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성을 부르는 소리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국어국문학과 160005
김유경
기승을 부렸던 여름의 더위가 사라지고, 해질 저녘의 서늘함에 나는 가을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 주 추석을 맞이해 빚은 송편이나 과일, 전처럼 먹음직스러운 명절 음식들보다 그저 한 끼 식사로 우리가 많이 찾는 '밥'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한국사람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밥을 짓는데 필요한 '쌀'은 우리에게 정말 고마운 존재다. 그래서 나는 예로부터 평야가 발달해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우리 지역의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하는 물음이 생겼다.
‘들노래’ 라는 말은 전통사회에서 농민들이 들판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르던 노래다. 일반적으로는 ‘농업노동요’ 라고 하는데 호남 지역에서는 농업노동요중에서도 주로 논농사 노래를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예로부터 논농사는 일의 능률을 높이고 지루함과 고통을 덜기위해 농민들이 직접 만들어낸 농요로 각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불러졌다. 강릉 학산농요, 예천 통명농요, 대구 공산농요, 고성노요, 대전 도안동농요 ,익산 삼기농요, 진도 남도들노래로 구분지을 수 있는데 이 중 중요무형문화재 51호로 지정된 '남도들노래'는 바다와 가까운 섬이지만 농사가 발달한 진도에서 들을 수 있다. 땅의 귀중함과 농사의 소중함을 담은 노래로 농토가 작지만 풍부한 수확을 거뒀던 진도의 노래다. 영상을 보면서 나는 사람들의 땀과 호흡이 들노래를 타고 모에 베어나와 풍부한 수확을 거둘 수 있었던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영상은 '남도들노래'의 본고장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 얘기를 시작으로 진도지역에서 전해지는 남도들노래를 보여주었다. '남도들노래'는 1983년에 만들어진 '남도들노래보존회'를 통해 재현되고 있다. 논의 경직규모나 노동조직의 규모가 다른 평야지대보다 작았지만 웅장하진 않아도 세련되고 매끄러운 노래라는 특징을 가졌다. 진도에서만 떠돌았던 '남도들노래'를 전국에 알린 사람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남도들노래' 예능보유자였던 '조공례'선생님이다. 그녀의 소리와 정신이 잊혀져갔던 소리를 알린 것이다.
벼농사는 농사짓는 과정이 길고 복잡하기 때문에 그만큼 들노래가 많이 생겨날 수 있었다. 들노래로 포함될 수 있는 민요를 농사의 단계에 따라 종류별로 살펴보면 논가는소리, 물푸는소리, 갈꺾는소리 , 논삶는소리, 모찌는소리, 모심는소리, 논매는소리, 장원례소리, 벼베는소리, 벗단나르는소리, 벼떠는소리, 벼드리는소리, 말질하는소리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전국적으로 비슷하게 보여지는 소리는 모심는소리와 논매는소리이고, 이 두 가지 소리가 농사하는 과정에서 부르는 노래중 가장 다양하다.
나는 영상에서 볍씨를 담그는 것 부터 써레질,모찌기, 모내기,논매기,장원례를 보았다. 논농사의 본격적인 준비는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철에 볍씨를 담그면서 시작된다. 이때 소금을 넣어주는데 그것은 중요한 것이다. 건강한 볍씨를 골라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에 한번씩 물을 갈아주며 담궈둔다. 그 후 모 한 구석에 씨를 뿌리고 한 달쯤 지나 한뼘 정도의 어린 모로 자라난다. 사람들은 모를 심기 위해 논에 써레질을 한다. 소에 써레를 달아서 이것이 논바닥을 긁고 다니면서 흙덩어리가 잘게 부수게하고 물과 섞여 풀어지게 한다. 이것은 논바닥 흙을 잘게 부셔서 모를 심기좋게 하는 것이다. 써레질은 노래를 부르면서 하는 작업은 아니지만, 모찌기와 모심기를 하는 동안에 한쪽에서 계속하는 일이라서 한두 명이 이 역할을 맡아 해야 했다고한다. 그리고 머리위에 흰수건을 메고 넝쿨식물을 감아 머리에 두르는 특징도 있는데, 그 식물은 벌레를 쫓는 효능이 있다고도 한다. 그 후 모찌기를 한다. 모찌기는 모내기를 하기위해 모판에서 어린 모를 뽑아 묶어내는 일이다. 모찌기를 시작으로 경쾌한 들노래가 울려퍼진다. 이 때 노래는 한 사람이 선창을 하고 사람들이 받아준다. 모찌기를 할 때 모를 찌는 것은 여자들의 일이고 논에 모를 던지는 것은 남자들의 몫이다. 긴소리로 시작하 모찌는 소리는 모찌기를 마무리할 때 자진소리로 바뀐다. 이것은 빠른 가락으로 일을 빨리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다. 모찌기가 마무리 되면 본격적인 모내기 시작된다. 모심기는 모판에서 쩌낸 모를 옮겨 넓은 논에다 심는 일이다. 모심는 시기는 보통 절기상으로 망종(양력 6월 5~6 일)에서부터 하지 (6월 21~22 일)까지인데, 인지리에서는 하지 전 10 일, 후 10 일 동안이 모심는 시기였다고한다. 모심기는 모찌기와 마찬가지로 인지리에서는 여성들이 몫이었다. 대신 남자들은 남은 논의 써레질을 하거나 지게로 모를 옮겨 주는 모쟁이 노릇을 하고 논두렁에서 못줄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았다. 전라남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모심기를주로남자들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꾕과리 장구 북 징 이 등장해 사물패가 모내기에 함께한다. 모심기는 일년에 한 번 뿐인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심는소리 역시 앞소리를 선창해주는 사람과 그 후의 소리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 함께 모를 심으면서 소리를 메기고 나머지 사람들이 일정한 후렴구를 부른다. 노래에서 경쾌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모심는소리도 모찌기때 처럼느리고 빠른 두 가지의 소리가 있는데, 주로 느린소리를 많이 하다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자진소리로 넘긴다. 모심기가 자진소리로 바뀌는 것은 거의 다끝나감을 말하고 모찌기에 비해 모심기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모심기가 다 끝나가면 앞소리를 하는 사람은 소리를 통해 어서 모내기를 끝내지는 희망을 동요한다. 한 해 농사에서 중요한 모심기가 끝나면 사람들은 이른 아침 모찌기부터 시작된 긴 노동이 끝났으니 모심기가 끝나면 논가에서 한 바탕 놀이가 벌어진다. 모심은지 한 달 정도 지나면 어린 모가 많이 자라나는데 이때부터 모가 자라나는 것을 방해하는 잡초가 자라난다 이 잡초를 없애기 위해 논매기를 일녀에 세 번정도 한다. 그리고 후렴소리를 따서 절로소리라고도 한다. 늦여름 무렵 마지막 논매기가 끝나면 이 후 힘겨운 노동후의 보람과 희열은 장원례로 이루어진다. 그 해 농사를 잘한 사람을 소에 태우고 그 논주인의 집으로가서 먹는 술과 음식을 먹는데 이때 부르는 노래를 인지면에서는 길꼬내기라고 한다. 선비들의 장원급제를 흉내낸 것이다.
흙과 물과 사람이 어우러졌던 노동 속에서 농민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노래로 그들의 삶과 공동체를 이끌어 나갔다. 다른 지역의 농요의 종류를 보면, 강원도 지역에는 써레질을 할 때 소를 몰면서 하는 소리가 있고, 벼를 베어 내면서 하는 소리도 있으며, 벗단을 내리쳐 타작하면서 하는 소리도 있다. 그에 비해 남도들노래는 매우 단순해서 다른 곳의 농요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남도들노래'의 매력은 그 자체의 구성과 뛰어난 음악성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하기위해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없다. 영상을 볼 때마다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 자연과 우리를 이어준 것은 모두 '노래'덕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땀과 정성으로 빚어낸 쌀 한 톨에 담긴 농민들의 노래가 지금 내 앞에 있는 밥 한 그릇에 모두 담겨 있는 것 같다.