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에서 시작되었으며, 한국에는 신라 때부터 한말까지 사용되었다. 표시하는 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불렀다. 수인(手印) 또는 수압(手押)은 손바닥이나 무인(拇印)으로 하는 것이었으며, 수촌(手寸)은 좌우 가운뎃손가락의 제1관절과 제2관절의 길이를 재어 ‘井(정)’자형으로 기록한 것으로 못 배운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였다. 서압(署押)은 합의문서나 부서(副書)에서 본인의 성(姓)을 쓰고 그 밑에 표지하는 것으로, 왕이 하면 어압이라고 하였다.
관에 제출하는 진정서[所志]에는 판결문[題辭]을 쓰고 관압(官押)을 하였는데, 이 경우는 횡선을 옆으로 긋고 서압하는 변형의 형식을 취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화압은 증거로 사용된 것이었기 때문에 상급관청에서는 하급관청의 수결을 비치하여 두었다.
일반적으로 수결을 만드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사용되었으나, 일반적인 것은 배모양[舟體] ·솥모양[鼎體]이었다. 이 방법은 일제강점기에 인장으로 대용되면서 사라졌으나, 요즘의 사인을 사용하는 것은 이 화압의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화압에 얽힌 이야기에 유성룡(柳成龍)의 화압 이야기가 있다. 그는 점 하나만을 찍었는데, 향리가 이를 위조하였다가 발각되었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붓으로 점 하나만을 찍은 것 같지만 그 나름으로 위조를 방지하기 위하여 붓 속에 바늘을 넣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