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우리사회에 유행했던 의상 중에 '월남치마'라는 것이 있었다. 월남치마는 허리에 고무줄을 넣고, 통이 크고 자락이 발목 부근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로 당대 여성들이 작업복으로 입던 몸빼바지와 함께 지금까지 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최근들어 허리부분에 신축성 좋은 고무밴드를 사용하고 소재 역시 면이나 스판텍스 등으로 다양화됐다. 게다가 길이는 무릎까지 치고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한 것은 허리춤을 가슴까지 올릴 수 있을 정도의 탄력을 자랑하는 신축성 있는 소재 탓에, 몸이 마른 사람이나 뚱뚱한 사람이나, 중년 여성이나 젊은 여성이나 크게 격식을 차리지 않고 누구나 손쉽게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월남치마라는 이름만 놓고 보면 베트남의 한자어 표기인 '월남(越南)'에서 따 온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정작 베트남에는 '월남치마'가 없다.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만 해도 신축성 있는 소재로 만든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중국음식이라고 알아 온 자장면이 정작 중국에는 없다는 말과 같은 꼴이다. 최근 너나없이 '다문화'를 들고 나오는 교육, 행정, 문화, 사회복지, 인권 관련 기관이나 언론의 모습을 '화려한 파티 속 유래를 알 수 없는 월남치마의 궁상'이라고 못박고 싶을 지경이다.
최근에 쏟아지는 다문화 정책들은 이주노동자, 결혼이주민을 포함한 모든 주한외국인을 '다문화'라는 한 단어로 포장하려고 한다. 정작 '다문화(多文化)' 속에 다문화는 없고, 한국문화의 강요만 있지 않은가 하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역설적인 모습이 최근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류 외국인 100만 시대의 도래'라는 지난해 언론 보도 이후, 급증하고 있는 결혼이민자들의 유입과 더불어 피부로 느끼는 다문화에 대한 논의의 범람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다문화라는 단어의 홍수 속에 남발되는 다문화정책은 현실과 엇박자로 돌아가, 논의도 하기 전에 '다문화'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조기 피로감은 다문화사회의 철학, 이론, 방법론 등에 대한 충분한 준비 없이 마지못해 다문화사회로 급하게 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는 가운데, 다문화 가족 구성원의 조기정착과 사회통합에 필요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다문화가족 지원 법안'과 체계적인 외국인정책의 수립·집행을 통한 정부정책의 효율성·일관성 제고와 함께, 재한 외국인에 대한 조기 사회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이 만들어졌다. 또 결혼이주민들의 사회통합을 지원하기 위해 실시할 예정이라고 하지만, 관련단체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제' 등 관련 법규들이 속속 제정되고 있다.
그러나 법 제정 과정에 정작 다문화 지원 법안의 주체이어야 할 다문화 가정과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이주민들의 목소리는 없다. 정부의 주도하에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만이 들리는 현실은 우리사회의 다문화 논의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오히려 다문화 논의의 홍수 속에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소외의 제도화와 차별의 고착화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정부의 지원 대상 우선순위에는 언제나 결혼이주민만 있고 이주노동자, 특별히 '불법'이라 불리는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가령, 지난 5월 2일 법무부 출입국에 연행되어 강제 출국된 이주노조 토르나 위원장과 소부르 부위원장의 경우, 국가인권위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에게 "진정인과 피진정인 진술, 관련 증거 확보 등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이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강제퇴거 명령서의 집행을 유예해 달라"는 긴급구제 조치를 권고한 상황에서, 네팔과 방글라데시로 각각 추방되었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인권위의 '긴급구제조치 권고'까지 무시하며 두 사람을 강제추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땅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최근 범람하고 있는 다문화담론에서 철저하게 왕따되며 차별받고 있으며, 기본적인 권리조차 무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 사회의 다문화 혹은 이주민 논의가 상당히 압축적이며 비약적으로 전개되는 현실 속에서 파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문화 논의가 '다수를 위한 행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모두를 위한 것이고, 기본권적 인권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라면 단순하게 법안 제정을 통해 섣부른 다문화 사회의 진입을 강제하기에 앞서 다문화 담론의 주체에 대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이주민에 대한 문제는 제도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상의 문제이자, 순혈주의에 기초하여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교육을 받아왔던 우리 국민의 의식 문제이기도 하다.
편리함 때문에 환영받는 월남치마라고 해서 언제 어디에서나 입어도 되는 옷이 아니라는 것쯤은 상식이다. 그런 면에서 다문화 논의 역시 지금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하긴 하나, 자신의 입맛에 따라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댓글 목사님 의견에 동감 합니다...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