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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 [胡錦濤(호금도), Hu Jintao, 1942.12.21~]
金鍾煥 육군3사관학교 국어교관의 칼럼을 옮깁니다. 꼭 한 번 깊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데 이 분의 글을 저는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여기 옮겨 (길지만) 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이호상)
中國과 日本의 人名ㆍ地名 표기의 문제점
1. 序 論 우리나라는 外來語 表記法을 바꿀 때마다 過去와 現在를 混同하는 異常한 表記法을 만들어 우리 國語를 汚染시켜 왔다. 로마자를 사용하는 言語圈의 人名과 地名은 그들의 現地音을 尊重하여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表記하면 된다. 이 外來語 表記法에 中國과 日本의 人名과 地名을 包含시켜 생각해 왔기에 恒常 問題가 있었다. 로마자를 사용하는 언어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면 된다. 즉 로마자를 사용하는 외래어 표기는 그들의 발음에 따라 표기하고 있기에 큰 문제가 없다. 漢字를 사용하는 중국의 인명과 지명 표기는 中國 現地音으로, 일본의 인명과 지명 표기는 日本 現地音으로 表記하기에 외래어 표기법을 고칠 때마다 國民들의 混亂만 加重시켰다. 그런데 여기에는 漢字를 徹底하게 廢止하기 위한 한글전용론자들의 한글전용을 위한 커다란 陰謀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漢字로 표기하는 漢字圈의 인명과 지명을 그들의 발음대로 표기하는 것은 로마자를 사용하는 나라의 인명과 지명을 그들의 발음대로 표기하는 것은 다르다. 漢字圈의 언어와 서구계 로마자는 發生부터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이를 一括的으로 외래어 표기법으로 다루는 것은 한글전용과 漢字廢棄를 前提로 하는 發想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인명과 지명에 사용하는 문자는 漢字다. 漢字는 외래어도 외국어도 아니다. 漢字는 우리 국어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문자다. 그러므로 중국과 일본에서 오는 漢字語는 모두 우리의 漢字音으로 읽으면 된다. 그들의 인명과 지명조차도 現地音으로 표기하기에 한글은 어려운 글이 되고, 模樣도 사나워 國語다운 情緖도 없어지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 표기를 외래어 표기법 속에 포함시키면서 妥當性을 主張하는 旣存의 여러 說明을 다음과 같이 要約할 수 있다. <외래어 표기법은 대개 외래어를 현지음에 따라 적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을 적을 때 다소 혼란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지명인 ‘北京’을 ‘베이징’ 또는 ‘북경’으로 적고, 일본의 지명인 ‘東京’을 ‘도쿄’ 또는 ‘동경’으로 적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은 대부분 로마자 외래어의 표기처럼 원지음을 따라 적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우리 漢字音으로 읽어 온 관행이 있었기에 관행을 관용으로 허용하고 있다. ‘北京’, ‘上海’, ‘東京’, ‘大阪’은 원지음에 따라 ‘베이징’, ‘상하이’, ‘도쿄’, ‘오사카’로 적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우리나라에서 ‘북경’, ‘상해’, ‘동경’, ‘대판’처럼 우리 漢字音으로 읽어온 관행이 있었기 때문에 이 또한 관용으로 허용하고 있다. 또한 인명을 적을 때에는 일본의 인명은 현지음에 따라 ‘豊臣秀吉’, ‘小倉進平’은 모두 일본의 원지음에 따라 적는다. 그러나 중국의 인명을 적을 때에는 과거 사람과 현대 사람을 구분하여 적는다. 과거와 현대의 구분은 1911년의 辛亥 革命을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어 ‘孔子’, ‘孟子’는 ‘공자’와 ‘맹자’로 적는다. 그러나 ‘毛澤東’, ‘蔣介石’은 우리 漢字音대로 읽는 관행이 있었기에 그러한 관행을 관용으로 허용하여 ‘모택동’, ‘장개석’으로 적는 것을 허용하지만, 원칙은 ‘마오쩌둥’, ‘장 제스’로 적는 것이고 그 뒤의 인명도 모두 중국 현지음으로 적는다.(송민, 1996 / 문화관광부, 1998)> 이는 ‘慣行’이 무엇인지 ‘寬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학자들이 그들의 잘못을 변명하기에 급급하여 ‘관행’과 ‘관용’을 恣意的으로 使用한 것이다. 어디까지가 그들이 말하는 中國과 일본의 人名과 地名 表記의 慣行인지 分明하지 않다. 그들은 1940年까지의 우리 祖上들이 表記하고 읽어 온 慣行을 無視하고, 중국과 일본의 외래어 표기법을 만들어 그 표기법을 强要하다가, 억지로 强要한 그 結果를 가지고 그것을 慣行이라 하니 참으로 異常한 論理인 것이다. 漢字文化圈인 한국, 중국, 일본의 인명과 지명에는 歷史的이고 地理的이고 哲學的인 意味가 內包되어 있다. 한글 전용으로 인하여 인명과 지명에 포함된 우리의 歷史的이고 地理的이고 哲學的인 意味를 알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더욱이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조차 現地音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그 속에 내포된 역사성과 지리적인 의미를 담은 철학을 모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發音은 하되 意味를 모르게 하는 現行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 표기를 강요한 결과인 것이다. 本稿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 표기의 變遷過程을 살펴보고, 인명과 지명을 중국 漢字音과 일본 漢字音으로 표기하는 陷穽을 찾아보고, 漢字文化圈의 인명과 지명 표기는 우리의 歷史와 傳統을 繼承하고 民族의 自尊心도 回復하고 우리 국어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도 韓國 漢字音으로 表記해야 하는 논거를 밝히고자 한다. 2. 外來語 表記法의 變遷 過程 2004年 11月 29日 아침 라디오 뉴스에서는 ‘서울’의 漢字 표기에 관해 報道를 하였다. 한글인 ‘서울’을 중국에서는 아직도 ‘漢城’으로 표기하고 ‘한청’으로 發音하기에 中國人의 便宜를 提供하기 위하여 그들의 음에 가까운 ‘首爾’, ‘首午爾’, ‘首耳’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정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면 日本에서는 어떻게 읽을 것인가? 光復 直後 ‘서울’을 대신할 漢字를 생각하지 않고 盲目的인 愛國心으로 首都의 名稱을 ‘서울’로 했기에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日帝의 殘滓를 몰아내고 漢字를 몰아내고자 했던 그러한 애국자들이 아직도 ‘京釜線’을 다른 말로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使用하고 있다. ‘경부선’의 ‘京’은 바로 ‘京城’의 ‘京’인 것이다. 광복 후 ‘京城’을 ‘漢城’도 아닌 ‘漢陽’이나 다른 漢字語로 首都의 이름을 만들어 사용했으면 이러한 문제는 이미 50여 년 전에 解決되었을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관한 規定은 1941年 조선어학회에서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으로 펴낸 것이 처음이다. 1941년의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의 총칙 조항은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펴낸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제6장 내용과 大同小異하기에 槪略的인 외래어 표기 원칙은 1933年에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외래어 표기법의 沿革은 다음과 같다. 가. 1933년 : 주선어학회 “한글 마춤법 통일안”의 각론 제60항의 외래어 표기 규정에는 2가지만 나와 있다. 1) 새 문자나 부호를 쓰지 아니한다. 2) 표음주의를 취한다. 나. 1940년 : 조선어학회에서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제정 다. 1948년 : 학술용어 제정위원회에서 “외래어 표기법 제정 라. 1958년 : “로마자의 한글화 표기법” 제정 마. 1959년 : 편수자료 제1집, 제2집 발간 제1집 : “로마자의 한글화 표기법” 및 일부 세칙, 표기의 예 제시 제2집 : 외국 지명 표기 세칙 제시 바. 1960년 : 편수자료 제3집 발간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중국어 표기 방법 제시 사. 1963년 : 편수자료 제4집 발간 인명, 지명 표기 세칙 보완, 중국어 및 일본어 표기 일람표 제시 아. 1972년 : 편수자료 제3, 4, 5, 6집 합본 발간 자. 1986년 : 문교부 고시 제85-11호 “외래어 표기법” 제정 * 이것이 현행 외래어 표기법으로 아래의 5가지가 있다. 1)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자모만으로 적는다. 2) 외래어의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 3)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다. 4)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5)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 차. 1992년 : 문교부 고시 제1992-31호 동구권의 폴란드어, 세르보크로아트어,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 제시 카. 1995년 : 문화체육부 고시 제1995-8호 북구권의 스웨덴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의 자모와 한글 대조표 및 표기 세칙 제시 위의 ‘자’는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외국의 지명과 인명 등의 외래어 표기법을 整備할 必要가 생겨서 1958年부터 使用해 오던 외래어 표기법을 時急하게 改定한 것이다. 그 후 各國의 子母와 한글 對照表 및 表記 細則을 提示하고 있다. 러시아, 인도, 중남미 등에서 사용하는 언어까지 자모 대조표를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릴지 걱정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처음 정해진 이후 相當한 變化와 補完을 하였다. 그리고 언론사에서도 위의 1986年도 “외래어 표기법”을 適用하고 있다. 언론사인 <연합뉴스>에서는 記事作成法 속에 表記 原則을 자세히 정하여 기자들의 글 쓰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 표기에 관계되는 것만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가.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은 한글로 쓰고 괄호 안에 漢字를 병기한다. 단 체육기사 의 경우 한글로 통일한다. 나. 중국의 인명은 신해혁명 이전의 인물은 漢字音으로만 적고, 그 이후의 인물은 현지음을 쓴 뒤 괄호 안에 漢字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확인이 안될 경우 현지음, 漢字 중 택일) 다. 일본의 인명은 현지음을 쓰고 괄호 안에 漢字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확 인이 안될 경우 현지음, 漢字 중 택일) 라. 기타 외국인의 인명은 현지 발음으로 적되 성과 이름 사이는 띄어 쓴다. 마. 우리나라의 지명은 한글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바. 중국의 지명은 현지음을 쓰고 괄호 안에 漢字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단 관용으로 굳어진 지명은 漢字音으로만 적는다. 확인이 안될 경우 현지음, 漢字 중 택일) 사. 일본의 지명은 현지음과 괄호 안에 漢字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확인이 안될 경우 현지음, 漢字 중 택일) 言論社인 <연합뉴스>에서 기사작성을 위한 인명과 지명 표기는 大多數의 新聞이나 放送에서도 適用하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을 補完하여 漢字를 括弧 속에 表記하는 것은 그나마 多幸이다. 그러나 國際的인 言語感覺이 뛰어난 언론에서 외래어 표기법을 정할 때 影響力을 發揮하여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은 우리의 漢字音으로 적어야 한다는 것을 反映시키지 못한 것은 아쉽다. 앞으로 모든 新聞社나 放送社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인명을 우리의 漢字音으로 표기하고 반드시 括弧 속에 漢字를 倂記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외래어 표기법 가운데 中國과 日本의 人名과 地名 表記 問題는 自動的으로 解決될 것이다. 이것은 歷史에 副應하는 것이며 自主性을 回復하는 바른 方法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일부 일간 신문에서는 주요한 단어를 漢字로 표기하고 작은 활자로 한글로 음을 표기하고 있다. 한글세대를 위한 苦肉之策이겠지만 漢字敎育의 側面에서는 必要한 일이라 생각한다. 言論社의 關係者들은 다음의 이야기를 깊이 새겼으면 좋겠다. (가) “우리말을 한국 사람처럼 잘 하는 불란서 출신 르베리에(우리말 이름 : 여동찬) 씨는 20여 년 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즉 불란서에서는 언론기관이 불어 醇化기관인데 한국에서는 언론기관이 국어 汚染化기관인 것 같다. 자기가 아는 짧은 한국어 지식만 가지고도 한국어로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언론기관에서 번역하지 않고 공연히 외국어를 그대로 쓴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이것은 지금도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다. 또한 日本漢字音 앵무새 흉내는 언론계가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해 온 일이므로 크게 반성해야 한다. 외래어 수용 태도는 단순히 어학적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국민의 마음 밑바닥에 깔린 自己否定 또는 自己肯定의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자기 확립 없는 남 본위ㆍ自己否定의 자세로는 국제화, 세계화는커녕 국제 경쟁, 세계 경기 출전 팀에 낄 자격조차 없다.”(유만근:1996, 119) 참으로 銳利한 指摘이다. 우리나라의 言論社는 外國語와 外來語를 分明하게 區分하여 使用해야 한다. 외국어를 외래어인양 錯覺하여 無分別하게 濫用하는 慣行을 이제는 삼가야 할 것이다. 輸入 소도 6個月이 지나야 韓牛로 認定을 받는데 우리의 언론사는 外來語로 認定받지 못한 外國語를 그대로 한글로 표기하여 외래어인양 國民들을 誤導하는 慣行에서 脫皮해야 할 것이다. 젊은 記者들이 漢字를 모른다고 하여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을 現地音으로만 표기하면서 漢字를 倂記하지 않는 것은 國民을 啓導해야 하는 言論이 그 使命을 抛棄하는 것임을 생각하기 바란다. 중국의 인명과 지명을 1911年 辛亥革命을 前後하여 表記를 달리하는 것은 우리나라 歷史의 斷絶과 世代간의 斷絶도 되지만 中國의 歷史까지도 斷絶시키는 것이 된다. ‘蔣介石’, ‘毛澤東’에게도 子息들이 분명히 있을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들 父子의 人名을 달리 表記해야 하니 우리가 그들의 父子關係를 알 수 있으며, 만약 그들이 우리의 글을 안다고 해도 父子關係를 確認할 수 있겠는가! 중국의 인명과 지명도 우리의 漢字音으로 표기하여 正統性을 세워야 하고, 自尊心을 回復해야 할 것이다. 3. 現行 人名과 地名 表記 規定의 問題點 1998年 이후 한글전용을 하는 新聞社의 젊은 記者와 電話로 對話를 했는데 그 記者의 이야기는 참으로 衝擊的이었다. 그는 漢字를 300字 정도 안다고 했다. 그것도 읽을 줄 알고 쓰는 것은 자신이 없고, 자기 또래의 젊은 記者들은 大部分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니 그들은 중국이나 일본의 漢字로 표기된 인명은 보고도 읽지 못하여 그들의 발음을 듣고 한글로 표기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편하니 그렇게 한다는 뜻이다. 報道가 급하기도 하겠지만 漢字를 찾으려는 努力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조선일보>의 記者들을 除外하고는 많은 젊은 기자들이 그러한 狀態에 있으니 그들은 당연히 한글전용론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漢字를 버리고 한글로만 표기하는 것이 편하니, 그러기에 자신은 愛國하는 것으로 錯覺하며 생활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조선일보사에서는 修習記者를 選拔하면서 漢字能力檢定試驗 3級 級數證을 要求하는 것은 現實態의 反映이지만 그래도 多幸한 일이다. 기자가 漢字를 모르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을 漢字로 倂記하는 것조차 抛棄하는 것은 言論의 發展과 國語의 正常的인 發展을 위해서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젊은층이 많이 보는 스포츠 관계 신문은 完全히 한글전용인데 讀者들을 知力과 漢字能力 向上을 위해서라도 漢字를 병기하는 노력을 해야 하고 漢字를 모르면 시급히 배워야 할 것이다. 로마자의 외래어 표기는 현행 표기법으로 그 나라의 발음을 존중하여 한글로 표기하면 된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의 표기는 共通文字인 漢字가 분명하게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漢字音으로 읽으면 된다. 표기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日本에서 우리나라의 인명과 지명을 우리의 음으로 가타카나로 기록하는 것을 가지고 感之德之하여 우리도 그것을 따르고자 하지만 이것이 바로 식민지 근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조선총독부의 亡靈을 따르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世界에서 가장 영악하고 自尊心이 강한 日本이 그들의 文字인 가타가나와 히라가나가 있지만 漢字를 버리지 못하고 1945字나 되는 當用漢字를 정하여 日常生活에 堂堂하게 使用하여 그들의 국어교육을 정상화하였고, 국민들의 지력을 향상시켜 國力을 키워왔음을 알아야 한다. 中國은 漢字의 發音符號를 만들지 못했기에 漢語?音 즉 로마자를 가지고 漢字의 發音을 表記하는 文字生活을 하고 있다. 참으로 自尊心이 傷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의 인명과 지명을 漢字로 表記하고 발음도 그들의 漢字音으로 하고 있다. 로마자로 우리의 발음을 표기할 수 있음에도 그들의 漢字音으로 발음하고 있는 自主精神을 배워야 할 것이다. 문제의 핵심과는 다르지만, 두 개의 中國 가운데 하나인 臺灣의 장개석 政府에서는 1918年 注音符號를 만들어 漢字의 發音을 表記해 왔으나, 모택동의 共産黨은 이를 使用하지 않고 1928年에 로마자로 漢語?音을 하겠다고 發表했으니 이는 矛盾이고 큰 잘못이라 생각된다. 또한 毛澤東은 1935年 ‘第1次 簡體字表’를 만들었고, 1956年 ‘漢字簡化方案’을 公布하여 수천 년 동안 사용해 온 漢字를 不具로 만들었다. 共産主義 國家였기에 可能했을 것이다. 이어서 自國語를 가르치는 發音符號가 없기에 1958年에는 漢語?音方案을 公布하여 40年 이상 使用해 왔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漢字文化圈과 中國自體에서도 傳統의 斷絶과 世代間의 斷絶을 招來한 것이다. 남의 나라 言語政策에 曰可曰否할 必要는 없지만, 中國은 그들의 標準發音의 純粹性을 지키고 統一하려면 注音符號를 使用하여 그들의 漢字發音을 表記해야 할 것이다. 또한 漢字의 傳統性을 바르게 繼承하여 自主性을 回復하고 自尊心을 지키려면 簡體字를 버리고 正字를 使用해야 할 것이다. 50年 가까이 간체자를 사용해 왔기에 어렵겠지만, 正字로 되돌리는 일은 20年만 하면 成功할 것이다. 그리고 東洋 3國인 韓中日의 學者들이 모여 略字를 附加的으로 選定하여 공통으로 使用하도록 하면 中國은 그 位相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祖上들이 다스리며 살았던 中國의 人名과 地名도 그들의 발음으로 읽는다는 것은 古土回復에 대한 조그마한 希望까지도 抛棄한 것임을 銘心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自主權을 지키고, 自尊心을 높이고, 國語의 汚染을 防止하기 위해서도 중국의 인명과 지명도 우리 漢字音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北京, 南京, 靑島, 黑龍江, 延邊, 延吉, 間島, 孫文, 蔣介石, 毛澤東, 鄧小平, 江澤民, 胡錦濤’ 등의 지명과 인명은 ‘북경, 남경, 청도, 흑룡강, 연변, 연길, 간도, 손문, 장개석,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 호금도’로 우리의 漢字音으로 읽어야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뜻이 分明하게 傳達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에 살고 있는 同胞들의 이름도 중국의 漢字音으로 읽어야 되는데 이렇게 된다면 분명히 우리의 歷史는 斷絶될 것이다. 역사는 변한다. 언젠가는 間島도 收復될 것이다. 수복 후에 우리는 그들을 ‘옌벤의 조선 사람’으로 불러야 하는가? 한글전용론자들의 歷史意識과 自主精神의 回復을 促求한다. 중국인의 人名을 1911年 辛亥革命을 前後하여 그 以前은 우리의 漢字音으로 읽고, 그 以後의 人物은 그들의 발음으로 읽는 二重 잣대는 自尊心을 버리자는 것인지 事大主義를 助長하려는 것인지 그 表記法의 學說을 理解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歷史를 斷絶시키고 世代間의 繼承이 斷絶되어도 漢字를 徹底히 廢止하고 몰아내겠다는 속셈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漢字敎育을 제대로 시키지 않고 중국의 인명과 지명을 漢字로 표기하지도 않고 중국인의 발음으로 표기하는 것은 國語敎育의 精神에도 違背된다. 漢字문화권에서 漢字語를 로마자 외래어와 같은 외국어 정신을 배우자는 것과 같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을 우리 漢字音으로 표기하고 읽을 때 우리 국어의 純粹性과 歷史性을 回復될 것이다.
中國과 日本의 人名ㆍ地名 表記(2) 金 鍾 煥 아래 인용하는 글은 길기에 몇 段落으로 나누어 引用한다. 이 글은 왜 우리가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을 우리 漢字音으로 표기하고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理由가 될 것이다. 인용문은 원문의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그대로 하였다. (가) 현지 원음주의 표기라는 것은 지구상에서 오직 朝鮮總督府 지배 아래 있던 남한ㆍ북한 두 군데 사람들만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내력이 창피하고 실로 보기 딱한 허황한 꿈이다. 朝鮮總督府가 우리 땅에서 쫓겨난 지 이미 50년이 넘었고, 朝鮮總督府의 작품 ‘仁旺山’ 표기도 늦게나마 두어 해 전에 폐기되어 ‘仁王山’이 復元되었고, 단단하기 천 년 가고도 남을 그 총독부 건물조차 마침내 1996년 11월에 말끔히 헐어 버렸는데, 우리가 그 朝鮮總督府 1939년 망발 명령 現地 原音 表記法은 도대체 언제까지 받들어 모실 작정인가?(유만근:1996, 110) 이는 일본의 인명 지명을 그들의 발음으로 표기하고 읽는 것에 대한 忿怒에 찬 외침이다. 일본의 인명과 지명은 우리의 漢字音으로 표기하고 읽어야만 된다는 英文學 敎授의 客觀的인 學問的 主張인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 어린 시절 학교 교육 영향은 크고 끈질긴 것이다. 그 교육을 받고 자라 일찍 이 세뇌된 우리 나라 60대 이상 노인들은 99% 이상이 아직도 일본 현지음 사 용이 옳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차용 원리를 벗어난 것이며 한글 표음력을 악용하는 언어학적 넌센스일 뿐이다. 그리고 백 걸음 양보해도, 과거 식민지 시대에 일본말을 배워(중국 현지음은 모르고) 일본 현지음을 아는 것 이 무슨 자랑이라고 드러내려 하는가? 우리는 하루 바삐 불합리하고 굴욕적인 조선총독부 강제명령 ‘현지 원음’식에서 벗어나, 어느 나라나 자국어가 된 외래어를 쓰는 보편적 언어학 상식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가 日本漢字音이나 中國漢字音을 앵무새처럼 지껄이자면 우선 발음하기 불편하고 기억하기 어려 운 데에다가, 그런다고 남의 칭찬을 받기는커녕, 우리가 한글 표음력을 악용하여 주책없이 유난스러운 짓을 한다고 국제적 조소를 당할 뿐 그밖에는 아무 런 소득이 없다.(위 109) 유 교수는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을 그들의 발음대로 표기하는 것을 ‘유난스러운 짓’과 ‘국제적 조소를 당하는 일’이라고 비웃고 있으며 ‘보편적 언어학 상식’을 찾자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어 발음으로 인명과 지명을 읽게 된 由來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다) 그러면 우리 나라에서 옛날부터 ‘동경ㆍ이등박문…’하던 것을 언제, 어떤 경위로 ‘도쿄, 이토히로부미…’식 일본어 발음으로 바꿨는지 그 기막힌 내력이나 알고들 그렇게 쓰는가? 우리가 세상에 다시없는 현지 원음 표기주의를 옳은 것으로 잘못 알게 된 것은 1939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준비를 하면서 조선인을 한껏 억누르며 조선을 日本化하려고 최후 발악적 억지를 쓸 때 조선총독 부가 당시 경성방송국 조선어방송에 대해 일방적으로(조선 현지 원음은 일본말에 섞지 않으면서) 일본 고유 명사는 일본 현지음으로 읽으라고 어느 날 느닷없이 강제 명령을 내리고 또 한편으로는 학교 교육을 통해 마땅히 그래야 옳은 듯이 잘못 가르쳐 놓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위 118-119) 유 교수는 위와 같이 일본의 인명과 지명 표기의 잘못된 理由가 일본의 한국 植民地化에 있음을 밝히면서 이에 대한 유래를 각주에 달아서 소개하고 있다. 이를 널리 알려 일본의 인명과 지명 표기에 關心을 가진 분들의 覺性을 促求하고자 한다. (라) 이 부당한 명령에 항거하여 당시 경성방송국 제2방송(조선어 방송)과장 沈友 燮은 즉시 총독부 고위 당국자를 찾아가 주위 사람들이 놀랄 만큼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항의가 묵살되자 사표를 던졌는데 그 사표는 날짜를 질질 끌다가 1939년 9월 10일에 受理되었다.(유병은, 1996 참조, 재인용). 友燮보다 그 의 동생 소설가 沈薰을 대개들 더 잘 아실 것이다. 그 沈씨 가문에 자랑스러운 3형제가 있었으니 맏이가 天風 沈友燮이요, 둘째가 地風 沈明燮, 셋째가 海風 沈大燮이다. 생존 당시 그 三風형제가 유명하였다. 막내 沈大燮은 미남 배우 겸 소설가(필명은 ‘沈薰’)였으며, 둘째 沈明燮 목사는 신학 교육자였다. 맏이 沈大燮은 위풍당당한 호걸 방송과장으로 총독부에 맞서 국어 수호에 충천하는 기개를 보였으니, 이제 KBS뜰에 天風의 큼직한 흉상이라도 세웠으면 한 다. 하늘에 계신 三風 형제분들을 추모하며, 삼가 敬意를 올린다.(위 109) 筆者도 이 3분을 기리고자 再引用하였다. 다음은 일본인의 한국 지명 표기에 대한 예를 다음과 같이 紹介하고 있다. (마) 우리는 우리 나라 地名도 현지 원음을 못 살리고 ‘한밭’을 ‘대전(大田)’으로, ‘무너미’를 ‘수유리(水踰里)’로, ‘너더리’를 ‘판교(板橋)’로 번역해서 漢字音을 쓰는 형편에 너무 엉뚱하게도 남의 나라 현지 원음을 살린다고 ‘동경’을 ‘도쿄’로, ‘이등박문’을 ‘이토히로부미’로, ‘일본경제’신문을 ‘니혼게이자이’신문이라고 앵무새처럼 지껄여야 하다니 어이없고 창피한 노릇이다. 일본 사람들조차 한국말 할 때에는 동경을 [동경]이라 하지, [도쿄]라 하지 않는다. 서울 시청 뒤 東京銀行 서울지점 한글 간판이 수십 년 전 개점이래 언제나 번듯하게 ‘동경은 행’이다. 1988년 6월 7일 조선일보에 서울-동경을 왕래하는 일본 全日空(ANS) 비행편 광고가 실렸는데 거기에도 주먹만한 글씨로 ‘서울-동경’이라 했다. 그런데 그 후 달포쯤 지나 같은 신문에 大韓航空이 서울-동경 간 비행편 광고를 낸 것을 보면 더 큰 글자로 ‘서울-도쿄’라 적었다. 글쎄, 일본 사람도 동경을 ‘동경’이라는데 한국 사람이 ‘도꾜/도쿄’라 하니 이만저만 꼴불견이 아니다. … 신문과 방송은 이제부터라도 제발 ‘동경’이나 ‘일본경제신문’ 대신 ‘도쿄’나 ‘니혼게이자이신문’ 좀 그만 쓰기 바란다. 국어 속 외국漢字音 사용은 정신 빠진 앵무새 놀이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일본 식민지였기 때문에 한국인 은 일본말에 친숙하다는 것을 ‘제 밑들어 남 보이기’식으로 널리 광고하는 것 밖에 안 된다. 이것은 나라, 겨레 망신감이다.(위 118) 일본인이 ‘東京銀行’을 ‘동경은행’, ‘서울-東京’을 ‘서울-동경’으로 표기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지만, 우리는 일본의 지명과 인명을 우리의 漢字音으로 표기해야함을 전제로 소개한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일본이 우리의 漢字音으로 표기하니 우리도 일본의 漢字音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이를 警戒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1939年 以前의 우리 漢字音으로 表記하여 읽어왔던 祖上들의 傳統과 慣習을 繼承하고 自尊心도 回復해야 할 것이다. 4. 韓國 漢字音으로 表記해야 하는 理由 外來語 表記法에는 “중국의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종전의 漢字音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漢字를 병기한다.”라고 規定하고 있으며, 지명의 경우에는 “중국의 역사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우리 漢字音대로 하고,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漢字를 병기한다.”라고 規定하고 있다. 이어서 인명과 지명의 表記 原則에서는 “중국 인명에 대한 과거와 현대의 구분은 대체로 종래와 같이 신해혁명을 분기점으로 한다. 다만 현대인이라 하더라도 우리 漢字音으로 읽는 관행이 있는 인명에 대해서는 장개석, 모택동과 같은 표기를 관용으로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지명의 경우 상해, 황하를 허용하는 정신과도 통한다.”고 說明하고 있다. 이는 참으로 정신 없는 표기법 規定이고 한글 專用을 劃策하고자 하는 자들의 陰謀이고, 慕華思想과 事大主義를 助長하는 標本인 것이다. 慣行이라는 美名下에 우리 情緖에도 맞지 않는 慣行이 아닌 그들만의 異常한 慣行을 만들어 억지의 表記法을 强要했던 것이다. 中國에 살고 있는 300萬 우리 同胞들은 新聞과 放送에서 ‘강택민, 모택동, 장개석, 등소평’으로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다. 地名도 마찬가지다. ‘북경, 상해, 남경, 연변 자치구, 연길, 길림성’을 韓國 漢字音으로 表記하고 發音하고 있다. 아래는 중국의 중앙인민방송국 우리말 뉴스 원고다. 發音대로 表記하면 다음과 같다. “신화사 보돕니다. 국무원 전기침 국무총리가 어제 오후 조어대 국빈관에서 중국 과학기술협회 제5차 전국대표회의에 출석한 향항, 오문지역 특별 대표단을 회견했습니다. 전기침 부총리는 내지와 향항, 오문 사이의 과학기술협력 전망에 낙관을 표시했습니다.”(중국 중앙인민방송국 한국어 뉴스, 1996. 5. 31.) 중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 朝鮮族들은 그들의 言論 媒體를 통해 중국의 인명과 지명을 우리 漢字音으로 표기하고 발음하면서 100年 넘게 生活해 오고 있다.(韓元永, 2002) 우리 祖上들이 수천 년 동안 중국과 交流하면서도 中國 現地音을 따르지 않고 우리의 漢字音으로 중국의 인명과 지명을 表記하고 불러온 智慧를 알고, 알았으면 實踐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이나 언론에서 중국의 演藝人들의 이름을 우리의 漢字音으로 부르고 있고 그것에 더 친숙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윤발, 이소룡, 이연걸, 홍금보, 왕조연’ 등의 人物이 과연 1911年 辛亥革命 以前의 人物인가! 그리고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인명이나 지명을 그들의 중국어 발음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1970年의 한글전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愛國的인 知識人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아직도 그 下手人이 있다는 것은 民族의 自尊心과 漢字敎育의 正常化와 國語의 바른 表記를 위해서라도 逐出해야 될 것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의 학예연구관인 김세중 님의 다음의 글은 인명과 지명 표기의 傳統을 無視하고 외래어 표기법의 現實的이지 않은 現實을 現實的이라고 辨明하기에 引用하여 批判하고자 한다. (가) 유만근 교수는 1994년 6월 1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글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지명, 인명을 중국 漢字音, 일본 漢字音에 가깝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 강력히 비판하였다. 즉 ‘이등박문’이라고 하는 것은 타당하고 ‘이또히로부미’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만일 일본의 지명, 인명을 우리 漢字音대로 표기한다면 沖繩은 ‘오키나와’가 아닌 ‘충승’이 되어야 하고 札幌은 ‘삿포로’가 아닌 ‘찰황’이어야 한다. ‘오키나와’를 버리고 ‘충승’으로, ‘삿포로’를 버리고 ‘찰황’으로 말하자는 것은 다분히 이상론이라 하겠다. 이미 ‘오키나와’와 ‘삿포로’로 한 글로 표기함으로써 일본어 沖繩, 札幌의 발음과는 약간의 거리가 생겼으며 국어에 동화된 것이므로 일부러 ‘충승’, ‘찰황’으로까지 원음과 아주 달라지게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김세중 : 1996. 167-168) 유만근 교수의 주장에 반론을 편 김세중 연구원의 批判과 解明에는 우리 漢字音으로 읽자는 主張을 하는 분들과 이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을 眩惑시키고 있다. 다음은 그 문제점을 指摘하고 代案을 提示하고자 한다. 첫째, 1939年 이후 일본의 植民統治 强化의 方法으로 시작된 日本音으로 읽는 것이 너무 익숙한 地名 ‘오키나와’와 ‘삿포로’ 2가지만 예를 들고 있는 점이다. 2가지 지명 모두 어려운 漢字로 된 地名이고 1939年 이후 우리가 읽어 오지 않은 漢字音 地名이다. 둘째, 光復 以後 現在까지 일본의 현지음을 한글로 표기하고 읽도록 한 외래어 표기법으로 인하여 一般人의 눈과 귀에 生疎한 地名을 예로 든 것이다. 셋째, 中國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 표기는 한글전용론자들이 현지음을 사용하게 하여 漢字敎育을 妨害하기 위한 陰謀의 結果이기에 당장은 生疎한 것이 사실이다. 넷째, 우리글에 남아 있는 日帝의 殘滓를 몰아내고자 노력하는 학자들이 인명과 지명을 일본의 발음대로 읽고자 하는 것은 植民地 根性의 發露인 것이다. 日本 植民地 時代에 배운 日本語에 대한 鄕愁와 일본 留學에서 익힌 日本의 人名과 地名에 대한 誇示的인 習慣이 아직도 國語學者들에게 남아 있는 한 이러한 中毒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울 것이다. 김세중 님의 解明에 대한 代案으로는 ‘삿포로’와 ‘오키나와’ 같이 눈과 귀에 익은 日本 地名은 우리 漢字音이 완전히 익숙해 질 때까지 ‘東京’을 ‘동경’과 ‘도쿄’로 같이 쓰는 것을 許容하는 것처럼 例外 規定을 두면 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일본의 지명을 우리 漢字音으로 표기하는 원칙을 정하고, 위와 같은 예의 지명은 當分間 두 가지를 ‘寬容으로 許容’하면 모든 것은 解決될 것이다. ‘외래어와 외래어 표기’에 대한 김세중 님의 설명은 我田引水的이기에 關係되는 部分을 引用하면 다음과 같다. (가) 외래어의 표기법은 원지음을 중시하되 국어의 특성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원 지음을 반영하려고 한다.(1998, 92) (나) 흔히 외래어 표기법을 외국어 표기법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즉 외래어 표기법의 표기를 외국어를 구사할 때 해야 할 발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는 것이다.(1998, 95) (다) 요컨대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는 일본 사람과 만나서 일본어를 할 때에 쓰라고 만든 어형이 아니니까 일본 사람과 만나 일본어를 할 때에는 자기가 아 는 지식대로 일본어 발음을 정확하게 하면 된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 는 국어 생활에서 쓰기 위해 만든 것이니만큼 일본어 발음과 가깝지 않다며 불평할 이유가 없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 그 자체를 적기 위한 방법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1998, 96) (라) 요컨대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 자체의 발음을 적기 위한 방법이 아님들 분명히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외래어 표기법은 국어 생활을 하는 가운데 외래어를 통일되게 표기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1998, 96) (마) 지구상의 수많은 언어들의 발음을 들어 보면 한글로는 도저히 적을 수 없는 소리가 참으로 많다. 한국어와 비교적 발음이 가깝다는 일본어조차도 실은 한 국어와 발음이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다. 외래어 표기법이 외국어 교육용이 아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1998, 96) (바) 일본이나 중국은 지명, 인명을 漢字로 적는다. 그런데 그 漢字의 발음이 우리 의 漢字音과는 현저히 다르다. 중국보다 일본이 더 현저히 다르다. … 외래어 표기법은 이에 대해 일본어 발음에 따라 한글 표기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합리적인 태도다.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적인 원칙이 원지음에 가깝게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어, 중국어에서 온 말에 대해서만 원지음을 무시한 우리 漢字音식 표기를 채택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 일본어의 표기는 ‘가나와 한글 대조표’에 따른다.(1998, 101) (사) 중국의 경우는 고대인은 우리 漢字音대로 읽는 관용이 있으므로 이를 인정하여 ‘공자, 맹자, 주자, 왕안석’ 등으로 표기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굳어진 관용이 없으므로 원지음에 가깝게 적어야 한다. 중국어에서 온 외래어 표기는 ‘주음 부호와 한글 대조표’에 따른다. 漢字의 중국어 발음인 주음 부호는 중국어 사전에서 확인하면 된다.(1998, 101) 참으로 답답한 辨明이다. 국립국어연구원에 勤務하니 어쩔 수 없는 解明이라 그 분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위의 변명과 같은 해설은 로마자를 사용하는 외래어와 漢字를 使用하는 外來語의 特性을 完全히 무시하는 論理다. 注音符號와 漢語?音도 모르는 論理다. 傳統과 慣習을 無視한 論理다. 그 밑바닥에는 漢字使用을 徹底히 排除하려는 意圖가 깔려 있는 論理인 것이다. (가)에서 國語의 特性을 지키려면 우리의 漢字音으로 읽으면 된다. 1939年까지도 그렇게 해왔고, 그 이후에도 특히 중국의 인명과 지명은 우리의 漢字音으로 읽는 慣習이 더 優勢했다. (나)에서 외래어 표기법과 외국어 표기법의 差異를 말하고, ‘외래어 표기법은 국어 생활을 위해서 만든 것이니 발음이 달라도 불평할 필요가 없다’는 論理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漢字音으로 표기하면 不便하지도 않고 우리 國語生活이 더욱 편해진다는 것은 왜 모르는지. 이것이 바로 歷史와 傳統을 無視하거나 모르기에 나타나는 論理인 것이다. 우리 漢字音으로 표기하고 발음하고 일본인이나 중국인을 만나서 대화할 때는 자신의 知識을 活用하여 그들의 발음대로 하면 더 좋을 것이다. 漢字를 廢棄하려는 底意가 아니고는 理解할 수 없는 辨明인 것이다. (다)에서도 ‘국어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외래어 표기법이 있다’는 것을 强調하고 있다. 漢字를 가르쳐 우리 漢字音으로 읽게 하는 것이 能率的이고 愛國的이고 便利한가! 아니면 그들의 발음을 正確하지도 않게 表記하고 發音하면서까지 2重으로 국어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 便利하고 能率的이고 愛國的인가! (라)에서 ‘외래어 표기법이 외국어 교육용이 아님’을 强調한다면,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을 우리의 漢字音으로 읽는 것이 韓國語敎育을 바르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와 (바)에서 ‘일본과 중국의 漢字音에서 일본의 漢字音이 顯著히 다르다’고 했는데 그것도 틀린 설명이다. 발음상으로 보면 일본의 漢字音은 2-3音節로 發音되기에 複雜할 뿐이다. 그러나 表記대로 읽으면 日本人은 알아듣는다. 중국어에는 4聲이 있기에 더욱 顯著히 다른 것이다. 4聲을 正確하게 發音하지 않으면 아무리 發音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런 說明을 하면서 도깨비 방망이 같은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원지음으로 표기해야 하고, 우리 漢字音식 표기를 채택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하니 과연 事理를 알고 나 하는 말인지! 事理에 맞게 하려면 전통적인 표기법에 따라 우리 漢字音으로 표기하면 되고, 외래어 표기법에서 漢字圈의 人名과 地名은 우리의 漢字音으로 表記한다고 정하면 된다. (사)에서 ‘중국의 현대인은 굳어진 관용이 없으므로 원지음에 가깝게 적어야 한다.’고 했는데 누가 慣用을 버리고 우리의 漢字사용을 妨害하며 事大主義的 發想을 했는지 가려야 할 것이다. 漢字를 몰아내기 위한 凶計를 더 이상 放置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은 우리의 漢字音으로 읽을 수 있도록 漢字敎育을 强化하며 民族의 正統性과 自主精神도 回復해야 한다. 中國이 외국의 인명과 지명을 漢字로 표기하고 자국의 음으로 發音하는 自主精神을 우리는 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외래어도 모두 漢字로 옮겨서 사용하고 있다. 漢字의 造語力을 活用하여 意譯과 直譯과 ?借의 方法으로 迅速하게 自國語化하는 정신을 우리도 活用해야 할 것이다. 漢字敎育을 抛棄한 결과 우리는 새로 들어오는 外國語를 우리의 情緖에 맞도록 造語하려는 努力도 하지 않고 外國語를 그대로 外來語처럼 使用하고 있는 것이다. 外國語를 訓民正音(한글)으로만 표기하면 外來語가 된다는 잘못된 無知를 反省해야 한다. 中國과 日本의 人名ㆍ地名 表記(3) 金 鍾 煥 2004年 12月 8日에 發刊된 무료 日刊紙 4면의 ‘중국 각계지도자 대구보건대 방문’이란 記事는 다음과 같다. (아) 한-중 수교 12주년을 맞아 민간 외교단체가 주최하는 제4차 ‘한-중 지도자포 럼’에 참가하고 있는 중국 전현직 정-관-재계 지도자들이 8일 대구보건대를 방문한다. … 중국측에서는 이 행사를 추진한 인민외교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노추전(盧秋田) 전 독일 대사를 비롯해 마승영(馬勝榮) 신화통신사 부사장, 서복순(徐福順) 청해성 부성장 등 14명이 참석했다. 中國의 人名을 모두 우리 漢字音으로 表記하고 括弧 속에 漢字를 倂記하고 있다. 중국의 인명과 지명을 우리 漢字音으로 표기하니 拒否感도 없고 누가 왔는지를 分明히 傳達할 수 있고 讀者들은 바로 記憶할 수 있는 것이다. ‘신화통신사’와 ‘청해성’도 漢字를 倂記했으면 意味傳達이 더욱 分明했을 것이다. 이러한 표기가 우리의 傳統的인 表記方式이고 慣習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傳統과 慣習을 無視한 表記法을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 强要하고, 그것을 强制로 몇 년 施行하고 나서는 그것을 慣習이라고 하는 無知와 어리석음을 이제 더 이상 자랑해서는 안 되고, 反復해서도 안 되고, 억지를 부려서도 안 된다. 5. 結 論 2004年은 間島가 우리나라의 領土임을 確認하여 국민들의 共感帶를 넓힌 해가 되었다. 그러나 南北分斷의 現實은 古土收復의 障碍要因이 되고 있고, 韓中關係의 惡化를 念慮하는 政府의 微溫的인 對處로 이를 물밑으로 내려 버렸다. 間島가 우리의 領土임이 分明한 것으로 밝혀진 것처럼 漢字도 우리 祖上들이 主導的으로 만든 우리의 文字임을 외치는 외로운 主張(이영호 1997 / 김응현, 1999 / 박문기, 2001)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間島協約 文書가 96年이 지난 금년에 다시 이야기되는 것처럼 언젠가는 우리 민족이 漢字를 主導的으로 만들었다는 資料가 대량으로 發掘될 것으로 믿는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漢字 한 글자의 音을 하나의 音으로 읽는 民族은 우리뿐이다. 하나의 漢字를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두 세음절로 발음한다는 것은 漢字가 그들의 문자가 아니라, 우리 祖上들이 만든 漢字를 그들이 借用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廣開土大王이나 長壽王이 開拓했던 그 넓은 중국 땅을 收復하자는 主張은 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漢字도 우리의 문자라고 아직은 주장하지 않겠지만, 漢字는 우리 祖上들이 主導的으로 만들어 使用해 왔음을 認識하고 우리가 使用해야 할 우리의 文字임을 銘心해야 할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로마자 외래어만 포함하면 문제는 간단히 解決된다. 중국과 일본과 대만의 漢字文化圈에서 使用하는 인명과 지명은 우리의 漢字音으로 表記하면 우리의 自尊心도 찾고, 漢字語의 바른 표기가 가능할 것이다. 世宗大王께서는 이미 583年 전에 訓民正音(한글)을 創製하여 漢字音을 바르게 統一하고자 했다. 이는 漢字가 우리 文字이었기에 可能한 發明이요 快擧인 것이다. 우리의 언어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한 세종대왕의 崇高하신 訓民正音 創製精神을 이제는 제대로 되살려야 한다. 臺灣에서는 20世紀 초반인 1918年에 注音符號를 만들어 그들의 漢字音을 표기하고 있고, 中國은 그들의 漢字音을 表記하기 위하여 自尊心도 없이 로마자를 借用하여 漢語?音(‘?’은 康熙字典에도 없는 漢字이나 로마자를 漢字에 倂記한다는 뜻으로 새로 만든 漢字임)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本論의 內容을 要約하여 結論을 맺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로마자 외래어에 국한해야 한다. 漢字圈의 인명과 지명에 대한 표기는 우리의 漢字音으로 표기하고 반드시 括弧 속에 漢字를 表記하면 된다. 중국의 인명과 지명은 중국음으로 일본의 인명과 지명은 일본음으로 표기하는 것은 主客이 顚倒된 잘못된 表記의 慣行이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西歐 言語圈에서 適用하고 있는 외래어 표기법이고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생각도 없이 그대로 模倣하고 있다. 이는 훈민정음과 漢字를 같이 사용하는 우리글의 特性과 歷史性을 度外視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 표기는 우리 漢字音으로 표기해야 한다. 로마자를 표기하는 외래어 표기법과 同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는 漢字를 2000年 이상 使用해 온 우리의 歷史를 斷絶시키는 것이고, 우리의 漢字音으로 읽어 온 傳統을 抛棄하는 것이며, 우리의 自尊心을 卑下시키려는 한글전용론자들의 한글전용을 위한 漢字 抹殺의 凶計가 內包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을 우리의 漢字音으로 표기하면서 나타나는 몇 가지의 문제는 例外規定으로 處理하면 될 것이다. 일본의 地名인 충승(沖繩)은 ‘충승’과 ‘오끼나와’로, 찰황(札幌)은 ‘찰황’과 ‘삿포로’로 당분간 2가지 表記法을 그들이 즐겨 말하는 ‘慣行을 寬容으로 許容’하여 認定하면 되고, 중국의 地名인 ‘합이빈(哈爾濱)’은 오랜 역사적 由來가 있기에 ‘하얼빈’과 ‘합이빈’으로 2가지 표기를 認定하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하얼빈’으로 표기했고 발음했기에 그것을 尊重하고, 앞으로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 中國 地名의 一貫性 있는 統一을 위해서 必要하기 때문이다. 넷째, 現實的인 言語 使用 慣習을 尊重하여 중국의 인명과 지명은 우리의 漢字音으로 표기해야 한다. 중국에 살고 있는 朝鮮族이 중국의 인명과 지명을 방송이나 日常生活에서 우리의 漢字音으로 읽고 있는 慣習的인 言語 使用 習慣을 잘 배워야 한다. 그들이 100年 以上 우리 땅인 間島와 延邊에서 생활하면서도 우리의 漢字音으로 중국의 인명과 중국의 지명을 기록하고 발음해 온 事實을 높이 評價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중국과 일본의 인명 표기는 漢字文化圈의 特殊性을 考慮하여 외래어 표기법을 따로 만들기보다는 旣存의 것도 廢棄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을 區分하는 것도 한글전용을 위한 陷穽이기 때문이다. 漢字로 적을 수 있는 중국과 일본의 지명과 인명은 우리 漢字音으로 표기하고 읽어 우리 國民들의 意思가 疏通되면 된다. 그래야만 외래어 표기법의 올바른 精神을 具現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섯째, 本稿와는 관계가 적지만, 言論機關은 無分別한 外國語 使用을 삼가해야 한다. 언론기관에 종사하는 분이 國語를 汚染시키는 主犯이 되고 있다는 誤解를 받아서도 안 된다. 外國語와 外來語를 區分하지 못하고 한글로 표기만 하면 외래어가 되는 잘못된 常識에서 脫皮하여 우리 國語를 醇化시키는 役割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最高의 知性人인 言論機關 從事者들은 그들의 言語感覺과 國語知識만으로도 이를 充分히 實踐할 수 있을 것이다. 中國에서 外來語를 표기할 때 意譯과 音借를 活用하여 漢字로 表記하고 있는 努力과 智慧를 배우고, 言論에 從事하는 분들이 率先垂範하여 造語能力을 發揮하기 바란다. 수입한 소를 우리나라에서 6個月 以上 키워야 韓牛로 認定한다. 外國語를 訓民正音(한글)으로 表記했다고 外來語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智慧롭게 헤아리기 바란다. 끝으로 中國과의 交流와 國益을 위하여 初等學校에서부터 漢字敎育을 正常的으로 實施해야 하고, 중국이 簡體字를 버리지 않는 이상 이제는 우리도 漢字敎育의 一環으로 簡體字를 敎育해야 할 것이다. 2238字의 簡體者를 모두 교육하자는 것은 아니다. 약 500字만 敎育하면 큰 負擔이 없이 중국의 간체자도 두루 理解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北京, 南京, 上海, 延吉, 吉林, 靑島, 延邊’ 등을 여행하고 와서 ‘북경, 남경, 상해, 연길, 길림, 청도, 연변’에 다녀왔다고 말하고, ‘鄧小平, 毛澤東, 蔣介石’을 ‘등소평, 모택동, 장개석’으로 부르고 있다. 더욱이 중국에서 생활하는 朝鮮族까지 그렇게 인명과 지명을 말한다. 어찌해서 우리나라의 敎育關係機關과 國語를 硏究하는 일부 학자들만이 중국의 인명과 지명의 현지음 표기를 그렇게 尊重하는지 알 수가 없다. 모두들 ‘延邊’에 가서 ‘연변’이라 부르고, 돌아와서도 ‘연변’이라 부르는데 그들만 ‘옌변’에 다녀왔다고 ‘옘병’을 떠는지 모르겠다. 우리와 같지 않은 發音을 가지고, 中國人이 들어도 모르는 發音을 하면서 그들만이 ‘옘병’을 앓는지 모르겠다. 國內에서 發刊하는 新聞의 旅行社 廣告를 보면 중국의 지명은 大部分 우리 漢字音으로 表記하고 있다. ‘상해, 계림, 광주, 장가계, 원가계, 북경, 만리장성, 소주, 항주, 해남도, 천자산, 황룡동굴, 황산, 자금성, 천안문, 남경, 명13능, 이화원, 천단, 태산, 곡부, 치박, 제남, 청도, 정주, 낙양’으로 표기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정부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을 違反하는 것을 보고 啓導도 못하고, 警告도 못하고, 處罰도 안 하면 되는지? 傳統과 慣習을 無視하고 국민들을 混亂시키는 중국의 인명과 지명을 표기하는 외래어 표기법은 당장 廢止하여 自尊心을 回復해야 한다. 일본 여행 廣告에는 대부분 일본 현지음으로 표기하고 있다. ‘후쿠오카, 벳부, 아소, 쿠마모토, 하라주꾸,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 미야자키, 아키타, 오카야마, 큐슈, 스기노이, 하마무라, 시라하마, 가츠우라, 하코네, 닛꼬, 가고시마, 기리시마, 이세, 나가노, 센다이, 아키타, 아오모리’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1939年 朝鮮總督府의 强制命令을 잘 받들어 모신 植民地 精神 盲信하는 國語學者들의 더러운 忠誠心이 그 원인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漢字音으로 표기하면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인데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인명과 지명은 歷史的이고 地理的이고 哲學的인 意味가 內包되어 있는데 현지음으로 표기한다면 국민들의 思考能力도 痲痺시키게 되는 것임을 같이 알아야 한다. 論文의 草稿를 完成한 며칠 뒤인 12月 2日자 <朝鮮日報> 1面에는 中國이 渤海史까지도 露骨的으로 歪曲하고 있다고 크게 報道하고 있다. 참으로 답답하다. 앞부분을 引用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이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옛 발해(渤海) 왕궁을 중국식으로 복원하고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등 발해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작업 을 본격적화 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8-10세기 발해의 수도 상경(上京) 용천부(龍泉府)가 있던 헤이룽장성 닝안시(寧安市) 발해진(渤海鎭)의 다섯 개 궁전 중 이미 제2, 제3 궁전 두 곳의 기단(基壇ㆍ건축물의 기초가 되는 단)을 복원하는 등 발해 유적의 중국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최근 확인됐다. 중국은 이 지역 곳곳에 ‘당대(唐代ㆍ당나라) 발해 유지(遺址)’라는 안내판을 붙여놓아 발해를 자국사로 여기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조선일보> 2004年 12月 2일 1面) 금년 7月을 前後하여 中國이 東北工程의 一環으로 高句麗史를 中國史에 編入한다는 報道가 엄청난 忿怒를 불러 일으켰는데, 이번에는 渤海史를 中國史에 編入할 모양이다. 이것을 放置하면 머지않아 高麗史와 朝鮮史도 中國史에 包含시키고 中國의 邊方地域이라고 主張하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이런 作態를 방치하면 日本도 中國의 邊方地域으로, 美國을 靑나라의 邊方地域이라고 主張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신문에는 渤海地域의 地圖를 그렸는데 ‘渤海’를 除外한 모든 地名을 現地音을 한글로만 表記하고 있다. 우리의 漢字音으로 적어야 우리 領土라 主張하고 收復도 可能할 것인데 中國 發音으로 記錄하니 그들이 자기네 領土라고 해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漢字敎育을 정상적으로 했다면 ‘기단(基壇)’의 뜻을 풀이하지 않아도 되는데 한글전용으로 말미암아 弊害가 이 地境에 이르고 있음도 反省해야 할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을 우리의 漢字音으로 적어야 하는 理由가 여기에 있다. 漢字文化圈의 人名과 地名은 한글로만 表記할 것이 아니라 漢字도 함께 表記하거나 반드시 漢字를 倂記해야 한다. 自主性도 버리고 自尊心도 抛棄하고 우리 國語의 純粹性까지 汚染시키는 現地音 表記의 作態를 이제는 果敢하게 버려야 한다. 잘못된 言語觀을 가진 국어학자들의 中國에 대한 事大主義와 日本 植民地 時代의 鄕愁에서 벗어나 自主性을 回復하기 바란다. 中國과 日本의 人名과 地名은 漢字로 표기하거나, 우리 나라의 漢字音으로 表記하면 括弧 속에 반드시 漢字를 倂記하여 大韓民國의 自主性을 하루 빨리 回復시키기 바란다. 이것이 中國의 歷史歪曲과 日本의 獨島侵略의 妄動을 克服하고 解決하는 捷徑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初等學校에서부터 漢字敎育을 時急히 强化할 것도 主張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