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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성경의 난제 엘리사를 조롱하다 암곰에 죽은 젊은 아이들의 비밀 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어릴 때 성경을 보다가 깜짝 놀란 내용중에 엘리사가 길을 걷고 있는데 젊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야 올라가라. 대머리야 올라가라’ 놀립니다. 엘리사가 등을 돌려 저주를 했더니 숲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서 42명을 죽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사가 능력이 큰 선지자지만 너무 무서웠고 하나님이 저주를 들어주시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목사님을 놀리면 큰일난다고 인용을 많이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내용은 굉장히 궁금하실 것입니다. 오늘 해답을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마지막 때에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메세지를 하려다가 전할 내용이 많아서 계속 지연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중에 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지난 주일 영상에 한 분이 ‘신학교에 가니까 가르치는 신약학 교수가 구원 못 받은 것을 보았는데 여기도 또 있네요’라고 댓글을 쓰셨습니다. 지난 주일 오후에 메세지를 전했던 내용이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그 비판으로 네가 판단을 받고 정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분이 하신 말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가끔 한국교회의 현재 사정과 교회가 잘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많은 분들이 댓글로 왜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냐고 합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수많은 말씀으로 비판하시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비판하시려는게 아니라 돌이켜서 살리려고 하는 말씀들입니다.
한국말의 '비판' 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차이가 많아서 오해가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는 각성시키고 돌이키게 하려는 것이고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에게 ‘대머리야 올라가라. 대머리야 올라가라’ 이 내용은 아이들이 놀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심각한 내용들입니다. 제가 안타까운 것은 목사님들이 성경을 잘못 인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남을 향하여 공격하는 칼이 아닌 나를 수술받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반대로 쓰고 계십니다. 그 부분을 보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7장 1절부터 5절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이것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비판이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다. 히브리어로 비판은 [샤파트] 재판하다, 심판하다, 선고하다는 뜻입니다. 비판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킹제임스 버전에는 judge(판단하다)로 나와 있습니다. 남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심판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미가엘 천사장이 사탄에게 심판을 못하였고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은 예수님이 연결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거짓 선지자에 관한 내용입니다. [샤파트]는 [미쉬파트] 의 판단, 심판, 재판이라는 뜻에서 시작된 단어입니다. 표준새번역에는 '심판'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비판과 다른 말이고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재판관이 되고 하나님이 되려느냐는 뜻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된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강력하게 꾸중하시고 뒤에는 '외식'이라고 나옵니다.
히브리어의 외식 [하네프] 는 진실되지 않은, 경건치 않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고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외식'은 듣는 사람을 더럽히고 배교로 이끌어 하나님과 멀어지고 자기 의를 내세워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사탄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했는데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끌려고 했습니다.
심판한다는 내용에는 말의 구조 때문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내가 중심 되어 나를 높이고 상대방을 낮추고 사람들을 나에게로 이끌려 합니다. 히브리어의 외식은 '나와 너의 관계'를 말하면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외식은 사람과 가까워짐으로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외식이 다른 말로는 '악인' 혹은 '위선자'입니다. 예수님이 ‘외식하는 자’ 라고 말씀하신 것은 위선자가 되어 다른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 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7장 6절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5절까지 비판에 대해 네 눈 속에 들보를 빼고 남의 티를 제거하라고 말씀하셨다가 갑자기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을 심판하는 자는 개. 돼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강력하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겉보기에는 자기를 선지자같이 꾸미고 하나님을 잘 믿는 자같이 거룩하게 포장하고 있어서 아무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이렇게 하는 자들을 짐승 중에서도 제일 더럽다고 하는 것입니다. 남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한다는 뜻입니다.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그들과 대화가 안통하고 말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자들은 믿음 생활을 멀어지게 하고 끊어지게 하는 자들로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입니다. 겉보기엔 잘 믿는 자 같지만 실상 그 마음은 노략질하는 이리(마7:15), 회칠한 무덤(마23:27)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들을 심각하게 꾸중하시고 그들에 대해 알고 피하라 말씀하십니다.
5장 6장을 안보면 7장에 나온 말씀이 글로 읽다 보니까 이해가 안됩니다. 왜 이렇게 강력하게 말씀하셨는지 마태복음 5장입니다. 예수님이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마5:20) 이 말씀을 바꾸면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시면서 연결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21절부터 26절
21 옛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옛사람에게 말한 바 곧 십계명의 언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인치 말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남을 심판하면 너도 심판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형제에게 화를 내면서 라가라 하는 자,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형제를 낮게 여기고 인격을 모욕하는 자입니다. 화가 나는 이유는 내가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것으로 내가 중심입니다. 하나님께 범죄를 했던 아담과 하와의 구조에 들어갑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화를 내고 또 하와에게 화를 냅니다. 인간의 마음에 나는 죄가 없다는 생각이 굳게 있습니다. 화를 내는 구조는 내가 옳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노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내 속에 죄가 있는 자들은 노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 되면 화를 천천히 냅니다. 노한다는 히브리어 [아프]는 코를 뜻합니다. 숨을 크게 내쉬어서 코를 길게 한다는 뜻입니다. 숨을 늦게 쉬어서 천전히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화를 내면 논리적으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서로 감정이 가라앉고 말이 통하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노한 것을 밤이 되기 전까지 없애야 마귀가 틈타지 않습니다. 노한다는 감정은 범죄한 이후에 결과로 미워하는 마음이 오고 사람과 분리됩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하와도 분리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분리되는 과정의 시작이 분노라고 하십니다. 분노하는 것은 내가 의인되었는지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심판에 관한 것도 남의 잘못을 보고 있느냐 너의 잘못을 보고 있느냐를 묻고 계십니다. 이 말씀의 구조도 누구를 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 말씀은 한 구절에 통합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자신이 죄인 되었느냐, 의인 되었느냐를 묻고 계십니다.
[라가]는 ‘속이 빈, 쓸모없는’ 뜻으로 당시에 아람어 욕입니다. 자녀들이나 남한테 그렇게 말하기 쉽지만 그러면 안되고 나를 돌아보셔야 합니다. 내가 옳은 것이냐, 죄인 될 것이냐에서 구원과 구원받지 못한 것이 결정됩니다. 그것이 표출되는 것은 말입니다. 말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5장 33절부터 37절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하는 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는 우리 마음 속의 생각입니다. 말하고 있는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위의 말씀이 사람 사이에 분노하는 것이면 밑에 헛 맹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한테 맞춰서 바꾸는 것입니다. 헛 맹세의 ‘헛’은 히브리어로 [샤우] 허무, 무가치한 우상이라는 뜻입니다. 맹세는 [샤바] 입니다. 7번 말하다는 것이고 약속,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약속을 하고 언약을 맺은 것으로 성경은 구약과 신약이 약속의 책이라는 뜻입니다.
헛 맹세는 거짓 우상을 섬기는 약속입니다. 그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많은 지도자들이 성경 말씀을 변개해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으로 바꿉니다. 나는 하나님이 앞에 중요한 사람이고 옆에 있는 사람은 이용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성경으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분들은 다 하나님 안에서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함께하십니다. 이것은 약속이기 때문에 이 약속을 우리가 굳게 믿는 것입니다. 현재는 과정 중에 있을 때가 많고 하나님은 반드시 자녀를 복주십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저주할까요? 아닙니다. 자신이 의인 되지 말라고 계속 말씀하십니다. 의인이 되어 나를 옳게 꾸며서 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말하다 보면 자꾸 나를 변호합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낮추고 과장되게 하는 말도 굉장히 많습니다. 과장되게 말하는 자체가 우상을 만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와 아니오로 사실을 설명하라는 것이고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도 보라는 말씀입니다. 내 눈에 들보부터 먼저 보고 상대방 눈의 티를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죄 짓기를 즐겨하는 내 속의 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 있는 악과 어떻게 싸울까요? 하나님이 처방을 주십니다.
마태복음 5장 43절부터 45절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심판하여 함부로 말하고 자신을 포장해서 의인되는 말은 나와 다른 사람을 분리하고 미워하게 하는 말들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속성인 악이 그렇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하나되어 가족이 되어 살려고 우리를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미움은 분리시키고 사랑과 용서는 하나되게 합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처방을 주신 것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예수님이 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악인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므로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황은 말할 수 있지만 공격하지는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미워하여 원수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평화롭게 살기위해 우리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도 마음으로 존중합시다.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합시다.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의 마음속에 사랑을 잃지 말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바로 사랑이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이고 그분의 뜻을 이루라 하십니다.
그것을 방해하는 자에 대해서 7장에 종합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사랑을 제거하고 심판하여 분리시키는 자들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을 예수님이 분노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개. 돼지라 하시고 그들과 대화하지 말라는 것은 예수님이 그들을 이단이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입에서 생각이 나오고 의인과 악인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옳고 의인되어 있는지, 죄인 되어 있는지, 높아져 있는지, 낮아져 있는지 돌아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는 말씀은 열매로 진짜 선지자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에서 자기를 의인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여기는 자,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습니다. 말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가 열매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다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리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제일 궁금한 내용을 보겠습니다.
열왕기하 2장 7절부터 11절
7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섰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10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 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선지자의 생도 50명이 멀리서 바라보고 요단가에 섰습니다. 엘리야가 올라가는지 보려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강에 겉옷을 쳐서 건너갑니다. 엘리야의 일생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마지막 때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가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들입니다. 지난번에 로뎀나무와 시내산에 올라간 것까지만 메세지를 전했었습니다. 그 뒤에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전하겠습니다. 엘리사가 따라갔을 때 엘리야와 엘리사가 홀연히 분리되고 엘리야가 불수레와 불말들을 타고 올라갑니다. 다시 엘리사의 사건을 보겠습니다.
열왕기하 2장 15절부터 18절
15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16 가로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사 오십 인이 있으니 청컨대 저희로 가서 당신의 주를 찾게 하소서 염려컨데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
17 무리가 저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저희가 오십 인을 보내었더니 사흘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18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저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50 인의 선지자들은 엘리야가 불수레와 불말들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봤을 때 안 믿었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휴거의 사건이 있을 때 예수 잘 믿는다고 하는 분들이 믿을까요? 전 세계의 실종 사건으로 처리할 것입니다. 휴거되고 나면 믿을 것 같지만 안 믿습니다. 50인의 선지자들이 엘리야가 정확하게 올라가는 것을 봤는데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3일 동안 밤낮 찾다가 못 찾고 돌아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습니다. 예수님은 곧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시는데 목사님들이 안 믿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초림하신다는 메세지는 구약에 450번 나오고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말씀은 1518번 나옵니다. 그렇게 많이 나오는데 안 믿습니다. 오늘날 메세지를 듣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만 전합니까? 철학자나 책 이야기들은 진리가 아닙니다. 오직 말씀만 전해야 됩니다. 이렇게 50인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을 믿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2장 19절부터 22절
19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20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찌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찾아와서 이 성읍이 겉보기는 좋은데 물이 안 좋아서 토산이 안익고 떨어진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입니다. 겉보기에 지구가 아름다운데 전 세계의 사막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갑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준다는 뜻입니다. 물 근원은 샘물이신 성령님입니다. 물 근원에 던지는 소금은 언약이신 예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한 소금 언약을 맺으셨고 그 소금의 실체가 예수님입니다.
소금을 물 근원에 던지는 것은 예수께서 오심으로 이 세상이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초림의 복음이 아니고 재림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성령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되면 온 땅의 토산이 떨어지지 않고 풍요의 세상이 옵니다. 예수가 마음속에 믿어지고 성령이 함께한 자들은 풍요가 회복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 풍요의 세상을 미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난제를 보겠습니다.
열왕기하 2장 23절부터 25절
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25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재림의 말씀이 1518번이고 구약의 대부분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과 연결됩니다. 엘리야의 일생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마지막 때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가에 대한 예언들입니다. 이 사건은 놀랍게도 예수님의 재림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젊은 아이라고 하면 9, 10살 11, 12살을 생각합니다. 젊은 아이는 히브리어로 [나아르] 뜻은 13세에서 25세까지 청년입니다. 13세부터 25세까지의 중간 나이는 대략 20살 정도 됩니다. 18, 19, 20세 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1~2학년입니다. 이것은 정신적으로는 미성숙한데 육체적으로는 가장 힘이 세다는 뜻입니다. 한국말로 정확히 번역하려면 '젊은 아이'라고 하면 안되고 '젊은이' 라고 해야 됩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그 당시에 사마리아는 이세벨이 오면서 바알을 믿었고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엘리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방신을 믿던 자들의 관습은 가까운 친척이 죽으면 제사장이 뒷머리를 미는 고대 이집트로부터 온 관습입니다. ‘대머리여’는 스승 엘리야가 승천했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올라가라’는 거짓말을 증명하려면 올라가 보라는 뜻입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는 말은 스승을 따라 올라가면 믿어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때도 내려오라는 똑같은 말입니다.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조롱하려는 게 아니고 테러하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암곰이 죽인 사람의 숫자가 42명입니다. 그러면 42명보다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오는 소식을 듣고 해코지 하려고 모여서 테러와 핍박을 하고 있는 현장입니다.
한 명의 엘리사에게 42명 외에 대략 몇십 명의 건장하고 겁없는 젊은이들이 모여서 엘리사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핍박하던 순교 현장과 똑같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뒤돌아서 저주하매 하나님이 암곰 두 마리를 보냅니다. 숫곰이나 사자가 아닌 왜 암곰을 보냈을까요? 잠언 17장 2절에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말씀이 나옵니다. 새끼 잃은 암곰이 제일 사납다는 뜻입니다. 새끼를 잃은 암곰이 두 마리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도 주의 재림을 믿지 않고 휴거도 믿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방해하고 해치려고 합니다. 새끼 잃은 암곰은 하나님 입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 해칩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해칠 것입니다. 어떻게 단정할 수 있을까요? 죽은 자가 42명입니다. 왜 하나님은 42명을 죽게 하셨고 정확히 숫자를 기재하셨을까요? 적그리스도가 후3년 반을 다스리는 기간이 42개월입니다. 계시록을 보면 두 증인의 활동일은 1260일이고 적그리스도의 기간은 42개월로 나와있습니다. 42명은 하나님을 믿는 자를 핍박하고 살해했던 자들이 심판받을 42개월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을 죽였던 그들을 벌할 것이다. 42개월 동안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통치하는 기간에 그들을 벌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암곰 두마리와 42명이 죽는 이 사건에서 마지막 때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많은 자들이 주의 재림을 믿지 않고 기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시면 이 땅은 풍요의 세상으로 바뀝니다. 과실이 떨어지지 않고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평화롭게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를 미리 말씀하시고 아래쪽에서는 그것을 방해하는 자들을 벌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약의 동화 같았던 내용들이 놀랍게도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 대한 분노가 적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람을 향한 사랑과 반드시 구원하시는 그 사랑을 굳게 믿읍시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엘리사를 해치는 젊은 자들이 어떤 자들이며 또한 그들을 왜 하나님이 벌하셨는가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입술에 달렸음을 우리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입술로 나오니 우리의 말을 통하여 내가 나를 다시 돌아보고 내가 높은 자인지 낮아져 있는지 늘 확인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아버지 인도하여 주옵소서.
늘 내 속에 있는 악과 싸워 하나님의 성령의 말씀으로 이기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주의 재림을 온전히 예비하겠나이다.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