭게 컸습니다.
그의 딸, 이민아 변호사는 위암에 걸려 젊은 나이에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먼저 사별하는 것은 일평생 최고의 고통이고,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눈에 흙이 들어가는 날까지 가슴을 꼭꼭 찌르는 가시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어떤 분이~뜻 밖에 인생의 가시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에게는 왜 이런 아픈 가시가 있어야할까?
거듭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사람에게는 이따금 뼈아픈 가시와 같은 고통이 찾아와야 하는가?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의 대표작 「어린왕자」에서 이런 얘기를 들려줍니다.
갑작스런 비행기의 엔진고장으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는 엔진수리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때 아주 작은 별나라에서 어린양을 구하러 내려온 어린왕자는 조종사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어린양들이 가시가 돋친 꽃들도 먹을까요?’
조종사는 비행기 수리에 바빠 건성으로 대답합니다.
‘아마도 양들은 닥치는 대로 먹을 거야.’
어린왕자는 좀 더 진지하게 묻습니다.
‘날카롭게 찌르는 가시가 있는데도 그 꽃을 먹을까요?’
그러면서 또 하나의 진지한 질문을 계속 이어갑니다.
‘그런데 그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나무에 가시는 왜 생겼을까요?
가시는 왜 필요할까요?
가시는 어디에 쓸모가 있는 것일까요?’
조종사는 여전히 비행기 수리에 바빠 건성으로 대답합니다.
‘그냥 생긴 것일 거야. 가시는 아무대도 쓸모가 없는 거야.’라고 성의 없이 대답합니다.
고개를 갸우뚱 이던 어린왕자는 잠시 후 스스로 놀라운 답을 얻습니다.
그는 가시의 필요성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아니에요. 꽃은 너무나 약하고 연하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려고 가시가 돋아난 거예요.」
인생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멋있는 대답을 주고 있는 것이 ~어린 왕자의 스토리입니다.
꽃들은 약한 존재이기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시가 필요한 것이라는 역설적 담론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시 덕분에 꽃들은 안전한 것입니다.
제가 한 주간 동안 생각해 봤습니다.
식물에서도 가시가 있는 것일수록 좋은 특성들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고요..
장미꽃은 가시 속에서도 아름다운 색상과 향기를 오랫동안 유지해 나갑니다. 가시가 보호해 주기 때문입니다.
가시로 뒤덮인 선인장은 여러 분야에서 약용으로 쓰입니다.
가시오갈피는 만병통치약으로 활용됩니다.
그 외에도 구기자나무, 가시복분자는 강장제 약효를 엄청나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특한 열대 과일이 하나 있습니다.
두리안이라는 열매
벌써 구미를 땡기시는 분이 계셔~
영양분이 대단한 고급열매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리안이라는 이름 자체가 ~말레이어로 ‘가시’(duri)라는 뜻입니다.
저 가시 속에 얼마나 좋은~고 단백~ 기가 막힌 맛을 가진~열매가 들어 있습니다.
저는 저 두리안을 볼 때마다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낮은 나무에 달려 있기 때문에~다행이지요~
높은 나무에 달려 있다가 떨어져서 지나가는 사람 머리통에 맞아봐요.
심각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처럼 가시는 우리를 아프게도 하지만, 우리를 더욱 안전하고 유익되게 해줍니다.
그래서 저는 「가시 때문에」라기보다 「가시 덕분에」라는 긍정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인생의 가시 덕분에 우리는 잘못되지 않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일본 재계의 우상적 인물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은 어린 시절 매우 가난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난‘때문에’라고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린 시절 아주 가난하게 지낸 ‘덕분에’~ 일평생 그는 근검절약할 줄 알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또 그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배우지 못했기‘때문에’라고 구차한 핑계를 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배우지 못한‘덕분에’~평생 남들보다 더 한 자라도 배우려고 학습에 온 열정을 쏟다 보니까~ 성공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몸도 약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몸이 약하기‘때문에’라고 핑계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몸이 약했던‘덕분에’더 조심하고 삼가 하면서 건강을 챙겨 살았기 때문에~ 그 당시 95세까지 장수하는 복을 누렸습니다.
그는 가난, 무학, 연약함이라는 가시 덕분에 ~오히려 열정인생, 성공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우리가 흔히 하는 표현처럼~ 무병단수, 잔병장수라는 말이 논리적으로도 타당성이 있습니다.
우리 남자들 중에 아주 건강해서~~내 평생 단 한 번도 병원에 간 적이 없다. 자신하지 마십시오.
제 친구는 00고등학교 시절 육상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건강합니다.
사업도 훌륭하게 잘 했습니다.
얼마 전에 자기 딸을 결혼 시키는데~~부모 형제들이 한국에 계시기 때문에 딸을 데리고 나와서 한국에서 결혼하고~한국에 워낙 의료 시스템이 잘 돼 있으니까~ 나온 김에 건강검진 한번 해 볼까 하고~건강 검진을 했더니~간암 말기였습니다.
자기는 아무 증상 없으니까~ 6개월 만에 죽더라고요.
여러분들 가운데 혹시 부모님이나 연세드신 분들 가운데~혈압이 있다든지, 또 특별히 당뇨 생기신 분들~~ 감사하십시오.
뭔가 하나가 있기 때문에~조심하게 되는 거지~~플러스 효과가 있어요.
우리도 삶을 대하는 태도를‘때문에’라며 탓할 것이 아니라, ‘덕분에’라고 말하는 「긍정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그렇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일수록‘때문에’라고 핑계를 일삼습니다.
반면에 긍정적인 사람일수록 ‘약함 덕분에, 배우지 못한 덕분에, 학벌이 짧은 덕분에, 건강이 안좋은 덕분에, 가난한 덕분에, 불리한 덕분에 ’오히려 신앙적 역설을 가지고 운명을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동의하시면 아멘 합시다.
그렇다면 가시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가시가 과연 나에게도 축복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가시 덕분에 어떤 유익이 나에게 찾아올까요?
저는 성경을 통해서 현실적 대답을 얻습니다.
1. 가시는 교만하지 않도록 해줍니다.
우리는 자기만의 가시 때문에 교만하지 않게 됩니다.
겸허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진솔한 자기고백입니다.
아까 제가 성경을 펴 놓자고 그랬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컨텍스를 가지고 읽어야 됩니다.
한 소절만 갔고 읽은 것은~의미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의 줄거리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어떻게 돼 있느냐면~
1절부터 6절까지는 사도 바울을 높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바울로 하여금 천국의 신비함까지도 경험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강조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절부터 6절까지는 바울이 얼마나 탁월한 영적지도자 인가? 그는 요즘 말로 말해서~천국도 왔다 갔다 하는 대단한 인물이었음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7절부터는 사도 바울을 낮추시는 역설적인 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소아시아와 유럽선교를 통해 그의 탁월한 실력으로 세계역사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대단한 인물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엄청난 영적 세계를 체험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배경, 그의 문벌, 그의 학벌, 그의 가정적인 환경, 그의 신앙적인 특성,
그리고 그의 업적~ 선교사로서 목회자로서의 그의 탁월성,
어느 누구도 그와 견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교만에 빠져 우쭐대지 않은 것은~ 바로 자신의 치명적인 가시와 같은 질병 덕분이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큰 인물이 된 바울로 하여금 우쭐대거나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가시와 같은 질병을 주신 것이라고 바울은 7절에서 이렇게 긍정적으로 해석합니다.
우리 말 성경에서도 ‘자만하지 않게 하려고, 자만하지 않게 하려고’ 두 번이나 반복하는데~~
메시지 성경에서는 ‘우쭐대지 않게 하시려고’진솔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만이라는 위험에 빠지는 것을 제동하시려고 때때로 결정적인 약점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약점이야말로 하나님이 목적하시는 고상한 은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한 학생이 C. S. 루이스 교수에게 이런 심오한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정말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인간에게 정말 대답할 수 없는 고통이 일어나도록 놔두시나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풀리지 않는 고통을 인간에게 허락하실까요?’
그 질문에 C. S. 루이스는 크리스천 지식인답게 ~전혀 뜻 박의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그의 대답이 이렇습니다.
“인간이란 참 교만한 존재야. 만일 고통이라는 문제가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더 교만해졌을까?”
이 대답과 함께 그가 쓰게 된 책이 그의 역작 「고통의 문제」입니다.
부족한 저와 함께 ~우리 진솔하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는 때때로 고난이라는 가시 덕분에 교만하지 않게 되고, 겸손하게
된다면 ~비록 가시가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개인적으로, 때로는 자녀들에게~어떤 가시가 있기 때문에~내가 어디 가서 우쭐 대지 않게 되고, 어디 가서 남들을 함부로 정죄하지 않게 된다면~그 가시는 나에게~플러스 효과를 만들어 주는 겁니다.
오늘 아침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한번 잘 생각해 보자고요.
어떤 약점 때문에, 나만이 갖고 있는 가시 덕분에~교만하지 않고 겸손해 진다면~그것은 분명히 변장된 축복입니다.
동의하시면 아멘 하십시오.
2. 가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해줍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의 가시 때문에 세 번씩이나 작정하고 기도를 드리는데~
오늘 본문 8절을 보니까~ 3번이나 기도했다. 필사적인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3번의 개념은~대단한 작정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근원적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기도라는 게 뭐예요? 기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하고, 두 손 들고 그분의 처분만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문제가 복잡하거나 고통이 클수록~ 더 하나님만 의지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가 가사처럼 이따금 나 자신의 한계 앞에서 때로는 무기력한 상태에 있을 때~ 정말 순진한 마음으로 이런 찬양이 나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가시 덕분에 나도 할 수 없는 게 있구나.
나도 안 되는 게 있구나.”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인생의 불가항력적 가시 덕분에 두 손 들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가 얘들을 키울 때 어떻습니까?
어린 아이가 갑작스럽게 병이 생겨서 병원에 가게 되면~사실 엄마아빠가 병원 가서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그 젊은 간호사 앞에서도~우리가 아주 겸허한 태도를 취하면서~~잘 부탁한다고 그러고,
그리고 평상시 신앙심이 없던 아빠도 어린 아이의 그 병 앞에서는~두 손 모으고 기도할 줄은 모르지만 마음으로 ‘하나님 도와주세요.’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잖아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가시 덕분에」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가시는 우리를 아프게만 하는 게 아니라~오히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남자들은 늘 군대얘기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특별히 공부도 잘하고 대범한 사람들이 가는 군대를 갔는데~
여러 친구들에게 전도하려고 하다보면 안 먹혀들더라고요
“야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차라리 하나님을 믿으려면 내 주먹을 믿지~”
그런데 막상 높은 대서 뛰어 내리기 전에 갑작스럽게 부드러워집니다.
송형 기도해 줘~
아니 너 아까는 하나님이 안 계시다며~~
아니 그건 땅에서 했던 얘기고~ 여기는 하늘이잖아~
사도 바울은 육체의 고통이라는 가시 덕분에 교만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겸손히 하나님만 더욱 의지하며 살았기에 그는 이런 차원 높은 표현을 해요.
가시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다.』(9절)
왜 나에게 이런 아픔이 있고, 가시가 있고, 고난이 있고, 역경이 있고, 시련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남들이 흘리지 않는 눈물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큰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허락한 가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장에서 두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이, 『내 은혜』라는 거여
내가 너에게 맞는 은혜를 주고 있다고~
이해의 차원을 뛰어 넘어서~지식의 차원을 뛰어 넘어서~남들 보다 내가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하나님 편에서는 나에게 주시는 은혜인 줄로 받아들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초두에 소개해드린 이어령 박사님
그렇게 자신의 지성을 영성 앞에 승복시킨 것은 그 동기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 딸의 치명적인 질병, 그리고 25살 된 손자가 어느 날 갑자기 원인도 없이 죽고, 그리고 그 딸의 아들 하나는 자폐증에 걸려 인간의 불가항력적인 질병인 가시 덕분에 그는 결국 예수를 영접하는 이 시대의 지성과 영성의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가시는 때때로 우리 생각을 뛰어 넘는 ~하나님 은혜의 특별한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멋있는 말을 합니다.
제가 어느 책을 읽다가 너무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잘 들어 보세요.
“겸손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그릇이요, 또 겸손은 은혜를 받는 한계다.”
여기에 집중해 보세요.
은혜를 받는 한계 그것이 겸손입니다.
사람이 겸손한 만큼만 은혜가 임합니다.
우리의 겸손이 하나님의 은혜의 한계입니다.
이 문장을 한 번 더 깊이 봐주세요?
제가 한 번 더 설명해 드릴께요?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한 달 수입을 백만 원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너무너무 성실하게 일을 잘 하고 여전히 겸손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 사업을 잘 되게 해서
그 사람에게 천만 원을 줬더니~그 날부터 이 사람이 교만해 졌습니다.
그 사람은 백만 원짜리입니다.
그 사람은 백만 원짜리 수준 박에 안 되는 거여
어떤 사람에게 회사에서 지위를 높여 줬습니다.
진급시켜 줬습니다.
그런데 성실하게 일을 잘 해요.
그래서 높은 지위로 승진시켜 줬더니 ~그 때부터 오만 불순하게 되는 거여
그러면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사람을~축보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겸손의 그릇만큼 축복과 은혜를 받습니다.
겸손이 곧 은혜의 한계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인생의 가시로 하여금 하나님만 의지하게 된다면~하나님만 더 붙잡고 주님만 의지하고 살게 된다면~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그 가시가 비록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변장된 축복인 줄 믿습니다.
그 가시 덕분에~한 번이라도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게 된다면~그것은 플러스입니다.
남들에게 없는 인생의 가시 덕분에 당신이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고 엎드려 기도한다면 그 가시는 결코 힘든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변장된 축복입니다.
혹시 요즘 어떤 일로 주님 앞에 나와 엎드려 기도하십니까?
어떤 한계 상황 현실에서~두 손 들고 하나님의 처분만 바라보고 계십니까?
그 가시 덕분에 당신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오히려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시켜줍니다.
우리는 인생의 가시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힘든 삶을 살기도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게 되는 거여요.
이것이 사도 바울의 진솔한 간증입니다.
그는 자신의 약함, 곧 인생의 가시 덕분에 하나님의 큰 능력을 체험하며 살게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간증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클라이막스입니다.
그의 앞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도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표명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보화를 담은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는 지극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어요.
이처럼 내가 약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역력하게 드러납니다.
약할수록 은혜가 크게 역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악재를 호재로 사용하여 주십니다.
어떻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성경은 ‘너는 약하니까~너는 고질병이 있으니까~너의 가정에는 그런 불가항력적인 문제가 있으니까~’체념하고 그냥 약자로 살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니가 약하니까~ 불리하니까~안 되니까~힘 들으니까~인간의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 되지 않으니까~그러니까 나는 너희 가정에게, 너희 자녀들에게, 내 능력을 덧 입혀 줄 것이다.’
그 메시지입니다.
중국 선교사로 훌륭하게 사역했던 H. Taylor는 통계를 통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거인들은 약한 사람들이었다.”
‘그 위대한 자이언트들은 다 약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바울은 본문 9절에서 약함의 축복을 이렇게 아름답게 예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저를 좀 보십시오.
엄청난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나는 약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에게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이 머문다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굉장한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나가 제사를 드릴 때~~하나님의 영광이 내려와 머문다 라고 할 때 ‘쉐키나’라는 단어를 쓰는데~ 바로 그 용어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목민이기 때문에~양들을 데리고 가다가~좋은 목초지를 발견하면 거기에 말뚝을 박고~머물 때 쓰는 ~정착이라고 하는 그 단어입니다.
저를 한번 보십시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 엄청난 해답을 갖고 갑니다.
내가 약할수록, 우리 가정에 문제가 있을수록, 우리 자녀들에게 약점이 많을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 내려와 주둔해 준다는 뜻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세요.
이 어마어마한 단어가 기독교 공식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정착입니다.
내가 약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내 위에 고정하여 머무는 것입니다.
약한 나라일수록 강대국의 군대가 와서 주둔해서 지켜 주는 것처럼~~여러분, 오늘 이 아침 좋은 상상을 가지세요?
나는 다른 사람보다 약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보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불가항력적인 현실이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그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 주둔해 준다는 이 놀라운 사실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가시 덕분에, 약함 덕분에~신비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계속해서 나에게 머물러 주고 아예 주둔해 준다는 것
저도 20대 초반부터 ~교통사고로 00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안에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제가 생각하더라도 신비로운 인생을 살고 있어요.
1. 담
2. 소화기 기능문제
3. 무거운 거 못 듬~허리
4. 치아
그래서는 나는 의자에 오래 앉아 있지를 못합니다.
언젠가 의사선생님들이 그럽디다.
절대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는데~
어떻게 이런 구조를 가지고 어떻게 목회하십니까?
저는 분명히 이 말씀이 사실로 체험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몸에 주둔하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역설적인 간증으로 그의 메시지의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승리의 표호를 하고 있습니다. 10절입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오히려 내가 강해진다.』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따라서하십시다.
『내가 약할 그때에, 오히려 내가 강해집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내가 약한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나에게 머물러 주고, 나에게 주둔해 주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가시가 있습니다.
가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나에게 고통을 주는 가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체의 가시가 있습니다.
혈압, 당뇨, 두통, 관절, 디스크, 등 많은 질병의 가시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이라는 가시, 가정 불화의 가시, 자녀문제의 가시, 등 많은 가시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남편이 가시가 되고, 부인이 가시가 되어서 일생을 찌르고, 어떤 부모는 자식이 평생의 가시가 되어 찌르는 괴로움을 당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가시가 찌르고 있습니까!
미국의 경제 잡지 포브스에서 2007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1위에 오프라 윈프리가 선정되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십수년 동안 TV토크쇼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 쇼'의 진행자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사생아로 태어나 아홉살 때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마약에 빠지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육체의 가시를 은혜로 극복하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유명한 신학자요, 위대한 목회자중의 한 분이 대구제일교회를 시무하셨던 이상근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성경전체를 주석하신 분이십니다.
이 목사님이 16살 때 발에 병이 났습니다.
그 병 때문에 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하나님 앞에 작정기도를 드렸지만 낫기는커녕 병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3년 동안 발이 아파서 출입을 못했어요.
그래서 방안에서 성경을 외우기 시작했고 성경을 외우다 보니까 머리속에 다 입력하게 됐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은 다 동원해 봤지만 낫지를 않습니다. 결국 학교공부도 받을 수 없게 되어서 대학도 검정고시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병 때문에, 그 가시 때문에 성경을 머리속에 입력시킨 것이 대 성경학자가 되게 했습니다.
60평생 동안 발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발에 진물이 나서 양말을 두 겹씩 세 겹씩 신었습니다.
사모님은 늘 세탁하면서 아이들에게 병균이 옮길까봐 조심조심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평생 동안 그 발병 때문에 어디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하고 앉아서 성경을 연구했는데 많은 시간을 성경 연구하는데 투자하다 보니까 훌륭한 신학자가 됐고 또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은혜를 받게 됐습니다.
그 목사님이 목회를 마치고 은퇴하게 됐어요.
나이 칠순이 되어서, 정년이 되어서 은퇴한 후에 그 교회 의사 집사님이 목사님, 이제 은퇴도 하셨으니까 목사님 발 한 번 검사하고 수술할 수 있으면 수술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검사를 해 봤더니 놀랍게도 1.5Cm 짜리 철사가 그 발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맨발로 뛰어 다니다가 발에 찔린 철사가 그 속에 들어가서 60년 동안 그 목사님을 고통스럽게 했고 괴롭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그 가시를 들고 "이 가시가 오늘날 대학자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이 가시가 자랑스럽습니다." 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육십평생을 고생했지만 60년 동안 성경 연구의 은혜를 준 도구가 바로 이 가시라고 간증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 누구나 가시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가시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며 한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우리는 그렇게 살수 없습니다. 가시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가시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의지합니다. 가시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늘 사도바울처럼 오히려 가시 덕분에 기도하고 가시덕분에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며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시가 힘들게 할 수 있지만~생각해 보니 내 인생에 가시 덕분에~교만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남들을 정죄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녀로 인한 가시 때문에~남의 집 얘들을 함부로 이렇쿵 저렇쿵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결국 내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안에 들어와 머물 뿐만 아니라 주둔해 주는 신비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 그 가시의 역설적 은혜를 오히려 감사하십시다.
약함 덕분에 강해 질 수 있는 놀라운 희망을 품고
당신의 가시 면류관으로 바뀔 것으로 믿으십시오.
옆에 분들에게 한번 격려 하십시다.
가시는 은혜입니다.
가사를 깊이 생각하며 찬양 하십시다.
(기도 초청 : 약한 나로 강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