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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농연의 경제사업 추진방향
나의 삶과 사회에 참된 활력을 넓게 펴는 자연생태형 자실거리를!
확실히 보장할 유통조직을 굳건히 건설해 내자!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정책위원장 채성석
1. 우리 삶터 바로보기
◦ 사회구조와 사람들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현재의 사회는 분명 시장자유를 전면화 시킨 왜곡된 물질중심의 금주(金主)사회이고, 거기에 모든 이들이 매몰되어 있다. 특히 국가중심형 관료들과 공무원ㆍ경찰ㆍ군인ㆍ언론인 및 과학자를 사칭한 지식인들이 합세하여 중증의 반 시민ㆍ반민주의 형태를 유지시키는데 몰입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가족중심의 이기적인 삶의 형태에 의해 정신적으로 짓눌려 그 날 그날의 삶을 유지시켜 나가는데 여성과 청년, 학생들까지 완전 포로가 된 듯한 형국으로 진리와 진보, 자연친화 및 생명상태 중심의 민주주의는 설 자리를 잃은 관료형 독점자본의 물결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덧붙여 자연환경과 에너지의 공급원과 소비의 형태를 보았을 때 그러한 불편한 진실과 왜곡되어진 현상들은 너무나 쉽게 발견된다. 특히, 화석연료를 쓰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철ㆍ화학공업분야에서의 소비의 증가는 자연의 힘을 완전히 고갈시키고 생명체들과 자연계에 심각한 오염의 폐해를 불러왔고, 인간의 탐욕과 무지는 결국 방사능의 오염과 정보의 오염으로 까지 다다랐다.
사람의 정신오염은 핵이라는 물질에 불감증과 멸망까지도 볼 수 없는 정신기능상실의 지경에까지 다달아 있는 것이 작금의 실태요, 무섭고도 두려운 사실이다. 더욱 그 실체와 안을 들여다보면, 지위고하ㆍ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치인ㆍ경제재벌ㆍ지식분자들과 과학자라고 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한통속이 되어 입을 다물고, 다수대중에게 희생과 무지 그리고 존재의 위협까지도 장삿속으로 활용하고 있음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이는 전체 자연 생태계 안에 발암으로 인한 고통과 생태계 전체(바닷물의 피폭)에 무서운 멸종의 심각성이 드러나게 하고 있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모든 언론과 어머니들까지도 함구하거나 느끼지도 보지도 못하니 그야말로 구제불능이요, 폭탄을 안고 불속에 뛰어드는 죽음의 실험을 날마다 예행연습 하는 것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그 어떤 정치ㆍ경제의 개혁보다도 먼저 되어야 할 것이 바로 이 시대 인간들에 의해(과학자들 = 살인마 + 인류멸종주의자) 저질러진 “핵”을 폐기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일과 함께 가장 힘 있게 추진되고 새로워져야 할 것이 바로 자연생태형 자실거리(친환경 먹을거리)의 생산기반을 지키고 더 넓혀내는 일이다.
이런 와중에도 귀한 친환경농사를 통해 인류구원의 길을 찾고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바로 친환경농사꾼들이라고 봐야 옳다. 이렇듯 친환경농사꾼은 단순히 비료와 농약치지 않은 농산물이 좋고 다른 것들과 차별화가 되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인류사회ㆍ역사 안에서 이 시대의 정신과 문명의 길을 표준화하고 새로이 해 갈 유일한 존재의 대안과 진리로서 존재해 갈 방식을 현실화 해내는 사회역사를 포함한 자연ㆍ인간ㆍ생명 생태계가 공존ㆍ공생해 갈 문명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길을 개척해 내고 있다는 의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연생태농사가 상대적인 개혁이나 진보가 아니라 근본의 가치요, 절대의 진리로서 살아나갈 참된 구원(해방)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생태농사는 그야말로 인류와 생명생태계 안에서 채택하고 가야만 하는 유일한 새 길로 되는 까닭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뜻이 그 안 자체에 흠뻑 젖어 있다하여도 아직 그 실체와 정확한 방도는 구체화 되지 못했으며, 그 인적기반과 수량에서 비할 바 없이 작고 허약하다. 더군다나 시대의 조류와 사람들의 의ㆍ식ㆍ주생활 및 정신문화영역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왜곡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그 영향력과 반전을 꾀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분명한 현실이고 넘어야 할 벽이요, 타파해 내야 할 기성세대의 숙제이면서 죄 씻음이 되는 것이다. 그 만큼 자연생태농사를 통한 문명의 물줄기를 새로이 파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삶의 좌표요, 방식 그리고 목표가 되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며 마땅히 옳다.
그에 반해 넘어야 할 산은 높고 많으며, 소모해야 할 시간과 목숨 또한 얼마여야 할지 가늠할 수 조차 없다. 이것이 친환경농업인이 처한 객관적 현실이라고 보는 것이다. 적당히 눈치보고 적당히 세상과 사회에 타협하든 안하든 이러한 오염된 공기와 물, 흙, 자연과 정신세계는 우리 곁을 겹겹이 둘러치고 포위하며 쓰나미 같이 쓸어갈 것처럼 위협하고 불안하게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속에 있는 작고 초라한 “나”와 친환경농업인들은 불안과 절망 그리고 두려운 자신의 삶의 모습에 진저리치면서도 어떻게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쓰고 있는 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일 것이라 추측해 본다. 사실 세상과 상관없이 나의 이익과 안전만 도모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폐해는 너와나, 지역의 차이, 나라의 가깝고 멈을 상관치 않고서 모두의 운명을 곤두박질치게 할 공포로서의 사실이니 어쩌랴.
따라서 더욱 준엄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신념과 그 진리의 길을 걸으면 반드시 새 문명의 신천지에 다다를 것은 분명하므로 한걸음 더 멀리 발을 떼야 할 것이다.
① 무모하다해도 몇 사람이라도 모여서 진리와 현실에 대해 분명하게 판단하고, 새롭게 거듭나는 모습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농사하며 사는 아름다움과 그 방식에 대해 밑바닥까지 정리를 해보자.
② 그러한 일들의 과정 안에서 반드시 뼈가 되고 살이 되며, 그 안을 샅샅이 누비고 다닐 혈액인 “자본”을 만드는 일에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보자.
2. 주체역량에 대한 진단과 평가
과연 친환경농업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총량은 얼마며 정치총량(지적능력+헌신성)은 얼마만큼 일 것인지 분명하게 가늠해 봐야 한다. 특히 경제사업은 바로 실제 사회의 역동적인 살림하는 사업자들과 직접 맞닥뜨리는 것으로 전쟁보다도 훨씬 잔인하고, 또 교활할 뿐 아니라 그 간 쌓아온 사회적 신뢰와는 관계없이 자기 이익(생존)에 직접 영향을 받고 주므로 신중과 철저한 실천의 담보(신용거래)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말 그대로 “자본”이다. 흔히 자본을 돈으로 착각하거나 쉽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코 “자본”은 만만한 물질이 아니며 이 사회에서는 절대적 가치의 기준이며, 믿음의 척도요, 능력에 대한 거래와 신용의 증명서이다. 이러할 진데 높은 정치의식과 협동과 연대의 동지의식이 크게 자리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본의 결핍은 1년 이상을 신용으로 지켜주기 힘이 든 것이 사실이다. 이유는 사회구조에서 자신이 처한 이해와 요구가 긴박하거나 위기에 있다면 당연히 그는 견딤성(조직이나 사회 복무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아예 떠나고 등을 돌리는 현상이 비일비재한 것이 인간의 일상사임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농사하며 사는 사람들이 뜻과 의지가 높게 된다면 일정정도의 값이 있는 사업들에 대해서는 그 가능성이 열려있음을 시사한다.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일반적인 사회의 양태들에 비견한 친환경농업인들을 대비해 본 소견일 뿐이니, 관점과 시점 그리고 개인의 역량이 가지는 한계가 있으므로 보다 솔직하면서도 전망을 내오는 진단을 해 보는 것이 주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따라서 본인이 가지는 한계와 행동할 수 있는 영역이 한정되어져 있음을 밝히면서 몇 가지의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러한 정도의 준비와 마음가짐으로는 강퍅한 사회에 대항할만한 꺼리가 많지 않고, 사람의 수 또한 매우 적으며 능력과 수완 역시 검증되지 않아서 상당한 진통과 난항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할 것이다.
특히 친환경농업인연합회의 내부구조는 매우 취약한 것으로 보여 진다. 맑고 깨끗한 사람들이 몇 몇 있지만 그것은 순수함의 결정체이거나 사회의 비정상적 흐름에 거스른 운동의 결과물이며 장마철의 태양과 같이 언 듯 보이기만 할 뿐 비를 그치고 구름을 걷어 낼 만큼의 역량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친환경농업인연합회만의 독자성을 띤 경제사업 단위의 건설은 조직의 사회활동역량까지도 일거에 후퇴시키거나, 무력화 될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자립성, 자생성, 중ㆍ장기적 조직 전망을 내오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의 조직건설방도와 운영방식 그리고 경상경비조달에 대한 특별한 사업수행이 있어야 함은 매우 당연하며, 필요한 것임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보여 진다.
3. 간단한 결론과 제안
서술이나 이론 전개가 서툴고 깊이와 내용이 빈약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정한다. 하여도 이만큼이 나의 실력이고 사람과 사회, 조직을 보는 관점인 만큼 흠점은 보태고 모자란 점은 보태서 완전해 지는 절차와 과정을 거치자는 것이 본인의 생각임을 바탕에 깔고 몇 가지의 제안을 하는 바이다.
특별히, 사회구성과 구조의 논란에 대한 논의 없이 그냥 곧바로 사회 안에 들어가 살아버리는 것이 되어 버린 요즈음의 세태(조직운용)에서는 정말로 할 말이 많고 따질 것도 많게 되는데 자칫 이 또한 불란과 오해 받을 소지가 있음으로 해서 구체성 있는 논구는 피한다는 것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이는 상당한 정치경향과 관계가 있는 것이고, 또 조직이나 사람, 사회의 정체와 매우 밀접한 것인데 아쉽게도 그 본체(정체)의 목표(핵심)를 말하지 못하고 기능과 가능성들 중 부분에 대한 것만 논의하게 된다는 점은 이해를 먼저 구한다.
① 그렇다하여도 진리와 진실 그리고 삶의 정체는 놓고서 말할 수 없기에 농사꾼은 가장 정치ㆍ사회성이 높을 때 그 목표와 삶의 가치가 가장 잘 보장되어 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모든 사고와 조직, 평상 실무들 모두가 정치성 즉 가치와 철학을 준엄히 설파하고 이해시켜 일상생활로 되게 하는 것이 생활화 될 수 있는데 까지 다다라야만 그 자연스러움이 사회ㆍ역사화 되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 역시 하나(大同)가 되는 것인 만큼 그 부분은 절대로 놓쳐서는 아니 된다. 말 한마디, 문자하나, 술 한 잔, 차 한 잔을 나누더라도 순수성과 고마움 그리고 상대에 대한 모심의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삶은 그래서 곧 정치요 예술로 되는 것이다.
때만 되면, 자리만 펴면 용솟음치되 보이지 않는 탐욕과 쾌락의 유혹들에 당당히 이겨야 하며, 보다 솔직한 대응책들까지도 공개하는 사람이야 말로 대안을 내놓는 것이며 지도력을 지니게 되는 것임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곧 경제사업은 조직과 사람, 그 시대와 사회를 살려낼 수 있는 매우 유력한 방침이요, 대안으로 가는 준비단계라는 사실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그 진용을 어떻게 갖추어 가야할 것인지를 간략히 밝혀보는 바이다.
② 경제사업은 집권에 대한 예행연습이며 지속가능한 개혁을 이루는 실력을 쌓는 행정력의 학교요, 전진기지이다.
그래서 지향은
ⅰ) 전국적이어야 하며
ⅱ) 대안의 농업생산체계인 친환경 중심이면서 건강한 미래를 책임지는 소비자의 처지를 반영한 조직중심이 되어야 한다.
ⅲ) 작아도 내부역량을 최대한 조직 점검하여 출범하되
ⅳ) 전국적 통일전선화(전농 경제사업단, 생협, 각 도시에 산재하는 소비집단),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집단(예 : 전교조, 한국노총, 민주노총, 통합진보당 등)을 연계하는 방식을 도모한다.
친환경농업인연합회 내부적으로는
ⅰ) 공공급식 전용단지를 확실히 조직해내면서 회원들의 실질적인 조직결합과 실력향상도모 및 관리와 활용이 가능한 상태의 수준까지 고려한 조직 묶음이 첫째로 되어야 한다. 그 단위가 그 지역의 공공급식영역을 중ㆍ장기적으로 반드시 실행해 낼 주체요, 책임자가 되게 한다.
ⅱ) 위와 같은 사업에 동의ㆍ동조치 않는 친환경농업인들에 대한 배려와 결집할 수 있는 여백의 사업을 고려하되, 중심과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즉, 전국조직과 경제조직의 관리체계와 운영방도는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조직 안에서 오해 받을 소지가 있고 경제사업에 대한 탄압의 빌미가 되는 것에 대한 경계를 삼아야 하며 그렇기에 경제단위의 목적과 방향을 명쾌히 설정해서 안과 밖에 공표하고 실행에 나서는 것이 준비되어야 한다.
ⅲ-1) 위의 상태에 걸 맞는 대안의 경제체계를 꾸려낼 수 있는 친농연 안에 내부체계 수립을 먼저 이루어 내야 한다.
(단기성 과제) (핵심주체설정)
☆☆ 판단 : 필요성은 절박한데 이해를 받지 못하거나 전반적인 사업(지도력)에 차질이 우려된다면 독자적인 활동영역을 보장하는 정치사업으로서 경제사업 일꾼 배치도 고려되어야 한다.
ⅲ-2) 사업영역에서 당장 필요한 만큼 실행해 낼 수집ㆍ공급역량과 기반사업을 준비해 내는 영역만으로 하되 현행 공공급식운동과 연계하는 사업방향으로의 세부적인 결합을 높여 내는 사업체계 확보방안의 모색(충남, 전북이 준비한 형태이지만 각 면, 시, 군 단위의 역량을 보완, 대책 수립이 시급함)하면서 대도시 학교급식+생산 공급기지 건설과 연계시키는 사업내용으로 출범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 전국연대체를 법적 틀로 묶어내는 형식이 더해 질 수 있음)
※ 지역별 시장크기와 품목, 사업수완에 따라 변동 폭이 커져 자칫 신뢰관계만 무너뜨리거나, 소단위 경제사업체들을 묶어내지 못하는 후괴를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함.
ⅲ-3) 전국단일조직형태의 대안의 사회체계로서 협동조합건설 준비위원회 형태의 경제단위 건설조직사업으로의 결집을 유도해 내는 방식.
판단 : 현재 친농 역량으로는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사업의 형태임. 다만, 포괄성ㆍ개혁성ㆍ사회개조 세력으로서의 조직 강화 방안으로서는 매우 유력함. 현장중심형 민주역량결집에 한계노정, 하지만 강력한 생활적 이해를 반영한 시민진보영역까지를 조직 안에 끌어 들일 수 있는 방도로 될 수 있다.
위의 사업을 서두에서 밝힌 것과 같이 정치ㆍ사회적 역관계가 분명히 있고, 또 대안으로서의 정치ㆍ사회역량을 발휘치 못하면 사회개조ㆍ대안세력으로서의 기능은 할 수 없음으로 그 판단을 분명하면서도 명쾌히 해서 사업진행의 단계로의 진입을 시도해야 한다.
이에 본인은 ⅲ)을 염두에 둔 ⅰ)의 방법을 실행하되 2013년이 오기 전에 ⅲ)의 의미와 목적, 그 방도와 범위까지를 밝혀내는 새로운 사회대안 체계로서의 단일조직형 협동조합 건설 준비를 제안한다.
그 출발과 진원지는 반드시 친농연이어야 하며 보다 조직 강화 된 생산자 연합회를 튼튼히 꾸리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의 친환경생산자도 놓치지 말고 조직 안에 결속시켜 내자! ⇒ 친농연의 당면과제이며 핵심내부조직 과제임.
◦ 이 후 숙제
① ⅰ)에 대한 핵심주체 설정 - 어느 단위에서 할 것인가?
② 포괄적 논의구조와 자본계획에 대한 확실한 공유가 가능한 범위까지만 조직범위 확정.
③ ⅲ)에 대한 판단이 되는 경우 이에 대한 후속대책과 사전 조직방향과 세부사항 검토 및 판단 기구의 운용할 핵심주체의 설정(친농연 내부)하고 그 활동범위와 영역에 대한 보고처 규정(비공개)
①의 중요성
친농인들도 우선 살고 살아남아야 한다. 괜한 고통과 시련을 불러들이고, 스스로 쇠약해지거나 삶에 지칠 이유와 필요가 없다. 따라서 솔직 담백한 현실에 근거해서 할 수 있을 만큼의 자본과 사회기능을 확보ㆍ확대, 더욱 나아가 넓게 활동을 펴는 진지와 샘을 마련해 내는데 동의여부와 관계없이 뜻과 자금을 함께 모을 사람이 있다면 서슴지 말고 진행해야 한다.
입으로는 진보요, 운동가니 하면서 삶터에 돌아와 보면 자유주의와 금주주의에 빠져 향락과 음주, 퇴폐한 것들에 너무나도 관용을 베풀며 그 안에 머슴이 된 체 입으로 회의 때만 주장을 펴거나 사람을 실망시키는 종자들은 아예 관심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조직이라는 이름을 내 걸 필요도 없다.
또, 농사꾼들 역시 입은 공화국인데 행동은 철저한 자본가의 논리와 실태로 농약 마음대로 치고 기계 마음대로 쓰며 시장주의자가 만든 생산 메뉴얼을 가지고 살면서 그들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중성과 궤변 그리고 실현 불가능한 자기(인간)개조의 한계를 분명히 스스로 드러내는 사람들이 대안이 되거나, 우선의 고려 대상이 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농사꾼은 진리의 농사꾼이요, 하늘과 우주에 단 한분이신 하느님이며, 귀한 새로움의 출발점인 창조의 자궁이 분명하다. 따라서 농사꾼은 늦고 부족하지만 자연과 인간, 생명체 모두가 공생해 갈 수 있는 방편과 기술을 새로이 정립해 내는 것 역시 이 시대의 분명한 과제요, 임무며 귀한 숙제이다.
이와 그렇게 된 바의 시점에서 친환경농사꾼 본연의 모습과 실질적인 삶을 보장받는「기술」을 집적해서 누구든 쓸 수 있거나 살게 하는 것이 된다면 따질 것이 없는 것이다. 이에 친환경농사꾼은 전문가 즉, 사회를 먹여 살리는 건강한 어버이요 전문일꾼이며 지도자로 되는데 실천의 노력과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제사업 일꾼은 아스팔트 위에서 글씨로만 길을 아는 이 시대의 엄마들을 상대로 또는 후세대의 예비역인 청년 학생들을 상대로 한 생명과 진리의 자실거리를 확실히 보급해주고 홍보, 선전하여 동화시켜내야 할 엄중하고도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되는 일이 된다. 이는 또한 친농연의 보급창고가 되며, 시장의 현실을 대비해 비추이게 하는 거울로서의 학교의 역할도 해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뜻과 과업이 주어진 것들에 목숨 바칠 의지가 있는 누구라도 함께 나서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적나라한 현실이요, 상황이다. 이러한 주변 정세와 안과 밖의 처지일 지라도 그 대안의 길을 찾고 굳건히 해 가는데 두려움과 한 치의 물러섬도 없어야 하며, 또한 빈틈과 오류가 있어서는 아니 되므로 치밀하면서도 조절과 조정이 가능한 고결한 혁명정신을 간직한 체 한 발씩 천리 길을 반드시 가야 할 것이다.
주장 ③에 대한 보완설명
일상에서 개혁과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까지도 자본과 물질의 중요성이 사람관계와 삶에 미치는 복잡한 영향에 대해서 놓치거나 중요시 하지 않는 경향은 뚜렷하다. 이 말은 두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사회 역사의 대안 즉 공동의 운명과 삶을 보장하는 정치체계로의 이행을 방해하거나 거기에 까지 이르지 못함이며 또 하나는 관념으로는 시장타파와 자본에서의 해방을 말하지만 그 안에 갇히거나, 스스로 그 길을 택하고야 마는 한계를 가졌음에도 자신의 삶과 주장이 옳다고만 믿는 자기 편협성과 이기를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설명이지만 인간의 정신세계가 현실의 실정에 따라 변화ㆍ변형해가는 모습들이 매우 다양하고, 예측불가능해 보이지만 큰 틀에서는 그 대응이 참으로 반 역사ㆍ반 인간ㆍ반민주ㆍ반 생명생태로 나타나는 원인들의 출발점이 되는 것을 말함이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가지는 마력이고 또 사람이라는 동물이 빠지기 쉬운 딜레마이여, 현실이고 현상이기도 하다.
결국 그러한 존재 진실에 대한 명쾌한 이해와 설정 없이는 사회, 역사 개조를 이룰 수 없거나 바른 실현은 불가능해 보여 패배와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마는 인간사의 비극적 요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용한 정풍(개혁)은 바로 경제에 대한 바른 인식으로부터 출발되어진다는 것이고 결국 경제일반은 사회 역사개조에서 떼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과제요, 실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분적, 개인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것이 최선인 것으로 여기면서도, 뒤척이는 메아리만 잠꼬대 같이 외치는 현재의 진보진영은 그 대안을 막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을 많이 안에 숨기고 있다고 진단한다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순수성과 사회역사 본연의 자세와는 거리가 먼 실용주의적 진보 즉, 시장 자유주의 안에서의 개혁을 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이미 그 안에 품고 있다.
이는 정치영역의 보수정당이 가지는 한계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 방편과 실천방법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결국 암울한 것들을 불러들이거나 분열내지 숙청 그리고 끝내는 전쟁이라는 파멸까지도 운명적으로 선택하는 무리들임에서 그 끝이 같다고 봐야 옳다.
이에 친환경농사꾼들은 새로운 형의 존재방식과 방법들을 내 생활과 사유체계 안에서부터 새롭게 만들고 짜내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급기야는 문명의 인류로 되어가는 새 땅, 새 하늘을 여는 사업과 과제를 발굴하여 보듬고 나가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일상생활의 진리화요, 방식(기술)의 진보를 펴는 것으로 경제, 정치, 사회형태, 예술과 변형 창조로서의 삶의 과정을 지속가능하게 하며 관계의 순환을 올바르게 하는 자연 생태 순환의 협동형 사회로의 진입을 시도해 내는 일이다.
이는 막연한 전국 단일이 아닌 반동과 수구시장자유주의자들의 반대와 탄압에 맞서 나갈 유일한 사업체계요, 지도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화, 개방화, 세계화는 그들이 만들어 낸 허구적 구호요, 통치지배 논리요, 술책이다. 자본을 묶어두고 사지와 영혼을 종교에 가두어 빛이 무엇인지조차 구분치 못하게 한 조건에서 경찰과 첩보, 검찰까지 동원한 탄압과 통치의 실마리가 “법”이라는 이름으로 이중ㆍ삼중으로 겹쳐져 짓누르고 있다 함에도 운동의 양심, 개별화된 각성만으로 어떻게 가능하다고 말하며 정치적 대응만으로 그 실질적인 개혁과 개조가 가능하다고 할 것인가? 결코 그러한 형태로서의 참된 해방과 진보는 있을 수 없는 것이 인류역사의 필연이었고 한계였다.
따라서 늦었고 또 미약하며 한계점들이 분명히 있다하여도 그것을 일소해 갈 대안을 찾고 세우며 실행해 현실화 하는 것 역시 우리 기성세대면서 친환경농사꾼들의 시대적 책무이며 가장 타당하고 적절한 단위의 조직체임을 분명히 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시정잡배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 어떤 법과 방식들은 그 하나도 모두의 삶에 빛과 지향이 될 수 없다.
물질과 자본, 기반시설과 사람의 마음 바닥에 기초하는 체계인 협동형 사회로의 진입을 위한 우리들만의 새 세상이요 보루며 성곽인 정치, 경제, 문화역량을 결집한 지도와 생활중심보장의 새 형의 정치조직이며 결사의 성격을 지닐 수 있는 행정만능의 경영체인 우리(친환경농사꾼)를 중심축으로 한 여럿의 시민조직(꼼, 공동체))을 누리에 세워내야 한다는 취지에서 ③에 대한 단면들을 드러내 말씀드리는 바이다.
이와 더불어서 현재라는 시점과 관계망의 형성에서 그 첫째가 되는 관계의 기초들(?)에 대해서는 한 단계 깊숙하고 더 바르고 세밀한 논의와 체계가 수립 되어져야 함은 마땅하다고 본다. 여기에서 구체적 서술이 적용되지 아니한 부분은 정치, 경제사상의 단초들이다. 자연, 인간, 생명생태에 대한 해석과 판단 그리고 실현시켜갈 방도들의 근거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와 정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밝혀둔다.
이유는 다기한(종교)의식에 바탕한 체의 강력한 주체세력을 만드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며 위에 열거한 바와 같이 열악한 사회구조에서 열려진 공간이 매우 협소한 생태에서는 생활의 삶을 담보해내는 것으로부터 차츰 다음 단계의 진행이 순서라고 하는 것은 이미 아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경제(물질)라 표현하지만 실재는 그 안에 영혼(세계관)을 반드시 포함하고 있게 되며, 그럴 때 가장 강력한 신념과 불요불굴의 사회개조가 실현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에서 얻어내거나 타고 있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구체성 있게 들여다보자. 그것이 자기의 모습이다!
그래서 경제사업에 진입하는 것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선택하듯 우리자신이 일반시민사회와 정치지향에 어떤 브랜드와 마크를 형상화 해낼 것이냐가 중요하기에 “근본”과 “지향”을 미리보고 “현재”에서 “미래”로의 과정을 구체성 있게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한 발도 하나의 희망도 그려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대인의 삶과 사회에서 정ㆍ경의 분리, 돈과 삶의 행복(기회)관계 분리, 이성과 물질의 관계성 끊기, 권력과 민주적인 삶의 분리, 국가와 국민의 권한 나누기 등으로는 절대가치인 행복한 개인도 세상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정치, 경제는 사회이며 삶이고 실체인 것이지 절대 동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왜곡되고 편중한 권한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중심ㆍ권력중심 자유주의는 그 바탕이 매우 반 문명성과 거짓을 가득 담고 있다. 그렇기에 사상의 기초를 바로 보는 지혜와 공감이 무엇보다 먼저여야 하는데 역시 쉽지는 않으므로 경제단위에 대한 첫째와 꼴찌를 나열해 보고 난 연후에 ③에 대한 주장과 실천을 더욱 명료히 해가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잠깐 덧붙이면 협동조합형 조직화는
첫째, 조직원 모두에 공통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균등성과 평등의 가치가 미리 보장되어 진다는 점이다.
둘째, 자유와 자율의 보장 및 정치적 보호와 삶의 안정이 보장되는 체제와 운용이라는 장점이 있다.
셋째, 일관된 지도목표와 교육이 가능해 짐으로써 결사형태의 내부역량을 모아낼 수 있고 그 활동이 자신의 삶터에서 가능해진다.
넷째, 인간과 자연환경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현대산업과 잘못된 과학들과 문명이라는 것들이 만들어 낸 오염된 쓰레기장이 된 사회, 경제 정치적 모순들을 혁파해내고 그 개선을 통해 자연의 기능과 인간의 삶이 온전히 보호되는 체계로의 재진입의 가능성이 비로소 열리는 유일한 존재 방식이요, 운영체계가 된다.
다섯째, 반동들의 책동과 속임수들을 미리 간파 저지하며 다수의 사람들에게 희망의 좌표와 낙관의 전망을 갖도록 하여, 다기다양한 문화ㆍ예술적 풍모와 놀이, 갖가지의 창발성 있는 세계로의 비상이 자연스럽게 열리고 보장되는 체계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점이다.
여섯째, 그 안에서 실질적인 책임과 일을 해가는 사람들은 공기(公器)로서의 역할과 보람이 넘치게 되어 스스로의 에너지와 자긍심들이 솟아나 역사사회의 등대로서 역할을 더욱 과감히 알차게 수행해 내게 된다는 점이다.
일곱째, 이러한 하나의 모범은 각 영역마다에 진전된 진화의 역사가 이뤄지는 조직적 파괴기능이 수행되어짐으로 해서 인입과 전파가 일어나 역동적 흐름으로 만들어져 전 사회 안과 사람마다에 긍휼과 창조의 낙관들이 수없이 일어나게 되는 묘리의 불꽃놀이가 이루어진다.
위의 예들은 사람이 가지는 최대강점을 조직화, 집체화 해낼 때 일어나는 현상들이긴 하여도 한 사람의 개인, 또는 작은 모임체들 안에서도 그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는 우리 자신들이 정치, 사회, 경제의 부품으로서 사고하고 그렇게 지배 받아온 과정이 많이 지배했기 때문에 과대망상 또는 현실성 없는 꿈이라고 대접받기 쉬운 현상이기에 덧붙여둠을 이해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