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이 되도록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습니다만 - 심지어 군대에서도 키보드만 두들기다 전역 - 윤대현 선생님에 대해 피상적으로나마 알게된것은 그래도 꽤 오래된것 같습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니 몸은 약해도 강함에 아예 관심이 없을수 없었고, 또한 성룡에 열광했던 세대이니 운동은 전혀 안했지만 무술이란것에 관심이 없을수가 없었고, 한동안 격투게임에 미쳐있었는데 종종 '합기유술' 이란 무술을 사용하는 캐릭터들이 종종 존재했구요.
당연히 캐릭터 프로필과 파이팅 스타일에 대해 연구하다보면 이게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합기도와는 다른 좀더 유술에 집중하는, 그리고 언뜻봐서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기술 체계를 가진 무술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요.
근데 그때만 해도 인터넷과 PC로 동영상이란걸 공유해 본다는 게 굉장히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게임 캐릭터의 움직임을 보고 그냥 그런거다 하고 넘어가는 정도였죠. 실제로 영상을 통해서 아이키도 연무를 본건 한참 후의 일입니다만.
운동은 안하면서 인터넷에서 키보드 배틀을 벌이는 흔히 말하는 오타쿠나 그쪽 문화에 한발을 걸친 사람들에겐 '최강론' 이란, 언제나 식지 않는 떡밥입니다. 그러다보니 태극권, 택견, 태권도의 강함에 대한 논란이 언제나 인기있는 떡밥인데, 어느날부터인가 아이키도가 함께 오르내리더군요.
보통 상기한 무술들에 대한 논란은 전통과 정통성 그리고 실전성에 대한 의문입니다. 언제나 비슷하게 시작해서 비슷하게 끝납니다. 무의미한 짓이지요. 그러나 운동을 시작하고서야 알았습니다만 실제 운동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끊임없이 자신이 하는 운동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갈등을 느끼는데 하물며 운동을 아예 안해봤거나 맛만 조금 본 인사들의 문자 배틀이야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아이키도는 이런 논란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운 편 이었던던것 같습니다.... 물론 제 주변에서만 그랬을수도 있습니다. 토론이란것도 말이 통해야 하는거니까요. 근현대에 성립된 무술이라 족보가 뚜렷하고, 창시자의 일생이 거의 알려져있다 보니 오히려 전통, 정통성 논쟁에서 자유롭고, 실전성 면에서 가장 논란이 심할만한 무술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예나 지금이나 의문을 표시하는 경우는 많지만) 타격기가 있네 없네 발차기가 있네 없네 싸우다 보면 그 타격기의 부분에서 국내 최정상까지 올라간 경력을 가지고 있는분이 자신이 해왔던것과 가장 차이가 나 보이는 무술에 제자로 들어가 배워서는 국내에 들여와 보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권위를 만들어 주었던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키도라는 무술에 대해 신비감과 호감 같은것을 가지고 있었고, 윤대현 선생님에 대해서는 일단 보통분이 아니라는 정도의 '지식' 은 가지고 있는, 말하자면 제 인생과는 그때까지만해도 전혀 관련이 없는 분이셨죠.
근데 사람일이란게 참 알수가 없네요.
평생 운동 안하던 놈이 배나오고 체력떨어진다고 자전거로 출퇴근 시작한게 계기가 되서 몇년후엔 자전거로 산을 오르고, 또 한두해 지나 웨이트를 시작하고, 원래 운동하던분들 기준으로야 별거 아니지만 맨날 키보드만 두들겨대던 저로서는 10대, 20대 때는 상상도 못하던 체력 향상을 경험하다가, 2011년 가을에 운동하다 허리를 삐끗하게 됩니다.
그리고 12월부터 좌골신경통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죽겠는건 MRI를 찍어도 이상이 없다는데, 통증이 미치도록 심했다는 거죠. 결국 의사 지시대로 정기적으로 척추에 신경 차단 주사를 맞으면서 재활운동에 매달리게 됩니다. 뭐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재활운동으로 뭔가 해야겠다고 맘먹고 처음 생각한건 검도와 태극권 이었습니다. 일단 허리가 약해서 그런거라고 들었으니까요. 솔직히 데드리프트 무게 올리다가 다쳤는데 의사는 척추기립근 강화 운동을 하라니 뭔소린가 싶기는 했지만 균형이 무너진건 사실인것 같아서 무너진 균형을 잡는데 도움이되는 운동을 하려고 인터넷에서 지도 검색하다가 태극권 도장 근처에 아이키도 도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키도에 대해서 읽은 어느 글에선가 아이키도가 허리를 세우고 중심을 유지하는걸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본거 같아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또 증상이 너무 심해져서 또 한 한두달 지체되긴 했지만 결국 청주 오승도장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실재로 장재봉 관장님을 처음 만나고 느낀건 딱 하나였습니다.
'이 사람은 진짜다.'
그게 작년 3월이었으니까, 벌써 일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중간에 상태가 너무 악화되서 한달씩 또는 몇주씩 통으로 빼먹기도 하고, 또 꾀가 나서 요령을 피우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다녔던건 장재봉 선생님 덕분이라고 할 수 밖에 없겠네요. 처음에... 지금도 거의 그렇지만, 회원도 없는 오전 시간에 단 둘이 도장에서 제 몸 상태에 맞게 운동을 할수 있게 이끌어 주셨고, 무엇보다 성격이나 그 삶의 방식에서 매력을 많이 느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거의 회복상태에 있는 지금, 스트랭쓰 면에서도 다치기 직전 상태에 비해서 8-90%는 유지가 되고 있었다는걸 확인했습니다. 그동안 도장에서 조심스럽게 운동한것 이외에는 거의 한 게 없는데두요.
세미나 후기 쓰다가 뜬금없지만 장재봉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윤대현 선생님 이글 보시면 장재봉 관장 칭찬좀 해주세요~
윤대현 선생님을 처음 뵌게 작년에 스가와라 선생님 오셨을때였네요. 그때도 전날에 신경 차단 주사 맞고 아침에 진통제를 먹고 올라간 상태였을겁니다. 그런 곳에 가본적도 없고 하카마 입는것도 그렇고 낯선것 투성이였기 때문에 엄청 긴장하고 있었던데다가, 허리를 조금만 굽히면 통증이 오는지라 그땐 차타는것도 부담스럽고 힘든상태여서, 사실 다른데는 거의 집중할수가 없었던 상태였습니다.
윤대현 선생님께도 그때 스치듯 인사드린것 뿐이었던것 같은데, 이번에 청주 오셔서 그때 잠깐 만난것을 기억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제가 긴장하거나 술먹으면 말이 많아지는데, 긴장한데다 나중에 술까지 들어가서 너무 횡설수설하면서 결례를 한 것 같아서 다음날 후회 했습니다. 그때 다른 도장에서 오신 관장님들께두요. 그 점 죄송합니다.
세미나 시간 내 선생님 움직임을 한동작도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하고 있었던것 같은데, 사실 가장 인상이 강했던건 윤선생님께서 손목을 잡으라고 내주셨을때의... 그.. 당혹감 이네요....
가끔 주변에서 어려서부터 운동하던 친구들 손목을 보면 좀 두껍기도 하고, 두껍지 않더라도 잡아보면 정말 탄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기했는데, 장재봉 관장님 손목도 아주 두껍진 않지만 잡으면 탄탄하단 느낌이 바로 들었거든요. 근데 윤선생님 팔은... 그러니까 잡으라고 주시기는 하는데.... 보통 발목도 그정도 두꺼운 사람이 많지 않은것 같은데......
'무골'이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만, 운좋게도 인생을 평탄하게 살아와서 정말 그말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을 눈앞에서 본건 처음인것 같습니다.
손목을 잡자 바로 던져주셧는데, 사실 어떤 기술을 보여주실때 였는진 잘 기억이 안나고, 인상만 남아있네요.
커다란 곰.. 아니 공..에 부딛혔다가 튕겨나가는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운동회에서 굴리기 할 때 쓰는 사람보다 더 큰 커다란 공에 달려들어서 파묻혔다가 튕겨 나가는 듯한 느낌....
스스로 한두번 던져져서 뭔가 느낄만한 수준 일수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지금은 그냥 맘편히 느낌만 간직하려고 합니다.
언젠가 다시 떠올릴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땐 뭔가 발전이 있는거겠지요.
기술 시연 이외에도 중간중간에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야단도 많이 치셧습니다만, ^^;
아이키도에 대한, 무술에 대해서는 물론, 이나라에서 아이키도와 무술을 수련하고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그리고 그것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특히 제자들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정말 많이 하고 계신다고 느꼈습니다.
윤대현 선생님께서 연재하신 칼럼들을 종종 읽어보면서 대한 합기도회 라고 하는 조직과 그 정통성등에 대해 강조하시는 모습이 선생님께서 선택한 길에 대한 자부심과 조직에 대한 긍지때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실제로 말씀을 들어보니 그 이상으로 자신과 인연을 맺은 제자들에 대한 애정과 그 앞날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거라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스스로 타인을 제대로 책임지는 입장에서 서지 않으려고 회피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무거움을 모르고 쉽게 타인을 책임질 듯 행동하거나 또 이미 진 책임을 내던지는 양자를 다 싫어합니다. 하지만 그런 인연을 무겁게 생각하면서도 맺어진 인연에 책임을 지고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존경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아이키도가 종교의 역할을 한다고 하셨는데, 그런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물리적으로 강해지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강하다'는게, 실은 말 한두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또 누구나 강함에 대한 기준이 다 다르다는것, 특히 남자라면 어떠한 것을 강함으로 정의하고 그것을 동경, 또는 외면, 또는 추구하는가가 그 사람이 어떤인간인가를 거의 정의한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정말 강한게 뭐가 되던간에 자신이 약하다는것 하나는 절절히 느끼게 되는것 같습니다.
'무술이란 초인을 만드는것' 이라 하셨는데, 저로서는 초인이 되는 길을 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 길위에 가만 서서 포기하지 않는 인간이나마 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약한 인간인지라 매일 매일 흔들리고 좌절합니다만, 그래도 아예 놓아버리는 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관장님' 이나 '사범님' 이나 '스승님'보다 '선생님' 이란 말이 좋습니다.
시대에 따라 '선생' 이라는 말의 일반적 정의는 변해 왔습니다만, '선생'이란 말 자체가 앞에 사는 사람, 앞을 가는 사람이란 의미가 있는것 같아 좋아합니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 자신있게 등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선생' 이겠지요. '걱정하지 말고 믿고 따라와라' 하고.
아이키도에 입문하면서 장재봉 선생님과, 윤대현 선생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을 신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윤대현 선생님 하카마 틈으로 보이는 낡은 검은띠가 인상이 강해서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사실, 이제껏 살면서 뭐 하나를 긴세월 붙들고 있어보질 못해서, 뭐라고 표현은 못하겠습니다만... 앞으로 남은 삶에서 뭔가그런 것을 가지게 된다면 더 바랄것이 없을것 같습니다.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막 생각나는대로 쓰면 안될거같은데?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일단 갑니다. :)
청주 오승도장 식구들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같이 수련하는 시간은 적지만요. 제가 몇군데가 좀 나사가 빠져있어서, 주변에 본의 아니게 좀 섭섭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것 같습니다. 자주도 못보는데 가끔 만나도 항상 붙임성 있게 대해주고, 잘 해주려고 신경써 주는것 잘 알고 있습니다. 파이팅입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