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덕로의 개요> 노爐는 고대에 숯을 태워 향을 피우는 기물로 훈로, 향로, 수각로手脚爐로 나누어진다. 명초明初 선덕연간宣德年間(1426-1435)에 주조한 동로銅爐는 분향류焚香類에 속한다. 당시 선덕황제가 교단대묘郊壇大廟의 제탁에 놓기 위하여 주조한 향로가, 후에 이르러 마침내 능묘와 사묘寺廟 및 권세가의 소향燒香이나 예불禮佛이나 제사용으로 확대되었다.
중국의 향로 (분향용 향로)가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관하여는 한대漢代 발생설이 다수이다. 불교의 전파는 한대에 향로의 발전에 상당히 커다란 작용을 일으켰다. 예불禮佛에 분향하는 절차가 있었으므로 향로를 제작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한대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박산로博山爐는 중국향로의 시조라고 간주될 수 있다. 박산로는 동으로 주조한 것과 도기로 만든 것이 있으며, 향로의 내부에서 향료를 태우면 푸른 연기가 뚜껑의 구멍을 통해 표표히 흘러나와 향기가 사방에 가득하여, 마치 신명神明과 통한 듯 심신이 상쾌해지며 벌레도 쫓아버린다. 명대의 선덕향로는 이러한 풍습을 이어받은 것이다.
선덕로는 우수한 재료를 선택하고 제작공예가 정미精美하며 형태가 고아古雅하여 당시에도 매우 진귀하게 간주되었다 . 기록에 의하면, 선덕로는 선덕3년에 한 차례 5,000개를 만들었으며, 이후에는 주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백년의 세월을 겪으면서 현재 선덕로의 수량은 더욱 드물어졌다. 1990년대 이후 선덕로는 의흥宜興의 자사호紫砂壺에 이어 골동시장의 총아가 되었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의 수집가들이 다투어 구입하여 가격이 급등하였다.
A. 재료 선덕 동향로의 재료 선정은 극히 정밀하여 동제품 역사의 극점에 도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 기록에 따르면, 선덕초에 남방의 샴(태국)에서 풍마동風磨銅 31,680근을 바쳤으며, 질이 극히 우수한 이 풍마동에 금은 등의 30여종 귀금속을 첨가하여, 4-12차례 반복해서 야련冶鍊한 재료로 주조하였다고 한다. 선덕로는 주조된 뒤에 옥 같은 광채와 보광寶光이 영롱하게 번쩍이는 동시에 640량의 적금赤金과 2,080량의 백은白銀을 동을 장식하는 생금生金으로 삼아 상감 및 금은도금을 하는 재료로 사용하였고, 기타 번노사, 자대석, 자광석紫鑛石, 연지석 등 10여종의 재료로 동의 바탕색(地子色)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선덕로의 색채는 매우 풍부하게 나타나게 되어, 자홍색紫紅色을 기조로基調로하여 갈색, 청색, 녹색, 홍색, 남색, 황색, 백색, 금색 등의 수십 가지 색을 띤다. 수 백년이 지난 뒤에 향로의 표면에 한 겹으로 두텁게 형성된 자연스러운 포장包漿은 더욱 더 매혹적이다.
B. 조형 선덕 동향로는 조형이 고박古朴하고 장중하며, 기법이 정교하여 상주시기商周時期의 청동기 이후에 중국 주조공예의 극점이라 할 만하다. 선덕로는 당시의 선진적인 실랍법失蠟法을 사용하여 주조하였으며, 다듬은 후에는 주조흔적과 동액을 주입한 입구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로爐는 로이爐耳와 로신爐身 및 로족爐足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로이爐耳에는 상이象耳, 사이獅耳, 환이環耳가 있으며 모두 로신爐身의 양측에 대칭으로 달려 있다. 일부 로爐에는 이耳가 없으면서 로신爐身에 문양이 없이 선덕로의 미려하고 고박古朴한 동의 빛깔과 장중한 조형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소수의 선덕로에는 외부의 표면에 '생금生金'이라는 작은 금박을 붙여, 찬란하게 빛나는 크고 작은 금조각이 서로 뒤섞여 있는데, 작은 조각은 별 같고 큰 조각은 덩어리 형상으로 금색의 눈보라가 치는 듯이 호화롭다. 로족爐足에는 권족圈足, 원유형삼족圓乳形三足, 방원형사족方圓形四足 등이 있으며, 로신爐身에 따라 형식이 다양하다. 로벽爐壁은 두텁고 무거워 묵직한 감이 든다.
C. 관지 선덕동향로의 관지는 단정하고 규범이 있다. 관지는 대부분 로爐의 바닥에 찍혀 있으며, '대명선덕년제大明宣德年制'라는 해서체의 장방형 음문陰文으로 6자 2줄 혹은 6자 3줄로서, 자체가 수려하여 진당秦唐의 유풍遺風이 남아있다. 선덕宣德의 '덕德'자에서 우측 중간의 획('一')이 하나 없는 것이 해서체 관지의 특색이다. 이 밖에 '선덕년제宣德年制'와 '대명선덕년제大明宣德年制'라는 전서체의 관지가 있으며, 모두 소전小篆으로 자형字形은 왕망시기王莽時期(A.D.9-23) '현침전(懸針篆-끝이 뾰족한 전서체)'의 특색을 구비하고 있다.
<2. 선덕로의 방품> 선덕동향로는 천하제일로 평가받았으므로, 뒤를 이어 많은 모방품이 출현하였다. 선덕 당대當代, 명중기, 명말청초, 청말민국초, 현대에 모방한 것이 있으며 각기 특징이 있다.
1. 선덕 당대當代의 방품 선덕3년(1427) 궁정에서 주조소를 폐쇄하고 주조하지 않은 뒤에, 당시에 주조를 감독하던 사람이 원래의 장인들을 다시 모아 별도로 주조하였다. 풍마동은 이미 다 사용하여 원료가 부족하였으므로 황잡동黃雜銅으로 대체하였으며, 비록 기법은 이전과 같이 매우 정교하였으나, 형태는 더욱 다양하게 변화하였으며 동질銅質은 뒤떨어졌다. 동시에 관지도 변화되었다. 관지의 글자수가 증가하여 "대명선덕오년감공부관오방좌조大明宣德五年監工部官吳邦佐造"와 "공부원외신이징덕감조工部員外臣李澄德監造"등으로 해서관지와 전서관지가 모두 나타난다.
2. 명대중기明代中期 방품 명대중기의 정덕년간正德年間(1506-1521)에 조야I朝野에서 동향로를 필요로하고 선덕로가 이미 많은 인심을 얻고있었으므로, 마침내 선덕로의 조형과 관지를 연용沿用하거나 혹은 조금 변화시켰다. 이 시기 로爐의 특색은 동의 색깔이 황색을 띠고 로신爐身에 이슬람문자가 주조되어 있다는 점이다. 명대 중기 이슬람문화가 대량으로 중국에 전파되어 정덕황제도 이슬람교를 신봉하였으며, 그 당시에 제작된 동기銅器와 자기 및 경태람 등의 공예품과 많은 기물에 이슬람문자가 출현하였다. 명말明末에 주조된 선덕로에도 이러한 풍조가 연용沿用되었으며, 해서와 전서가 병용되었다.
3. 명말청초 방품 이 시기의 공예미술은 장족의 발전을 이룩하여 선덕로의 방품제작도 우수하였으며, 아울러 명대의 실랍법을 이용하여 주조하였지만, 조형면에서 명대와 비교하여 뚜렷하게 정교할 뿐이다. 기벽器壁도 두텁고 무거우며 암홍색과 등황색 등을 띤다. 관지는 대명선덕관을 모방한 것을 제외하고 또한 '수운거袖雲居', '수운거水雲居', '풍월려風月侶'등의 사각형 전서관지가 있다.
4. 청말민국시기 방품 동질은 저급하고 사안砂眼이 많으며 기벽이 얇고 중량이 가벼우며, 일부 기물은 번사법飜沙法으로 주조하여 기법이 더욱 거칠다. 북경 전문前門의 큰 거리 일대에 전문적으로 선덕로를 위조하는 점포가 있었으며, 동대시東大市 탄이호동炭爾胡同에는 전문적으로 선덕로를 주조하는 공방이 있어, 주조한 다음에 위조처리, 도색塗色, 밀랍칠하기 등을 통하여 폭리를 취하며, 상해上海를 통해 해외로 판매하기도 하고 몽고지방으로 판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수법이 투박하고 기벽이 얇으며 동질이 뒤떨어지고 사공(砂孔-구멍)이 많다.
5. 현대방품 하나는 강남일대에서 황잡동黃雜銅으로 번사飜砂하여 주조하는 것으로, 지극히 열악하여 로신爐身에 문양이 없고, 쌍이雙耳가 교량처럼 위로 들려 있으며 가볍고 사안砂眼이 많다. 둘째는 현대의 실랍법을 이용한 것으로, 이러한 방품은 조형과 중량면에서 진품과 비슷하다. 그러나 자세히 동의 재질과 표면 및 포장包漿 그리고 연마된 광택 등을 살펴보면 진품과 차이가 뚜렷하다. 현대 방품은 자홍색紫紅色의 전해동電解銅을 사용하여 손으로 문지르면 곱고 부드러운 느낌이 없고 뻑뻑할 뿐으로 생경하고 천박하다. 또한 연마할 때 쾌속으로 회전하는 현대의 포광기계抛光機械를 사용하여 광택이 지나치게 강하며 '화기火氣'도 강하게 느껴진다.
<3. 선덕로의 감정법> 1. 기물의 형태를 관찰하여 명칭을 정한다. 선덕로의 형태가 선덕로보宣德爐譜에 나타나 있는 모종의 형식에 부합한다면 그에 해당하는 명칭이 존재한다. 주요 명칭으로 정이로鼎彛爐, 유로乳爐, 격로, 돈로敦爐, 상로床爐, 발로鉢爐, 세로洗爐, 통로筒爐 등이 있다. 선덕로보에 해당하는 양식이 없다면 그에 상응하는 명칭을 붙일 수가 없으며, 따라서 그 기물의 진위는 말할 것도 없이 위조품이다.
2. 저족底足의 동질이 정세精細한가를 관찰한다. 정세한 동질은 여러 번 반복하여 정련하였다는 증거이다. 저급한 품질의 동은 절대로 진품 선덕로가 될 수 없다. 빛깔이 벗겨진 선덕로에 대해서는 직접 선덕로의 로신爐身를 관찰하여 동질의 정세정도를 관찰한다. 중국에서 역대로 정련된 동향로 가운데에서 선덕로가 최고의 품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진품 선덕로의 동질銅質은 반드시 정세하다.
3. 공예수준을 관찰한다. 선덕로의 제작은 극히 규율적이며 규정規整하다. 비록 현대에 기계를 이용하여 모방제작하더라도 규칙적이고 규정한 양식은 모방하기가 어렵다.
4. 두드려서 소리를 들어본다. 보통의 동은 4차례 야련하면 아름다운 보광이 나타나며 6차례 야련하면 한 근에서 반근 밖에 얻을 수가 없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의 고대에 가장 유명한 간장검干將劍과 막야검莫邪劍에 사용된 동은 모두 6차례 야련을 거쳤다고 한다. 그러나 선덕로에 사용된 동은 품질이 우수한 풍마동으로 일반적으로 12차례 야련을 거쳐야 비로소 보광이 나타났다고 한다. 12차례의 야련을 거치면 한 근에서 넉냥 밖에 정련된 동을 얻을 수 없다. 이처럼 우수한 품질의 정련된 동으로 주조한 선덕로는 손으로 두드리면 금석처럼 쨍그랑거려 다른 기물에 비할 수가 없다.
5. 도보圖譜를 보고 향로의 형태가 대응하는지 관찰한다. 기록에 따르면 각종 선덕로에는 형태에 따라 모두 일정한 두상頭像과 도형圖形을 주조나 투각으로 장식하였으며, 또한 모두 로신爐身의 상이한 부위에 배치되었다. 로신爐身이 크고 높으면서 사방주위가 매우 평평하거나 둥글면 두상은 사방의 평면이나 둥근 면에 배치되었다. 로신爐身이 낮고 키가 작아 사방의 면적이 작으면서 평평하거나 둥글지 않으면 그 도형은 저부底部에 배치되었다. 예를 들면 정이로와 통로 등에서는 도상이 사방의 로벽爐壁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유로, 발로, 상로, 세로, 돈로 등에서는 도형이 저부底部에 배치되었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당대唐代 이래로 각 조대마다 동기, 도기, 철기, 와기瓦器, 자기의 양식은 모두 ‘삼대三代'와 ‘진한秦漢 '시기의 양식에 근거하여 제작되었다고 하며, 선덕로도 예외가 아니다. 선덕로의 양식가운데 ‘삼대 ' 시기의 풍격을 채용한 제품은 그 동상과 도형에 일률적으로 용龍을 주조하거나 조각하였다. ‘진한'시기의 풍격을 채용한 제품에는 일률적으로 봉鳳을 주조하거나 조각하였다.
그리고 사방의 로벽爐壁에 장식된 용과 봉황은 모두 정면을 향하고 있는 두상으로, 대응되는 두면은 수컷이고 또 다른 대응되는 두면은 암컷이다. 그리고 저부에 장식된 용과 봉은 전체 형체가 나타난 도형으로 암수 한 쌍이다. 사방에 장식된 정면도상이나 저부에 장식된 전신상을 막론하고 모두 살아있는 듯 생동한다. 특히 저부의 전신상은 극히 절묘하게 장식되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며, 도상과 도형은 모두 선덕로의 빛깔과 동일한 빛깔을 하고 있다.
6. 무게를 가늠하고 크기를 측정한다.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선덕로의 양식에는 모두 일정한 크기가 있다. 즉 일정한 구경口徑, 복경腹徑, 저경底徑과 일정한 이고耳高, 신고身高, 족고足高가 있었다. 그리고 양식마다 모두 정확한 중량이 정해져 있었다. 선덕도의 형태는 모조할 수 있지만 중량은 위조할 수가 없다. 중량은 일률적으로 근斤, 량兩, 전錢으로 계산하였으며 근, 양, 전은 과거의 16량평兩枰이 표준이다. 그 정확도는 현대의 g수준까지 정밀하다. 당연히 감정시 중량에 소량의 증감이 존재할 여지는 있다.
7. 빛깔을 관찰한다. 빛깔로 진위를 감정하는 방법은 역대로 문물학가文物學家의 관점이었다. 그러나 몇 백년의 비바람을 거치면서 선덕로의 빛깔은 이미 일찍이 벗겨져 버렸다. 경우에 따라서 인위적인 원인으로 표면이 벗겨져 버린다. 선덕도의 제작과정에서 금은 등의 여러 귀금속을 첨가하고 또 반복된 정련을 거쳤으므로 그 분자구조가 극히 긴밀해졌다. 명칭은 동향로이지만 사실은 동과 금은 등의 합금향로이다. 일부 기물은 장기간 지하에 매장되어 습기의 부식으로 색이 벗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선덕로에는 근본적으로 보배로운 빛깔이 나타나지 않지만 진품이다. 색이 벗겨진 선덕로의 감정은 어떻게 할까?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선덕로를 주조한 다음 먼저 수은에 마광분말磨光粉末을 첨가하여 수십일 동안 담그었다가 수은이 동향로에 배어들어가게 하고 다시 불에 달구어 빛깔을 더욱 아름답게 하였다. 이 점에 근거하여 향로의 표면에 수은에 담겨졌다가 불에 달구어진 흔적이 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진품 선덕로라면 아름다운 빛깔이 다시 재생되어 나오며 그 광택이 안으로 갈무리되어 있다. 빛깔이 복원되지 않으면 진품으로 볼 수 없다.
8. 관지를 관찰한다. 관지는 매우 복잡하다. 대형기물이면서 6차례 정련된 동으로 주조한 동로에는 ‘선宣' 자가 새겨져 있다. 중형 기물에는 ‘선덕宣德' 이나 ‘선덕년제宣德年制' 라는 글자가 있다 . 정교하게 제작되고 12차례 정련한 기물에는 저부底部에 모두 ‘대명선덕년제大明宣德年制' 라는 글자가 있다 . 그러나 모든 ‘덕德' 자에서 ‘심心' 자의 위에 있어야 할 가로 획 (‘一')이 하나 없으며, ‘制' 자는 모두 ‘制' 자 (‘製' 자가 아님)로 되어 있다. '선宣' 자와 ‘선덕宣德' 자는 모두 예서체이며, ‘선덕년제宣德年制'와 ‘대명선덕년제大明宣德年制' 는 모두 해서체이다. 양자 가운데 전자는 관지를 조각(각관刻款)하였으며 후자는 관지를 주조(주관鑄款)하였다. 진품 선덕로의 관지는 비록 각관과 주관의 차이가 있으나 모두 자체가 완정하고 깔끔하며 배열이 조화를 이루어 결코 엉성하지 않고, 관지의 색은 로신爐身과 같은 빛깔이다. 관지의 색이 로신爐身의 색과 부합하지 않으면 진품이 아니다.
선덕로宣德爐과 그 동시대의 방품은 현대에 와서는 이미 분간하기 어려우므로, 일반적으로 모두 진품으로 통한다. 명말청초明末淸初의 방품도 매우 진귀하며 청말민국초와 현대의 방품은 수장가치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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